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주(깃털쌤)
11년 차 초등학교 교사
전국교사연극모임 연수 지박령
경북지역 교육연극모임 ‘소나키워’ 회장
교사영상제작단 ‘뻘짓’ 단원
‘한없이 깃털 같은 아이.’ 대학시절 교수님이 한마디로 나를 정의해 주신 말이다. 나는 참 가벼운 사람이다. 그래서 혼자 팔랑팔랑 떠다녔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교사가 된 것도, 교사로서 학교 밖의 여러 사람을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쓰게 된 것 역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이끌어 주었기에 가능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깃털은 따뜻한 이불이 되고 날개가 되어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교실에서도 학교에서도 ‘함께’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경험, 예쁨 받는 경험을 주고 싶고, 나 역시 사랑받고 예쁨 받는 교사이고 싶다. 교육연극 속에 이런 생각들을 담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깃털쌤의 이야기가 있는
교육연극 수업
초판 1쇄 발행 2022년 1월 15일
전자책 발행 2023년 11월 1일
지은이 박병주(깃털쌤)
발행인 김병주
COO 이기택 CMO 임종훈 뉴비즈팀 백헌탁, 이문주, 김태선, 백설
행복한연수원 배희은, 박세원, 이보름, 반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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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이하영, 최진영
책임편집 권은경
디자인 블랙페퍼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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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ISBN 979-11-6425-146-9 (05370)
가격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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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23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추천의 말
초등학교에 연극 단원이 도입되었습니다. 어린이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하여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연극 경험이 없어 부담스러운 단원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심지어 연극 단원이 두려운 교사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연극수업을 위한 놀이에서부터 드라마 기법까지 연극 초보 선생님들도 용기 내서 수업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길을 안내합니다.
《깃털쌤의 이야기가 있는 교육연극 수업》은 전문 연극인이 ‘연극은 이렇게 지도하면 된다’라는 책이 아닙니다. ‘나도 연극은 어려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즐거워졌어요.’라는 고백이 가득한 책입니다. 깃털쌤이 전하는 이야기는 잘하든 못하든 그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고민과 웃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요.
깃털쌤 반 급훈은 ‘용감하게 틀리자’라고 해요. 틀릴까 봐 주춤거리기보다 거침없이 시작하는 연극 수업. 그 수업을 살짝 엿보는 재미가 있어요. 연극이 교과 수업뿐만 아니라 생활교육, 학급운영에도 어떻게 활용되는지 깃털쌤 교실을 같이 살짝 들여다보실래요? ‘어? 이렇게도 수업을?’ 하다가 ‘나도 한번 해 볼까?’라고 용기를 내게 되실 겁니다.
- 심진규(전국교사연극모임 대표)
박병주 선생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옆 반에서, 공부 모임에서 2000일의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2000일 기념 양말이라도 하나 맞출 걸 하는 후회가 스칩니다). 그는 교육연극에 진심입니다. 깃털 같은 그가 교육연극에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깊은 진심을 보이는 것일까 의아한 마음이 든 적도 있습니다. 교육연극 수업을 하고 연극 동아리를 운영하고 전문적학습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열정적인 모습에 늘 놀랍니다.
저도 그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뱁새 다리 찢어가며 부지런히 따라갔습니다. 그와 함께하며 다양한 놀이와 기법들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다리 좀 찢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박병주 선생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내 가랑이는 찢어져 아픈데 네놈은 어찌 그리 깃털처럼 날아다니는 것이냐?” 그가 말했습니다. “네놈이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고 남 흉내 내기에 급급하니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고 어찌 배기겠느냐?” 그의 호통에 무릎을 탁! 치고 돌아서는데 교실로 가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는 수업 시간에 자신과 아이들의 삶을 녹여 내는 교육연극을 합니다. 교사인 자신부터 즐거운 수업을 합니다. 저는 좋은 평가를 받는 수업, 그럴듯하게 보이는 수업을 만들려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하지만 박병주 선생과 함께하는 동안 이러한 껍데기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교육연극 수업을 하는 우리 아이들도 점점 편안한 모습으로 큰 웃음소리를 한입 가득 머금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이들 자체를 목적으로 두는 수업, 교사가 즐거워 행복한 수업을 하고 싶다면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저는 오늘도 깃털쌤의 교육연극을, 교실을 두 눈 가득 꽉꽉 눌러 담습니다.
- 이동민(구미 봉곡초 교사)
나는 연극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연극 수업은 우리의 상상력도 길러 줄 수도 있고 재미도 줄 수 있고 연극도 배울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고 이외에 더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하지만 나는 자신감이 없어서 연극을 할 때 조금 힘들다. 내 문제이긴 하지만 힘들고 부끄럽다. 그리고 나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조용하게만 지냈다. 3~4학년 2년 동안은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았지만 5학년 1학기 때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아이들이 부러워졌다. 그래도 6학년 때 갑자기 말을 많이 하고 확 바뀌기는 어색하니까 중학교에 처음 등교하면 먼저 말도 걸고 인사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연극 수업으로 자신감이 좀더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극 수업이 내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었다. 그래서 연극 수업이 좋고 연극 수업을 하게 해 주신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 이채빈(2021 김천 동부초 5학년 3반)
선생님이 “연극 수업하자~!”라고 소리치면 우리는 “우와!”라며 텐션이 쭉쭉 올라간다. 제일 처음에 연극 수업을 했을 때에는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쭈뼛쭈뼛하고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다. 나는 선생님과 연극 수업을 할 때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소리도 마음껏 지르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 연극 수업이 너무 재미있고 좋다. 우리 반 친구들은 연극 수업을 할 때는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선생님의 말을 평소보다 더 잘 듣는다. 우리는 연극 수업이 너무 좋아서 공부 말고 연극 수업을 하자고 할 때도 있다.
내가 해 본 연극 수업 중 ‘틀려도 괜찮아’라는 수업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 수업은 답을 알아도 일부러 틀려야 하는 수업이다. 답을 틀리면 민망할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일부러 틀려 보는 게 더 재밌고 자신감이 넘친다. 우리는 그 연극 수업을 하고 나서 발표도 더 많이 하고 자신감도 더 생겼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맞춰서 연극 수업을 해 주니 너무 좋았다. 우리는 이래서 연극 수업과 선생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 전유리(2021 김천 동부초 5학년 3반)
교육연극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쓰는 3년이란 시간 동안 두 명의 여자친구를 떠나보냈다. 경험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한두 페이지를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데이트를 하면 데이트에 집중해야 되는데 자꾸 원고를 써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겨 집중하지 못했다. 원고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녀들을 떠나보내며 이렇게 된 이상 원고를 마무리하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생겼고, 마침내 나의 교육연극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교육연극을 막상 시작하고 나니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움만큼이나 참 궁금하고 답답했다.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할지 몰라 답답했고,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연극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물어볼 데도 없었기에 혼자 투박하게 해 나가다가 교육연극모임 ‘소나키워’를 만들었다. 다들 처음이었지만 그렇게 함께하다 보니 점점 우리만의 스타일이 생겼다. 또한 전국교사연극모임에서 연수를 접한 뒤부터는 방학 때마다 지박령처럼 다니면서 알게 된 좋은 멘토들 덕분에 투박했던 것들이 조금씩 다듬어지고 확장되어 나갈 수 있었다.
교육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 신경 쓰였던 것 중 하나가 ‘연극 경험이 없는 나’였다. 교육연극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연극 동아리 출신이거나 연극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연극 경험이 없다는 것이 아킬레스건처럼 느껴졌다. 동아리 출신들은 교육연극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았고, 나는 절대로 모를 영역의 그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뒤늦게 일반인 극단에 들어가 보기도 했고 교육연극과 관련된 연수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연극 동아리 출신에게도 교육연극은 생소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저 ‘연극’을 했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기에 자연스럽게 교육연극을 하고 있었다. 물론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콤플렉스를 느낄 만큼 연극 경험이 교육연극 수업을 하는 데 대단한 조건은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나의 자격지심이었을 뿐이었다.
이제 나의 이런 ‘근본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근본이 없는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나 나처럼 연극 경험이 없어 교육연극에 부담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 괜찮으니까 함께하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허승환 선생님께서 “수업에 전문가가 어디 있겠냐, 나는 아직도 여전히 수업이 참 어렵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참 공감 가는 말이다. 이 책은 교육연극을 막 시작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생기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썼다. 그렇다고 이 책은 방법서는 아니다. 그저 아이들을 만나 머리가 하얗게 되어 어질해질 정도로 실패한 수업을 하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갈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수업을 하기도 했던 나의 교육연극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부족한 경험과 얕은 지식으로 책을 출판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부담감이 크다. 하지만 그때의 나처럼 교육연극이 막연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과 용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또한 자기만의 교육연극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더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세상에 이 책을 내어 본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감사드릴 분들이 참 많다. 먼저 내 교육연극의 뿌리인 전국교사연극모임(전교연)에 감사하다. 전교연의 연수와 사람들이 없었다면 결코 이 책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교연의 연수는 항상 여행 가는 기분으로 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배운 내용들과 만난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특별한 의미로 와닿는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눈빛 속에서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이 있었기에 한 글자 한 글자 담아낼 수 있었다. 경북 1급 정교사 연수에서 교육연극을 처음 만나게 해 주시고 전국교사연극모임으로 이끌어 주신 이미연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경북지역에서 7년간 좌충우돌하면서 못 미더운 회장을 보살피며 함께 성장해 준 교육연극 모임 ‘소나키워’ 친구들, 이들이 있었기에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소처럼 겁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나’누며 서로를 ‘키워’ 나가다 보니 어느덧 소가 이만큼이나 컸다. 무엇보다 항상 따뜻하게 서로를 맞이해 주는 그대들을 보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매달 한 번씩 모여 함께 교육연극 수업을 짜며 아낌없는 조언을 나눈 ‘놀러와 놀라와’ 멤버들과 변채우 선생님께도 감사하다. 변채우 선생님의 조언을 통해 아름다운 수업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변채우 선생님처럼 재미있고 의미 있고 아름다운 교육연극 수업을 만들고 싶다.
연극놀이 지도자 연수 과정을 들으며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준 사다리 연극놀이 연구소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수업을 짜는 방법이나 표현의 영역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성장교실에서 만나게 된 인연으로 교육연극을 하는 후배라고 애정 어린 시선을 가져 주시고 새로운 형태의 연극놀이를 보여주시며 영감을 주셨던 서준호 선생님께 감사하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얼른 장가보내서 손주를 보고 싶어 하시지만 자식과도 같은 책을 낳았습니다. 이걸로 어떻게 안 될까요? 그리고 자식과도 같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책 출간을 제안해 준 현조, 출판을 진행해 주신 이하영 주간님께 감사드린다.
내 교직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사람, 교사로서 교실 밖의 세상을 만나게 해 준 동민이. 너와 함께하고 있는 모든 시간에 감사함을 느껴.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진행하는 교육연극 수업에 항상 재미있게 참여해 주고 좋아해 주는, 용감하게 틀리는 우리 용트리 친구들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아, 그리고 그녀들에게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깃털쌤 박병주
부끄럽지만 나는 수동적이면서 오만한 교사였다. 수업 준비는 교사 커뮤니티에서 유용한 PPT 자료를 다운로드해 교실 상황과 나의 입맛에 맞게 수정해서 다시 사용하는 정도였다. 이만큼만 하고도 내가 수업을 꽤나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인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그마저도 나태해져 아침에 급하게 자료를 다운로드해 그날 그날 수업을 했다. 그러다가 우리 반과 다른 상황이 나오면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했고, 아침에 자료가 올라오지 않으면 자료가 업로드될 때까지 진도도 멈췄다. 자료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면서 자료가 없으니 수업을 못 하는 상황까지 다다른 것이다. 자괴감이 들었다.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나 스스로가 수업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맨손 수업을 해 보자.’
그렇게 수업자로서의 역량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찰나에 교육연극 연수를 듣게 되었다.
‘아, 수업 시간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처음 교육연극 연수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수업을 이렇게도 짤 수 있다니! 하늘이 세상의 끝인 줄 알았는데 하늘 너머 우주라는 신세계를 만난 느낌이었다. 특히나 드라마를 활용한 수업이라는 별을 발견한 뒤로는 너무너무 이 별에 가 보고 싶었다.
신세계를 알게 되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몰랐다. 그렇다고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동경하며 바라보기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우주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주선을 제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제작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겼고, 기껏 우주에 진입했더니 길을 잃고 우주를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야기는 교육연극이라는 별로 향하기 위해 설계했던 우주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도 교육연극이
처음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교육연극
“연극이요? 해 본 적이 없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교육연극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소리이다. 연극 공연에 배우, 스태프, 관객이라는 세 가지의 형태로 참여한다. 하지만 ‘교육연극을 같이 하자’라는 말을 했을 때 무대 위에서 배우가 되어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만 떠올린다. 때문에 자기가 연기를 잘해야 할 것만 같아 손사래를 친다.
분명히 말하지만 교육연극 수업은 교사가 배우가 되는 수업이 아니다. 오히려 교사는 판을 짜고 배우들을 무대에 올리는 감독의 역할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낯섦이 교육연극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인다.
나 역시 무대 경험 자체가 아예 없었다. 연극이라는 것에서 나의 역할은 수많은 관객 중 한 명일 뿐이었고 무대는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2012년, 연수에서 교육연극을 처음 접하고는 충격에 빠졌다. 우리 모둠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그날의 순간을 정지장면으로 표현했다. 모둠원들은 어색해하면서도 강사님의 이끎에 따라 즉흥적으로 대사를 한 마디씩 하는데, 그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재미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 방법이 있었다니!’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경험이 참 흥미롭고 신기했다.
교육연극, 시작은 했지만···
나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이걸 교실에 가져가면 아이들은 얼마나 좋아할까? 연수에서 배운 많은 것들 중에서 교육연극만큼은 꼭 적용해 봐야겠다는 다짐과 설레는 마음으로 개학을 기다렸다. 하지만 행복한 설렘은 개학과 동시에 두 가지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어려움은 ‘어떻게 하지?’였다. 교원 연수에서 연수생들은 최고의 학생이다. 그렇기에 강사가 진행하는 여러 가지 실습은 수월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연수생이 아니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이들은 나의 의도와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었고, 활동에 대한 시간 안배 역시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아이들끼리 의견 충돌로 다투기라도 하는 날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두 번째 어려움은 ‘다음에 뭐 하지?’였다. 어찌어찌 연수에서 배웠던 정지장면 만들기는 몇 번 해 보았더니 이제 익숙해졌다. 하지만 내가 아는 활동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아이들도 처음 할 때만큼의 흥미가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다음’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어디 물어볼 데도 딱히 없었다.(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장면 만들기를 단순한 활동으로만 사용하면 교사도 아이들도 흥미가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장면 만들기를 통해 아이들이 상상하는 것들을 표현하게 해 주면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어려움에 힘입어(?) ‘전국교사연극모임’에서 운영하는 연수에 매번 참여하면서 동시에 지역 모임인 ‘소나키워’를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배우고 교실에 적용했다가 실패하면 또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하면서 좌충우돌하다 보니 조금씩 노하우도 생기고 나만의 방식과 스타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준선이 되는 사람
고백하자면 나는 굉장히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멋쩍은 그런 70점짜리 재능. 누군가는 겸손이라고 말해 주겠지만, 나는 경북에 있는 합격률 90퍼센트가 넘는 수업연구교사라는 제도도 다섯 번 나가서 두 번을 떨어졌던 전적이 있다.
내가 ‘소나키워’의 회장으로 있지만 다른 팀원들이 나보다 더 수업도 잘 짜고 진행도 잘한다. 심지어는 내가 짠 수업을 교육연극을 해 보지 않은 옆반 선생님이 더 부드럽게 잘 진행하는 것을 보고 ‘아, 나는 진짜 수업을 잘하지는 않는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런 나의 70점짜리 재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의 능력이 이런 것을 어쩌겠는가. 그래서 나의 이런 모습을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라 ‘박병주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베이스가 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반 급훈은 ‘용감하게 틀리자’이다. 이 말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잘하는 사람이 되기는 부족하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그래서 수업연구교사 제도에 네 번째 나가던 해에 떨어졌지만 다섯 번째에 또 도전할 수 있었다. 여섯 번째에는 또 떨어질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런 실패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용감하게 실패하는 내가 되고 싶다.
이 책은 그렇게 실수하고 실패했던 나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고는 싶은데 마음같이 되지 않아 답답해하며 오늘도 아등바등 살고 있을 나와 같은 평범한 재능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나는 왜
교육연극을 하고 있나?
내가 되고 싶은 선생님
학창 시절, 내가 살던 곳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동네였다. 대학생이 되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된 우리 동네는 패싸움은 기본이고 학생들이 칼을 들고 다니는 무서운 곳이었다. 소문만큼은 아니지만 험한 일로 뉴스에 몇 번 나왔던 적이 있는 동네였다. 그만큼 방황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중학교 동창들은 고등학생이 되자 하나둘씩 가출을 했고, 나는 그 친구들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친구들을 찾아서 집으로 데려와도 같은 이유로 또 집을 나갔다. 안타까웠다. 녀석들의 흔들리는 마음이, 텅 빈 눈빛이.
나 역시 흔들릴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에겐 유혹의 경계선에서 중심을 잡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만화와 텔레비전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이었다. 만화책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해 주는 한마디 한마디와 행동에 나도 같이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다. 그 시절의 우리처럼 흔들리는 꽃들에게 햇빛과 물이 되어 주고 싶었다. 또 나비처럼 날아와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만화 속에 나오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collect moments, not things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꿈, 희망, 사랑, 행복, 낭만, 우정과 같은 것은 분명 존재하고 우리 주변에 항상 숨 쉬고 있다. 아이들이 돈이나 물건보다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흔들리는 삶을 살더라도 뿌리는 더 굳건히 내릴 수 있는 의지를 심어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발령을 받고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것인지를 절감했다. 우선, 아이들의 마음에 이런 것들을 심어 주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막막했다. 나의 삶을 예로 들거나 말로만 하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다가가지 못했다. 또한 내가 의도치 않았던 나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누군가의 삶에 깊게 관여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아이들 각자의 상황에서도 옳은 것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면서 교사로서 품었던 꿈은 가슴 한 편에 묻어 두게 되었다. ‘즐거운 1년을 선물해 주자.’ 처음 가졌던 꿈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즐거웠던 기억만큼은 많이 남겨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수에서 교육연극을 만난 것이다. 교육연극 수업을 교실에 적용하다 보니 잠들어 있던 나의 꿈이 다시 깨어났다.
교육연극 수업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담기에 너무나도 좋은 그릇이었다. 교육연극 수업은 주제와 관련하여 교사가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체험하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들어 준다. 나 역시 ‘이건 이렇게 해야 해’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거 해 보니 어떤 생각이 드니?’라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지는 사람이 되었다. 교육연극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게 되는 과정이 참 좋았다. 나는 교육연극이라는 그릇을 통해 아이들이 물건이 아니라 의미 있는 순간들을 모아 가면 좋겠다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다.
교육연극 수업으로 생긴 나의 변화
부끄럽지만 나는 수동적이면서 오만한 교사였다. 수업 준비는 교사 커뮤니티에서 유용한 자료를 다운로드해서 수정해 다시 사용하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수업을 꽤나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인 양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다 자료에 대한 의존성이 너무 커져 자료가 없으면 수업을 못 하는 상황까지 갔다.
그런 내가 교육연극을 만난 뒤로 수업자로서 힘과 즐거움이 생겼다. 흥미롭게 읽은 책이나 시, 사회적인 이슈를 가져와 내 힘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교육연극을 만난 뒤부터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렇게 만든 수업은 변형을 통해 계속해서 확장되었다. 초등교사는 일 년에 같은 수업을 한 번밖에 못 한다. 만약 다음 해에 학년이 달라지면 또 새롭게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늘 모든 수업이 새롭고 지나간 수업을 피드백 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교육연극의 그릇을 통해 짜 놓은 수업은 학년이 바뀌어도 비슷한 주제에서는 약간의 변형만 하면 적용이 가능했다.
나만의 수업이 하나둘씩 늘어나서 수업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기록을 못 하더라도 수업 사진을 많이 찍어 컴퓨터에 활동별로 정리했다. 수업 자료들이 하나둘씩 쌓여 가니 어느새 나에게는 교육연극이라는 나만의 수업 브랜드가 생겨났다. 새로운 수업을 계획할 때에도 내 블로그와 컴퓨터의 자료들을 우선적으로 검색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면서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높아졌다.
아이들의 놀라운 변화
아이들 역시 교육연극을 만나면서 수업 시간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늘었다. 학년 말에 1년 돌아보기를 하면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교육연극 수업을 적는 친구들이 많았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평소 조용하고 부끄럼 많은 친구들에게서 연극수업이 좋았다는 대답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이 참 좋다. 적극적인 성격의 아이들은 다른 어떤 활동을 해도 열심히 즐겁게 참여한다. 하지만 끼 있는 아이들이 좋아할 것만 같은 이 연극적인 활동을 수줍음 많고 조용한 친구들이 재미있어하다니! 이 친구들이 교육연극 수업을 할 때 두드러지는 역할을 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맡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표현 욕구를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연극 수업은 자기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자기 내면의 표현 욕구를 실현하는 세상이 되어 주었다.
정말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친구들도 있었다. 학년 초, 본인이 쓴 것을 읽어 보라고 하니 입만 뻐금거리면서 패닉이 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옆에 있는 내 귀까지 들릴 정도였다. 한참 숨을 고르던 그 친구는 정말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못 하겠어요.”
결국 그 친구는 그날 발표를 하지 못했고, 그런 그 친구를 위해서 ‘틀려도 괜찮아’ 수업을 짜게 되었다. 틀려도 괜찮아 수업을 진행하면서 ‘일부러 틀리기’ 활동을 할 때 그 친구는 처음으로 손을 들고 발표를 했다. 이후 그 친구는 다른 수업에서도 조금씩 손을 드는 모습을 보였고, 2학기 중간쯤에는 연극 수업을 할 때 앞에 나와서 교실 바닥에서 뒹굴뒹굴 구르는 연기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친구는 부끄럼이 너무 많아 평소에 그 친구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다 같이 봄의 숲속 자연환경이 되어 보는 활동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무가 되었다.
“이 나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나, 둘, 셋! 뿅!”
나무의 속마음을 짧게 한마디를 내뱉어야 하는 순간에 그 친구는 숨을 잔뜩 들이마신 뒤 내뱉지 못하고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처음 연극 수업을 할 때 이랬던 이 친구는 1학기 중반을 지나며 정말 짧은 대사 ‘아!’를 외칠 수 있게 되었고, 2학기에 들어서는 무릎 꿇고 싹싹 비는 연기도 스스로 표현해 냈다.
특히나 이 친구가 놀랍게 변한 점은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2학기 후반 금요일 창체시간을 한 시간씩 빼서 본인이 하고 싶은 활동을 진행하도록 했다. 주별로 활동을 진행할 지원자를 받는데 8명의 지원자들 중 이 친구도 있었다. 나와 우리 반 친구들 모두 깜짝 놀랐고, 이 친구가 무슨 활동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수학이요.”
다른 친구들은 놀이나 퀴즈 같은 이벤트성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 친구는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정말로 우리 반 진도에 맞게 수학 수업을 했다.
“음··· 그··· 수, 수학책 ○○쪽 펴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으면서도 그 친구는 차분하게 수학 수업을 진행해 갔고, 친구의 그런 용기에 우리 반 아이들 모두 나랑 수업할 때보다 훨씬 집중해서 그 친구의 수업을 도와주었다. 5학년 2학기에 이 친구는 생애 처음으로 부반장이 되었고, 6학년이 되어서는 방송반에 지원해서 방송부원도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성격을 조금씩 극복하면서 성장해 가는 이 아이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과 보람을 느꼈다.
교육연극의 매력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하는 작품들이 있다. 이 경우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들은 보통 ‘소설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한다. 이는 글을 읽으며 자신이 상상하고 그렸던 세계가 막상 시각화된 작품의 이미지와 매치가 안 될 때 실망하기 때문이다.
상상은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따라 우리 머릿속에서 새롭게 구축되어 무한히 확장되어 간다. 시각적 이미지에 노출될수록 상상할 수 있는 힘은 떨어진다. 요즘 아이들은 영상 미디어 속에서 자라고 있다. 아이들은 수많은 OTT 서비스 속에서 살고 있고, 검색도 유튜브에서 하며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유튜브다. 영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은 받아들이는 것에만 익숙해져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나 상상하는 힘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람들이 막막해하는 이유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청사진을 제시해 줄 수 있었고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앞으로의 시대는 그 누구도 청사진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나라도 기업도 개인들마저도 혼란스럽다. 그래서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창의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창의성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에 따르면 창의성이 높은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이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상상은 머리로 하는 것이지만 경험의 수가 많아질수록 상상의 세계도 확장된다.
교육연극은 간접적이나마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것들까지 경험하게 해 주고,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마임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자에 상상을 입혀 자동차나 말로 보이게 한다. 또한 장면으로 나타내는 작업은 여러 명의 상상을 나누고 조합하여 구체화시켜 가는 정밀한 단계를 경험하게 해 준다. 즉,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주기에 교육연극은 너무나도 좋은 방법인 것이다.
교육연극 수업을 하면서 느낀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이 체험하고 느끼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지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수업 방향 역시 ‘이렇게 해야 해’에서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으로 점점 바뀌고 있다. 내가 질문을 던질 때 아이들도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며 참여했다.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저마다의 답을 만들어 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 다가오는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한다.
교육연극을 만나고 나와 아이들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처음 꿈꾸었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수업 속에 담아낼 수 있어서 교사로서의 나의 생활은 계속해서 두근거리고 있다.
알아보자,
교육연극
교육연극은 연극 교육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연극을 한다고 하면 “공연은 언제 해?”라고 묻는다. 나 역시 교육연극과 연극 교육의 차이점을 잘 몰랐고, 교육연극이 공연의 형태로 귀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연극 무대를 경험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어 직장인 연극 동호회에 몸을 담아 보기도 했다. 그렇게 무대 공연을 경험해 보니 교육연극과 연극 교육은 아예 다른 장르라 느껴질 정도로 다른 점이 많았다.
같은 ‘연극’이라는 말을 쓰지만 교육연극과 연극 공연은 지향점이 다르다. 교육연극은 연극을 통하여 교육을 하기 위한 것이지만 연극 교육은 연극 자체에 관한 교육이다.
연극 공연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한 작품을 공연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두고 이날을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한다. 이 한순간을 위해 배우들은 연기 연습을 하고 발성 훈련을 한다. 스태프 역시 보다 나은 공연이 되기 위해서 무대를 꾸미고 음악을 구성한다. 모두가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여 합을 맞추어 간다.
하지만 교육연극은 공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교육연극은 수업 목표 달성이 목표이다. 그래서 연극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연극적인 체험을 시켜 주고 이를 통해 학생의 성장을 돕는 교육적 효과에 중점을 둔다. 이 과정에서 관객과의 만남인 공연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 공연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 수업이 아닌 이상 단위 수업 시간 안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즉, 연극 교육은 국어나 수학처럼 공연 예술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교과지만 교육연극은 교과의 개념이 아니라 연극 교과나 단원, 다른 교과나 창체 활동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교수학습 방법이나 형식의 개념이다.
교육연극이란?
연극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Play, Drama, Theatre’로 풀이된다. Play는 ‘놀이’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놀이는 극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놀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가위바위보는 그냥 놀이지만 백제, 고구려, 신라의 병사가 되어 하는 가위바위보는 극적인 요소를 가진 놀이가 된다.
Drama는 과정 중심의 연극을 의미한다. 다른 시간, 다른 사람의 삶을 ‘마치 ~인 것처럼’ 살아 보는 경험 그 자체를 중요시한다(bolton, 1984).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연극적 체험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는 것이 목적이다.
Theatre는 공연 중심의 무대 공연을 의미한다. 보통 우리가 연극이란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Theatre에 해당한다. 무대, 의상, 소품, 조명 등 공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며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보다 예술적이고 완성된 형태의 모습을 갖추어 관객의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육연극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이 존재하지만 나는 교육연극을 극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놀이play와 연극적인 상황 만들기drama에 좀더 무게를 둔다. 교육연극은 놀이를 통해 마음을 열고 드라마 상황을 체험하며 세상과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연극적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를 몸으로 체험한다. 이를 통해 수업 목표가 달성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며 성장한다. 즉, 교육연극은 관객과의 만남을 목표로 하는 연극적 결과가 아니라 학생들이 연극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소통하며 교육적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중심의 연극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교육연극에서 교육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연극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이나 자유로움의 가치가 묻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굳이 공연이 아니더라도 Play(놀이)나 Drama(이야기)적인 요소들을 잘 활용한다면 이러한 연극의 특성들도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교육연극, 이것은 알고 가요
연극 놀이
‘연극 놀이’란 용어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 첫 번째는 연극의 Play에 해당하는 놀이의 요소에 집중해 연극적 표현이 있는 놀이로 보는 관점이다. 두 번째는 교육연극과 동일하게 바라보는 관점이다. 원래는 연극 놀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학교 교육으로 들어가면서 교육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교육연극이라는 용어를 쓰게 되어 학교 안에서는 ‘교육연극’, 학교 밖에서는 ‘연극 놀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 책에서는 Play의 관점으로 연극 놀이라는 용어를 바라본다.
드라마 기법
교육연극 수업을 할 때 사용하는 연극 기법을 의미한다. 핫시팅hot seating이나 정지장면 만들기처럼 교육연극에는 자주 사용하는 기법들이 있다. 관습처럼 널리 사용되어 왔다는 의미에서 ‘드라마 관습’ 또는 ‘컨벤션convention’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이 용어는 우리에게 낯설어 이 책에서는 드라마 기법이란 말을 사용했다.
과정 드라마
학생들의 체험하고 느끼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과정 중심의 연극 활동’을 의미한다. 앞서 교육연극을 설명하며 언급한 Drama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 공연이 목적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체험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시한다. 때문에 이야기의 틀만 만들어 두고 내용은 학생들이 체험하면서 만들어 가는 구조이다. 이 책에서는 과정 드라마 외에도 다른 연극 수업(이야기 극화)도 함께 다루기에 의미를 조금 확장시켜 드라마 수업이라고 정의하였다.
이야기 극화
학생들의 체험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과정 드라마와 유사하다. 하지만 과정 드라마는 정해진 내용이나 결말이 없는 반면에 이야기 극화는 기존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면서 체험해 본다. 따라서 과정 드라마는 원작을 변형하거나 원작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이야기 극화는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살리면서 진행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흥
교육연극에서는 즉흥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즉흥은 상황에 따라 ‘준비된 즉흥’과 ‘준비되지 않은 즉흥’ 두 가지를 사용한다. 준비된 즉흥은 발표하기 전 연습 시간을 주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즉흥은 연습 시간 없이 말 그대로 즉흥적으로 발표를 하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즉흥은 즉흥에 대한 훈련이 되어야 할 수 있다. 교실에서의 교육연극 장면 발표 활동의 대부분이 ‘준비된 즉흥’이다.
대본
교육연극 수업에서는 대본이 없다. 교실 연극에서 발표가 잘 안되는 이유가 대본 때문이다. 대본을 가지고 연습을 하면 대본을 외울 수 있는 충분한 연습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대사를 틀린다. 결국 아이들은 대사를 틀릴까 봐 불안해 연극 상황에 몰입하지 못한다. 때문에 교육연극에서 아이들의 발표는 상황을 중심으로 즉흥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과정이 중요시되고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 속
연극 단원 살펴보기
연극 단원, 왜 들어왔을까?
2015개정 교육과정 국어 교과에 연극 단원이 들어왔다.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많은 교사들이 난감해한다. 연극을 해 본 적 없는 교사가 대부분인데 교과 안에서 연극을 가르쳐야 하니 막막할 수밖에 없다.
연극 단원은 왜 교육과정에 들어오게 됐을까? 사람들마다 연극 단원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내가 바라본 연극 단원은 무대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교육적 효과에 목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굳이 공연으로서의 연극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는 ‘연극 공연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연극의 어떤 부분을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다음은 연극 단원과 관련된 성취기준이다.
[6국05-04] 일상생활의 경험을 이야기나 극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이 성취기준은 이야기와 극 만들기 활동을 통해 이야기와 극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한편, 이를 다른 교과의 학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설정하였다. 이야기와 극은 문학의 주요한 갈래로서 그 자체로 교수ㆍ학습의 주요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모든 교과에서 교수ㆍ학습 활동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일상생활의 경험 중 즐겁거나 감동을 받았던 일, 슬프거나 속상했던 일,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웠던 일 등을 내용으로 삼아 이를 이야기나 극의 형식으로 표현하도록 한다.
연극 단원 성취기준의 목표는 ‘일상생활의 경험을 이야기나 극의 형식으로 표현한다’이다. 사실 일상생활의 경험을 극으로 만드는 것은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연극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다. 아이들이 겪은 경험을 극의 형식에 맞게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상생활의 경험인지 고민해 봤는데, 연극을 통해 아이들 간에 소통과 정서적 공감을 나누는 데 의미를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위해서 연극은 모든 교과에서 교수학습 활동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연극 공연이 목적이 아니라 연극을 매개로 하여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연극 단원의 이해’에도 분명히 하고 있다.
(2) 연극 단원은 ‘연극’이라는 예술의 개념을 이해하고 전문적인 연극인을 육성하기 위한 학습을 추구하기보다는 인문학적 소양 교육의 일환으로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소통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총론의 방향성은 ‘문학 교육을 이론이 아닌 감성과 소통 중심의 학습으로 전환’, ‘연극 교육 등의 활성화’에 있다. 이는 연극 단원이 ‘연극’이라는 예술 학문 개념의 학습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좀더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 감성, 소통과 표현을 위한 매체로서 연극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극’이란 무대극theatre과 드라마drama 모두 해당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본질인 ‘드라마drama’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드라마는 대개의 경우 즉흥으로 이루어지는 ‘극적 허구’로 발생하고 기능한다. 여기서 즉흥적이라 함은 사전에 정해진 대본이나 대사를 읽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참여자가 상황에 감정적, 정서적으로 몰입해, 자신의 역할의 입장에서 개연성 있는 대화와 행위를 주고받으면서 ‘실제의 나’와 ‘역할로서의 나’ 사이의 유사성, 상이성, 모순점 등을 깨닫고 사고하고 성찰하게 되는 체험을 제공한다. 연극 놀이, 드라마, 즉흥극 등이 강조되는 세계적인 추세는 이제 일반화 되어가는 중이다. 따라서 교과서의 연극 단원은 연극 장르의 이해보다는 연극 표현 언어의 형성 쪽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 연극의 개념 이해 中
이와 같이 연극 단원의 개관을 살펴보아도 2015개정 교육과정에 연극 단원이 들어온 취지와 연극 단원을 통해 추구하는 바는 무대 공연, 즉 예술적 학습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표현과 소통을 배우기 위함이다.
현장의 많은 교사들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은 연극이라고 했을 때 무대 공연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대 공연이 중심이 되면 ‘보여준다’에 무게가 실리니 완성도와 예술성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학교 교육에서는 아이들의 체험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경험하고 표현한다’에 중심을 두는 것이 교육과정에 연극이 들어온 취지에 가깝다.
연극 단원,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렇다면 연극 단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교과서 속 연극 단원을 살펴보면 5학년 1학기에는 play, 6학년 1학기에는 drama, 6학년 2학기는 theatre의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극의 3가지 정의(play, drama, theatre)는 흐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각각이 독립된 형태로 정의되고 사용되기도 한다. 나는 이와 같은 구성이 자칫 공연을 위한 연극 교육으로 인식될까 봐 걱정된다.
특히나 6학년 2학기 때 theatre 위주의 내용 구성은 교사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안길 수 있다. 10여 차시의 짧은 시간 안에 연극 경험도 없는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무대, 소품, 의상, 음향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며 공연을 만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학교에 들어오는 연극 예술 강사들도 10차시 안에 아이들과 함께 무대, 소품, 의상을 제작하면서 연극 공연을 준비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 역시 아이들과 다른 학년 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그림자극 공연을 프로젝트로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미술과 음악, 창체 시간을 합쳐 20차시 이상을 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연극 단원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 것일까?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연극 단원은 무대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적 학습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표현과 소통을 위한 매체로 인식해야 함을 강조한다. 성취기준 역시도 ‘공연’이 아니라 ‘표현’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두고 있기에 앞에서 언급한 교육연극의 개념으로 접근해도 무방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만들면서 나누는 대화와 소통 속에서 느끼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두면 되는 것이지 기능적으로 더 잘하기 위해 연습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지도서에 근거해서 바라봤을 때에도 교실에서 굳이 무대 공연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드라마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극적 체험을 하며 이를 통한 교육적 효과에 집중하는 쪽으로 운영하면 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교육연극의 방향과도 의미가 통하는 지점이다. 또한 연극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고 교실 공연에 맞는 최소한의 준비로 공연을 하는 것이 모두가 부담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교실 연극이 될 것이다.
나만의 교육연극
수업 짜기 노하우
나는 교육연극 수업을 어떻게 짜고 있는가?
“교육연극 수업 어떻게 짜요? 교육연극 기법은 어떤 것들이 있어요?”
교육연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나 역시 이 질문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이 많았다. 책을 집필하면서 이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다루고 싶은 주제가 생겼을 때 외에도 노래를 듣거나 책이나 뉴스를 볼 때, 특정 활동이나 놀이에 꽂혀 이를 수업에서 활용하고 싶을 때, 아이들 관계를 관찰하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교육연극 수업으로 가져오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무엇에 꽂혔든 교육연극 수업을 짤 때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맥락(수업 전체에 이야기를 어떻게 입힐까)과 그 속에서 아이들이 활동하는 상황(에피소드를 어떻게 만들까)에 대한 것이다.
교육연극 수업의 핵심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설계한다. 그중에서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은 맥락을 설정하는 부분이다.
연극에서 이야기는 필수 요소다. 교육연극을 활용한 수업은 너무나 다양해서 뭐라고 정형화해서 설명할 순 없지만 연극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놀이 수업들은 기존에 있던 놀이에 이야기를 부여해 맥락을 형성하여 수업으로 새롭게 탄생된 것이다. 이야기를 수업이나 활동 상황에 가져와 수업 목표에 맞게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 교육연극 수업의 핵심이다.
교육연극 수업을 짜는 데 어떤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수업과 관련한 아이디어는 언제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다루고 싶은 주제가 떠오를 수도 있고, 연극적 맥락이 먼저 생각날 수도 있다. 또는 특정 활동이나 활동 상황이 먼저 생각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먼저 생각나든 주제, 맥락, 활동 상황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설정해 놓으면 교육연극 수업을 할 수 있다.
나는 마음에 꽂힌 아이디어를 수업에 담을 때 ‘어떤 질문을 던질까?’를 먼저 생각하며 주제를 선정한다. 신데렐라로 했던 수업의 경우 파티장에서 왕자가 신데렐라에게 빠지게 된 이유를 장면으로 표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활동을 재미있으면서 의미 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찾은 주제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매력들을 알아보고 발견해 주는 것’이었다. 주제를 찾았으면 다음은 ‘맥락을 어떻게 설정할까?’를 고민한다.
어떻게 맥락을 설정할까?
맥락을 설정할 때는 핵심 질문이 있어야 수월하다. ‘어떤 상황에서 경험해 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거나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수행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앞뒤의 흐름이 만들어지며 전체 맥락을 만들 수 있다.
맥락을 설정할 때는 ① 동화책이나 그림책, 시와 같이 기존에 있는 이야기에서 가져오는 경우도 있고 ② 필요에 따라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야기 전체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부분만 가져와 맥락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가져와 외모 외에도 사람이 가진 다양한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때 설정한 핵심 질문은 ‘왕자는 신데렐라의 어떤 점에 반했을까?’였고 ‘신데렐라와 왕자가 파티에서 만난 에피소드’를 수업의 전체 맥락으로 설정했다. 일반적으로 호박 마차를 타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예쁜 신데렐라의 모습에 왕자가 반했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왕자는 신데렐라가 가진 다른 아름다움에 반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왕자가 신데렐라에게 반하는 결정적 순간을 장면으로 만들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고학년을 대상으로 사람이 가진 다양한 매력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 1)
주제: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매력 알아보기
핵심 질문: 왕자는 신데렐라의 어떤 부분에 반했을까?
전체 맥락: 파티장에 가는 신데렐라
상황 1: 왕자의 이상형 설정하기(Role on the wall)
상황 2: 파티장에 등장하는 신데렐라 꾸미기(신문지로 드레스 만들어 친구 꾸며 주기 활동)
상황 3: 왕자가 신데렐라에게 반하는 결정적 순간(장면 만들기)
반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지점 생각해 보기
서로의 매력 찾아주기
예 2)
주제: 세상에 무조건 나쁜 사람이 존재할까?
핵심 질문: 놀부는 왜 나쁜 형이 되었을까?
전체 맥락: 제비 나라에서 벌어지는 놀부의 재판
(박을 터트려 나온 도깨비들이 놀부를 제비 나라로 데려가 재판이 벌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 놀부에 대한 판결 자체보다는 놀부가 나쁜 짓을 하게 되는 이유를 찾아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상황 1: 어린 시절의 착했던 놀부의 일화
상황 2: 놀부가 점점 삐뚤어지게 되는 사건들(장면 만들기)
상황 3: 놀부의 본심(핫시팅)
반추: 흥부에게 사과의 편지 쓰기
어린 시절 놀부가 하고 싶었던 말 일기 쓰기
예 1)은 상황 3이 먼저 생각났고 그 후 전체 맥락을 설정한 것이다. 예 2)는 놀부가 나쁜 형이 된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놀부라는 인물을 탐구하기 위해 ‘제비들의 재판’이라는 맥락을 설정하게 됐다. 순서는 다르지만 기존 이야기를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주제를 다루기 위해 맥락을 창조해야 할 때도 있다. 이 경우 상상의 여지를 부여할 수 있는 물건이나 인물, 짧은 메모와 같은 프리텍스트를 쓸 수도 있다(프리텍스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3장 드라마 기법으로 수업이 살아나요> 참고).
역사 속 인물들이 단지 ‘~했던 사람’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쉬웠다. 이들 역시 선택의 순간에 수없이 흔들리고 고민했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계백 장군이란 인물을 가져와 수업을 설계했다. 전체 맥락으로 신라가 공격해 온다는 소식에 어전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을 설정하였고, 이 맥락 속에서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상황(에피소드)을 구성하였다.
‘지구촌 문제 해결’ 수업은 교과서에 나오는 수업을 재구성하며 짰던 수업이다. 그냥 수업으로만 듣기에는 너무도 지루한 국제단체들을 어떻게 하면 좀더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내겐 너무 먼 나라의 이야기인 세계의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더 와닿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결과,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각 나라의 사람들이 되어 자기 나라의 어려움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아이들이 선정한 국제단체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시험을 치루는 것으로 전체 맥락을 설정했다.
어떻게 활동 상황을 설정할까?
전체 맥락을 설정했으면 맥락 속에서 아이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에피소드)을 구성한다. 맥락이 수업에 이야기를 입히는 것이라면 과제 수행 상황을 설정하는 것은 아이들이 다른 역할을 입고 실제로 활동할 내용을 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상황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상황 설정을 하는 이유는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활동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을 설정하면 아이들의 몰입도가 훨씬 올라가기 때문이다. ① 평소 수업 중 일부 활동에만 상황을 설정할 수도 있고, ② 맥락 속에서 몇 가지 상황을 설정하여 진행할 수도 있다.
일부 활동에 상황 설정하기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4교시 수학 시간. 교실 앞뒷문을 쾅 닫은 뒤 아이들에게 말했다.
“지금 여러분은 수학수학동굴에 갇혀 버렸습니다. 급식 랜드에는 급식 아주머니들께서 여러분의 식판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들에게 식판을 내밀기 위해선 수학 마왕이 내는 문제를 10분 안에 다 풀어야 합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미션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수학 수업을 진행하다가 문제를 풀어야 할 때 이와 같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을 설정해 주면 아이들은 문제 풀이에 보다 더 집중한다.
일부 활동에 상황을 설정하는 경우에는 그 활동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도록 설정하는 것이 좋다. 합격해야 하는 절박함이나 시간제한을 두는 등의 강제성을 부여하면 보다 빠르게 몰입할 수 있다.
다음은 미술 시간에 콜라주로 책표지 만들기를 하면서 ‘책을 출판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하는 상황’을 설정한 수업이다. 수업은 ① 책표지 만들기, ② 작가가 되어 그림책 표지를 이용해 이야기 만들어 발표하기, ③ 발표에서 선정된 이야기로 장면 만들기의 순으로 진행됐다. 2인 1조 활동으로 진행했는데 ① 책표지 만들기는 그냥 마음대로 콜라주를 할 수 있도록 했고, ② 작가 되기 활동에서는 맥락을 부여했다. 작가가 되어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를 프레젠테이션해야 하는 상황을 설정하여 책표지에 맞게 스토리를 짜도록 했다.
책표지를 만들 때부터 상황을 부여할 수도 있었지만 두 번째 활동에서 상황을 만든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아이들의 즉흥성과 상상력을 보고 싶었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책표지에 스토리를 붙이라고 하니 잠시 당황하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