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1쇄 발행 2007년 6월 1일
지은이 l 오스카 와일드
옮긴이 l 김전유경
발행인 l 최봉수
편집인 l 박상순
책임편집 l 이소연, 편집 l 강인경
제작 l 한동수, 마케팅 l 서재근 김철원 이상호 양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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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주)웅진씽크빅
출판신고 1980년 3월 29일 제300-1980-14호
ISBN 978-89-01-06626-4 04840
ISBN 978-89-01-06555-7 (세트) 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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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 높은 기둥 위에 행복한 왕자 조각상이 서 있었다. 행복한 왕자는 온몸이 최고급 금박으로 둘러싸이고, 눈에는 반짝이는 사파이어 두 개가, 손에 쥔 칼자루에는 커다란 붉은 루비가 빛나고 있었다.
행복한 왕자는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 유명한 시의원은 예술적 취향을 뽐내려고 이렇게 말했다.
“마치 풍향계의 새처럼 아름답구나.” 그러고는 사람들이 자신을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할까 봐 “물론 그렇게 유용하지는 않지만.” 하고 덧붙였다.
무엇이든 사 달라고 졸라 대는 아이에게 현명한 어머니는 말했다.
“너도 행복한 왕자를 좀 닮을 수 없니? 행복한 왕자는 결코 떼를 쓰지 않는단다.”
실의에 빠져 기가 죽어 있던 사람도 이 조각상을 보면 중얼거렸다.
“그래도 세상에 저렇게 행복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자선단체 아이들이 환한 진홍빛 외투에 희고 깨끗한 앞치마를 두르고 성당에서 빠져나오다 조각상을 보고는 “행복한 왕자님은 천사 같아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수학 선생님이 물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아니? 천사를 본 적이 있어?”
“꿈에서 봤어요.” 하고 아이들이 대답했다. 그러자 수학 선생님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아주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아이들이 꿈을 꾸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밤, 작은 제비 한 마리가 이 도시로 날아왔다. 친구들은 모두 육 주 전에 이집트로 날아가 버렸지만 그 제비는 아름다운 갈대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제비가 갈대를 만난 것은 초봄이었다. 제비는 커다랗고 누런 나방을 쫓아 강으로 날아가다 갈대의 가느다란 허리를 보고는 한눈에 반해 말을 걸었다.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단도직입적인 것을 좋아하는 제비가 이렇게 물었다. 갈대는 허리를 낮게 구부려 인사했다. 그래서 제비는 갈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날개로 수면을 건드려 은빛 파문을 일으켰다. 이렇게 제비는 여름이 올 때까지 갈대 곁을 떠나지 않고 구애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집착이로군. 갈대는 돈도 한 푼 없잖아. 게다가 저 많은 친척들을 봐.” 다른 제비들이 재재거렸다. 실제로 강가에는 갈대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을이 오자 친구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친구들이 떠나가자 외로워진 제비는 제 사랑에 지쳐 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너무 말이 없어. 게다가 바람둥이인가 봐. 늘 저렇게 바람하고 놀아나고 있으니. 가정적이라는 건 인정하겠어. 그래도 나는 여행하는 걸 좋아하니까 아내도 당연히 그걸 좋아해야 해.” 확실히 갈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우아하게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곤 했다.
그래서 제비는 마침내 갈대에게 물었다.
“나와 함께 떠나겠어요?” 하지만 갈대는 머리를 흔들었다. 집에서 떠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를 가지고 놀았군요. 이제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어요. 안녕!” 제비는 이렇게 울부짖으며 그곳을 떠났다.
제비는 하루 종일 날아 밤이 되어서야 도시에 도착했다.
“어디에서 묵어야 할까? 시내에 잘 만한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바로 그때 저 멀리 높은 곳에 기둥이 보였다.
“저기에서 하룻밤 묵으면 되겠다. 공기도 맑고 정말 좋은 자리네.” 그래서 제비는 행복한 왕자에게 날아가 두 발 사이에 내려앉았다.
“금으로 된 침대에서 잠을 자는구나.” 제비는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중얼거리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제비가 머리를 막 날갯죽지로 넣으려던 찰나, 하늘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거참 이상한 일이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별들도 저렇게 환하게 빛나고 있는데 비가 오다니. 북유럽의 날씨는 정말 이상하다니까. 갈대도 비를 좋아했지. 이기적이게도 말이야.”
그때 다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도 피하지 못하는데 조각상이 무슨 소용이람. 괜찮은 굴뚝 꼭대기나 찾아봐야겠다.” 제비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제비가 날개를 막 펼치려고 하는데 세 번째 물방울이 떨어졌다. 제비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과연 제비는 무엇을 보았을까?
행복한 왕자의 두 눈에 가득 고였던 눈물이 황금으로 된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왕자의 얼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작은 제비의 마음에 경외심이 가득 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제비가 물었다.
“나는 행복한 왕자란다.”
“그런데 왜 울고 계시는 거예요? 제 몸이 다 젖어 버렸잖아요.”
조각상이 대답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진짜 눈물이 무엇인지 몰랐단다. 나는 아무 걱정 없는 궁전에 살고 있었으니까. 슬픔은 결코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지. 낮이면 친구들과 정원에서 뛰어놀았고, 밤이면 커다란 홀에서 춤을 추었어. 아주 높은 벽이 정원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한 번도 신경 써 본 적이 없었어. 모든 것이 아름다웠으니까. 신하들은 나를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지. 정말 나는 행복했어.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야. 나는 그렇게 살다 죽었단다. 죽고 나니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높은 곳에 세워 놓더구나. 내 나라의 온갖 추악함과 비참함이 다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말이야. 지금 내 심장은 납으로 되어 있는데도 이렇게 눈물이 멈추질 않아.”
“뭐야, 다 황금으로 되어 있는 거 아니었어?” 제비가 혼잣말을 했다. 그런 생각을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각상은 낮게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멀리 작은 거리에 가난한 집이 한 채 있어. 열린 창문 사이로 식탁에 앉은 여인이 보이는구나. 얼굴은 야위었고 몹시 지쳐 보여. 꺼칠한 손은 온통 바늘에 찔려 피가 맺혀 있단다. 재봉사이기 때문이지. 지금 여인은 궁정 연회에서 왕비의 제일 예쁜 시녀가 입을 공단 드레스 위에 시계꽃을 수놓고 있단다. 방 한구석의 침대에는 어린 아들이 앓아누워 있구나. 아이의 이마는 불덩이야. 아이가 어머니에게 오렌지를 달라고 아무리 보채도 어머니는 강물 말고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나 봐. 그래서 아이가 울고 있어. 제비야, 제비야, 작은 제비야. 내 칼자루에 박혀 있는 루비를 저 여인에게 가져다주지 않겠니? 내 발은 이 기둥에 붙어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거든.”
“저는 이집트로 가야 해요. 제 친구들은 나일 강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커다란 연꽃들에게 말을 걸고 있을 거예요. 그러다 이내 위대한 왕의 무덤에서 잠을 자겠죠. 그 왕은 색칠된 관에 향료로 방부 처리되어 노란 리넨 천에 감싸여 누워 있어요. 목에는 창백한 청록 비취 목걸이가 걸려 있고, 손은 시들어 버린 나뭇잎 같답니다.” 제비가 말했다.
“제비야, 제비야, 작은 제비야. 나와 하룻밤만 함께 지내며 내 심부름을 해 주지 않겠니? 저 소년은 목이 타들어 가고 있고, 저 어미는 너무 슬퍼 보이는구나.”
“저는 소년들을 싫어한답니다. 지난여름 강가에서 지낼 때 아주 버릇없는 소년 둘이 있었어요. 방앗간 아들이었지요. 제게 계속 돌을 던져 댔어요. 물론 저희 제비들은 아주 잘 날기 때문에 한 번도 돌에 맞지는 않았지요. 게다가 저는 날쌔기로 유명한 집안에서 태어났거든요. 어쨌든 너무나 무례한 짓이었어요.”
하지만 행복한 왕자가 너무 슬퍼 보였기 때문에 제비는 조금 미안해졌다.
“여기는 너무 춥지만 하룻밤만 같이 지내면서 심부름을 해 드릴게요.”
“고맙다, 작은 제비야.” 왕자는 말했다.
제비는 왕자의 칼에서 커다란 루비를 떼어 부리에 문 다음, 지붕 위로 날아갔다.
제비는 하얀 대리석에 천사들이 조각된 성당 탑을 지나쳤다. 궁전을 지날 때는 사람들이 춤추는 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 소녀 하나가 연인과 함께 발코니로 나왔다.
“별이 참으로 아름답구려. 사랑의 힘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연인이 소녀에게 속삭였다.
“대연회에 맞춰서 드레스가 완성되었으면 좋겠는데. 그 옷에 시계꽃을 수놓으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재봉사들이 너무 게을러빠졌어요.” 소녀가 대답했다.
제비는 강을 지나며 돛대에 걸린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유대인 거리를 지날 때는 늙은 유대인들이 물건 값을 흥정하며 구리 저울에 돈을 달고 있는 것도 보았다. 마침내 제비는 그 가난한 집에 도착하여 안을 들여다보았다. 소년은 열에 들떠 이리저리 뒤척이고, 어머니는 너무 피곤해 깜빡 잠이 들어 있었다. 제비는 식탁에 내려앉아 커다란 루비를 어머니의 골무 옆에 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침대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날개로 소년의 이마에 부채질을 해 주었다.
“아아, 너무 시원해. 병이 다 나아가나 봐.” 소년은 중얼거리더니 맛있는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제비는 다시 행복한 왕자에게로 날아와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해 주며 말했다.
“정말 이상해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몸은 따뜻해진 것 같아요.”
“그건 네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이란다.” 왕자가 대답했다. 작은 제비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다. 생각한다는 것은 늘 제비를 졸리게 했다.
날이 밝자 제비는 강으로 날아가 목욕을 했다. 조류학 교수가 다리를 지나가다가 제비를 보고 말했다.
“정말 신기하네. 한겨울에 제비라니!”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지역 신문에 긴 글을 기고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인용했지만 거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너무 많았다.
“오늘 밤에는 이집트로 가야지.” 제비는 한껏 기대에 들떠 말했다. 그래서 유명한 기념비들을 모두 구경하고 교회 첨탑 위에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제비가 가는 곳마다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속삭였다.
“정말 기품 있는 손님이야!” 이 말을 들은 제비는 우쭐해져서 스스로를 마음껏 뽐냈다.
달이 뜨자 제비는 행복한 왕자에게로 날아왔다.
“이집트에 뭐 부탁하실 거라도 있으세요? 지금 출발할 거랍니다.” 제비가 외쳤다.
“제비야, 제비야, 작은 제비야. 하룻밤만 더 나와 함께 있지 않겠니?”
“저는 이집트로 가야 한답니다. 내일이면 친구들은 나일 강 제2폭포로 날아갈 거예요. 그곳에는 하마가 골풀 사이에 길게 누워 있고 거대한 화강암 왕좌에는 멤논 왕이 앉아 있답니다. 멤논 왕*은 밤새 별들을 쳐다보다가 샛별이 떠오르면 기쁨의 탄성을 터뜨리고는 다시 침묵하지요. 한낮이면 누런 사자들이 물을 마시러 내려와요. 사자의 눈은 초록빛 녹주석 같고, 포효 소리는 폭포 소리보다 더 크지요.”
* 테베 근처에 있는 아멘호테프 3세의 21m짜리 거대한 석상. 매일 아침 떠오르는 햇빛이 석상에 닿으면 하프 줄이‘팅’하고 울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나서 사람들은 이것을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안부를 묻는 것에 대답하는 멤논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왕자가 말했다.
“제비야, 제비야, 작은 제비야. 도시 저 건너편 어느 다락방에 젊은이 하나가 보이는구나. 그는 종이가 가득 쌓인 책상에 기대어 있단다. 옆에는 시든 제비꽃 한 다발이 컵에 꽂혀 있어.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에 석류처럼 붉은 입술, 꿈꾸는 듯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젊은이란다. 그는 연출가에게 넘겨줄 희곡 하나를 쓰려고 하는데 너무 추워서 더 이상 쓸 수가 없나 봐. 벽난로에는 불기도 없고 너무 오래 굶주려서 쓰러지려 하는구나.”
“그렇다면 하룻밤 더 여기 있겠어요. 그에게도 루비를 가져다줄까요?” 착한 마음씨를 가진 제비가 대답했다.
“아, 슬프게도 이제 루비는 없단다. 내 눈동자에 박힌 보석이 전부야. 내 눈동자는 수천 년 전에 인도에서 들여온 아주 귀한 사파이어란다. 이것을 보석상에 팔아서 음식과 땔감을 산다면 희곡을 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왕자님, 저는 그렇게는 할 수 없어요.” 제비는 흐느꼈다.
“제비야, 제비야, 작은 제비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주렴.” 왕자가 말했다.
그래서 제비는 왕자의 한쪽 눈동자를 뽑아 물고서 젊은이의 다락방으로 날아갔다. 지붕에 구멍이 있어서 방으로 들어가기는 쉬웠다. 제비는 구멍 속으로 날아 방으로 들어갔다. 젊은이는 얼굴을 손에 파묻고 있어서 제비가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참 후 고개를 든 젊은이는 시든 제비꽃 위에 아름다운 사파이어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드디어 인정받기 시작했구나. 이건 아마 내 작품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가져다준 걸 거야. 이제 작품을 끝낼 수 있겠다.” 그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다음 날 제비는 항구로 날아갔다. 제비는 커다란 배의 돛대 위에 앉아서, 선원들이 선창에서 커다란 상자들을 밧줄로 묶어 나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기영차, 어기영차!” 선원들은 상자가 나올 때마다 외쳤다.
“나는 이제 이집트로 간다!” 하고 제비도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달이 뜨자 제비는 다시 행복한 왕자에게로 날아왔다.
“작별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제비가 왕자에게 말했다.
“제비야, 제비야, 작은 제비야. 나와 하룻밤만 더 함께 있어 주겠니?” 왕자가 말했다.
“이제 겨울이에요. 여기에도 곧 차가운 눈이 내리겠지요. 이집트에는 햇볕이 초록빛 야자수 위에 내리쬐고 있을 거예요. 악어는 진흙에 누워 나른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닐 테고요. 친구들은 바알베크 신전에다 둥지를 틀었을 거예요. 분홍 비둘기와 흰 비둘기가 친구들을 쳐다보면서 구구거리며 울겠지요. 왕자님, 저는 이제 떠나야 한답니다. 하지만 왕자님을 잊지 않을 거예요. 내년 봄에는 보석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채워 넣을 아름다운 보석 두 개를 가지고 올게요. 제가 가져올 루비는 장미꽃보다 더 붉고, 제가 가져올 사파이어는 바다보다도 더 푸르답니다.”
“저 아래 광장에 작은 성냥팔이 소녀가 서 있단다. 방금 도랑에다 성냥을 모두 떨어뜨려서 성냥이 아주 못쓰게 되어 버렸어. 집에 돈을 가져가지 못하면 아비는 소녀를 때릴 테고 소녀는 울겠지. 소녀는 신발도, 양말도 신고 있지 않아. 머리에도 쓸 게 아무것도 없나 봐. 내 나머지 눈을 뽑아서 저 소녀에게 가져다주렴. 그러면 아비에게 맞지 않을 거야.” 왕자가 말했다.
“그러면 하룻밤만 더 함께 있을게요. 하지만 왕자님의 눈을 뽑을 수는 없어요. 그러면 장님이 되실 텐데요.”
“제비야, 제비야, 작은 제비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려무나.”
그래서 제비는 왕자의 나머지 눈을 뽑아 광장으로 날쌔게 날아갔다. 그리고 성냥팔이 소녀 쪽으로 내려가면서 소녀의 손바닥 위에 보석을 미끄러뜨리듯 올려놓았다.
“너무 예쁜 유리 조각이잖아.” 소녀는 이렇게 외치고는 웃으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제비는 다시 왕자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아무것도 보실 수가 없군요. 그러니 제가 왕자님 곁을 지키겠어요.”
“아니야, 작은 제비야. 이제 이집트로 가야지.” 불쌍한 왕자가 말했다.
하지만 제비는 “저는 왕자님과 늘 함께 있겠어요.” 하고 말하며 왕자의 발치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이 되자 제비는 왕자의 어깨에 앉아 신기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일 강 강둑에 길게 줄지어 앉아 부리로 금붕어를 잡아채는 붉은 따오기 이야기, 사막에 살고 모르는 것이 없으며, 이 세상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는 스핑크스 이야기, 손에 호박(琥珀) 목걸이를 쥐고 낙타 옆에서 천천히 걷는 상인들 이야기, ‘달의 산’에 살며 커다란 수정에다 기도하는 칠흑처럼 검은 왕에 대한 이야기, 사제 스무 명에게서 꿀 과자를 얻어먹고 야자수에서 잠을 자는 커다란 초록색 뱀 이야기, 커다랗고 평평한 나뭇잎을 타고 거대한 호수를 건너가면서 나비들과 늘 전쟁을 치르곤 한다는 피그미 족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자 왕자는 말했다.
“작은 제비야, 너는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구나.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란다. 비참함만큼 놀라운 것은 없어. 작은 제비야, 이 도시를 날아다니면서 네가 본 것들을 이야기해 주렴.”
그래서 제비는 그 커다란 도시를 날아다녔다. 부자들이 아름다운 집에서 즐겁게 지내는 것도 보았고, 거지들이 그 집 앞에 앉아 구걸하는 것도 보았다. 제비는 어두운 거리로 날아들었다. 창백한 얼굴의 굶주린 아이들이 시커먼 거리를 무심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다리 밑에는 작은 소년 둘이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몸을 데우고 있었다.
“너무 배고파!” 아이들이 말했다. 하지만 경비원이 나타나 “여기에서 자면 안 돼!” 하고 소리치자 아이들은 빗속으로 나와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제비는 다시 왕자에게 날아와 본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 몸은 최고급 금으로 덮여 있어. 금박을 하나씩 벗겨 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렴. 산 사람들은 금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단다.” 왕자가 말했다.
제비는 금박을 하나씩 떼어 냈다. 그러자 결국 행복한 왕자는 흐릿하고 우중충해졌다. 제비는 하나씩 떼어 낸 최고급 금박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점점 홍조가 돌았고, 거리에서 놀이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먹을 것이 있어!” 아이들은 소리쳤다.
그때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자 서리가 뒤따랐다. 거리는 마치 은으로 만든 것처럼 환하게 반짝였다. 처마마다 기다란 고드름이 수정으로 만든 단검처럼 매달렸고, 사람들은 모피를 입고 돌아다녔다. 작은 소년들은 진홍색 모자를 쓰고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불쌍한 작은 제비는 점점 더 추위에 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왕자 곁을 떠날 수는 없었다. 제비는 왕자를 너무 사랑했던 것이다. 제비는 빵 굽는 사람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문밖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그리고 날개를 파닥거려 몸을 따뜻하게 해 보려 했다.
하지만 마침내 제비는 자신의 목숨이 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비에게는 이제 기껏해야 왕자의 어깨 위로 날아오를 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제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녕히 계세요, 왕자님. 왕자님 손에 입 맞추어도 될까요?”
“이제야 결국 이집트로 간다니 기쁘구나, 작은 제비야.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 사랑하는 제비야, 이제는 내 입술에 입을 맞추려무나.”
“제가 가는 곳은 이집트가 아니에요. 저는 죽음의 집으로 간답니다. 죽음은 잠의 형제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그러고 나서 제비는 왕자의 입술에 겨우 입을 맞추고는 발아래로 툭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그 순간 쩍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조각상 안에서 들려왔다. 납으로 된 왕자의 심장이 두 동강 나 버린 것이다. 차가운 서리가 무섭게 내린 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시장이 시의원 둘과 함께 광장을 걷다가 기둥 옆을 지나가며 조각상을 올려다보았다.
“맙소사! 행복한 왕자가 저렇게 초라해 보이다니!” 시장이 말했다.
“정말로 초라하군요!” 시의원들도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조각상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기둥으로 올라갔다.
“칼에서 루비가 떨어져 나가고, 눈도 없어졌습니다. 금박도 다 떨어져 나갔군요. 정말 거지와 다를 바가 없네요!”
“거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시의원도 맞장구를 쳤다.
“게다가 발치에는 새도 한 마리 죽어 있군요! 새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해야겠습니다.” 그러자 서기가 시장의 이 제안을 기록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왕자 조각상을 철거했다.
“행복한 왕자는 더 이상 아름답지도, 쓸모 있지도 않습니다.” 하고 대학에서 예술을 가르치는 교수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조각상을 용광로에 녹였다. 시장은 시 자치위원 사람들과 만나 조각상을 녹인 금속으로 무엇을 할지 의논했다.
“물론 다른 조각상을 세워야지요. 그것은 내 조각상이 될 것입니다.” 시장이 말했다.
“내 조각상이어야 합니다.” 시의원들도 각자 주장했다. 그들은 논쟁을 벌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듣기로 그들은 아직도 논쟁 중이라고 했다.
“정말 희한한 일이 다 있네! 이 부서진 납은 용광로에서도 녹지 않는구나. 그냥 갖다 버려야겠다.” 용광로의 감독관이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제비가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다 납덩이를 버렸다.
하느님이 천사 하나를 불러 “저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가져오너라.” 하고 시켰다. 천사는 납으로 된 심장과 죽은 제비를 가지고 왔다. 그러자 하느님이 말했다.
“잘 골라 왔노라. 이제 이 작은 새는 내 천국의 정원에서 영원히 노래할 것이며, 행복한 왕자는 내 황금의 도시에서 영원히 나를 찬미할 것이로다.”
“붉은 장미꽃 한 송이만 가져다주면 나와 춤추겠다고 했는데! 하지만 내 정원에는 어디를 보아도 붉은 장미꽃이 없구나!” 어린 학생이 소리쳤다.
털가시나무에 있는 둥지에서 그 목소리를 들은 나이팅게일이 의아해하며 나뭇잎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내 정원 어디에도 붉은 장미꽃은 없다구!” 그는 탄식했다. 잘생긴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아, 행복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에 달려 있는지! 현자들이 쓴 책을 모두 읽고 철학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지만 붉은 장미꽃 한 송이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비참해지는구나.”
“마침내 진실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밤마다 나는 그를 위한 노래를 했지. 밤마다 별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이제야 그를 보게 되었네. 머리칼은 히아신스 꽃처럼 검고, 입술은 그가 원하는 장미꽃만큼이나 빨갛잖아. 하지만 열정이 그의 얼굴을 창백한 상앗빛으로 만들어 버렸고, 슬픔은 그의 이마에 자신의 모습을 아로새겨 놓았구나.” 나이팅게일이 말했다.
“왕자님께서 내일 밤 무도회를 연다고 하셨지. 내 사랑도 그곳에 올 거야. 붉은 장미꽃 한 송이만 가져다주면 그녀는 나와 새벽까지 춤을 출 텐데. 붉은 장미꽃 한 송이만 가져다주면 그녀는 내 품에 꼭 안기겠지. 그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 나는 그 손을 꼭 잡아야지. 하지만 붉은 장미꽃이 없으니 나는 그저 외로이 앉아 있어야만 할 거야. 그러면 그녀는 내 곁을 그냥 지나쳐 가겠지. 나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을 테고. 그럼 내 마음은 찢어져 버리고 말 거야.” 어린 학생이 중얼거렸다.
“정말로 진실한 사랑을 하는 사람을 찾은 거야. 내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가 그에게는 고통이 되고, 내겐 기쁨인 것이 그에게는 아픔이라니. 사랑이란 정말 놀라운 것이어라. 사랑은 에메랄드보다 더 귀하고, 오팔보다 더 값진 것. 진주와 석류로도 사랑은 살 수 없어. 시장에 나오는 물건도 아닌 걸. 사랑은 상인들에게서도 살 수 없고, 금을 재는 저울로도 그 가치를 잴 수 없지.” 나이팅게일이 말했다.
“악사들은 연주석에 앉겠지. 그리고 현악기를 연주할 거야. 내 사랑은 하프와 바이올린에 맞춰 춤을 추겠지.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것처럼 사뿐사뿐 춤을 출 거야. 화려하게 꾸민 신하들이 그녀 주변에 벌 떼처럼 모여들겠지. 하지만 그녀는 나하고는 춤을 추지 않을 거야. 나에겐 붉은 장미꽃이 없으니까.” 어린 학생은 풀밭 위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꼬리를 공중에 세우고 학생의 곁을 지나가던 초록 도마뱀이 “저자는 왜 울고 있는 거야?” 하고 물었다.
햇빛을 쫓아 날개를 펄럭이던 나비도 물었다.
“정말, 왜 우는 거야?”
“진짜, 왜 울지?” 데이지 꽃도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이팅게일이 대답했다.
“붉은 장미꽃 때문에 울고 있는 거야.”
“붉은 장미꽃 때문에?” 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평소에 남을 깔보고 조소하기 좋아하는 도마뱀이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말했다.
“정말 웃기는군!”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이 학생의 슬픔에 감추어진 비밀을 이해했다. 나이팅게일은 떡갈나무에 조용히 앉아서 사랑의 신비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나이팅게일은 갈색 날개를 펼치더니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작은 숲을 지나 정원을 가로질러 그림자처럼 날아갔다.
잔디밭 한가운데에 아름다운 장미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장미나무에게 날아가 가지 위에 내려앉았다.
“제게 붉은 장미꽃 한 송이만 주세요.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노래를 불러 드릴게요.” 나이팅게일이 말했다.
하지만 장미나무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 장미꽃은 하얗단다. 파도 거품처럼 하얗고, 산꼭대기에 쌓인 눈보다 더 하얗지. 저기 낡은 해시계 주변에 있는 내 형제에게 가 보렴. 그 나무는 네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을 거야.” 하고 장미나무가 말했다.
그래서 나이팅게일은 낡은 해시계 주변에 살고 있는 장미나무에게로 날아갔다.
“붉은 장미꽃 한 송이만 주세요.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노래를 불러 드릴게요.”
하지만 그 장미나무도 고개를 흔들었다.
“내 장미꽃은 노랗단다. 호박으로 된 옥좌에 앉은 인어의 머리칼만큼 노랗고, 풀 베는 사람이 낫으로 베어 버리기 전에 핀 초원의 수선화보다 더 노랗지. 저 학생의 창문 아래에서 자라는 내 형제에게 가 보렴. 그는 네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을 거야.” 장미나무가 말했다.
그래서 나이팅게일은 학생의 창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장미나무에게로 갔다.
“제게 붉은 장미꽃 한 송이만 주세요.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노래를 불러 드릴게요.”
하지만 장미나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 장미꽃은 붉단다. 비둘기의 작은 발처럼 붉고, 바다 속 동굴에서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산호의 커다란 부채보다 더 붉지. 하지만 겨울 추위가 잎맥을 꽁꽁 얼려 버렸고, 서리가 꽃봉오리를 시들게 했고, 폭풍우가 가지를 부러뜨려 버렸단다. 그래서 올해에는 장미꽃을 피울 수가 없어.”
“딱 한 송이만 있으면 되요. 한 송이만! 딱 한 송이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나이팅게일이 울부짖었다.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하지만, 너무 끔찍해서 말해 줄 수 없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그러자 나무가 말했다.
“만일 붉은 장미꽃을 원한다면 달빛 아래에서 네 노래로 꽃을 만들어 네 심장에 흐르는 피로 그 꽃을 붉게 물들여야 해. 내 가시를 너의 가슴에 박고 밤새 노래를 불러야 하는 거지.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면 그 가시가 네 심장을 파고들어 갈 거야. 그러면 네 심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