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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출산은 새로운 우주의 탄생과도 같은 위대한 일입니다. 예비 엄마는 40주 동안 급격한 신체 변화를 겪으며 모든 순간순간이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예비 아빠 역시 아기는 건강하게 잘 크는지 걱정하고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많은 변화에 긴장하죠. 이처럼 임신은 분명 축복받고 감사해야 하는 일이지만, 기쁨과 설렘만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부부가 부모로 바뀌는 순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했고 의학적인 지식도 남들보다 많았지만, 막상 저의 아내가 임신하고 나니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평소에 가볍게 생각했던 문제도 더는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진료실에서 만난 입덧 임신부와 집에서 입덧을 겪고 있는 아내는 전혀 달랐습니다.
교과서에서 본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내가 임신으로 겪는 변화에 저도 동참해야겠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의 산부인과 지식은 아내의 임신부터 출산까지 함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비 엄마아빠는 어려움을 많이 느끼실 겁니다. 임신 출산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이기 때문이죠.
임신 출산 육아는 엄마아빠가 모두 함께하는 과정입니다. 임신 출산 과정에서 각종 검사나 시술 등 결정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의료진에게 정확한 정보를 받고, 선택하기 전에 고민할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정확히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건 다르니까요.
이 책에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임신 출산이 두려운 엄마아빠에게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임신을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각종 커뮤니티, 미디어에서 수많은 정보를 접합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등의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나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증명된 사실이나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개인의 경험, 드물게 나타나는 희귀한 사례 등의 자극적인 정보가 눈에 더 잘 띄는 법입니다. 자연스럽게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정말 어렵구나.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가 되기를 망설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러한 예비 부모들을 위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저의 남동생과 함께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산소형제TV> 채널을 개설하여 예비 엄마아빠 모두가 알아야 할 의학적인 정보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자극적 상황이나 화려한 내용보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보통의 가족이 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자 합니다.
실제 진료실에서 오갔던 질문과 답변뿐만 아니라 저희 채널 유튜브 영상에 댓글로 달린 질문에 대한 답변들도 담아 보았습니다. 나중에 임신을 하고 진료실에 가면 짧은 진료 시간에 쫓겨 질문을 못 하는 상황도 있을 겁니다. 이 책에서 미리 힌트와 팁을 많이 얻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 매체와 SNS에 등장하는 자극적인 상황과 인플루언서들이 보여 주는 화려한 모습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하여금 결혼과 임신이 감히 용기 내기 어려운 영역이 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순간도 있지만, 그 안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함은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습니다.
이 책이 더 많은 예비 엄마아빠가 임신 중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육아 준비도 함께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내뿐만 아니라 남편도 용기 내어 함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임신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신 분을 응원하고 축하하는 마음이 이 책으로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민이와 호의 아빠,
이재일
핵심 미리보기!
35세가 넘어가면 난모세포에 이상이 생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건강 관리를 잘 한다면 건강한 아기를 만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2022년 대한민국은 1 미만의 출산율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2023년 0.72를 지나 출산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1 미만의 출산율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이지만, 출생 통계 자료에서는 흥미로운 결과가 많았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저의 눈길을 끈 숫자는 ‘평균 출산 연령’이었습니다.
2023년에 분만한 산모 나이의 평균을 계산해 보니 33.6세였고, 35세 이상 산모의 비중은 36.3퍼센트나 차지했습니다. 2012년과 비교해 보면 당시 평균 출산 연령이 31.6세로 10년 만에 2세가 늘었고, 35세 이상의 산모는 18.7퍼센트에서 거의 두 배가 되었습니다. OECD 국가의 평균 출산 연령이 30세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출산 계획을 굉장히 늦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혼인 연령이 늦춰지면서 자연스럽게 출산 연령이 높아진 걸로 보입니다.
출산 연령은 계속 높아지고 인간의 기대수명도 길어지는데, 고령 임신의 기준은 35세에서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자는 매일같이 수천만 개 이상의 정자를 만들어 내지만, 여성은 평생 사용할 난자를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다 만들어서 간직한 채로 태어납니다. 100만~200만 개의 난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났다가 사춘기 때까지 30만 개 정도만 남기고 소멸됩니다. 평생 동안 400개 정도만 난자로 성숙되어 배란이 되고, 폐경이 되기 10~15년 전부터 난모세포의 소멸 속도는 급격히 빨라집니다.
난자는 배란되기 전까지 난모세포의 형태로 난소에 저장되어 있는데, 난모세포는 세포 분열이 중지된 ‘휴면 상태’입니다. 휴면 중인 난모세포는 여성이 나이가 들어가며 생기는 염색체 이상을 스스로 복구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나이가 35세가 넘어가면 난모세포에 이상이 증가해 다운증후군 같은 염색체 관련 기형 발생률이 높아지고 자연 유산도 함께 증가합니다. 또한 폐경 나이인 50세에서 10~15년 전인 35세 정도부터 난모세포가 급격히 줄어들어 임신 성공률에도 영향이 생깁니다.
사실 35세 이후에 임신 성공률이 감소하는 것보다도 임신 관련 합병증과 사망률이 증가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임신 성공률은 떨어지더라도 난임 치료로 극복할 수 있지만, 임신 관련 합병증은 예방과 치료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표를 함께 살펴볼까요? 35세 이후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 조산, 자궁 내 성장 지연과 같은 임신 관련 합병증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그래서 고령 산모는 고위험 산모로 분류해서 더 주의 깊게 진료하고,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합니다.
분만 나이에 따른 임신 합병증 발생률
반대로 임신부의 나이가 어릴수록 건강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청소년기에 임신을 하면 20~35세 사이의 임신부보다 빈혈, 조산, 자간전증이 더 많이 생깁니다. 또한 병원에 잘 방문하지 않아 관리가 안 되기 때문에 이러한 합병증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평소 건강 관리를 잘한 분들은 나이에 따른 임신 관련 합병증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임신 전부터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단으로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건강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아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 건강한 임신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임신 후에는 산전 진찰을 빼놓지 않고 잘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임신 관련 합병증은 대부분 증상 없이 찾아옵니다. 정기적인 산전 진찰을 통해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최대한 빨리 발견하는 게 중요합니다. 임신 중 체중 관리가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노력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고령 임신의 기준은 35세가 되었고, 미래에도 이 기준이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35세가 넘었다고 임신을 못 하거나 위험하니 임신하지 말아야 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임신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난임 클리닉의 도움을 받고, 임신 전부터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임신 후 산전 진찰을 잘 받는다면 안전한 임신 출산이 가능합니다.
핵심 미리보기!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떠 병원에 가도 아기집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임신 5주 정도는 되어야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년간의 즐거운 신혼 생활을 보내고 2세를 계획할 때만 하더라도 임신 시도가 어려운 과정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제 나이는 30세였고, 3살 연하인 아내는 남들보다 결혼을 빨리한 편이어서 자녀 계획도 일찍 했기에 자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임신 시도 기간이 1년 가까이 길어지면서 서로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이고 있었나 봅니다. 처음 몇 달은 임신 테스트기 검사를 하러 가면 내심 기대를 했다가, 6개월이 넘어가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임신 시도가 1년이 다 되어 갈 때 즈음, 난임 클리닉 진료를 예약해 두고 기분 전환도 할 겸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가고 한두 달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휴식하는 동안 긴장이 풀렸던 덕분인지 정말 감사하게도 첫째 아이가 저희에게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잊히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그때 검사한 테스트기를 여전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임신이 되기만을 노력하고 기다리는 분들에게 임신 테스트기 검사 날은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두 줄을 확인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쁘고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고대하던 순간을 마주하면 최대한 빨리 임신을 확인하고 싶은 게 당연하죠.
두 줄을 확인하자마자 가까운 산부인과를 찾아서 진료를 잡았더니, “초음파상에 아기집이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1~2주 뒤에 다시 오셔서 검사해 보세요”라는 설명을 들은 분이 굉장히 많으시죠? 이때부터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하루하루 정말 길게 느껴지고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까지 떠오릅니다.
임신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초음파로 아기집이 자궁 안에 착상된 모습을 확인해야 합니다. 소변으로 검사하는 임신 테스트기만으로는 임신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임신 테스트기 검사를 하고 언제 병원에 가야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평소 생리 주기가 28일로 규칙적이었던 분이 임신이 된 사례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래 나온 달력을 참고해 임신 여부를 확인해 보세요.
생리 주기와 임신 주수를 계산할 때 마지막 생리를 시작한 날이 기준이 됩니다. 1월 1일에 마지막 생리를 시작했다고 하면, 이날을 기준으로 14~15일 되는 날(1월 15일)을 배란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임신이 되었다면 배란일 당일(1월 15일)에 나팔관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그렇게 수정된 수정란은 자궁 내막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여 배란일로부터 7일 정도 뒤(1월 22일)에 자궁 내막에 착상됩니다.
이때의 수정란은 현미경으로 봐야 보일 정도로 크기가 매우 작아 초음파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초음파로 확인이 가능한 1센티미터 정도의 크기가 되려면 착상이 되고 2주 정도는(2월 5일) 지나야 합니다. 이때가 바로 임신 5주 차입니다.
생리 주수로 임신 여부 확인하기
이렇듯 임신 5주 차는 되어야 병원에서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임신 테스트기는 매우 민감하죠. 지금 막 착상해서 초음파로 아기집이 보이지 않을 때도 두 줄로 표시되기 때문에 많은 분이 병원에 너무 일찍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1~2주 정도 불안하고 초조한 시기를 보내게 되죠.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신 테스트기 검사 자체를 조금 천천히 해 보기를 추천합니다.
생리 예정일 1주일 뒤에도 생리가 없다면 그때(이때가 바로 임신 5주 차입니다) 테스트기를 해 보고 두 줄을 확인한 다음 병원에 가시면 그날 아기집을 확인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하지만 만약 평소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 21일보다 짧거나 35일보다 길면 이 방법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리 주기가 비교적 규칙적이신 분들은 배란이 되고 14일 뒤에 그 다음 생리가 시작한다고 계산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생리 주기가 32일로 규칙적인 분은 마지막 생리 시작일로부터 18일이 지난 날이 배란 예정일로 예측됩니다.
임신 테스트기를 여러 개 구매해 배란일 이후부터 거의 매일같이 검사하고 각종 커뮤니티나 SNS에 올리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불안하고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임신 테스트기를 자주 한다고 해서 결과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과가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임신 5주 차 정도에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하면 보통 2~3주 뒤에 다시 병원에 와야 합니다. 임신 8주 정도에 보는 초음파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기 심장이 잘 뛰는지 확인도 해야겠지만, 이때의 아기 크기인 ‘머리 엉덩 길이’로 정확한 임신 주수를 계산해서 분만 예정일을 알 수 있습니다.
생리 주기로 계산하면 사람마다 주기도 다르고, 그때그때 생리 주기가 다를 수 있어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던 중 수정한 후부터 임신 8주 정도까지는 태아의 성장 속도가 대부분 일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때 측정한 태아의 크기를 알면 평소 생리가 불규칙했더라도 수정일(배란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 임신 주수 확인은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임신 주수와 실제 주수의 차이가 크면 기형아 검사 같은 중요한 검사 결과가 잘못 나올 수 있고, 태아가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는지 평가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정리하자면, 임신 5주 정도는 되어야 초음파에서 아기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임신 테스트기는 생리 예정일에서 일주일만 더 참았다가 그때까지 생리가 없으면 해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만약 테스트기를 더 일찍 사용했다면 임신 5주 정도로 예상되는 날에 산부인과에 가면 됩니다.
초음파로 임신이 확인되지 않으면 검사는 비급여로 처방됩니다. 임신이 확인된 이후에 시행하는 초음파는 급여가 되긴 하지만 횟수 제한이 있습니다. 임신 테스트기, 너무 빨리 하지도 너무 많이 하지도 마세요. 여러분의 돈과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핵심 미리보기!
임신 소식은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알리는 게 좋습니다. 너무 빠르게 알렸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하는 개입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임신을 계획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에게 임신이 확인되는 순간은 정말 기쁘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게 당연하죠. 특히 난임 치료를 받는 분들에게는 그동안의 노력의 결실을 보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런 순간들을 부모님, 가족들과 나누는 감동적인 영상들을 SNS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제 아버지 역시 다른 아버지들과 비슷하게 평소 감정 표현을 잘 안 하시는 분인데, 첫 손주 소식을 듣고 환하게 기뻐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임밍아웃’ 영상을 보면 코끝이 자동적으로 찡해집니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의 직업병이 여기서도 발병합니다. 특히나 임신 테스트기만 한 생태에서 부모님과 기쁨을 나누는 영상을 보면 걱정이 앞서죠. 왜 그럴까요? 이제부터 임밍아웃을 너무 빨리 하면 걱정되는 것들과 언제 임신 소식을 알리면 가장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임밍아웃’을 너무 빨리 하면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임신 초기에 유산이 꽤 흔하다는 사실입니다. 임신 20주 이전에 태아가 사망한 경우를 유산이라고 진단하고, 그중 80퍼센트가 임신 12주 이전에 발생합니다. ‘자연 유산’은 전체 임신 중 15퍼센트 정도로 전체 가임기 여성 4명 중 1명은 경험할 정도로 생각보다 흔합니다.
특히 임신하는 연령 자체가 올라가면 자연 유산도 많아지는데, 40세 이상의 여성 중 50퍼센트 정도가 유산을 합니다. 임신 연령이 높아질수록 임신 성공률이 낮아지는 데다가 유산도 많이 하니 그 상실감은 더욱 깊을 겁니다. 힘들게 임신에 성공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기쁨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정말 이해하지만, 조금만 참고 임신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까지 기다리면 나중에 불편한 상황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임신 소식을 주변에 알리면 “이거 해라, 저건 하지 마라”, “이거 먹어라, 그건 먹지 마라”라는 잔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임밍아웃을 조금이라도 천천히 하면 이런 잔소리를 상대적으로 덜 들을 수 있겠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만,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면 들을 때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습니다.
산모의 문제가 아닌 상황에서도 유산이 되거나 조그만 문제라도 생기면 산모에게 그 탓을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자 중 한 분은 유산 후 “내가 그때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때 그걸 먹어서 그렇다. 홑몸도 아닌데 조심했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며 슬퍼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자책도 많이 하고 있을 당사자가 이런 말까지 들으면 상처가 더욱 깊어지겠죠.
유산은 절대 임신부의 잘못이 아닙니다. 특정 음식을 먹었거나, 출근해서 일했다거나, 조금 무리를 했다고 유산이 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여성은 회사에 언제 임신 사실을 말하면 좋을지도 고민일 겁니다. 다니는 직장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근무 형태도 다르므로 상황에 맞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임신 친화적인 직장이라면 언제든지 임신 소식을 알려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수의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아기를 가지려면 순서를 지켜야 하고, 순서가 오지 않으면 원치 않는 피임을 해야 하는 ‘임신 순번제’가 암묵적으로 행해져 문제가 되었죠. 이런 분위기에서는 ‘임밍아웃’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또한 일하는 환경이나 업종이 임신부에게 적합하지 않아서 임신 사실을 알리면 인사상 불이익이 생길 수 있어서 임밍아웃을 망설이기도 합니다. 만약 근무 환경이 임신에 해롭다면, 예를 들어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는 방사선사나 유해 물질이나 감염원을 다루는 직종, 고강도의 신체 활동을 필요로 하는 등의 환경이라면 임신 극초기라도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과 먼저 상의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소견서 등의 서류를 지참해 회사와 상의하여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업무 변경 등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임신 확인서는 임신 테스트기나 혈액 검사만으로는 발급이 어렵고 초음파로 자궁 안에 아기집이 착상된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몇 가지 위해 요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업무 환경은 임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임신 5~6주 정도 아기집만 보이기 시작할 때 알고 있던 주수와 분만 예정일은 나중에 바뀔 수 있고, 임신 8주 정도가 되면 정확한 주수와 분만 예정일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 심장 뛰는 소리를 확인하고 나면 자연 유산의 가능성이 굉장히 많이 줄어듭니다. 임신 10주가 넘어가면 자연 유산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죠. 게다가 이 시기에 초음파 사진은 정말 귀엽습니다. 젤리 곰처럼 생겼고, 꿈틀거리기도 하고 심장도 씩씩하게 잘 뛰죠.
이런 것들을 종합해 봤을 때 임신 10주 전후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임밍아웃 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저 역시도 이 시기에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알렸습니다.
핵심 미리보기!
약물로 인한 기형아 발생은 전체 기형의 0.1퍼센트 정도입니다. 약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고통을 참을 필요는 없습니다. 적절한 약물을 알맞은 용량으로 복용해 엄마와 아이 모두의 건강을 지키세요.
진료 중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이 약 먹어도 되나요?”, “임신인 줄 모르고 감기약 먹었는데 괜찮나요?”입니다.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에서도 약물 관련 상담 댓글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입덧이 심하더라도 처방받은 입덧 약조차도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아마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모성애에서 비롯된 걱정일 겁니다. 임신 중이니 모든 것을 아기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파도 참고, 처방받은 약도 복용하지 않고, 기저 질환이 있어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약도 임의로 중단하는 때도 있습니다. 아기를 위해서 엄마가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아마 주위에 자연 유산이나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기를 본 경험 때문이겠죠.
이런 어려움을 겪은 분들은 문제가 생긴 원인이 본인이 먹은 음식이나 약물, 특정 행동에 있다고 자책하시며 평생 짐으로 안고 가십니다. 자연 유산이나 기형은 임신부의 잘못인 경우가 거의 없다고 누누이 말씀드려도 죄책감을 씻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약물로 인한 기형이 생기는 경우는 전체 기형의 1퍼센트 미만에서만 발생합니다.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는 데다가 이 확률 안에는 마약, 중금속, 알코올, 담배 등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가 평소에 복용하는 약이 태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임신 중 약 이름을 검색해 보니 임신부에게 금기라거나 주의해야 한다고 써 있어 복용을 망설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산부인과에서 처방받은 약인데도 말이죠.
약통에 적힌 약물에 대한 설명은 약을 만든 제약회사에서 작성합니다. 소아나 임신부가 약물을 복용하고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면 제약회사는 막대한 피해를 보기 때문에 임신부와 소아의 약 복용 주의 사항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적습니다. 이는 임신부가 약을 복용했을 때 태아에 미치는 영향이나 태아에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확인하기 어려운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임신부를 상대로 약물 임상 시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임신 중 안정성을 연구한 결과가 거의 없죠. 약물 부작용을 정확하게 알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해야 하는데, 윤리적인 이유로 임신부는 임상 시험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모든 의사는 약을 처방할 때 약을 먹어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부작용, 복용하지 않아서 생길 수 있는 문제 사이에서 고민하고 이를 환자에게 설명한 뒤 처방합니다. 임신부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오랫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안정성이 입증된 약이죠.
의사는 약을 복용하지 않을 때 임신부와 태아에게 위해가 생길 가능성이 약을 복용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보다 클 때 약을 처방합니다. 정리하자면 약을 먹는 게 먹지 않는 것보다 임신부와 태아 모두에게 안전하고 유리합니다. 적절한 약물을 알맞은 용량으로 복용한다면 건강한 임신 출산을 할 수 있습니다.
산부인과라는 학문은 배 속의 태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모의 몸부터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을 도와드리는 사람이 저 같은 산부인과 의사이고, 산부인과 의사가 처방하고 먹어도 괜찮다고 하는 약들은 믿고 잘 먹는 게 아이에게도 좋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임신 중 먹어도 되는 약과 먹지 말아야 할 약은 무엇일까요? 진료실에서 자주 상담하는 약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배란기뿐만 아니라 배아가 착상되면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기초 체온이 올라갑니다. 예민하신 분은 열이 난다고 느끼고 몸살 증상을 호소합니다. 실제로 체온을 측정하면 38도가 넘지 않는 약간의 미열이 있기도 하죠. 이때 임신이 된 줄 모르고 감기 초기 증상이라고 생각해 감기약이나 해열제를 복용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처방받아 복용하는 감기약은 안전합니다. 감기는 임신 중이라도 증상에 따라서 치료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임신 초기에 고열이 발생하면 아기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해열제를 드시도록 권해 드립니다. 기침을 심하게 하면 복통이나 자궁 수축이 생기기도 하고, 수면을 방해할 정도로 기침이 심하다면 자기 전이라도 약을 꼭 복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타이레놀이 임신 중 복용해도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는 가장 친근한 해열진통제일 겁니다.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을 사용하면 태어난 아이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와 연관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어 떠들썩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연구 과정에 한계점이 분명히 있고, 단기간 복용한 경우에는 상관관계가 없으며 29일 이상 장기간으로 복용할 때 아이의 ADHD 발생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연구입니다.
2024년에 이 논문의 내용을 반박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습니다.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은 태어날 아기에 ADHD나 자폐와 연관이 없다는 내용이죠. 따라서 태아가 고열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단기간 복용하는 게 ‘확실하게 유리’합니다. 게다가 임신 중에 통증이나 고열에 복용할 만한 약이 아세트아미노펜 말고는 딱히 없기 때문에 죄책감을 갖지 말고 복용하길 바랍니다.
아세트아미노펜 이외에 흔하게 접하는 해열제로는 이부프로펜과 같은 비(非)스테로이드 소염제가 있습니다. 비스테로이드 소염제는 임신 중기 이후 사용 시 ‘양수 과소증’과 ‘태아의 동맥관 폐쇄’를 유발할 수 있어 임신 20주 이후에는 복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임신 초기에 한두 번 복용하는 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므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특히 파스는 일반적으로 비스테로이드 소염제가 주성분이기 때문에 임신 중 파스 사용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습니다.
약국에서 처방 없이 구입 가능한 종합감기약 역시 복용해도 안전합니다. 하지만 복용할 필요 없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며, 각 성분의 용량이 적어 약의 효과가 적을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카페인이나 비스테로이드 소염제가 들어 있을 수 있으니 복용 전 성분을 꼭 확인하세요.
임신을 하면 평소보다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분들은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이 오면 코가 가장 먼저 반응하죠. 마스크 착용이 알레르기 비염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의 원인인 꽃가루, 각종 동물의 털 등을 마스크가 효과적으로 막아 줍니다. 집 먼지 진드기나 곰팡이도 알레르기 주요 원인으로, 집 안의 소파나 카페트 등의 먼지가 많은 침구류를 자주 세탁하거나 소독하세요.
그래도 증상이 심하다면 약물 치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항히스타민제는 임신 중 복용해도 안전하고, 코에 뿌리는 스테로이드 역시 전신적인 영향이 없어 추천하는 약제 중 하나입니다. 증상이 너무 심할 때는 저용량의 경구 스테로이드를 단기간 투약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알레르기 결막염이 있을 때 사용하는 안약 역시 전신으로 흡수되는 양이 굉장히 적어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어 안전하게 사용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제산제는 복용해도 괜찮습니다. 약국에서 구입 가능한 현탁액 형태의 약들도 복용해도 됩니다. 증상이 심하면 프로톤펌프억제제와 같은 위산 분비를 직접 억제하는 약을 처방받으면 증상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임신 중에 피부가 가려운 분들이 정말 많죠. 중기 이후 아기가 성장하면서 피부가 늘어나는데 날씨까지 건조하면 증상이 심해집니다. 평소 보습을 잘 하는 게 중요하고, 보습으로도 효과가 없다면 스테로이드 로션이나 연고를 처방받아서 적절히 사용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평소 아토피가 심한 경우엔 저용량의 경구 스테로이드를 단기간 투약할 수 있습니다.
여드름 약 중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이 포함된 약은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이소트레티노인은 태아 기형을 유발하는 약으로, 복용 전 한 달부터 복용 후 한 달까지 반드시 피임을 해야 합니다. 복용 전 임신 테스트기로 미리 확인해 보세요. 복용 중 임신이 되었다면 전문가와 상의가 필요합니다. 건선 치료제인 아시트레틴도 태아 기형 유발 약물입니다. 아시트레틴은 복용 후 3년 동안 피임이 필요합니다.
진료실뿐만 아니라 주변 의사들에게서도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피나스테리드나 두타스테리드는 전립선비대증과 남성형탈모증 치료에 사용되는 성분입니다. 이 성분은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겐을 억제하기 때문에 임신 중 노출이 되면 태아 기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성분은 피부로도 흡수가 되기 때문에 접촉도 피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약물 역시 과도하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남성의 탈모 약 복용이 난임과 태아 기형을 유발했다는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고, 기형 발생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내용입니다. 또한 약을 한두 번 만져서 피부로 흡수되는 정도로는 태아에게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탈모 약이 정액으로도 배출되기 때문에 임신을 준비할 때부터 약 복용을 중단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액으로 배출되기는 하지만 용량이 매우 적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지나친 우려로 탈모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탈모 약 복용이 성욕 감소, 정자 수 감소를 일으킨다고 생각해 자의로 복용을 중단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는 탈모 약이 성 기능을 낮출 수 있다는 편견이 심리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정자 수에 관한 연구는 탈모 약을 먹기 시작하고 4개월까지 감소했다가 8개월 정도부터 다시 정상으로 회복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장기간 복용을 유지하면 가임력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판단대로 중단과 복용을 반복하면 오히려 단기 복용이 되기 때문에 정자 수가 감소하고 탈모 치료 효과 또한 떨어집니다.
임신 중 기력 회복, 입덧 완화 등을 목적으로 한약을 먹거나 선물로 받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평소 한약을 즐겨 먹던 분들도 임신한 후에는 계속 먹어도 될지 고민하시죠. 조심스럽지만 임신 중 한약은 먹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약은 정확한 성분 표시가 되어 있지 않고, 성분이 아닌 약초의 용량 정도만 적혀 있습니다. 약초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