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앨런
James Allen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이미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끌어당긴다.”
제임스 앨런은 영감을 주는 책과 시로 유명한 영국의 철학 작가로, 성공학 분야의 선구자이자 자기계발 구루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인물이다. 앨런은 1864년 영국 레스터의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두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79년 일자리를 구하러 미국으로 떠난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15세에 불과했던 앨런은 가장이 되어 학교를 그만두고 곧장 일터로 뛰어든다. 주로 제조회사의 비서 일을 맡았는데 결혼 후 잡지사로 이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01년에는 첫 책 『번영의 길The Path of Prosperity』을 출판했다. 이듬해에는 최초의 영성 잡지인 《생각의 빛The Light of Reason》 발간을 시작했는데, 훗날 《디 에포크The Epoch》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1902년 앨런은 세 번째이자 가장 유명한 책 『원인과 결과의 법칙As a Man Thinketh』을 출판한다.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다(잠언 23:7)”라는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한 이 작은 책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앨런은 사후에 ‘성공철학에 영감을 준 자기계발 선구자’라는 명성을 얻는다. 앨런은 잡지사 편집 일을 은퇴한 후에도 《디 에포크》를 계속 발간하면서 1912년 사망할 때까지 매년 한 권 이상의 책을 썼는데 9년 동안 쓴 작품은 모두1 9권에 달한다.
1912년에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아내는 《디 에포크》를 계속 발간했다. 릴리 앨런은 남편의 사후에 출판된 『행복과 성공의 초석Foundation Stones to Happiness and Success』의 편집자 서문에서 앨런의 문학적 사명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는 이론을 쓴 적도, 글을 쓰기 위해 쓴 적도 없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을 때 글을 썼고, 그 메시지는 그가 자신의 삶에 적용해보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메시지가 되었다. 그는 실천을 통해 증명한 사실을 글로 남기고자 한 것이다.”
앨런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지식이 있든 없든,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서 성공, 행복, 성취, 진리의 원천을 찾도록 돕는 책을 쓰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여겼다. 콜렉션의 두 번째 책인 『제임스 앨런 부의 여덟 기둥』은 앨런의 데뷔작을 포함하여 부의 원천에 관해 다룬 책들을 엮었다. 제임스 앨런의 숙원으로 완성한 이 책들이 진정한 부와 번영의 길을 걷도록 독자들을 안내할 것이다.
옮긴이 임경은
부산대학교 경제학 학사 및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법무부, 관세청 등에서 공직생활을 했으며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믿을 수 없게 친근한 경제』,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100만 팔로워 마케팅』 등이 있다.
일러두기
이 책은 1911년 출간된 『Eight Pillars of Prosperity』와
1904년 출간된 『From Poverty To Power』을 엮어서 만들었다.
『From Poverty To Power』는 『The Path of Prosperity』(1901)와
『The Path of Peace』(1901)의 합본이다.
서문
부의 조건
개인이나 국가가 더욱 번영하려면 정치와 사회를 뜯어고쳐야만 한다는 것이 세간의 통념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의 구성원인 개인이 도덕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법률과 사회 조건이 개선되려면 당연히 구성원들이 더 높은 도덕성을 함양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덕의 추구와 실천에 게으른 사람이나 국가에는 어떤 법률도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타락을 막을 수도 없다.
도덕성은 번영의 기반이자 지지대이며, 위대한 사람의 영혼에 깃들어 있다. 덕은 영원히 지속되는 만큼, 인간의 업적 중 지속적인 것은 모두 덕을 토대로 세워진 결과다. 덕이 없으면 힘도 안정도 실체적 현실도 없고 덧없는 꿈만 남을 뿐이다. 도덕적 원칙을 찾는다는 것은 번영, 위대한 힘, 진리를 찾는 것이다. 즉 강하고 용감하고 즐겁고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 영국 일프라콤, ‘빛의 언덕Bryngoleu’에서
제임스 앨런
제임스 앨런의 가르침
마음의 진리를 발견하라
세상을 둘러보니 사방이 슬픔의 그늘에 드리워지고, 맹렬한 고통의 불길에 타오르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주위를 살펴봐도 알 수 없었고, 책에서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눈길을 내면으로 돌려보니 원인은 내 안에 있었고, 그 원인이 그런 악한 특성을 띠게 된 것도 내가 초래한 결과였다. 나는 다시 한번 내면을 더 깊게 들여다보았고 해결책을 찾았다.
나는 어떤 ‘법칙’, 바로 사랑의 법칙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떤 ‘삶’, 바로 사랑의 법칙에 순응할 줄 아는 삶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진리’, 평정과 순응을 깨닫고 정념을 극복한 마음의 진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지식이 있든 없든,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서 성공, 행복, 성취, 진리의 원천을 찾도록 돕는 책을 쓰고 싶었다. 그 꿈은 나를 항상 따라다녔고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이제 세상에 치유와 축복을 전해주길 바라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진리의 메시지는 이를 필요로 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언젠가 반드시 닿으리라 믿는다.
1장
온 세상의 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여덟 가지 방법
번영의 기본 조건은 도덕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번영이 부도덕, 즉 속임수, 사기, 기만, 탐욕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다른 방면에서는 똑똑한 사람 중에서도 “부정직하지 않으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며 사업의 번창(좋은 것)을 부정직(나쁜 것)의 결과로 간주하는 사람이 흔하다.
이렇게 짧은 생각에서 비롯한 피상적 주장은 그 사람이 도덕적 인과 법칙을 전혀 모르고 인생의 섭리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매우 좁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치 사리풀을 심고 시금치를 수확하기를 기대하거나 늪 위에 벽돌집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자연적 인과관계로는 불가능한 일이므로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정신적, 도덕적 인과관계의 질서도 오직 특성 면에서만 이와 다를 뿐 원칙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생각과 행동 등 보이지 않는 것에나 자연 현상으로 보이는 것에나 동일한 법칙이 적용된다. 인간은 자연 현상에 있어서는 과정이 보이므로 법칙에 따라 행동하지만, 정신적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법칙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며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적 과정도 자연적 과정만큼 단순하고 확실하다. 사실 정신적 과정은 자연적 과정이 마음의 세계에 동일하게 구현된 형태다. 과거 위대한 스승들이 들려준 모든 우화와 수많은 가르침은 결국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연계는 가시화된 형태의 정신세계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비추는 거울이다. 원의 위쪽 절반은 아래쪽 절반과 완전히 똑같이 생겼지만 그 구면은 반대쪽을 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질과 정신은 우주에서 분리된 두 개의 원호가 아니라 완전한 하나의 원을 이루는 두 반쪽이다.
자연계와 정신계는 영원한 적대 관계가 아니라, 우주의 진정한 질서 아래에서 영원한 하나다. 기능과 능력을 무리하게 오용해 분열을 일으키고, 완벽한 원에서 중심을 억지로 옮겨 반복적인 고통을 초래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반한다. 물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은 마음속의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자연법칙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법칙이 있다.
자연의 어떤 대상이든 자세히 살펴보면 그 기본 과정을 정신적 영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씨앗이 발아하여 식물로 성장하고 마지막으로 꽃을 피운 후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이 과정은 정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생각은 마음의 흙에 뿌려진 뒤 싹이 트고 발전하여 완성된 단계에 이른다. 즉 그 특성에 따라 선하거나 악하거나, 훌륭하거나 어리석은 행위로 꽃피우고 다시 생각의 씨앗으로 다른 마음에 뿌려진다. 스승이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자 정신적 농업 전문가라면, 그가 가르치는 제자는 자기 마음의 밭을 일구는 현명한 농부다.
생각이 성장하는 과정도 식물과 똑같다. 계절에 맞춰 씨앗을 뿌리면, 씨앗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깨달음의 식물로 자라고 지혜의 꽃을 피운다.
나는 이 글을 쓰다 잠시 멈추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키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꼭대기에는 인근 서식지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 겁 없는 까마귀들이 자신만의 첫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강한 북동풍이 불자 나무 꼭대기가 심하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나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로 만든 그 연약한 둥지는 안전했고, 알을 품은 어미 새는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새는 본능적으로 최대한 튼튼하고 안전한 위치를 잡아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둥지를 짓기 때문이다.
일단 새들은 두 나뭇가지 사이의 공간이 아닌 가지의 갈래 부분을 둥지의 터로 고른다. 따라서 나무 꼭대기가 아무리 심하게 흔들려도 둥지의 위치가 옮겨지거나 구조가 약해지지 않는다. 그다음 새는 외부 압력에 잘 저항하고 용도에 맞으면서 작은 공간에 딱 들어가도록 원형 평면 모양으로 집을 짓는다. 따라서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새들은 편안하고 안전하게 쉴 수 있다.
아주 단순하고 친숙한 소재를 예로 들었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엄격한 법칙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이 불변의 원칙에 맞춰야 불확실한 인생사와 격동적인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오롯이 안전하고 완전히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지은 집이나 신전은 새 둥지보다 훨씬 구조가 복잡하지만, 마찬가지로 자연계의 모든 곳에서 입증되는 엄격한 원칙에 따라 세워진다. 이를 통해 인간이 물질적 측면에서도 보편적 원칙을 따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절대 기하학적 비율을 무시하고 건물을 짓지 않는다. 기하학적 비율을 무시하면 건물은 안전하지 않을 테고, 폭풍이 오자마자 폭삭 주저앉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물질적 건물을 지을 때 인간은 원, 정사각형, 각도의 정해진 원칙을 철저히 따른다. 그리고 자, 다림줄, 나침반의 도움을 받아 아무리 모진 폭풍에도 견딜 수 있는 안전한 거처와 피난처를 건축한다.
당신은 이 모든 게 너무 단순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참되고 완벽한 진리는 원래 단순한 법이다. 대신 절대적 진리이기에 약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고, 너무나 완벽하기에 누구도 그 이상으로 개선할 여지가 없다. 인간은 오랜 경험을 통해 이러한 물질계의 원칙을 터득했고, 그에 순종하는 지혜를 깨달았다.
이렇게 단순한 예를 들었지만, 정신적 세계나 영적 세계의 완벽하고 항구적인 원칙도 이토록 단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이 단순한 원칙을 매일같이 위반한다. 그들의 무지한 마음이 자신에게 가하는 해악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질이 그렇듯 마음도, 사물이 그렇듯 생각도, 자연 현상이 그렇듯 인간의 행위에도 법칙이라는 확고한 기반이 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 법칙을 무시하면 재앙과 실패를 면할 수 없다.
실제로 세상의 고통과 슬픔의 원인은 바로 이 법칙을 무지한 사람들이 위반하기 때문이다. 물질계에서 이 법칙은 ‘수학적’으로 표현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수학과 도덕은 별개이거나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통합된 전체의 두 측면일 뿐이다.
모든 물질에 적용되는 불변의 수학 법칙이 있듯, 정신에 적용되는 불변의 도덕 법칙이 있다. 또 영원한 도덕적 원칙은 동시에 마음의 우주에서 작동하는 수학적 공리이기도 하다. 도덕적 원칙을 떠나 성공한 삶을 살겠다는 것은 수학적 원칙을 무시하면서 안전한 건물을 짓겠다는 것만큼 불가능하다.
인격도 집과 마찬가지로 도덕률의 토대 위에 세워질 때만 굳게 설 수 있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 행동을 정성껏 하나하나 쌓아가야 한다.
인격을 건축에 비유하면 행동은 벽돌이다. 기업이나 인간의 모든 사업체도 불변의 질서에서 예외가 아니기에 우주의 대법칙을 준수해야만 안전하게 일어설 수 있다. 안정적, 영속적 번영을 원한다면 도덕적 원칙의 확고한 토대 위에 서야 하며, 훌륭한 인품과 도덕적 가치가 금강석 기둥처럼 뒷받침되어야 한다.
도덕적 원칙을 무시하고 사업을 운영하려 하면 어떤 형태로든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어느 사회에서든 변치 않는 번영을 누리는 사람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이 아니라 믿음직하고 올곧은 사람들이다. 퀘이커 교도는 영국 사회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으며, 비록 인구수는 적지만 가장 성공한 축에 속한다. 인도의 자이나 교도도 규모나 부의 면에서 퀘이커와 비슷하게, 인도의 최고 부유층을 구성한다.
흔히 ‘사업체를 설립’한다는 말을 하고, 실제로 사업체는 벽돌집이나 석조 교회와 마찬가지로 건물의 형태를 띤다. 하지만 설립 과정은 정신적 과정이다. 번영이라는 것도 우리 머리 위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주므로 집의 지붕과도 같다. 지붕은 뒷받침 역할을 해야 하고, 뒷받침 역할을 하려면 튼튼한 기반이 필수다. 번영이 지붕이라면 그 밑에는 일관된 도덕성이라는 기초 위에 굳건히 세워진 다음 여덟 가지 기둥이 뒷받침하고 있다.
• 에너지
• 절약
• 무결함
• 체계
• 공감 능력
• 진실성
• 정의로움
• 자기 신뢰
이 모든 원칙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히 실천해 구축된 기업은 탄탄하고 오래 지속될 천하무적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런 기업에는 그 어떤 것도 해를 끼치거나 번영을 방해하거나 성공 가도를 막거나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원칙을 고수하는 만큼 끊임없이 커지는 성공이 보장될 것이다.
반면 이러한 원칙이 모두 빠진 상태로는 어떤 종류의 성공도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 사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응집하는 이음매 역할을 할 잣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 사업은 마치 신체에 형태를 부여하고 신체를 살아 숨 쉬게 해줄 조직이 결합되지 않은 것처럼 생명력이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원칙이 마음에도 일상생활에도 부재한 사람을 상상해보라. 당신이 불완전하고 어렴풋이나마 이러한 원칙을 인지한다면, 그런 사람이 성공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인생을 갈팡질팡 사는 무기력한 탕아라고 생각하기 쉽지, 그가 한 사업체의 수장, 조직의 중심 인물, 또는 어떤 영역에서 책임 있는 지휘관일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상상도 가지 않는 것이다.
웬만큼의 도덕성과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여덟 가지 원칙의 중요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해 도덕성이 번영의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결론이 완전히 틀렸다고 입증할 확실한 증거다. 만약 그들이 옳다면 도덕적 원칙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따라서 이 여덟 가지 원칙은 모든 종류의 모든 성공에 크게든 작게든 기여하는 요소가 된다. 모든 번영의 이면에는 강력한 지지대가 있게 마련이다. 얼핏 보면 여덟 가지 원칙이 성공으로 연결될 것 같지 않아도, 이것들은 성공이라는 훌륭한 결과로 장식될 모든 노력을 설명하고 입증한다.
여덟 가지 원칙을 온전하고 완벽하게 실천해 성공한 사람은 비교적 드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 그들은 인류의 지도자, 스승, 안내자이자 인간 사회의 버팀목이며, 인류의 진화에 앞장서는 강인한 선구자다.
도덕성의 완성은 일단 달성하기만 하면 최고의 성공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여덟 가지 원칙 중 일부만 준수해도 그보다 조금 못한 정도의 평범한 성공은 이룰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이 원칙들의 효과가 강력하다는 방증이다.
이를테면 여덟 개 중 두세 가지만 완성해도 고만고만한 수준의 번영을 누리고 한때나마 국지적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오르기에 충분하다. 두세 가지 원칙에서는 완성에 이르되, 나머지 원칙의 전부 혹은 대부분에서는 그럭저럭 준수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제한적인 수준의 성공과 영향력을 가늘고 길게 이어갈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내면에 기둥의 일부만 들어가 있지만, 이 원칙들을 더 착실하게 익히고 실천한다면 그 노력에 정확히 비례해 더 크고 광범위한 성공이 찾아올 것이 틀림없다.
한 인간의 도덕성 범위를 보면 그가 어디까지 성공할지 가늠이 된다. 누군가의 도덕 수준을 알면 결국 그가 성공할 인물인지 실패할 인물인지 수학적 원리로 측정할 수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번영이라는 신전은 도덕의 기둥으로 지탱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기둥이 약해지면 건물이 불안해진다. 기둥이 아예 빠져버리면 건물은 휘청휘청하다가 폭삭 내려앉는다.
도덕적 원칙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사람은 결국 실패와 패배를 면치 못한다. 인과관계라는 자연의 법칙상 불가피한 결과다. 돌을 위로 던지면 땅으로 되돌아오듯,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행위는 그것을 행한 사람에게 돌아온다.
도덕 개념이 없거나 부도덕한 행위는 모두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좌절시킨다. 부도덕에서 파생한 모든 후속 행위는 목표 달성을 더욱더 멀어지게 한다. 반면에 모든 도덕적 행위는 번영의 신전을 구성하는 견고한 벽돌이며,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에 부여하는 또 하나의 힘이자 조각미다.
개인, 가족, 국가 할 것 없이 모두 도덕적 힘과 지혜가 성장해야 그에 따라 발전하고 번영한다. 그들의 흥망성쇠는 모두 도덕적 타락의 여하에 달려 있다.
물질계가 그렇듯 정신계에서도 형태가 있고 견고한 것만이 제힘으로 서고 오래 버틸 수 있다. 도덕 개념이 없다는 것은 무無의 상태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아무것도 형성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실체를 부정한다. 부도덕하다는 것은 파괴이며,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이 악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과정이다.
현명한 건축가는 부도덕이 훼손하고 해체해놓은 부서진 건축 자재를 주섬주섬 모아 다시 형체로 복원한다. 그 현명한 건축자가 도덕성이다. 도덕은 본질, 형태, 구축력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도덕은 항상 건물을 짓고 보존하는 힘이 있으며, 이 점이 도덕의 본질이다. 이것은 항상 뭔가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부도덕의 반대다. 도덕은 개인이든 국가든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건축가다.
도덕은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도덕적 발판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바위 위에 선 것과 같아서, 그에게 패배란 없고 오직 확실한 승리만이 기다린다. 물론 그는 극심한 시험에 들 것이다. 이 시험에서 싸우지 않고는 승리가 있을 수 없고, 또 그 과정을 거쳐야지만 도덕성이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이 정밀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졌듯, 인간이 도덕성을 시험받고 증명하는 것은 불변의 원칙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쓰임새 좋은 철근은 주조 공장으로 가기 전에 품질과 강도를 가늠하기 위해 대장장이의 엄격한 압력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벽돌공은 극심한 고온의 가마에서 깨진 벽돌을 골라내서 버린다.
그러므로 훌륭하고 영속적인 성공을 거둘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본성을 훼손하지 않음은 물론, 그것을 오히려 강화하고 가다듬어 역경의 압박을 이겨내고 유혹의 불길을 통과할 것이다. 그는 최상의 용도에 어울리게 잘 만들어진 철근이며, 대장장이 우주는 자신이 잘 만든 철근에 만족해 곁에 두고 쏠쏠히 사용할 것이다.
부도덕은 어디에서나 공격에 취약하며, 그 위에 서려고 하는 사람은 고립의 늪에 빠진다. 그의 노력은 계속 곧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무너지고 있다. 그에게 최악의 실패는 불가피하다. 부도덕한 사람이 부당 이득을 쥐고 흡족하게 웃는 동안, 그의 주머니에는 이미 구멍이 뚫려 황금 같은 재산이 줄줄 흐르고 있다.
처음에는 도덕적이었으나 시험에 든 순간 이익에 눈이 멀어 도덕성을 버리는 사람은 열을 가하자마자 부서지는 벽돌과 같다. 그는 사용하기에 부적합해서, 우주는 그를 내팽개치지만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심산으로 버리지는 않는다. 그는 벽돌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면서 배우는 존재이므로 반성하고 본성을 되찾을 수 있다.
도덕적 힘은 모든 성공의 생명력이자 모든 번영을 지탱하는 요소다. 그러나 성공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더 크고 광범위한 성공에 도달하려면 한쪽에서 실패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문학적, 예술적, 영적 면에서 천재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돈을 벌려는 노력부터 시작한다면 어떨까? 돈 벌기에 실패하는 편이 이 사람의 천재성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실패하는 게 그에게 더 유리하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능력이 있는 분야에서 더 숭고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백만장자 중에는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성공이나 부처의 영적 성공을 수백만 달러와 기꺼이 맞바꾸려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 그 거래가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보통을 뛰어넘는 정신적 성공은 부를 동반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금전적 성공은 그 위대함과 장엄함에 있어서 결코 정신적 성공에 필적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성인이나 영적 수양의 달인들이 거둔 성공보다는, 주로 보통 사람들의 복지, 안녕, 행복과 관련된 성공을 말한다. 이는 (현재의 일시적 성공인) 돈과도 어느 정도 관련 있지만 돈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모든 활동에 적용할 수 있는, 특히 번영의 다른 이름인 ‘평안’, 그리고 행복의 다른 이름인 ‘만족’을 이끌어내는 개인과 환경의 조화에 관한 성공을 가리킨다.
그러면 이제 수많은 사람이 바라 마지않을 이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여덟 가지 원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번영의 지붕이 어떻게 세워지고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 위에 안전하게 자리 잡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2장
첫 번째 기둥
에너지
에너지는 모든 성취를 이루는 힘이다. 석탄은 불로 변하고, 물은 증기로 변한다. 이처럼 활력은 가장 평범한 능력을 활성화하고 강화하여 비범한 재능으로 탈바꿈한다. 둔한 사람의 마음에도 활력이 닿으면 여태껏 무기력하게 잠자고 있던 잠재력이 불로 변해 활활 타오를 것이다.
에너지는 도덕적 미덕이며, 이와 반대인 악덕은 게으름이다. 덕은 후천적으로 계발할 수 있고, 게으른 사람도 노력으로 활기찬 사람이 될 수 있다. 게으른 사람은 활력 넘치는 사람에 비해 활력이 거의 전무하다.
게으른 사람이 어떤 일을 어려워서 못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에너지 있는 사람은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다. 게으른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도 활동적인 사람은 이미 상당한 양의 일을 해낸다. 게으른 사람이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적극적인 사람은 박차고 나가 대여섯 번의 기회를 잡고 활용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사이 직접 행동하는 사람이다.
에너지는 일차적인 힘이다. 모든 형태의 행동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에너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온 우주는 끊임없고도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표출되는 공간이다. 에너지는 진정한 생명이며, 에너지 없이는 우주도 생명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행동을 멈추고 몸이 움직이지 않고 모든 기능이 작동을 멈추면 우리는 그가 죽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떤 사람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행동하도록 태어났지, 팔자 좋게 늘어지라고 세상에 내보내진 것이 아니다.
몸의 모든 근육(힘을 쓰기 위한 지렛대)은 게으른 사람을 꾸짖는다. 모든 뼈와 신경은 저항력을 가지고 탄생했다. 모든 기능과 능력은 적절히 사용되기 위해 존재한다. 만물에는 존재 목적이 있고, 그것이 사용됨으로써 완성된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에게는 번영도 행복도 피난처도 휴식도, 심지어 자신이 그토록 탐내는 안락함도 없다. 결국 그는 집 없는 외톨이이며 근심, 걱정, 경멸에 둘러싸인 사람이다. 그래서 “게으른 자가 가장 힘든 일을 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게으른 자는 체계적인 기술을 익히려 하지 않으니 가장 힘든 일을 맡는 결과를 자초한다.
그래도 잘못 쓰인 에너지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에너지보다 낫다. 성 요한은 다음과 같이 강경하게 경고했다.
“네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미지근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해낼 것이다.”
여기서 뜨겁고 차가움의 양극은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에서 변환하는 에너지의 힘을 상징한다.
미지근한 단계는 색깔도 생명도 쓸모도 없다. 이는 덕도 악덕도 아닌, 그저 열매 하나 열리지 않은 공허한 불모지와 같다. 자신의 넘치는 활력을 나쁜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기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바로 그 힘으로 인해 시련, 고통, 슬픔을 자초할 것이다.
대신 그는 이 경험으로 교훈을 얻지 않을 수 없으므로, 결국 자신의 기본적인 행동을 완전히 바꿀 계기로 삼게 된다. 적절한 때가 오면, 즉 그의 정신적 눈이 뜨여 더 나은 목표를 추구하게 되면 그는 방향을 돌려 자신의 능력을 분출할 적절한 새 통로를 만들 것이다.
이후 그는 과거 악한 마음이 강했던 만큼, 선한 마음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위대한 성인으로 거듭난다”라는 옛 격언이 이 진리를 아름답게 구체화한다.
에너지는 힘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고, 나아가 덕을 쌓을 수도 없다. 덕은 단순히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력해도 에너지가 부족해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노력은 너무 미약해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악하지도 않고 일부러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통 실패한 선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해를 끼치려는 의지가 없다고 해서 반드시 선한 사람은 아니며, 그저 약하고 무력한 사람일 뿐이다. 악을 행할 힘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에너지를 선한 방향으로 쓰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진정 선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지간한 정도의 에너지도 없는 사람은 도덕적 힘도 없을 것이다. 동력이 없으면 기계가 돌아가지 않듯이, 에너지가 없으면 잠복해 잠자고 있는 선도 활동을 개시하지 않을 것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관계없이 에너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행동 개시는 군인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영적 스승이 사고 수준과 관계 없이 말과 글로 강조해온 것으로, 사람들에게 잠자는 활력을 일깨우고 당면한 임무를 힘차게 수행하라는 촉구다.
관조와 명상의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명상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것도 잠자는 에너지를 자극하고 현재 주어진 소임을 힘차게 수행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에너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필요하다. 또한 ‘행동’의 교훈은 군인, 기술자, 상인에게 필요한 행동 규칙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구세주, 현자, 성인이 강조해 온 수칙이기도 하다.
한 위대한 스승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깨어 있으라”라는 교훈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지치지 않는 활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이는 판매원에게나 성자에게나 똑같이 유익한 조언이다.
한 스승은 “자유의 대가로 끝없는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자유는 정해진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또 그는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당장 하라. 지금 힘차게 해치워라!”라고도 말했다. 이 조언에 담긴 지혜는 창의적 활동을 할 때나 활력을 적절히 사용할수록 증가하고 발전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 빛을 발한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으려면 우리가 이미 가진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에너지는 오직 그 주인만의 것이며, 그 에너지로 어떤 일에 힘차게 착수하는 사람에게만 힘과 자유가 따라온다.
그러나 에너지가 생산적으로 쓰이려면 좋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함은 물론 신중히 통제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에너지가 낭비되거나 손실되지 않는다는 자연법칙을 가리키는 현대 용어로, 결국 에너지를 활용하려는 사람은 이 원칙에 따라 슬기롭게 일해야 한다.
소음과 재촉은 지나친 에너지 낭비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소음이 극도에 달할수록 대개 성과는 최저가 된다. 말 많은 사람은 행동이 별로 없다. 증기는 빠져나갈 때 큰 소음을 내지, 열심히 작동할 때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총알을 목표 지점까지 내보내는 힘은 조그만 탄약에서 나온다.
자신의 에너지를 보존하고 목표 달성에 집중함으로써 에너지를 강화하는 사람은 이에 반응해 침착하게 고요와 평온을 얻게 된다. 소리 지르기를 곧 힘의 과시로 여기는 것은 큰 착각이다. 허풍 떠는 사람은 어린아이보다 시끄럽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고 보여줄 성과도 없다 보니, 자신이 과거에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큰소리로 떠들어 대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 한다.
“깊은 물은 잔잔히 흐르고” 거대한 우주의 힘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고요한 곳에 가장 강력한 힘이 있다. 고요는 그 사람의 마음이 강하고, 잘 다스려지고, 인내심 있게 단련되었다는 확실한 증표다.
고요한 사람은 자신이 할 일을 알고 그 일에 자신감도 있다. 말수는 적은 대신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는 꼼꼼히 계획을 짜고, 균형이 잘 잡힌 기계처럼 실행에 옮긴다. 또한 먼 길을 내다보고 목표를 향해 곧장 나아간다. 또 고난이라는 적을 친구로 바꾸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한다. 그는 ‘자신을 방해하는 적과 화합하는’ 법을 잘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명한 장군처럼 모든 긴급 상황을 예상해둔다. 한마디로 ‘사전에 준비가 잘된 사람’이다.
그는 심사숙고하며, 자신의 판단력을 믿고 어떤 돌발 상황에도 원인과 방향을 파악할 줄 안다. 결코 놀라거나 서두르는 법도 없다. 뚝심을 한결같이 지키며 자신의 믿음을 확신한다. 당신은 처음에 자신이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곧 당신이 너무 서두르다가 실수하는 바람에 그 사람이 당신을 능가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당신은 고요를 원한다지만 오히려 서두르면서, 그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놓은 덫에 스스로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충동은 그의 신중함과 적수가 되지 못해서 첫 공격에서부터 좌절된다. 당신의 고삐 풀린 에너지는 현명하게 방향 잡힌 그의 집중된 힘을 방해할 수 없다.
그는 ‘모든 면에서 무장’되어 있다. 자기 수양을 통해 정신적 무술을 연마한 그는 반대자와 맞닥뜨려도 반대자가 스스로 무너지게 한다. 누군가가 분노를 가득 담아 그를 꾸짖는다고 치자. 그러면 고요한 사람은 나긋나긋하면서도 뼈 있는 대답으로 응수해 상대의 어리석음을 정확히 꿰뚫을 것이다. 결국 불같이 화를 냈던 상대는 머쓱해져 후회의 잿더미 속으로 숨어버릴 것이다.
한편 누군가가 친한 척하며 상스럽게 접근하면, 고요한 사람은 차분한 반응으로 즉시 상대를 번쩍 정신이 들게 하고 겸연쩍게 할 것이다. 그는 모든 사건에 대비되어 있듯,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준비되어 있다. 하지만 그와 상대할 준비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든 그의 앞에서는 약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고요한 사람은 평온이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면서 단단해진 내면의 힘으로 명령을 내린다.
고요는 나른하게 늘어져 생명력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에너지가 고도로 집중된 상태다. 그 이면에는 사고의 집중이 있다. 동요와 흥분 속에서 정신은 흐트러진다. 흐트러진 정신에는 책임감도 없고, 힘도 무게감도 없다.
까다롭고 신경질적이고 짜증을 잘 내는 사람은 영향력이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끌어당기는 힘이 아닌 밀어내는 힘이 있다. 그는 왜 ‘태평한’ 이웃들이 성공하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는지 의아해하는 한편, 본인은 늘 서두르고 걱정하고 괴로워하면서 그것을 노력으로 착각한다. 그러고는 실패하고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
사실 그의 이웃은 태평하다기보다는 고요한 사람이다. 즉 더 신중하고, 더 많은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줄 알고, 더 침착하고 씩씩한 사람이다. 이것이 그의 성공과 영향력의 비결이다. 고요한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를 직접 통제하고 사용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에너지를 흩뜨리고 남용한다.
이처럼 에너지는 번영이라는 신전의 첫 번째 기둥이며, 활력이 없으면 번영은 있을 수 없다. 에너지가 없다는 것은 역량이 없다는 의미다. 즉 믿음직한 자부심과 독립심이 없다. 실업자 중에는 이렇게 기본 중의 기본인 일할 에너지도 없어 고용주의 눈에 부적격자인 사람이 많다.
하루에 몇 시간씩 길모퉁이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입에 파이프를 꼬나문 채 누군가에게서 맥주 한잔을 얻어 마시기만 기다리는 사람은 취업할 가능성이 희박함은 물론, 들어오는 일자리도 마다할 공산이 크다. 그의 몸은 축 늘어져 있고 마음은 동면에 빠져, 날이 갈수록 더욱 취업 부적격자가 되고 삶을 사는 것 자체가 힘겨워진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은 일시적 실업과 고통의 시기를 겪을 수는 있지만, 영영 실업자로 남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일을 찾거나 자기 일을 시작해 성공할 것이다. 그에게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는 것은 고통이지만 일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실업 상태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은 취업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가 자기 본성을 드러내는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다.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해야 힘든 일을 안 할 수 있을까’다. 별생각 없이 무위도식하는 생활이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다. 이런 사람은 고용주 입장에서 채용 부적격자다.
모든 실업을 부자 탓으로 돌리는 극단적 사회주의자라도 자기 직원이 게으르고 태만하고 도움이 안 된다면 그를 해고해서 실업자 수를 한 명 더 늘리는 데 일조할 것이다. 게으름은 활동적이고 마음이 곧은 사람이면 누구나 싫어하는 저급한 악덕이다.
그러나 에너지는 복합적인 힘이지,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활기찬 성격을 형성하고 번영에 도움이 되는 자질이 포함되어 있다. 에너지는 크게 다음 네 가지로 이루어진다.
• 민첩성
• 경각심
• 근면
• 성실
에너지라는 기둥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그들은 어떤 역경에도 끝까지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설계되었다. 이들은 모두 생명력, 힘, 능력, 자기 발전에 이바지한다.
‘민첩성’은 귀중한 특성으로, 신뢰의 근원이다. 기민하고 민첩하며 시간을 엄수하는 사람은 신뢰를 받는다. 그들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그 일을 힘차고 훌륭하게 완수하는 믿음직한 존재다.
민첩한 고용주는 직원들에게는 활력소가 되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채찍이 된다. 따라서 다른 방법으로는 스스로 기강을 잡지 않을 법한 사람들에게 건전한 훈육 수단이 된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의 기량 향상과 성공을 돕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기량 향상과 성공에도 기여한다.
항상 늑장 부리고 지각을 일삼으며 형식적으로만 일하는 직원은 제 발로 나가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된다. 그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경제적 가치도 거의 없다.
민첩성과 보완 관계에 있는 신중성과 신속성은 번영을 달성하는 데 귀한 도움을 준다. 일반적인 사업 활동에서 의욕적 태도가 비용을 아끼는 힘이라면, 재빠른 행동력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다. 미루기 좋아하는 사람 중에 사업에서 성공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본 적 없지만, 실패한 사람은 많이 보았다.
‘경각심’은 마음의 모든 힘과 능력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격렬하고 파괴적인 요소도 마음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막는 탐지기 역할을 한다. 또한 경각심은 모든 성공, 자유, 지혜의 가까운 동반자이자 보호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마음을 조심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번영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저열한 생각과 요동치는 감정으로 인해 마음이 헝클어지고 품위와 평정심, 판단력을 잃는다. 이런 사람은 경각심이 전혀 없어서 모든 악의 침입자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둔다. 그리고 워낙 약하고 불안정해서 자신을 덮치는 모든 충동에 균형을 잃는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게다가 항상 실패한다. 어리석은 자는 모든 사람에게 폐를 끼치며, 어떤 사회에서도 존경받을 수 없다. 지혜가 힘의 절정이라면, 반대편에 있는 무지는 나약함의 극단이다.
경각심이 없는 사람은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경솔하고 전반적으로 느슨한 것이 특징이다. 경솔은 한마디로 어리석음의 다른 표현이다. 또 많은 실패와 불행을 일으키는 주 원인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 공헌과 자신의 번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사회의 유능한 일원이 되는 것이나 자신의 개인적 번영이나 모두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들의 반응을 통해 자신에게 되돌아올 영향에 무심해서는 안 된다. 경력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뚜렷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어떤 위치에 있든(가족의 일원, 회계사, 설교자, 가게 주인, 교사, 점원으로서든, 혼자 있든 여럿이 있든, 그리고 일할 때든 놀 때든) 자신의 행동이 경력에 좋거나 나쁜 영향을 상당히 미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의 행동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행동을 본 상대방에게 은근히 영향을 미쳐 특정한 인상을 남기고, 그 인상은 서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바로 이 이유로 어떤 사회에서나 예의범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당신이 남에게 불안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정신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당신의 생활이 지장을 받는다고 굳이 거론하거나 알리지 않아도 다 드러난다. 강력한 산성 물질이 최상급 강철을 부식시키듯, 정신적 부식성도 당신의 모든 노력을 잠식하고 행복과 번영을 훼손할 것이다.
반면 당신이 자신감 있고 원만하며 뛰어난 인성을 지니고 있다면,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성격이 어떤지 머리로 이해할 필요 없이 자연히 당신에게 감화받는다. 대개 그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