오랜 무더위 끝에 첫 가을비가 내렸다.
창 밖 뜨락에 점, 점, 점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다.
내가 써온 글 조각들이 나뒹구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제법 무성해질 걸로 기대했던 내 나무는 여전히 빈약한 몰골인 채 올해도 조락凋落의 계절을 맞았다.
숙성의 길은 멀고멀다.
그러나 떨어질 것들은 떨어뜨려야 하리라.
나의 작은 나뭇잎들, 무언가를 향한 그리운 숨결을 담은 나의 작고 짙은 응시들…….
이 비가 지나면 가볍게 날아올라 점점이 흩어져다오.
어디로든지 날아가 나처럼 삶을 앓는 누군가들의 가슴 위에 가만히 얹혀다오.
사뿐히, 그러나 내통하는 첩자의 암호처럼 긴밀하게…….
그와 함께 걸을 수 있어 쓸쓸치 않았던 인적 드문 글길이 이 책을 쉬어가는 그루터기 삼아 새롭게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