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조영호
기계공학, 전자공학, 마이크로머신, 나노바이오공학, 의학 분야를 넘나들며 연구하는 융합형 공학자. 영남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U.C. 버클리에서 마이크로머신MEMS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의 피부에서 마음을 읽어내는 감정 센서, 혈액 내 암세포를 진찰하는 마이크로칩을 개발하는 등 인간의 한계와 약점을 보완하는 공학 기술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혈액 내 암세포를 골라내는 칩 기술은 실용성이 뛰어난 독보적인 기술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포벤치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과학기술부 창의연구사업 ‘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 단장, 미래창조과학부 ‘혈중암세포 암 예후 진단 융합연구단’ 단장 및 ‘신기술융합형성장동력사업본부’ 본부장을 역임했고, 대한기계학회의 ‘주봉학술상’(2001), 과학기술부의 ‘나노연구혁신 대상’(2005), 대한민국 정부의 ‘국가연구개발성과유공자 녹조근정훈장’(2015)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나노 기술이 미래를 바꾼다』(공저), 『진화하는 테크놀로지』(공저) 등이 있다.
들어가며
이공계의 길
과학기술이 우리 곁에 불쑥 들어와버렸다. 그 영향력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꾸어놓을 만큼 강렬하고, 예측을 넘어설 정도로 압도적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따라, 과학기술은 매우 다양하고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는 ‘이공계 진로’에 관한 문의 또한 한층 구체적이고 다양해졌다. 이공계와 인문계가 무엇이 다른지, 어느 대학의 무슨 과를 가야 하는지, 미래에 어떤 분야가 유망한지, 장래에 연구 주제를 무엇으로 잡는 게 좋은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등등.
이공계 진로에 대한 이 모든 질문들에, 내가 누구나 만족해할 만한 해답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 상담을 할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공계를 잘 몰랐고,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선택하고 있었다. 세상이 변했는데 학부모들의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었고, 학생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우회로를 선택했다.
물론 내가 아는 것이 이공계의 전부는 아니다. 다만, 학생, 학부모, 교육자, 사회인으로서 내가 직접 겪고 느낀 것들, 이공계의 길을 걸으면서 내가 마주했던 선택들, 그리고 내가 내렸던 결정의 판단 기준들을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진로를 선택할 때 얼마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을 국내에서 공부했고, 국내 정부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4년 반을 근무하다가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이래 줄곧 카이스트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획, 조정, 평가, 수행, 운영을 맡아왔다. 또 산학연구 과제를 통해 국내 산업계와 줄곧 교류해왔으며, 수차례의 연구 연가를 모두 산업체에서 보냈다. 그 덕분에 국내 대학뿐 아니라 연구소, 기업체, 정부와의 관계와 큰 흐름도 알게 되었다.
미국, 일본, 스위스 등에 있는 해외 대학과 손잡고 학생 파견이나 공동 연구와 같은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수십 년 동안 진행해왔다. 유학 당시 얻은 내 아이들이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각각 유아원,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기에 한국과 외국의 교육 환경과 시스템의 차이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알게 되었다.
이공계는 크게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으로 나뉜다. 나는 응용과학, 즉 공학도의 길을 걸었다. 내가 걸어온 길에는 ‘최초’나 ‘제1호’라는 꼬리표가 유난히도 많이 붙어 있다. 정부 연구소에서 국내 최초로 CAD/CAM 연구실을 설치했고, 미국 유학 시절 BSACBerkeley Sensor & Actuator Center라는 세계 최초의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s 연구센터 설립에 참여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 제1호 MEMS 전공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해서는 국내 최초로 국산 에어백 센서를 개발해 실차 충돌 시험까지 수행했으며, 국내 최초로 MEMS 교과목과 생체모사시스템 교과목을 개설했다. 또 국내 최초로 연구실 내 MEMS 전용 시설을 구축한 데 이어, 국내 최초의 국가 나노연구단인 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을 설립했다. ‘최초’와 ‘제1호’라는 수식어가 화려해 보이겠지만, 이 말은 그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초기 환경을 구축하는 데 온갖 어려움과 고생을 겪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 보면 당연한 것들이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지난 30여 년간 산업체와 정부로부터 300억 원 이상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꾸준히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동안 목적과 신념을 잃지 않고 나름 후회 없는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이공계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내가 이공계의 길을 걸으며 고민한 생각들과 깨닫게 된 교훈들이, 지금 막 진로를 선택하고 결정하려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그리고 이미 이공계에 들어선 청년들에게 얼마간 도움이 되길 희망해본다.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조영호
차례
이공계를
가야 할까?
이공계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일까? 보통 사람들이 이공계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수학을 좀 잘하면 가는 곳일까?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같이 성공한 이공계인이 되고 싶어서, 혹은 문과보다는 취업이 더 잘돼서 선택하는 곳일까?
먼저 말해두고 싶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특정 과목의 점수는 참고할 정도는 되겠지만 과목 성적이 진로 선택의 결정적인 기준은 아니다. 보통 수학과 과학을 잘하면 이과를, 국어나 영어, 사회를 잘하면 문과를 선택한다. 사실 나는 학생들을 이과와 문과로 나누는 것에 대해 늘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만 봐도 학창 시절에 수학을 좋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국어, 영어, 음악을 더 좋아했다. 과학기술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수학 실력이 부족해 연구를 하지 못한 적도 드물다. 수학 Ⅰ과 수학 Ⅱ를 다 공부했지만 연구하면서 실제로 사용한 수학은 몇 개 안 된다. 복잡한 삼각함수 공식같이, 시험을 볼 때나 썼을 뿐 실제로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것도 있다. 복잡한 계산은 컴퓨터가 다 한다. 그 외에 비례식, 다항식, 지수함수 같은 원리들은 필요하면 그때그때 배워도 된다.
‘이과 수업’에는 수학 실력이 필요하지만, 정작 사회에서 이공계인으로서의 길을 걸을 때에는 수학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수학과 과학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작 신경 써야 할 본질적인 부분은 다른 데 있다.
취업이 쉽다고 이공계를 선택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꼭 이공계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누구나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공계 안에서 내가 자부심을 갖고 할 일이 있는가, 이 질문부터 스스로 답해야 한다. 취업이 중요하긴 하지만, 취업이 삶의 목적이자 기준이 된다면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지 않는가. 직업을 생계의 수단으로만 국한시키면 인생이 답답해진다. 이미 인생의 마라톤을 한참 달린 사회인이라면 밥벌이로 일을 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이제 막 꿈을 꾸기 시작한 청소년들에게 일찌감치 먹고 사는 일의 준엄함부터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청소년들이 어떤 길을 걷든 먼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길 바란다. 내 길을 가고 있기에 누가 뭐라고 해도 떳떳하고 할 만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삶을 지탱해준다. 많은 부모들이 앞날을 너무 걱정하다 당연한 이 사실을 잊는다.
만약 이미 이공계로 진로를 결심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자. 나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당장의 진학이나 취업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이공계의 장점은 기회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 말은 역으로 당장의 대학 입시나 취업에 너무 목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한 가지 더, 이공계는 특별하지 않다. 사는 방법은 똑같다. 다만, 활용하는 도구가 과학적인 도구인지, 경제적인 도구인지, 사회적인 도구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과학이든, 경제든, 정치든, 문화든 모두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 아닌가.
나는 이공계의 문 앞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이공계에 대한 수많은 설명들 중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공계의 역할’이란 사회 안에서 ‘사람이 하는 일’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공계를 선택하면 어떤 식으로든 기술을 연마하고 제품을 개발해 시장과 만나는 일을 직·간접적으로 하게 된다. 그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언제 돈을 쓸까?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을 만족시키는 일에 돈을 쓴다. 돈을 자발적으로 지불하게 하는 힘은 관심이다. 현명한 이공계인은 나의 관심을 다른 사람의 관심에 맞출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평생 연구를 해온 사람이니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 취미와 연구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찌 보면 둘 다 무언가를 파헤치고 들여다보며 탐구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재미있고 즐겁자고 하는 게 취미라면, 연구 역시 재미있고 즐겁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건 차이가 아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취미는 자신을 위해서 하고, 연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이공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다.
언젠가 한번 공학계열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심사를 받으러 온 어떤 연구자에게 연구의 목적을 물어보았는데, ‘내가 관심이 있어서 하지만 응용성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충분한 대답이기도 했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연구자의 연구는 취미 생활이고, 취미 생활이라면 정부의 돈이 아닌 연구자 본인의 월급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우표 모으기를 좋아하니 정부에서 우표 값을 지원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비단 이 논리는 정부 사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내 취미 생활을 위해 돈을 지불할 리 없다. 이공계에 들어와 기술을 익히고 연구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 슬슬 감이 오는가?
이공계인들이 첫 번째로 새겨야 할 사자성어가 있다면 ‘역지사지’다. 이공계인이라면 늘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내가 하는 작업에 나라면 돈을 지불할 것인가?’ 이 질문의 대한 냉정한 대답이 ‘아니오’라면 그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수학이나 과학이 재미있고 점수가 좀 나온다는 이유로 이공계를 선택했다간 기대와 다른 혹독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다른 분야보다 낫다고 하지만 이공계 또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 자기 혼자만 관심 있는 기술인데도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자기 영역에 우뚝 서서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려면 일단 자신의 생각과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아니면 성공하거나 돈을 벌 생각은 하지 말고 스스로 즐기는 것에 만족하면 된다. 아주 운이 좋다면 자신의 만족만 추구하면서도 돈을 벌 수가 있다. 내 마음대로 했는데 우연히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좋아해주는 경우라면 그렇다. 그런데 그건 극히 드문 행운일 뿐, 그런 요행에 기대어 인생의 진로를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공계인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연을 요리해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맛과 멋을 만들어내는 요리사와 같다.
재미난 것은 인간 세상에 무수한 관심사가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관심사에 최대한 도달하기 위해 온갖 기술과 도구를 홀로 연마해야 하는 걸까? 그건 불가능하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가지고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이 하되,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은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 그러니까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과 함께 일하는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이를 통해 자기 능력을 뛰어넘는 큰일을 할 수 있다.
자녀의 수학 성적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가 우리나라에 참으로 많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넘쳐난다지만 정작 사회에 나가보면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반드시 자신이 수학을 잘할 필요는 없다.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면, 수학 말고 더 잘하는 것을 한 가지 가지고 있으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하다. 특정 과목의 성적이나 취업률이 아닌, 이공계가 추구하는 가치에 자신이 자부심을 갖고 잘 따라갈 수 있는지가 ‘진로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 만약 그것에 동의해 이공계의 길을 선택했다면 초심을 잃지 말고 당당히 살아가면 된다.
솔직히 나는 사회나 교육 당국자에게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그들이 단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미래는 불가항력의 힘으로 어딘가로 흘러간다. 과거에는 예측이나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수많은 직업이 새로 생겼으며, 세계 10대 기업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도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미래가 어떻게 바뀌든, 우리는 그 안에서 가치를 추구하며 우리의 방법대로 우리의 길을 찾으면 된다.
이공계가
적성일까?
나는 주위로부터 청소년 진로에 대해 질문을 꽤 많이 받는 편이다.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 보니 겪는 일이다. 딸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딸 친구들이 이러저러한 입시를 준비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기소개서는 무슨 이야기를 쓰면 좋을지 등을 묻곤 했다. 청소년을 위한 강의와 상담 요청도 종종 들어온다.
대학에서는, 고등학교 수시 전형 때문에 매년 수없이 많은 추천서를 읽는다. 워낙 꾸준히 읽다 보니 이제는 잘 쓴 추천서와 그렇지 않은 추천서를 구분하는 눈이 생겼다.
한 가지 조언하자면, 추천사는 공허하게 적지 말아야 한다. 행실이 바르고, 봉사 정신이 투철하다든가 하는 틀에 박힌 이야기는 적을 필요가 없다. 추천서를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학생의 행동을 해석해 자신의 의견을 적는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어야 그 학생에 대해 유추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실 그대로를 적으면 읽는 사람이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든 추천서든 학생이 한 일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쓰는 게 아니라 한 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적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이러이러한 행동을 한 사람이라고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소개 방법이다.
진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누구나 공감하듯, 우리나라 진로 교육에는 문제가 많다. 그 내용을 보면 어떤 대학 어느 학과에 진학하려면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하는지 혹은 무슨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식인데, 재미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소방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신념으로 소방관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직업 선택에서 중요한 건 신념이다. 자신에게 맞는 신념을 갖춘 다음, 그 신념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는 게 순서다. 지금의 진로 교육으로는 청소년들이 신념을 가질 리 만무하다. 단지 기능적으로 직업을 이해할 뿐이다. 기능만 보고 누가 신념을 갖겠는가?
올바른 동기 부여와 이를 통해 얻어진 확신을 가지고, 공부든 일이든 임하는 것이 더 낫다. 이공계로 진학하고 싶은데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우리 딸부터 그랬다. 상식적으로, 이과를 지망하면서 수학을 멀리한다는 게 이해가 될지 잘 모르겠다. 내 딸은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영어는 잘하고, 수학과 과학은 잘 못했는데도 이과를 선택했다.
왜 이과를 선택했는지 물었더니 이공계 영역의 일들이 본인에게 더 맞는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학을 잘하지 못하지만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자신의 꿈과 이상이 이공계열에 가깝다면 당연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 다만 마음속에 정말 하고 싶은 일과 수학이라는 과목이 순조롭게 연결되지 않고 있는 상태일 뿐이다.
교과목을 가지고 적성을 논한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이공계열 직업이 필요로 하는 신념과 수학을 잘하는 것에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 수학 실력이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해주거나, 더 나아가 수학 성적이 취업에 다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대학 졸업자가 자기 전공을 살리는 쪽으로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지는 추세다. 점수뿐 아니라 전공까지도 이공계인의 진로를 결정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요소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밟게 되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공계인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나는 이공계인에게 필요한 적성, 다시 말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로 ‘인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꼽고 싶다.
내가 걸어온 이공계는 순수과학이 아닌 응용과학 영역이다. 순수과학에서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지만, 응용과학에서는 인간을 모르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응용과학은 인간을 위하여 과학적 지식을 응용하는 학문이다. 순수과학 분야로 진로를 선택한다면 조금 다를 수 있다. 어쩌면 그 길은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발견하는 길이자,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현상과 원리를 발견하는 데 온몸을 던질 수 있는 천재적인 외골수들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이공계가 주도해온 산업의 흐름을 한번 따져보라. 일단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최대 이슈였다. 그러던 게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고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욕망이 달라졌다. 요즘의 관심사는 건강, 안전, 행복, 편안함, 삶의 질이다. 소비의 지향점이 바뀐 것이다.
과거 산업 시대 소비자는 생산자가 만들어주는 대로 소비했다. 생산자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매장에 내놓으면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사서 사용법을 익혔다. 기술 개발 경쟁은 기업이 가진 기술의 수준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정작 사람의 편의는 돌보지 않은 헛똑똑이 기술들이 대량으로 쏟아졌다. 나는 공학 박사인데도 아직도 비디오 녹화를 하지 못한다.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비디오를 제작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기 편한 방식으로 기계를 만들어놓은 탓이다.
이제는 달라졌다. 직관적이고 수요자 중심의 기술만이 환영을 받는다. 소비자 중심 생산 체계가 기본이다. 소비자가 머리가 아프면 되겠는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머리가 아파야 팔린다.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모두가 무엇에 놀라워했던가? 소비자의 취향과 관심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수많은 사람이 매료됐다. 스마트폰은 사용자가 자기주도적으로 기능과 체계를 설정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기존 휴대전화의 가장 큰 차이는 거기에 있다. 기존의 휴대전화는 이미 만들어진 기능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휴대폰 시장에서 선두에 있던 국내 기업들이 애플에게 그 위치를 빼앗긴 건 이 흐름을 놓친 채 휴대전화의 기능을 늘리고 속도를 높이는 데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인간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술을 갖췄다. 인간에게 완전히 밀착되어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낄 정도가 됐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것에 투자를 한다. 낯설고 멀리 있는 것, 예를 들어 기후 변화나 에너지 문제에 돈을 쓰는 개인은 드물다. 지금의 문명은 생활이 과학인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인식하고 성찰해 새로운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두꺼운 이공계 기술 서적이나 컴퓨터 속에는 없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프린터를 만들어도 인간만의 시각적 특성과 인식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헤드폰이나 스피커를 만들어도 인간만의 청각적 특성과 인식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과학기술의 시대적 흐름을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인간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에서 나온다. 이공계인들은 연구실이나 기계실에 틀어박혀 플라스크와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동굴 속 인간이 아니다.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적성은 사회와 인간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시선과 애정이다.
초・중・고등학교 때
어떤 공부를 하면
좋을까?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저 나라 학생들처럼 열심히 공부하자’라는 말을 듣는 게 우리나라다. 분명 칭찬인데 어쩐지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다 못해 과한 나라에서는 ‘해야 할 공부’보다 ‘하지 않아도 될 공부’를 먼저 짚어봐야 하지 않나 싶다.
기본적으로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교육 문화에서 행복한 청소년은 찾기 어렵다. 성적이 높으면 높아서, 낮으면 낮아서 스트레스다. 우리 딸 역시 수능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았다. 당장 벗어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나도 아내에게 아이 앞에서 점수 이야기 좀 하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가 ‘대학교수이면서 자기 자식보다 남의 자식 교육에만 신경 쓴다’느니 ‘세상물정 모르고 애 공부하는 데 바람 넣지 마라’는 핀잔만 잔뜩 들었다.
성적이나 입시 제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몇 가지라도 개선하면 어떨까. 일단 사소한 팁 한 가지는 이렇다. 한 과목을 너무 오래 공부하면 안 된다. 영어 공부를 하다가 수학 공부를 하고, 수학 공부를 하다가 국어 공부를 하는 식으로 바꿔주기만 해도 더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사람의 뇌는 같은 생각을 너무 오래 하면 피로해져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나마 공부의 내용을 바꾸면 스트레스가 약간씩 해소된다. 어떤 과목이 모자란다고 하나만 집중적으로 파면 스트레스가 더 쌓이고 효율도 떨어진다.
특정 과목의 학습량을 늘리는 것은 한 번에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일정 시간 공부하는 횟수를 늘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더 중요한 건 교과목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다. 과목과 과목을 바꿔가며 공부하는 걸 넘어 교과목 바깥을 넘나들어야 한다.
이공계인이 되기를 꿈꾸는 이에게, 초·중·고등학교 때 가장 중요한 공부는 주변의 친지, 친구, 학교, 사회에 대한 관심과 사고의 확장이다. 입시에 필요한 몇몇 과목만 들여다보는 학창 시절은 청소년의 현재와 미래에 모두 좋지 않다.
아마 이런 이야기는 학부모라면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