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
일류미네이션
초판 1쇄 | 발행 2024년 5월 1일
지은이 | 김종호
펴낸이 | 임지이
책임편집 | 임지이
디자인 | 박정화
마케팅 | 김옥재
펴낸곳 | ㈜엘도브
출판등록 | 2023년 6월 28일 제2023-000074호
주소 | 경기도 파주시 아동로7 4층 다40호
이 메 일 | ailesdaube@gmail.com
전자책 발행일 2024년 6월 1일
전자책 ISBN 979-11-984277-3-1(05860)
전자책 정가 15,400 원
에티엔 카르자가 찍은 17세 랭보의 사진 복사본,
1872, 프랑스 국립도서관
차례
역자 서문
대홍수 이후 Après le Déluge│After the Deluge
유년기 Enfance│Childhood
이야기 Conte│Tale
퍼레이드 Parade│Parade
앤티크 Antique│Antique
아름다운 존재 Being Beauteous│Being Beauteous
삶들 Vies│Lives
출발 Départ│Departure
왕권 Royauté│Royalty
이성에게 A une Raison│To a Reason
도취의 아침 Matinée d’ivresse│Morning of Drunkenness
단장들 Phrases│Phrases
[단장들] [Phrases]│[Phrases]
노동자들 Ouvriers│Laborers
다리들 Les Ponts│The Bridges
도시 Ville│City
바퀴 자국들 Ornières│Ruts
도시들 [II] Villes [II]│Cities [II]
방랑자들 Vagabonds│Vagabonds
도시들 [I] Villes [I]│Cities [I]
철야 Veillées│Vigils
신비 Mystique│Mystic
새벽 Aube│Dawn
꽃들 Fleurs│Flowers
속된 야상곡 Nocturne vulgaire│Vulgar Nocturne
바다 그림 Marine│Seascape
겨울 축제 Fête d’hiver│Winter Festival
고뇌 Angoisse│Anguish
메트로폴리탄Métropolitain│Metropolitan
야만 Barbare│Barbaric
바겐세일 Solde│Sale
요정 Fairy│Fairy
전쟁 Guerre│War
청년기 Jeunesse│Youth
곶 Promontoire│Promontory
무대 장면들 Scènes│Scenes
역사적인 저녁 Soir historique│Historic Evening
보톰 Bottom│Bottom
H H│H
움직임 Mouvement│Movement
기도 Dévotion│Devotion
민주주의 Démocratie│Democracy
정령 Génie│Genie
참고 판본
작가 연보
역자 서문
1. 랭보의 시와 침묵
문학을 버리고 떠난 랭보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한결같다. 랭보의 침묵은 시의 비밀을 함축한다. 랭보는 시 그 자체다. 그의 작품은 신비의 결정체다. 5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기간의 글쓰기로 시를 “파열”시키고, 스무 살 무렵, 말라르메(Mallarmé)의 표현에 따르면, “산 채로 몸에서 시를 잘라내고” 떠난 시인이 랭보다. 후계 시인 샤르(Char)는 말했다. “나에게 있어 랭보가 무엇인지 안다면, 내 앞에 있는 시가 무엇인지 알 것이고, 그러면 시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랭보와 시와 침묵이 하나라는 얘기다.
침묵이라는 시의 본질을 육화하고 있는 것이 랭보의 마지막 작품, 궁극의 시집 『일류미네이션』이다. “궁극”이라 함은 표현 가능성의 한계 지점에 있다는 뜻이다. 『일류미네이션』은 언어와 소통, 담론과 유희, 말과 침묵이 구분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 했던 그의 시는 해석이 거의 불가능하다. 출판된 지 백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랭보의 문학적 실존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울림은 여전하다. 문학의 본질과 가능성에 대한 깊은 의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글로 “삶을 변화시키기”가 가능한지, 내면의 “여러 다른 삶”과 꿈의 기록이 새로운 세상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이 그의 글쓰기를 이끈다. 삶의 결은 거칠었지만 그의 작품은 “흠 없는 영혼”을 추구했다. 무구하고 무한한 세상과 “진정한 삶”의 구현이 그의 지향점이다.
오 계절들이여, 오 성(城)들이여,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일류미네이션』은 시간과 공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꿈의 기록이다. 현실의 삶과 인식의 관습을 바탕으로 읽을 때 작품의 의미는 혼란 그 자체다. 실재와 환상, 의식과 무의식, 사물과 허상의 여러 차원이 하나의 화면에 혼재하기 때문이다. 『일류미네이션』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인간에게 던져진 커다란 물음표다. 그 시들 속에는 존재의 의미와 세상의 모순에 대한 성찰이 다양한 의문의 형태로, 온갖 방향으로 제시되어 있다.
2. “불가해한 시집”과 제목의 의미
『일류미네이션』의 불가해함은 시집의 의도와 형체, 제작 시기 등의 불확실함과 맞물려 있다. 낱장 묶음 형태로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원고는 순서가 불확실해서 첫 판본부터 최신 판본에 이르기까지 차례가 제각각이다. 시집의 제목조차 확실한 것이 아니다. 유일하게 제목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것은 1886년 출판된 서문에서 밝힌 베를렌(Verlaine)의 회고적 증언이다.
우리가 대중에게 내놓는 이 책은 1873년에서 1875년까지 벨기에, 영국과 독일 전역의 여행 중에 씌어졌다.
“일류미네이션”이라는 단어는 영어로서 채색 판화(colouredplates)를 의미한다. 그것은 랭보가 원고에 부여했던 부제목이기까지 하다.
베를렌의 모호한 진술은 논란의 시작일 뿐이다. 그의 서문이 담긴 판본은 정작 부제를 표기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영어로 제시된 부제가 제목의 다원적 의미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글에서 제목의 영어식 발음표기(“Illuminécheunes”)와 유사 부제(“paintedplates”)까지 언급한 베를렌의 증언은 혼란을 더한다.
불확실하지만, 시집의 제목은 시인의 의도를 함축한다. 그것은 난해한 각각의 시들을 열어줄 열쇠다. 의미가 불분명해도 함의는 크다. 제목에 내포된 첫 번째 의미는 빛의 관념이다. 그것은 단어의 어원에 담겨 있는 것으로서 많은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빛의 양상을 반영한다. 두 번째는 “계시”, “영감”과 같은 종교적 혹은 신비적 의미다. 그 의미는 반종교적 전언 혹은 새로운 차원의 전언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실제로 “반(反)복음서 기획”은 첫 시 「대홍수 이후」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시 「정령」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는 작품의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관점이다. 또 하나의 의미는 텍스트 자체를 지시하는 메타포로서 시들의 “놀라운 이미지들”을 가리킨다. 그 놀라움 혹은 경이로움은 종교적 의미와도 관계있다. 제목의 마지막 의미는 채색 삽화(enluminures)에 상응하는 것으로 이른바 부제와 연관된다. 다만 “채색 판화” 혹은 “착색 판화”는 역동적 순환성을 지닌 『일류미네이션』의 상상 세계에서 활력이 저하된 단계를 암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 고착 상태에서 모든 생명의 힘을 다시 길어 올리고, 드높은 언어의 빛, 인간이 빚어낸 빛, 새롭게 “창조된 빛”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제목의 궁극적 의미다. “일뤼미나시옹”이라는 의미작용 없는 음역이나 “채색 판화” 혹은 “착색 판화”라는 불확실한 부제로 옮겨지던 시집의 제목을 “일류미네이션”으로 교정한 것은 이와 같은 다양한 의미의 스펙트럼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다.
3. 작품의 의도와 창조의 유희
“반(反)복음서 기획”은 랭보의 문학적 실존의 귀결이다. 집에 머문 적이 드물었던 아버지의 부재와 청교도적인 어머니의 억압적 존재감, 그리고 작은 시골 마을에 갇혀 살았던 어린 시절의 그를 키운 것은 탈출과 반항과 자유의 갈망이었다. 시적 상상으로의 몰입도, 파격적인 언행, 베를렌과의 일탈도, 글쓰기의 혁신도, 그리고 문학과 유럽으로부터의 이탈까지도 모두 거기서 비롯된다. 단계를 불사르는 그의 시적 진화는 1873년 4월에서 8월 사이에 쓴 산문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변곡점에 이른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베를렌과 함께한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선조의 “나쁜 혈통”에 대한 자조와 “이교도적” 영혼의 찬양은 기독교의 교리와 이념에 갇힌 “서양”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시인의 “지옥”은 결국 “인간의 아들이 문을 연, 오래된 지옥”, 즉 서구의 닫힌 현실 세계를 가리킨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마지막 산문시 「작별」(Adieu)에 언급된 “새로운 시간”, 새로운 “새벽”은 『일류미네이션』에서 구현된다. 『일류미네이션』은 창세기에서 묵시록에 이르는 성서의 구도를 거슬러 올라가 원죄와 구원의 교리를 파기하고 “재창조된” 세계의 비전을 제시한다. 현실 세계의 쇄신을 암시하는 첫 시 「대홍수 이후」에서부터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는 마지막 시 「정령」에 이르기까지, 『일류미네이션』이 보여주는 파괴적 창조의 글쓰기는 자주 격렬하고 때로 풍자적이며 더없이 오만한 동시에 자조적이다. 거의 늘 유희적이지만 때로 간절한 그의 글을 이끄는 힘은 인간의 원초적 순수와 존재의 온전함과 완전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강렬한 파괴의 흔적처럼 『일류미네이션』의 시편들은 파열된 형태로 남았지만, 그 “단편들”(fragments) 혹은 파편들은 “진리를 하나의 영혼과 하나의 육체 속에 소유하려는” 온당한 욕망의 결과물이다.
4. “문자 그대로, 모든 의미로”
난해한 랭보의 시를 대하는 관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속에서 천재의 메시지를 읽어 내려는 진지한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결국 성마른 아이의 글 놀이로 치부하는 태도다. 랭보를 오래 연구한 비평가들도 둘 사이를 오간다. 진지한 담론이든 악동의 유희든 랭보의 텍스트는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문 같다. 합리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대목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보다 더 많다. 논리적 이해의 결핍은 그러나 독자의 폭넓은 상상력을 촉구하는 요인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모호한 표현들에 대해 의미를 묻는 어머니에게 “문자 그대로, 모든 의미로(방향으로)” 읽으라고 했다는 랭보의 대답은 시사적이다. 그가 “찾아낸” 새로운 차원의 언어, “모든 감각(의미)에 닿을 수 있는 시적 언어”는 일원적인 일상의 언어로 환원될 수 없다. 복합적인 언어의 의미 파악에 집착하면 “상징들의 숲”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 랭보의 상징은 일반적 문학의 범위를 벗어난다. 극히 개인적인 상징에서 간단한 알레고리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크다. 상징 하나하나를 풀이하는 것보다 상상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이 낫다.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쫓다 보면 이해의 폭은 차츰 넓어진다. 그것이 랭보가 찾았던 “영혼에서 영혼으로 향하는” “보편적 언어”(lelangageuniversel)의 소통 방식이 아닐까. 『일류미네이션』을 읽다 보면 문학의 힘과 허무가, 전염되듯, 끊임없이 느껴지는 이유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글을 옮긴 글이 제대로 된 글일 리 없다. 읽기 어렵고 어색한 표현들이 많다. 원문 자체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미지”의 글쓰기를 추구한 결과인 그 생경함을 굳이 자연스럽게 풀려고 하지 않았다. 한계가 뚜렷한 번역을 반추하도록 프랑스어 원문을 병치했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 영어 번역을 부가했다. 단어의 의미와 어순에 있어서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프랑스어와 가깝다. 주석은 최대한 제한했다. 되도록 시 본문보다 길어지지 않도록 했다. 하나의 해석일 수밖에 없는 주석은 종종 가능한 독서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 설명이 짧을수록 그릇된 길 안내도 적다. 시의 본질이 함축이라면 『일류미네이션』은 그 궁극이다. 랭보는 “침묵을 기록했다”. 무한한 침묵의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수수께끼는 맘껏 상상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원고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일류미네이션』은 정본이 없다. 크게는 시집의 순서와 시의 배열, 작게는 문장과 단어, 부호의 표기까지 판본마다 다르다. 판본 자체가 하나의 해석이고 관점이다.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구성된 최신 판본들의 합을 원전으로 삼았다. 주요 판본의 목록은 참고한 영역본과 함께 책 끝에 있다.
『일류미네이션』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여러 가지 구두점과 부호들은 중요하다. 「아름다운 존재」나 「단장들」처럼 글을 나누는 기호들이 작품의 해석을 결정짓는 경우도 있다. 작은 구두점, 부호들조차 의미가 실린 경우가 많다. 모든 부호를 그대로 옮기고 싶었지만, 우리글에 쓰지 않는 콜론과 세미콜론은 쉼표나 마침표 등으로 대체했다. 원문에 많이 쓰인 줄표(tiret)는 그대로 살렸다. 『일류미네이션』에서 줄표는 글쓰기 리듬의 변화나 장면 전환을 나타내고 시공간의 간극을 잇거나 내면의 목소리들을 도입하는 등 많은 것을 표상한다.
대홍수의 관념이 다시 가라앉자마자,
산토끼 한 마리가 누에콩 풀과 움직이는 방울꽃들 속에 멈춰 서서 거미줄 사이로 무지개를 향해 기도했다.
오! 보석들은 숨어들고 있었고, ─ 꽃들은 벌써 쳐다보고 있었다.
더러운 큰길에는 진열대들이 세워졌고, 작은 배들이 마치 판화에서처럼 저 높이 층진 바다를 향해 끌어올려졌다.
피가 흘렀다, 푸른 수염 집에, ─ 도살장에, ─ 서커스 극장에, 신(神)의 봉인이 창문들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였다. 피와 젖이 흘렀다.
비버들이 집을 지었다. 작은 카페들에서 “마자그랑” 커피 향이 피어올랐다.
아직도 물이 흐르는 커다란 유리 집에는 상을 당한 아이들이 놀라운 이미지들을 쳐다보았다.
문소리가 났고, 이어 마을 광장에, 아이가 팔을 휘두르며, 눈부신 소나기 아래, 사방팔방 종탑들의 바람개비 풍향계와 수탉들을 휘돌렸다.
*** 부인은 알프스에 피아노를 들여놓았다. 미사와 첫영성체들이 대성당의 수많은 제단에서 거행되었다.
상인 집단들은 떠났다. 그리고 장엄 호텔이 극지의 빙하와 밤의 혼돈 속에 세워졌다.
그때부터, 달은 백리향 사막에서 울어대는 자칼들 소리와, ─ 과수원에서 투덜대는 나막신 신은 목가(牧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보랏빛 큰 숲에서, 움터나는, 유카리스가 나에게 봄이라고 말했다.
─ 솟아라, 연못, ─ 거품이여, 다리 위로, 숲 저 너머로, 굴러라, ─ 검은 천들과 파이프오르간들, ─ 번개들과 천둥, ─ 솟아올라 굴러라, ─ 물과 슬픔들, 솟아올라 대홍수들을 다시 일으켜라.
왜냐하면 그들이 흩어진 이래로, ─ 오 묻혀가는 보석들, 그리고 열린 꽃들! ─ 권태뿐이니까! 그리고 여왕은, 흙 단지 속에 자신의 숯불을 지피는 그 마녀는, 우리에게 그녀가 아는 것, 우리는 모르는 것을 결코 얘기해주려 하지 않으니까.
대홍수 이후
「대홍수 이후」는 『일류미네이션』의 첫 시다. 그것이 시인의 의도였는지 첫 편집자 페네옹(Fénéon)의 단순한 페이지 매김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첫 판본에서 최신 판본에 이르기까지 그 위치는 대체로 바뀌지 않았다. 확실치 않은 원고의 첫 번째 일련번호 때문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표현들 속에 시집 전체의 주요 “관념”과 “이미지들”, 인물과 상징들, 갈망과 의도들이 발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홍수”의 관념 혹은 환상은 현실 세계의 정화를 향한 강렬한 바람이다. 또한 성경의 창세기 신화의 전복적 패러디이기도 하다. 희미한 신의 가호(“푸르스름”한 “신의 봉인”) 아래 펼쳐지는 살육의 풍경은 그것을 암시한다. 이곳에는 “젖과 꿀” 대신 “피와 젖”이 흐른다.
“대홍수 이후”의 세계를 되돌리려는 반(反)복음적 메시지는 이 시와 시집 전체를 가로지른다. 『일류미네이션』은 “대홍수의 관념”으로부터 새로운 창조를 향한다. 시 전편에 나타나는 역동성의 갈망은 그 격렬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것은 대홍수 이전의 순수 상태에 대한 갈증 혹은 새로운 정화 욕구가 엿보이는 뒷부분의 외침 혹은 주문 속에 함축되어 있다. 반복되어 나타나는 꽃과 보석은 그런 카타르시스의 결정체다. 마지막 부분의 권태와 무지의 탄식은 근원적 수수께끼를 탐구하는 여러 시들의 동인이다.
아이의 테마에는 억압된 유년의 기억과 원초적 삶의 환상이 혼재한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은 동화적 색채를 띤다. 동화는 개인적인 동시에 우주적인 차원을 내포한다. 마녀 혹은 여왕의 모성적 이미지는 유년기의 삶과 대지의 신화를 포괄한다. 아이들이 보는 “놀라운 이미지들”은 곧 시집 전체를 가리키는 메타포다. 새로운 관념과 형상들이 하나씩, 마치 판화 속에 새겨지듯, 아니면 드넓은 상상의 허공에 그려지듯 펼쳐진다. 생경한 각각의 이미지들은 일관된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종교와 동화 혹은 우화, 아이와 모성, 집과 이국 취향, 축성과 파괴, 문명과 원시 등의 대립 항목들이 이질적 이미지들에 묵시적 연관성을 부여한다.
“대홍수들”은 반복되는 역동적 상상의 표현이다. 세상 모든 것이 씻겨나가는 대홍수의 상상은 되풀이되고, “언제나” “어디서나”(「어느 이성에게」) 새로운 창조의 그림이 펼쳐진다.
유카리스(Eucharis)는 수선화과의 꽃 이름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파생된 님프의 이름이다. 페늘롱(Fénelon)의 소설 『텔레마코스의 모험』(Les Aventures de Télémaque, 1699)에 나오는 유카리스는 유아적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매력의 화신으로,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사랑에 빠뜨린다. 전설의 섬 오기기아의 여왕 님프인 칼립소(Calypso)는 처음 그 사랑을 양도했으나 곧 질투와 회한,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둘을 갈라놓는다.
Aussitôt après que l’idée du Déluge se fut rassise,
Un lièvre s’arrêta dans les sainfoins et les clochettes mouvantes et dit sa prière à l’arc-en-ciel à travers la toile de l’araignée.
Oh! les pierres précieuses qui se cachaient, ― les fleurs qui regardaient déjà.
Dans la grande rue sale les étals se dressèrent, et l’on tira les barques vers la mer étagée là-haut comme sur les gravures.
Le sang coula, chez Barbe-Bleue, ― aux abattoirs, ― dans les cirques, où le sceau de Dieu blêmit les fenêtres. Le sang et le lait coulèrent.
Les castors bâtirent. Les ≪mazagrans≫ fumèrent dans les estaminets.
Dans la grande maison de vitres encore ruisselante les enfants en deuil regardèrent les merveilleuses images.
Une porte claqua, et sur la place du hameau, l’enfant tourna ses bras, compris des girouettes et des coqs des clochers de partout, sous l’éclatante giboulée.
Madame *** établit un piano dans les Alpes. La messe et les premières communions se célébrèrent aux cent mille autels de la cathédrale.
Les caravanes partirent. Et le Splendide Hôtel fut bâti dans le chaos de glaces et de nuit du pôle.
Depuis lors, la Lune entendit les chacals piaulant par les déserts de thym, ― et les églogues en sabots grognant dans le verger. Puis, dans la futaie violette, bourgeonnante, Eucharis me dit que c’était le printemps.
― Sourds, étang, ― Écume, roule sur le pont, et par-dessus les bois ; ― draps noirs et orgues, ― éclairs et tonnerre, ― montez et roulez ; ― Eaux et tristesses, montez et relevez les Déluges.
Car depuis qu’ils se sont dissipés, ― oh les pierres précieuses s’enfouissant, et les fleurs ouvertes! ― c’est un ennui! et la Reine, la Sorcière qui allume sa braise dans le pot de terre, ne voudra jamais nous raconter ce qu’elle sait, et que nous ignorons.
As soon as the idea of Deluge had subsided,
A hare stopped in the sainfoins and the swaying bellflowers and said his prayer to the rainbow through the spider’s web.
Oh! the precious stones that were hiding, ─ the flowers that were already looking.
In the dirty main street stalls were set up, and boats were towed toward the sea raised up above in tiers as in engravings.
Blood flowed, at Bluebeard’s, ─ in slaughterhouses, ─ in circuses, where the seal of God turned the windows pale. Blood and milk flowed.
Beavers built. “Mazagrans” smoked in the taverns.
In the big house of glasses still dripping, children in mourning looked at the marvelous images.
A door slammed, and on the village square, the child waved his arms, included weather vanes and cocks on steeples everywhere, under the bursting shower.
Madame *** installed a piano in the Alps. Mass and first communions were celebrated at the hundred thousand altars of the cathedral.
Caravans departed. And the Splendid Hotel was built in the chaos of ice and night of the pole.
Since then, the Moon heard jackals howling through the deserts of thyme, ─ and the eclogues in wooden shoes grumbling in the orchard. Then, in the violet forest, budding, Eucharis told me that it was spring.
─ Gush, pond, ─ Foam, roll on the bridge, and over the woods ; ─ black palls and organs, ─ lightnings and thunder, ─ rise and roll ; ─ Waters and sorrows, rise and raise again the Deluges.
For since they have dispersed, ─ oh the precious stones burying themselves, and the opened flowers! ─ it’s an ennui! and the Queen, the Sorceress who lights her coals in the pot of earth, will never want to tell us what she knows, and which we do not know.
I
이 우상(偶像)은, 검은 눈과 노란 갈기에, 부모도 궁정도 없지만, 멕시코와 플랑드르 전설보다 고귀하다. 그의 영역은, 드높은 창공과 초목의 빛으로, 선박 없는 파도들에 의해, 사나운 그리스, 슬라브, 켈트 이름이 붙여진 해안까지 뻗어 있다.
숲 가장자리에 ─ 꿈의 꽃들이 종소리 울리며, 터뜨려져, 빛난다, ─ 오렌지빛 입술의 소녀가, 풀밭에서 솟아나는 맑은 홍수 속에 무릎을 포개고 있고, 그 나신을 무지개들, 식물들, 바다가 그늘 지우고, 가로지르며, 옷 입힌다.
여인들이 바다 가까운 테라스들 위에서 선회한다. 아이처럼 거인처럼, 회녹색 거품 속 화려하게 검게 빛나는 그녀들, 해빙의 숲과 뜰의 기름진 흙 위에 곧게 선 보석들 ─ 젊은 어머니들과 순례의 눈빛 가득한 큰 자매들, 회교 왕비들, 움직임과 옷차림이 위압적인 왕녀들, 이국의 작은 여인들 그리고 잔잔히 불행한 사람들.
너무나 권태로운, “다정한 육체”와 “다정한 마음”의 시간.
II
그녀다, 장미 나무들 뒤, 죽은 소녀. ─ 운명한 젊은 엄마가 현관 층계를 내려온다 ─ 사촌의 마차가 모래밭에서 울부짖고 있다 ─ 동생이 ─ (그는 인도에 있다!) 그곳, 석양 앞, 카네이션 풀밭에 있다. ─ 정향꽃 피는 성벽 속에 곧게 매장된 노인들.
금빛 잎 무리가 장군의 집을 에워싸고 있다. 그들은 남쪽에 있다. ─ 붉은 길을 따라가면 텅 빈 주막에 다다른다. 성채는 팔려고 내놓았다. 덧창들이 떨어져 나갔다. ─ 사제가 교회의 열쇠를 가져갔을 것이다. ─ 공원 주위, 경비원 숙소들은 비어 있다. 울타리가 너무 높아서 보이는 것은 바스락거리는 나무 꼭대기들뿐이다. 하기야 저 안에는 볼 것도 없다.
풀밭을 오르면 수탉도 없고, 모루도 없는 마을에 이른다. 수문은 열려 있다. 오, 예수 수난상들과 사막의 풍차들, 섬들과 짚 더미들.
마법의 꽃들이 붕붕거리고 있었다. 비탈길들이 그를 흔들어 주었다. 전설적인 우아함을 지닌 동물들이 나다니고 있었다. 구름들이 영겁의 뜨거운 눈물들로 만들어진 높은 바다 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III
숲에는 새 한 마리가 있다. 그 새의 노래는 당신을 멈춰 세우고 얼굴을 붉히게 한다.
종소리 나지 않는 시계가 있다.
하얀 짐승들의 둥지가 있는 웅덩이가 있다.
내려가는 성당과 올라가는 호수가 있다.
벌목 숲에 버려진, 혹은 오솔길을 달려 내려가는, 리본으로 장식된 작은 마차가 있다.
숲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는 길 위에는 얼핏, 의상을 갖춘 작은 연극배우 무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배고프고 목마를 때, 당신을 쫓아내는 누군가가 있다.
IV
나는 성자, 테라스에서 기도 중이다. ─ 평화로운 동물들이 팔레스타인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방목되고 있다.
나는 어두운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학자. 나뭇가지들과 비가 서재의 십자형 유리창을 두드린다.
나는 키 작은 숲 속 큰길을 걷는 행인. 수문들 소음이 내 발걸음 소리를 덮는다. 나는 오랫동안 석양의 우울한 금빛 세탁을 바라본다.
나는 높은 바다로 사라진 부두에 버려진 아이일 것이다. 나는 어린 시종, 끝이 하늘에 닿은 작은 길을 따라간다.
오솔길들은 험하다. 언덕들은 금작화로 뒤덮인다. 공기는 움직임이 없다. 새들과 샘들은 너무 멀리 있다! 계속 나아가면, 세상의 끝일 수밖에 없다.
V
나는 결국 시멘트 선들이 도드라진, 하얗게 석회 바른 이 무덤에 세 든다 ─ 땅속 아득한 곳.
나는 탁자에 턱을 괸다. 내가 바보처럼 다시 읽는 이 신문들, 흥미 없는 이 책들을 램프가 아주 생생하게 비춘다.
나의 지하 응접실 저 위 엄청나게 멀리,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안개가 모여든다. 진흙은 붉거나 검다. 기괴한 도시, 끝없는 밤!
좀 덜 높은 곳에, 하수도가 있다. 옆에는, 지구의 두께뿐. 아마도 창공의 심연들, 불의 우물들이 있을 듯. 아마도 달들과 혜성들, 바다들과 전설들이 만나는 곳이 바로 이 도표상일 것이다.
쓰라림의 시간이 되면 나는 사파이어, 금속 공(球)들을 상상해 낸다. 나는 침묵의 거장이다. 채광창 같은 것이 둥근 천장 한쪽 구석에서 어슴푸레 밝아질 까닭이 있는가?
유년기
꿈과 회상과 현재가 혼동되는 세계를 여러 시점에서 묘사한 시다. 다섯으로 나누어진 유년기의 각 단계는 상상의 활력에 따라 한없이 역동적이기도 하고 더없이 고착적인 양상을 띠기도 한다. 제목은 기억 속 나의 유년기와 환상 속 새롭게 태어나는 세계의 유년기를 동시에 함축한다.
I
선행하는 지시 대상 없이 사용된 지시어 “이”(Cette “저”, “그”)는 랭보의 상용 기법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비전의 급격함과 생생함을 나타낸다. 모든 풍경과 존재들은 시인의 손끝에서 창조된다. 뒤섞이며 진화하는 인물과 사물들은 랭보의 종합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역동적 변화 그 자체가 형상들의 존재 이유다. 주목할 것은 혼란한 개별적 정체성이 아니라 자유로운 결합과 진화의 즐거움이다.
시공을 초월한 환상의 글쓰기, 순수한 창조의 유희 끝에는 항상 이원론적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II
화려한 환상은 환영이 되고, 죽음과 고착, 부재와 황폐의 이미지들이 횡행한다. “마법”과 “전설”의 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환상의 기억들만 고집스럽게 남아 있다.
III
모든 환상이 광활하게 펼쳐지던 무한 공간(I), 모두 죽거나 사라지고 환영만 남은 공간(II)은 시간과 움직임이 정지된 것 같은 진공 상태(III)로 이어진다. 중력과 운동의 법칙이 배제된 그곳에서는 “나”의 존재마저 지워진 듯 보인다. 하나같이 비인칭으로(Il y a, ~가 있다) 구성된 문장들은 각각 하나의 정지된 그림처럼 거울 속 허상 같은 물체들을 묘사한다.
필연적인 “쫓겨남”은 결국 IV와 V의 현실적 유폐와 종말로 이어진다.
IV
유년의 회상과, 그 기억에 대한 보상적 상상과, 그 환상에 대한 환멸이 교차되고 있다. 다양한 “나”의 정체성은 거기서 비롯된다.
V
회상과 상상의 조합 속에 광대하게 펼쳐지던 “나”의 “다양한 삶들”은 결국 현실보다 더 깊은 고립의 공간으로 귀착된다. 그러나 그 현실의 바닥은 여전히 꿈의 우주로 통한다.
환상의 유희, 밤샘의 기록 끝에 새벽빛이 밝아온다. 여전한 현실의 부정 혹은 환상의 환멸과 같은 냉소적 뉘앙스가 마지막 의문 속에 담겨 있다.
I
Cette idole, yeux noirs et crin jaune, sans parents ni cour, plus noble que la fable, mexicaine et flamande ; son domaine, azur et verdure insolents, court sur des plages nommées, par des vagues sans vaisseaux, de noms férocement grecs, slaves, celtiques.
À la lisière de la forêt ― les fleurs de rêve tintent, éclatent, éclairent, ― la fille à lèvre d’orange, les genoux croisés dans le clair déluge qui sourd des prés, nudité qu’ombrent, traversent et habillent les arcs-en-ciel, la flore, la mer.
Dames qui tournoient sur les terrasses voisines de la mer ; enfantes et géantes, superbes noires dans la mousse vert-de-gris, bijoux debout sur le sol gras des bosquets et des jardinets dégelés ― jeunes mères et grandes sœurs aux regards pleins de pèlerinages, sultanes, princesses de démarche et de costume tyranniques, petites étrangères et personnes doucement malheureuses.
Quel ennui, l’heure du ≪cher corps≫ et ≪cher cœur≫.
II
C’est elle, la petite morte, derrière les rosiers. ― La jeune maman trépassée descend le perron ― La calèche du cousin crie sur le sable ― Le petit frère ― (il est aux Indes!) là, devant le couchant, sur le pré d’œillets. ― Les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