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티모 파르벨라 Timo Parvela
1964년 핀란드에서 태어나 교직에 있다가 1989년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 『Poika』를 처음 발표했고,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엘라’ 시리즈로 핀란드에서 명실상부한 어린이책 스타 작가가 되었고, 이 시리즈는 핀란드와 독일 초등학생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시소』로 핀란드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동화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어린이, 청소년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엘라’ 시리즈 외에도 ‘케플러62’ 시리즈가 한국에 소개되었다.
옮긴이추미란
동국대학교와 인도 델리 대학교에서 인도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현재는 독일에 살며 독어책과 영어책을 소개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고양이』, 『소울 포토』,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ccmr72@hanmail.net
그린이이영림
국민대학교와 영국 킹스턴 대학교에서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수리수리 요술 텃밭』, 『최기봉을 찾아라!』, 『도서관에서 3년』, 『아드님, 진지 드세요』, 『나도 서서 눌 테야!』, 『경성 새점 탐정』 등의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다.
차례
1장 학교 올림픽
새 학년 첫날
초대
페카의 고민
예선전
교장 선생님 대리
선생님 마음대로
훈련 첫날
두 번째 훈련
전반전
후반전
페카, 시를 쓰다
가족사진
2장 람보
전학생
주먹과 수학
축구 연습
대책 회의
만남
위기
성숙 검사
꿍꿍이
결전의 날
3장 학교 야영
선생님과 ‘세상이 끝나는 날’
모금
소시지수프
작별 인사
무서운 이야기
대대적인 수색 작전
더 무서운 이야기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밤
새 학년 첫날
내 이름은 엘라이고 나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다. 1학년 때 우리 반이었던 친구들과 이번에도 같은 반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도 같은 분이고 페카는 여전히 이상한 질문을 한다.
“여기 대학 아니에요?”
새 학년 첫날 페카가 선생님에게 한 질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학도 안 갈 건데 왜 1년이나 학교를 다닌 거예요?”
페카는 포기하지 않고 또 물었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잠자코 구슬꿰미만 돌렸다. 구슬꿰미는 긴 가죽끈에 색색 유리구슬을 꿴 것인데, 못 보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의사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에게 처방했다고 한다.
“그럼 학교 계속 다니면 돈은 주나요?”
페카가 물었다.
우리는 개학을 하고 다시 만나서 좋았다. 다들 흥미진진한 여름 방학을 보냈다고 했다.
우리 선생님은 방학 동안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학교 식당에서 구슬꿰미를 뜯어 버렸다.
티모는 방학 동안 콧수염이 났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채소수프에 그 콧수염이 떨어져 버렸다.
미카는 방학 동안 멋진 서류 가방을 하나 얻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갑자기 교장 선생님이 나타나 그 서류 가방을 가져가 버렸다.
한나는 방학 동안 다이아몬드를 하나 주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그 다이아몬드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나 버렸다.
티나는 방학 동안 귀가 안 들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도 우리는 믿었다. 그런데 조리사 아주머니가 아이스크림 또 먹을 사람 없냐고 하니까 티나가 맨 먼저 “저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방학 동안 안 좋은 일을 막는 마법을 배웠다고 했다. 내 말도 아이들은 다 믿었다. 그런데 페카가 또 먹겠다고 받은 아이스크림을 내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는 것은 막지 못했다.
페카는 방학 동안 교수가 되었고 키가 1미터나 자랐다고 했다. 페카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우리가 설명해 주었다. 수영 강습 수료증을 받았다고 해서 교수가 되는 것은 아니고 1센티미터랑 1미터는 다른 것이 라고.
개학 첫날 마지막 수업 시간, 우리는 새로운 과목을 배웠다. 정확히 무슨 과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주 신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자, 모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숨을 아주 천천히 쉰다!”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만 빼고 모두 눈을 감았다.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뜯어 버린 구슬꿰미에 다시 구슬을 하나씩 꿰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사실 우리는 모두 실눈을 뜨고 있었다.
“이제 너희는 조용한 숲에 있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선생님이 계속 말했다.
우리는 조용한 숲을 상상하는 대신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어야 하나 생각했다. 선생님의 손이 떨리는 걸 보니 조만간 구슬들이 또다시 책상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너희는 아주 깊은 숲속에 있다. 그리고 그 땅에 뿌리를 내린다. 이제 너희는 큰 나무가 되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남은 구슬은 두 개.
“너희는 숲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고 아주 깊고 깊은 잠을 잔다. 주위는 고요하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 모두 눈을 꼭 감는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움직이는 녀석은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할 거다.”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을러 대듯 말했다.
이제 남은 구슬은 딱 하나. 초록색이다. 선생님이 식당에서 주워 작은 상자 안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마지막 남은 구슬을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선생님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흥미진진하다. 선생님은 그 구슬을 다른 손에 쥔 가죽끈 쪽으로 천천히 옮겨 갔다. 숲속에서는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아닌가?
“너희는 모두 나무다!”
마지막 구슬이 손가락에서 튕겨 나가자 선생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좋다. 나무라고 치자! 어쨌든 우리, 열여덟 그루의 나무는 이번에도 선생님을 도와 함께 구슬을 찾았다. 눈을 뜨면 안 되니까 좀 힘들기는 했다. 갑자기 서로 밀고 치는 나무들 때문에 조용했던 숲속이 매우 시끌벅적해 졌다.
결국 미카가 도망친 구슬을 찾았다. 하지만 미카가 눈을 뜨고 찾은 게 틀림없으므로 우리는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미카는 그 구슬을 밟아 깨부수기까지 했다. 미카에게서 깨진 구슬 조각을 건네받으면서 선생님은 웃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 됐다!”
선생님이 소리쳤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구슬꿰미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교실을 돌기 시작했다. 부서진 초록 구슬만 빼고 나머지 구슬이 모두 가죽끈에 단단히 꿰여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한 일치고는 대단했다. 그런데 선생님 손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구슬꿰미가 그만 문손잡이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 질겁하던 선생님의 표정은 더 대단했다. 구슬꿰미는 다시 뜯겨 버렸고 물론 우리는 또다시 구슬을 찾아 나섰다. 선생님은 구슬들을 모아 작은 상자 안에 도로 넣었다. 그러는 동안 선생님은 계속 웃었다. 내일 할 일이 생겨서 좋은 걸까?
우리는 새로 배우게 된 과목이 아주 재미있었다. 그 과목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다들 ‘이불수(이렇게 불운할 수가……)’가 딱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초대
개학 둘째 날, 2교시가 막 시작됐다. 선생님은 다시 구슬꿰미를 돌리고 있었다. 1교시에 선생님은 우리더러 운동장에 가서 선생님의 서류 가방을 찾아오라고 하고는 혼자 교실에 남아 구슬을 가죽끈에 다시 꿰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서류 가방을 운동장에 두고 왔다고 했을까? 사실 가방은 교실 안 선생님 책상 위에 있었는데 말이다.
선생님 책상에는 편지도 한 통 놓여 있었다.
“내 생각에는 선생님이 또 협박받는 거 같아.”
한나가 소곤거렸다.
“내 생각에는 선생님이 또 사랑에 빠진 거 같아.”
티나가 소곤거렸다.
“말도 안 돼! 선생님은 사랑에 빠질 수 없어. 결혼하셨잖아.”
나도 소곤거렸다. 티나에게는 뭐든 다 설명해 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편지를 갖고 이렇다 저렇다 싸울 필요는 없었다. 선생님이 봉투를 뜯어 편지를 직접 읽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올해도 우리 시에서 개최하는 학교 올림픽에 여러분의 학교를 초대합니다. 초대된 학교는 두 명의 대표 선수를 뽑아 출전해 주세요. 다 함께 정정당당한 경기를 펼쳐 봅시다. 학교 올림픽은 2주 후에 열립니다.”
선생님은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방금 가죽끈에 꿰어 놓은 빨간 구슬 두 개와 하얀 구슬 한 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좋아. 그럼 일단 예선 경기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는 당연히 모두 참가하고 싶었다. 페카만 빼고. 페카는 2학년이 됐는데도 학교에서 돈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너도나도 손을 들자 선생님이 말했다.
“그럼 제비뽑기를 해야겠구나.”
선생님은 쪽지에 우리 이름을 하나씩 적어 접은 다음 작은 상자에 넣었다. 구슬을 주워 담던 바로 그 상자 였다.
미카가 행운의 요정이 되어 눈을 감고 상자 안에서 쪽지 두 장을 꺼냈다.
“티모!”
선생님이 첫 번째 쪽지에 쓰여 있는 이름을 읽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티모가 기뻐했다.
“페카!”
선생님이 두 번째 쪽지에 쓰여 있는 이름도 읽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나는 손도 안 들었는데.”
페카가 불평했다.
선생님은 구슬 다섯 개를 하나씩 한쪽으로 돌렸다. 티모는 기뻐서 두 팔을 들고 환호했고 페카는 화를 냈다.
“잠깐!”
선생님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까 초대장에 남학생, 여학생 각각 한 명이라고 돼 있었잖아!”
초대장에 그런 말은 없었던 것 같지만 선생님은 그렇다고 믿었다. 우리는 초대장을 다시 읽어 보고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초대장이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튼 그래서 제비뽑기를 한 번 더 해야 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행운의 요정을 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쪽지를 아주 조심스럽게 섞은 다음 두 장을 뽑았다.
“티나!”
선생님이 쪽지에 쓰여 있는 이름을 읽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쪽지를 펼쳐 보았고 우리를 둘러보는가 싶더니 아직 화가 안 풀린 페카를 보았다.
“나 원 참…….”
선생님이 말했다.
“여자애랑은 아무것도 안 할 거야.”
페카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선생님은 구슬 아홉 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나서야 말했다.
“얘들아, 들어 봐. 선생님이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학교 올림픽에 나갈 사람을 제비뽑기로 정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구나.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대표를 뽑을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학교 올림픽에는 가장 날쌔고 똑똑한 학생이 나가야 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선생님은 구슬꿰미를 다시 뜯어 버렸다. 이번에는 물론 일부러 뜯은 것이다! 우리가 조금 놀라는 사이, 선생님은 우리에게 구슬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잘 들어! 이제부터 한 명씩 각자가 가진 구슬을 휴지통에 던지는 거야.”
선생님이 말했다.
그제야 우리는 선생님이 뭘 원하는지 알아챘다.
나는 빨간 구슬을 받았다. 미카는 노란 구슬을 받고는 파란 구슬이 아니라고 울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미카는 못 말리는 울보다.
우리는 선생님이 시킨 대로 한 명씩 휴지통에다 대고 구슬을 던져 보았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티모는 구슬을 휴지통에 넣으려다가 그 위에 있는 전등을 맞혔고 티나는 칠판을 맞혔다. 미카는 구슬을 입에 넣고 삼켜 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맞혔고 그러자 맞히기 놀이를 못 하게 되었다고 또 울기 시작했다. 한나는 선생님 이마를 맞히고 나는 세면대에 덮어 놓았던 뚜껑을 맞혀 버렸다. 그런데 그 뚜껑에 맞고 튕겨 나온 내 구슬이 휴지통 속으로 쏙 들어갔다. 다른 아이들도 여기저기 구슬을 던져 댔기 때문에 교실 안은 통통 튀는 색색의 구슬들로 난리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페카 차례였다.
“꼭 던져야 해요?”
페카가 물었다.
“물론이지!”
선생님이 대답했다.
“그럼, 알겠어요.”
페카는 한숨을 쉬더니 자기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구슬을 귀찮다는 듯 한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 구슬이 휴지통에 쏙 들어가 버렸을 때, 솔직히 우리 중에 놀라는 사람은아무도 없었다.
“저주를 받은 게 틀림없군.”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우리더러 다시 운동장에 가서 선생님 가방을 찾아오라고 했다. 선생님 가방은 여전히 책상에 그대로 있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방학 동안 건망증이 심해졌나 보다. 아니면 학교 올림픽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걸까?
페카의 고민
페카가 운동장 그네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화가 잔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