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윤
〈한겨레〉 기자. 동물 뉴스 팀 애니멀피플에서 일하며 사람이 동물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사는지 겨우 알게 되었다. 개 제리, 고양이 만세의 가족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고양이 만세와 함께 쓴 《나는 냥이로소이다》가 있다.
김지숙
〈한겨레〉 애니멀피플의 동물 뉴스 취재 기자로 일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개빠’였으나 주변 지인들의 고양이 보모를 하다가 동물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개, 고양이, 돌고래는 좋아하지만 조류는 아직 무섭다. 동물 취재 기자로 일하며 한국에 사는 동물의 이 끝과 저 끝을 탐구하고 있다.
선택받지 못한
개의일 생
개가 대접받는 사회를 위해
_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민
버려진 개의 눈빛은 늘 불안해 보인다. 혹시나 해서 이곳저곳 다녀보지만, 그들이 편히 쉴 곳은 어디에도 없다.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한 자락 기대를 걸어보지만, 그 개가 맞이할 운명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차에 치여 죽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혹은 개장수에게 잡혀 개고기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당하거나. 이것이 그 개가 갖는 선택지의 거의 전부다. 그럴싸한 가정에 입양될 때만 해도 그 개는 이런 운명을 맞을 줄 꿈에도 알지 못했으리라. 죽어가면서 그 개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자신은 그저 주인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며 꼬리를 흔들어댄 것이 전부일 테니까.
문제는 이런 개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2018년 각 지자체의 동물보호센터가 구조한 개는 9만 마리, 하루 200마리 이상의 개들이 구조되었다는 뜻이다. 전국의 유기동물 보호소가 항상 포화 상태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경제학 중 유일하게 아는 ‘세의 법칙’을 가지고 이 현상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세의 법칙은 “공급은 그 스스로의 수요를 창조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학 이론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반려견은 총 660만 마리로 추정된다. 나처럼 여섯 마리를 키우는 집도 있겠지만, 한 마리를 키우는 집이 대부분일 것이다. 개를 기르는 데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적어도 일주일에 3~4회는 산책을 시켜야 하고, 사료와 간식을 챙겨줘야 하며, 아플 때는 병원에도 데려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구 수를 대략 2천만이라고 잡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집이 30퍼센트 이상이라는 게 믿어지는가? 내가 세의 법칙을 언급한 건 이 때문이다. 개들이 적정선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시장에 나오니 개를 키울 능력이 없는 이들까지 개를 구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번화가를 걷다 보면 펫숍 진열장에 쌔근쌔근 잠든 강아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귀여움에 이끌려 펫숍에 들어가 값을 물어보면 놀라우리만큼 싸다. 사람들은 이렇듯 쉽게 개를 사고, 개가 걸림돌이 되는 순간 미련 없이 개를 버린다. 20만 원을 주고 개를 샀는데 치료비가 100만 원이라면, 치료비를 내는 것이 당연히 손해처럼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귀여운 개가 어떻게 그리 싼 가격에 시장에 나올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한겨레〉의 동물 뉴스 팀 애니멀피플이 역사에 남을 탐사 보도를 시작했다. “우리는 취재를 위해 펫숍을 개업할 준비를 했고, 사무실을 얻었다. 경기도의 한 관청에서 동물판매업 허가 절차도 밟았다.” 그들이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감내한 이유는 일반인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고 있는 반려 산업의 폐쇄성 때문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취재 팀이 직접 목격한 반려 산업 현장은 지옥을 방불케 했으니까. 번식장에서는 개들이 네 발로 서 있기조차 힘든 뜬장에서 서로 뒤엉켜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었다. 잘 먹는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한 개들은 그런 환경에서 끝없이 새끼를 낳다 죽어갔다. 그들은 제발 이 지옥에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듯 끊임없이 짖어댔다. 반려견의 유통 구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로 꾸려진 취재 팀이었지만 직접 현장을 목격한 취재 팀이 받은 충격은 일반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펫숍에서 보는 귀여운 강아지들은 대부분 이런 환경에서 만들어진 개들이다. 이 개들이 건강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내가 기르는 강아지 중 유일하게 펫숍에서 데려온 페키니즈 ‘미니미’는 턱관절에 기형이 있어 혀가 옆으로 비뚤어졌고, 입을 제대로 닫지 못해 항상 침을 흘린다. 우리가 데려오지 않았다면 미니미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책에 따르면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동물생산업체는 1,477곳이지만 무허가 업체를 포함하면 3~4천여 곳이 넘는다. 이곳에서 연간 46만 마리의 개들이 생산되고, 번식장을 유지하는 데 돈을 거의 쓰지 않는데다 개체 수까지 많으니 개 값은 싸질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없을까? 물론 있다. 펫숍에서 개를 사고파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다. 번식장에서 만들어진 개들은 경매를 통해 펫숍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팔린다. 최종 단계인 펫숍에서의 매매가 줄어든다면 공급을 담당하는 번식장도 감소할 것이고, 버려지는 개들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반려견의 천국인 독일을 비롯해 웬만한 선진국들이 동물 펫숍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취재 팀은 외친다. “사지 마! 팔지 마! 버리지 마!”
취재 팀의 땀과 눈물이 담긴 보도는 〈한겨레〉에 연재되며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무 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를 움직이고 반려 산업을 정화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신문을 안 읽는 시대이다 보니 그 위력이 과거보다 떨어진 탓일까. 취재 결과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띄엄띄엄 연재되다 보니 ‘분노 게이지’를 한 번에 상승시키는 데 힘이 달리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이 기획 기사가 책으로 정리되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취재 팀과 다산북스가 이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반려인들은 물론 언젠가는 개를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에게 이 책이 널리 읽히길 빈다. 이런 책이 많이 팔리고 읽힌다면 반려동물 충동구매와 유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10년쯤 후에는 이 책이 ‘반려 산업의 일대 혁명을 가져온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출판사 수익금과 저자들의 인세 일부가 유기동물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물보호단체에 기부되기까지 한다니 일단 사고, 주위에도 적극 권하자. 개가 대접받는 사회라야 사람도 잘 대접받는 법이니 말이다.
어떤 개도 사고팔리지 않는 세상을 향해
_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 이지연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를 해부하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고 물었다. 돼지와 소의 상황을 보여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질문이지만 개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어딘가 부족하다. 사실 가려진 곳에서는 개들도 인간의 왜곡되고 일방적인 ‘사랑’에 깔리고 눌려 죽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사고팔리다 운이 나쁘면 버려지고, 학대당하고, 죽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세상 개들의 운명이다.
그래서 〈한겨레〉 동물 뉴스 팀 애니멀피플이 반려동물 생산판매업(번식장, 경매장, 펫숍) 현장에 직접 잠입해 해당 업계를 심층 취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동물 해방 운동을 하면서도 개에 대해서는 식용 금지를 외치느라 미처 못 하고 있던 일이다. 개들을 고통스럽게 하기는 식용 산업이나 반려 산업이나 매한가지인데 말이다. 외국에서는 개 식용 반대 운동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곧바로 퍼피밀(강아지 공장) 또는 펫숍 철폐를 위한 운동에 집중할 수 있다. 매년 무려 100만 마리의 개들이 도살당해 먹히는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2018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제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의 비율은 23.7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넷 중 한 가구는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셈이다. 관련 연구는 반려인의 수와 반려동물의 마릿수가 2000년대 들어 빠르게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라 불리는 지금, 반려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만큼 발전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길에서 마주치니 익숙하고 가족이, 친구가, 또는 내가 직접 키우니 친숙하다. “너무 예쁘다”라거나 “귀엽다”, “순하다”, “나도 반려동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의 칭찬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런데 막상 “이 개는 어디서 왔어?”라고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묻더라도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럼 그 펫숍은 이 개를 어디서 데려왔대?”라고 묻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반려인이 먼저 입양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반려인과 함께 산책하는 개를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하루에 꼭 한 번씩은(대부분은 그 이상) 볼 정도로 이제 한국에는 반려견이 정말 많다. 반듯하게 미용을 받은, 소위 ‘품종견’이라 부르는 개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가도 직업병처럼 한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다. “저 개는 어디서 왔을까? (보호소에서) 입양된 거라면 좋을 텐데.” 물론 한 번도 직접 물은 적은 없다. 상대가 무례하게 느낄 만한 질문이니까.
이런 세태 속에서 반려동물을 사고파는 산업의 실상은 묻히고 가려진다.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성가신 허상처럼 치부된다. 그러나 절대 무시해서도 부정해서도 안 된다. 그 산업은 분명히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마주해야 한다. 이 산업은 실제로 존재하며 이 땅의 개와 고양이를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애니멀피플의 반려동물 산업 취재기는 이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들려준다.
흔히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등에 따른 반려동물의 수요 증가를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가 도래하게 된 배경으로 꼽지만, 그 수요를 떠받치고 부추기며 눈덩이처럼 불린 것은 개와 고양이를 물건인 양 상품화시켜 대량생산, 판매해온 반려 산업이다. 정부가 손 놓은 사이 형성된 ‘반려동물 시장’은 동물을 쉽게 사고파는 그릇된 문화를 만들었고, 이는 결국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빈번하고 심각한 동물 학대와 유기 문제로 이어졌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매년 46만 마리의 개와 23만 마리의 고양이가 ‘반려용’으로 번식, 판매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매년 10만 마리가 넘는 동물이 유기되어 난리라는데, 해마다 근 70만 마리의 동물이 새로 탄생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유기동물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개와 고양이는 과연 제대로 보호되고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까? 아무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반짝반짝한 펫숍의 유리장 또는 SNS 계정에서 수천, 수만의 하트를 받는 개들의 사진 이면에는 반려동물 산업의 기형적인 실상이 있다. 안타깝게도 동물이 착취되는 현장은 늘 사람들의 눈에서 떨어진 곳에 숨어 존재한다. 그곳까지 달려가 ‘선택받지 못한 개의 일생’을 직접 관찰하고 독자에게 전달한 애니멀피플의 두 기자에게 감사하다. 합법이 됐든 불법이 됐든, 개와 고양이를 상품과 돈으로 여기는 산업이 존재하는 이상 동물은 계속해서 고통받을 것이라는, 당연하지만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본 취재 기록에도 감사하다.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가 부디 반려동물을 사지도, 팔지도, 버리지도 않기를 바란다. 현실을 알고 나면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또한 반려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보다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해결책에도 동의해주길 바란다. ‘번식장-경매장-펫숍’으로 이어지는 생산과 판매의 고리를 하나씩 끊고 철폐해나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곁에 둔 동물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예의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_《히끄네 집》 작가 이신아
반려동물과 함께 살게 되면 그 작은 존재를 돌보는 데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알게 된다.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놀게 하는, 이 모든 과정이 무시되는 강아지 번식장과, 경매장, 펫숍의 이야기를 마주하기 위해 첫 장을 펼치기까지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희망을 보았다. 이 책에는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인간으로서의 미안함이 공존한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반려 산업 현장에서 두 달 동안 잠입 취재한 내용을 절제된 감정으로 풀어냄으로써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도록 만든다.
이제 선택받지 못한 개가 남긴 메시지에 대한 답을 우리가 해야 할 차례다. 펫숍의 진열장 너머, 끔찍한 환경의 번식장에서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종·모견의 지옥 같은 현실을 바꾸는 일 말이다. 소비하지 않으면, 그래서 수요가 사라지면 공급도 사라진다. 잘못된 연결 고리를 지금 끊어내야 한다. 펫숍을 소비하는 우리 또한 이 거대한 반려 산업을 움직이게 하는 공범이며, 그런 의미에서 번식장의 동물생산업자와 다르지 않음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유기동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예방하는 첫걸음이 되는 동시에 수많은 동물의 생명을 살릴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개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취재는 봄의 끝자락을 잡고 시작됐다.
2019년 5월 31일, 우리는 취재를 위해 펫숍을 개업할 준비를 했고, 사무실을 얻었다. 경기도의 한 관청에서 동물판매업 허가 절차도 밟았다.
전국의 반려견은 약 660만 마리에 이른다(농림축산검역본부 2017년 추산). 이 많은 개는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우리 곁에 온 걸까. 우리는 동물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산되고 판매되는 거대한 시스템이 어디서 비롯해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까이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한 달간의 자료 조사와 사전 취재를 통해 우리는 반려동물 산업의 가장 큰 줄기인 ‘번식장, 경매장, 펫숍’을 이 세계의 ‘블랙 트라이앵글’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들은 외부자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서로 공생한다.
개를 팔 생각이 전혀 없는 우리가 가게를 연 이유는 정식 판매업자가 되어야만 강아지 번식장과 반려동물 경매장을 출입할 수 있어서였다.
특히 번식장-경매장-펫숍으로 이어지는 반려동물 산업 구조 안에서 경매장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반드시 경매장을 취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취재 결과 경매장은 실제로 동물을 외모로 줄 세우면서 번식장이 개를 특정 외모 특성을 가지도록 ‘개량’하게끔 유도하고, 개를 물건처럼 흥정하며 번식장과 펫숍 사이에서 수많은 이익을 취했다.
이 막장 같은 현장을 탐사 보도한 언론이 국내에 아직 없었다. 반려동물 경매장은 매우 폐쇄적이었다.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는 경매장에 출입하려면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하고, 5~10만 원의 가입비를 내야만 했다. 자료 조사 단계에서 확인한 〈반려동물 대량생산과 경매 그리고 식용도살 실태보고서〉(동물권단체 카라, 2014년)의 내용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정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개들을 물건처럼 다루고, 시장의 고기처럼 팔아치우는지 반드시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동물판매업자가 되는 과정은 복잡하고도 간단했다. 우선 독립된 영업장이 필요했기에 김지숙 기자의 지인을 통해 경기도 양평의 한 상가를 한 달 동안 임대했다. 기자들의 거주지 혹은 우리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사무실을 잠시 빌려볼 생각도 했지만, 동물판매업장은 법적으로 2종 근린생활시설이 아닌 가정 등 다른 곳에는 마련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넘어야 할 산은 시설이었다. 동물보호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동물판매업장은 사육실과 격리실을 분리해 설비를 갖춰야 한다. 사육시설은 동물이 직사광선, 비바람, 추위와 더위 등을 피할 수 있고, 뒷발로 일어섰을 때 머리가 닿지 않는 높이를 갖추어야 한다.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수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온라인 등 통신판매를 주로 하는 판매업자의 경우 이 시설 기준을 하나도 갖추지 않아도 되었다. 허가 심사를 위해 사무실을 찾은 담당 공무원에게 온라인 판매 중심의 펫숍을 운영하겠다고 설명하자 더 물을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봄날의 댕댕’이라는 상호로 동물판매업 허가증을 받았다. 취재를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된 셈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복잡했다. ‘판매’라는 단어가 우리를 압도했다. 판매업자로서 동물을 다루는 일이라는 게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 다름이 없음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잠입 취재라고는 하지만 신분을 숨기고 취재원을 대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번 취재는 잠입 취재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정식으로 취재 요청을 해서 현장을 살펴보기에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동물단체 활동가, 반려 산업 전·현직 종사자 등이 제보한 내용을 현장을 통해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약 두 달 동안 동물판매업 사업자등록증을 들고 전국의 강아지 번식장 세 곳, 반려동물 경매장 여섯 곳을 찾았다. 펫숍 두 곳에서는 직접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재했다. 전·현직 번식업자, 수의사, 동물권단체 활동가 등 여러 전문가의 말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현장에서는 관련 산업 종사자를 취재하고 그들이 추천한 일정 수준의 시설을 갖춘 번식장이나 경매장,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허가를 받거나 그렇지 않은 현장, 관련 업자들조차도 문제가 많은 곳으로 지적하는 현장까지 두루 살폈다.
취재하며 가장 놀랐던 점은 개를 사고팔고 가격을 매기는 그들 모두가 그 일을 “개를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판매업자는 ‘초보 판매업자’인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강아지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도 물론 있겠지만, 이게 돈 벌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내가 돈을 벌어서 개를 지켜줄 수 있을 때만 (좋아하는 일도) 가능해요. 그러니까 가급적 영업을 잘할 수 있게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하세요.”
반려동물 판매 관련 이익단체인 반려동물협회 관계자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동물생산업을 하는 분의 다수가 감수성이 예민하고 그분들이야말로 동물을 사랑해서 30년 동안 이 일을 하신 분들”이라며 “동물을 돈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자신들의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방식과 ‘다른 것’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의 취재가 기사로 나간 직후 해당 기사를 두고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앵벌이 기사”에 불과하다고 맹렬하게 항의하며 게재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거대하고 공고한 한국 반려동물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의 ‘왜곡된 사랑’에 물음표를 던지려 한다.
그리고 우리와 물리적, 정신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비인간동물’인 반려동물의 유통 구조를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우리 사회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 또 어떠해야 할지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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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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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탄생하는 곳
일러두기
본문에 등장하는 인명, 단체명, 상호명, 지명은 경우에 따라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강아지 번식장의 개 짖는 소리는 달랐다. 그것은 누군가를 경계하여 ‘컹컹’ 짖거나, 주인이 반가워 ‘왈왈’ 짖는 소리가 아니었다. 논밭 사이, 허름하게 지어 올린 조립식 건물에서 개들은 공기를 찢을 듯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번식장 대부분은 대도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는 것이다. 동물생산업 등록업체 1,186곳 가운데 400개 업체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실제로는 조사된 공식 통계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려동물생산자협회는 2천~3천 개, 동물권단체 카라는 3천~4천 개의 반려견 생산업체가 전국에 산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2018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 결과〉, 농림축산검역본부, 2019년.
** 〈반려동물 연관산업 발전방안 연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7년.
우리는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등록된 동물생산업체 가운데 경기도 여주, 양평, 김포 일대의 강아지 번식장 세 곳을 찾았다. 불법 번식장 한 곳 또한 잠입 취재했다.
2019년 6월 17일과 7월 1일, 두 차례 방문한 경기도 여주 ‘산촌애견’의 외양은 꽃집처럼 보였다. 국도 옆에 바짝 붙여 차린 가게 입구에는 알록달록한 꽃모종과 씨앗 따위를 진열해놓았다. 그 뒤로 호미, 삽, 플라스틱 바구니, 고장 난 선풍기 따위가 마구 뒤섞여 있어 얼핏 고물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간판에는 ‘애완동물 교배 분양’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기묘한 분위기의 번식장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취재를 막 시작했을 무렵, 우리는 경기도 양평에 막 개업한 펫숍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서류 작업을 마치고 퇴근을 하던 중이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국도를 타고 양평의 경계를 벗어났을 즈음이었다. 왼쪽 사이드미러에 비친 ‘애완견 직매장’이라는 글자가 박힌 듯 눈에 들어왔다.
그길로 차를 돌려 잡다한 물건이 늘어선 가게로 들어서자 핑크색 비닐 앞치마를 입은 50대 가량의 남성 ㄱ씨가 우리를 맞았다. 그는 “서울에서 크게 애견숍을 하다가 가게에 불이 나서 접고 농장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때 남양주의 경매장에서 미용사로 일했을 정도로 개를 잘 안다”고도 했다. 평생 개를 통해 생계를 꾸려왔다는 뜻이었다.
그곳이 강아지 번식장임을 확인시켜주는 세 가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