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1. 인용된 글들은 저자의 필요에 따라 원문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기도 했다.
2. 이 책의 서술 성격상 본문에서 생략된 인용 출처는 책 말미의 <참고문헌> 항목에서 각 꼭지별로 밝혔다.
글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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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간직할 한 권의 책을 가슴에 심자!
자신의 분야에서 남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 사람은 어김없이 모두가 독서광이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닮고 싶은 ‘롤 모델’로 꼽는 안철수, 지금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사회 공익 부문에 열정을 쏟고 있는 빌 게이츠, 중국 삼국시대 통일의 기반을 닦았던 조조가 모두 그러했다.
안철수는 초등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늘 책을 곁에 두고 산다. 책벌레로 유명하며 활자중독증 환자로 불릴 정도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면 관련된 책을 먼저 읽는다는 그는 바둑을 배우기 전에 바둑책을 보고 연구하는 형이다.
빌 게이츠도 초등학교 시절 못 말리는 독서광이었다. 열 살이 되기 전에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버렸다. 그는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것은 학교가 아니라 동네 도서관이다. 지금도 평일에는 최소한 매일 밤 한 시간, 주말에는 서너 시간의 독서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런 독서가 나의 안목을 넓혀준다”고 말하면서 독서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가를 들려준다.
중국 삼국시대 영웅인 조조도 독서광이었다. 평생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손자병법》을 자신의 관점에서 요약하고 정리하여 장수들을 교육시킬 정도였다. 천하통일을 다투던 오나라의 손권조차 “조조는 나이가 들어서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신하에게 독서를 권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독서 이력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물론 독서를 많이 한 사람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성공한 사람 중에 독서를 게을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지냈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이 그들의 꿈과 미래를 결정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듭되는 인생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자신의 꿈을 좇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은 거울이자 길잡이가 된다.
이 책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용기를 얻거나, 평생의 꿈을 간직했거나, 살아 갈 방향을 정한 인물 열네 명의 이야기다. 등장하는 인물은 잘 알려진 위인일 수도 있고, 낯선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롤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이다.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고, 역사에 자취를 남긴 인물과 현재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인물을 안배했다. 부디 주인공 열네 명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책은 열네 명의 인물이 읽은 한 권의 책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 인물이 읽은 한 권의 책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한 권의 책이 인물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과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이 책은 열네 명의 인물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느꼈거나 느꼈을지 모를 또는 우리가 느껴야 할 가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컨대 열네 명의 인물, 열네 권의 책, 열네 개의 주제 메시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이 책을 읽으면 등장인물들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저마다 평생을 함께할 단 한 권의 책이라도 가슴에 품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간절한 바람이다.
영국 신문 《가디언》에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이 소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본 경험을 쓴 책으로, 환자들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가 나온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삶을 산 것, 너무 일만 열심히 한 것,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 친구들을 잘 챙기지 못한 것, 일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만족한 채 살아버린 것이 그것이다. 한 가지 한 가지가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그것도 제일 앞에 보태고 싶다. 그것은 ‘평생을 함께 할 책 한 권을 갖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만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한 권의 좋은 책이 내일 당장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의미를 되새기다보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지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한 권의 좋은 책을 통해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소명을 따르고 있는 열네 명 주인공, 필자는 그들의 삶을 한동안 나의 인생인 양 부둥켜안고 살았다. 평생을 함께 할 책 한 권을 찾는 자세로 그들이 읽은 책을 그들과 독자들의 관점에서 읽고 또 읽었다. 이제 작은 보람과 함께 아쉬움을 가슴에 묻으며, 정성껏 키운 열네 명의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이 책을 독자들 손에 건넨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출판을 선뜻 허락하여 준 위즈덤하우스의 연준혁 대표, 집필을 마무리하는 기간에 누구보다 여러모로 힘이 되어 주었던 이용배 친구. 특히 한 사람에게는 이 책의 집필 과정뿐 아니라 살아오면서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선배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필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했던 김상수 선배는 시골집 뒷동산의 소나무다. 얼마 동안 그들만의 전투를 묵묵히 치르고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도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고마움을 전한다. 열일곱 살 아들 녀석 손에 제일 먼저 따끈따끈한 이 책을 쥐어 주어야겠다. 마지막으로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며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고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님의 영전에, 남다른 자존감과 지혜로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계신 어머님 무릎 앞에 이 책을 바친다.
2013년 5월
저자를 대표해서 임영택
《역사란 무엇인가》와
안철수
병아리를 좋아하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애지중지하며 커다란 닭이 되도록 병아리를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닭이 사라졌다. 소년은 그날 저녁 병아리 때부터 정성들여 키운 닭이 가족의 밥상에 오른 걸 보고 펑펑 울었다. 가족의 영양분이 되어버린 병아리를 대신해서 이번에는 토끼를 사다 길렀다. 토끼에게 먹이를 주고 토끼장 청소도 혼자서 해냈다. 토끼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소년 시절의 안철수(1962~)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지 주로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동식물 기르기나 독서를 즐겨하며 자랐다. 그가 글을 깨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뒤부터는 책에 빠져들었는데 학교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거의 읽을 정도로 글자라고 생긴 것은 가리지 않고 읽어나갔다. 안철수가 책을 읽는 방식에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소설책을 즐겨 읽었는데, 반 이상 읽다보면 소설 속 인물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서 기분까지 슬퍼졌다고 한다. 보통은 소설을 읽은 뒤 줄거리나 주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안철수에게는 등장인물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소설 속 인물이 처한 어려움이나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 제일 먼저 관심이 가고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철수는 천성적으로 동물이든 사람이든 함께 대화를 하고 고민을 나누는 일을 즐기는 성향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안철수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아들도 자신처럼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전자공학과나 수학과에 뜻을 두고 있던 안철수에게 아버지의 바람은 짐이 되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한 안철수는 자기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의대생이 된 안철수는 서울 구로동에서 한 동안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했다. 그 시기에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할머니를 진료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움직일 수 없어서 중학교 1학년 손녀가 신문배달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몇 달 뒤 할머니 댁에 다시 들렀을 때는, 손녀는 가출했고 할머니는 혼자 지내다 외로이 죽음을 맞이한 후였다. 이때를 회상하며 안철수는 “숱한 책을 읽으면서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야기들도 많이 접했지만 막상 그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어떤 가닥도 잡히지 않았다. 배운 사람의 도리 같은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 답답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한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이후에 의사, 벤처사업가, 교수로 성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꾸려왔던 안철수는 2011년 가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해 단숨에 정계에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언론에서는 그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과 기대를 ‘안철수 현상’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안철수 현상’에 대해 그는 ‘미래 가치와 옛 체제의 충돌’이라고 그 성격을 정의했다. “국민들의 생각이나 개인의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들, 계층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회구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경제시스템”을 옛 체제의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과거보다는 미래를, 대립보다는 화합과 소통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한데 서로 싸우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의 공감 노력의 부족을 비판하고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와 과거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고통도 함께 나누는 화합과 소통의 세상이었다.
독서광인 안철수는 책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가 읽은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1961)에 나오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는 표현은 이 책의 냄새를 맡았거나 구경만 한 사람, 또는 전혀 읽지 않은 사람조차 알 정도로 유명하다. 에드워드 카(1892~1982)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에 보면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더 나아가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는 표현이 나온다.
역사가는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할 사실을 만들어내고,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맞추어 가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환경에 완전히 굴복하거나 무조건 따르지도 않는다. 인간은 의식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이 처한 환경을 지배하거나 바꾸기도 한다.
사실과 상호작용하는 역사가는 현재에 속하며, 사실은 과거에 속한다. 역사가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실을 바라보고, 과거의 사실은 현재의 역사가의 관점에 영향을 준다.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처럼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인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가가 현재와 과거뿐 아니라 미래까지 포괄할 것을 주문한다.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고 말한다. 단순히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미래에 중요한 가치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역사가의 입장이라는 의미다. 예컨대, 미래에 우리 한민족에게 통일이 중요한 목적이라면, 통일의 관점에서 과거 분단의 원인을 해석하고 통일의 방향과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는 말이다. 역사란 현재, 과거, 미래 사이의 대화라는 말의 의미만 제대로 알아도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한 건 건진 셈이다.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와 과거를 바라보는 안철수의 생각은 《역사란 무엇인가》의 역사란 현재, 과거, 미래 사이의 대화라는 역사관에 빚을 지고 있다. 대화의 본질은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향적이다. 대화가 일방적일 때는 대화가 아니라 독백에 불과하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대화는 쌍방향으로 흐르는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안철수가 늘 주장하는 공감은 대화의 본질인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서로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볼 때 공감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공감은 그가 중요하다고 말한 화합과 소통의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서로가 상대방의 감정이나 의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때 갈등을 해소하고 통할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역사관은 안철수의 핵심 코드인 ‘공감’과 만난다.
안철수와 공감철학의 접점이 되어준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 전공자나 역사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의 필독서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교양서로 가치가 충분하여 고전의 위치에 있다. 이 책이 고전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다지 어렵지 않다. 종종 이름도 모르는 역사가, 철학자, 과학자 등이 등장하지만 카가 설명을 잘해주어 쉽게 읽을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그의 모교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했던 자료를 펴낸 책이다. 강의 자료였기에 자신의 생각을 쉽게 전달하는 일이 중요했지 전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알려져 있는 과거의 모든 사실이 역사는 아니며 역사가가 ‘선택’했을 때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 된다고 말한다. 예컨대, 고려시대 최씨 무신정권에서 몽골의 침입을 받자 도읍을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긴 적이 있었다. 이때 무신정권의 집권자는 최우였다. 최우 이전과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개경에서 강화도로 가는 길을 지나갔다. 역사가는 최우가 강화도로 간 사실은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