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금융기관론(banking)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기신용은행, 신한은행을 거쳐 2003년부터 자본시장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다수의 학술연구 및 금융정책 관련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정부의 금융정책 수립 과정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회(금발심) 위원, 금융감독원 원장 자문관,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자본시장분과위원장,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디자인 조아름
늘 힘이 되어주는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은행제도는 한마디로 실패한 제도다. 기원전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은행이 설립되었으나 한결같이 그 끝은 파산으로 귀결되었다. 특정 업종의 기업이 반복해서 파산으로 소멸하는 사례는 인류 역사상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은행의 역사는 곧 위기와 파산의 역사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오죽하면 은행파산을 뜻하는 bankruptcy란 단어가 파산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겠는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은행이 죄다 파산의 길로 들어섰다면 은행제도는 스스로 존속할 수 없는, 즉 애초 극복할 수 없는 결함을 가진 제도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은행은 너무나 건재하다. 아니 건재한 정도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중심부에 우뚝 서 있다. 실제로 은행은 여타 기업을 규모 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 제이피모건체이스 JP Morgan Chase의 자산은 일반기업 중 최대 기업인 아마존 Amazon 자산의 7.4배에 달한다. 영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심지어 중국 최대 은행과 최대 기업의 자산 배율은 무려 15배나 된다. 전 세계 자산 규모 상위 100개 기업 리스트는 온통 은행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다.1 도대체 은행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은행이 이전처럼 소멸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생존하게 된 시점은 길게는 19세기 중반 이후, 짧게는 20세기 중반 이후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지금의 은행제도가 실은 100년 남짓한 제도라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에서는 파산 위기에 몰린 은행을 중앙은행이 구제하는 관행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영국의 모델을 뒤따랐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는 예외 없이 중앙은행을 설립해 은행을 구제하고 있다. 여기에다 예금보험제도, 정부의 지급보증까지 가세해 은행의 파산, 특히 대형은행의 파산은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어떤 기업이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고 제3자의 지원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면 과연 그 기업은 온전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은행산업을 제외한 다른 어떤 산업에서 자신의 경쟁력이 아닌 제3자의 지원에 힘입어 생존하는 경우가 있는가. 왜 은행에만 다른 업종의 기업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이 주어져야 하는가.
여기에는 은행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은행은 너무나 중요한 존재이며 따라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2 그리고 은행이 대체불가능한 존재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은행을 구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은행이 대출을 계속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3
오늘날 사람들은 잦은 은행 구제 혹은 지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은행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대중 사이에서도 자리잡은 것이다. 정책당국과 대부분의 학자도 은행이 필수불가결한 존재인만큼 은행 구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긴다. 2022년 노벨상위원회는 은행의 특수성 및 은행 구제의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학자들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했다.4 은행이 특별하다는 견해가 주류경제학계 내에서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은행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허구적 신화임을 밝히고자 집필되었다. 지난 2000여 년에 걸친 역사가 보여주듯 은행제도는 자생력을 갖지 못한 제도다. 자생력이 없어 진즉 소멸되었어야 할 제도를 특권 부여를 통해 소생시킨 것이 현대의 은행제도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에서 특권의 부여는 항상 왜곡을 낳는다. 이는 은행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태생적 결함으로 소멸되었어야 할 은행제도를 인위적으로 부활시킨 결과 수많은 부작용과 모순이 속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채의 누증이다.
1980년 74% vs 2020년 147%. 이 수치는 GDP에 대비한 민간 부문 대출(=민간 부문 대출/GDP)의 전 세계 평균값이다.5 여기서 민간 부문 대출은 금융기관이 민간 기업 및 가계에 제공한 대출 총량으로, 이를 차입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다름 아닌 부채 총량에 해당한다. 그리고 분모인 GDP는 한 해 동안 생산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산출물의 총량으로, 실물경제의 크기 혹은 역량을 반영한다. 결국 위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지난 40여 년간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민간 부채는 실물경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대출을 만들어내는 은행을 인위적으로 구제하고 지원함에 따라 대출이 끊임없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민간 기업과 가계의 부채는 매년 역사적 고점을 경신하고 있다.6
실물경제 크기를 넘어서는 과도한 부채는 좀비기업의 양산을 통해 경제를 만성적 저성장으로 이끈다. 주요국 상장기업 중 좀비기업 비중은 1980년대 말 4%에서 2017년 15%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7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에 계속해서 대출이 공급되면서 소중한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좀비기업으로 인해 멀쩡한 기업까지 부가가치 창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이다.
가계는 또 어떤가. 부채를 상환하는 재원은 소득이다. 그런데 소득보다 부채가 훨씬 빨리 늘어난 결과, 소득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로 생활 수준 유지에 필수적인 소비마저 위협받고 있다. 실물경제가 성장할 리 만무하다.
실물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자산시장은 가히 폭발 수준이다. 실물경제를 넘어서는 대출은 자산시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1990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GDP는 3.9배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미국 주가는 13.6배 상승했다. 주택시장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대출의 폭발적 증가에 동반한 자산시장 버블은 오늘날 전 세계적 일상이 되었다.
자산시장 붐은 심각한 부작용을 양산한다. 1989~2019년 기간 미국 하위 50% 가계의 순자산(자산-부채)은 65% 증가한 반면 상위 10% 가계의 순자산은 240% 증가했다.8 우리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은 오직 실물경제의 생산 능력 확대이다. 그런데 삶의 질 개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산가격 상승으로 인해 가진 자와 없는 자, 장년층과 젊은 세대 간에 건널 수 없는 경제적 협곡이 생겨나고 있다.
경제 양극화는 사회 및 정치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진영화된 채 대립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오늘날 많은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ideology을 자신의 정체성identity과 동일시한다. 그 결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 이웃해서 살거나 함께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9 이쯤이면 거의 전쟁에 맞먹는 분열상이다. 이 틈을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렇다고 정치인을 탓해 봤자 소용없다. 이들이 활개 칠 토양을 제공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부채 양산을 통해 양극화를 심화시킨 지금의 은행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오늘날의 과도한 부채, 만성적 저성장, 자산시장 버블, 경제 및 정치의 양극화, 기후변화 등 현대사회의 수많은 부작용의 근저에 현대 은행제도가 자리하고 있음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은행의 특수성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이 실은 은행의 원초적 불법성을 이론적으로 합리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현대 은행제도의 원초적 불법성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을 소개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대안이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 은행제도의 모순을 간파한 선대 학자들의 생각들, 그러나 현대 주류경제학에 밀려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생각들을 나름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책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가급적 빠뜨리지 않으려고 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은행의 역사, 현대 은행 이론, 은행 위기, 은행 규제 등 은행 혹은 금융과 관련한 다양한 내용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은행 역사와 은행 이론 설명에 많은 신경을 썼다. 우선, 장구한 세월에 걸친 은행 역사를 긴 호흡으로 바라볼 때 지금의 문제를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이론도 마찬가지다. 은행에 대한 주류적 시각이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이해할 때 이들 시각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은행 이론이라고 해서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최대한 수식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만큼, 독자들이 현대 은행제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미 정상과학normal science10의 지위를 차지한 현대 은행제도를 개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 은행제도의 수명이 다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나아가 불합리한 은행제도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부작용으로 인해 우리 경제 및 사회 시스템은 이미 지속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은행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은행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최대한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전문가 그룹도 포함된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소수의 전문가 그룹이 아닌 광범위한 대중의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만큼 대학 학부 수준의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공 불문하고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필자의 글솜씨 부족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은행제도 개혁의 필요성 및 방향성을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서설이 길었다. 이제 독자들은 나와 함께 현대 은행의 기원으로 간주되는 17세기 중반 런던의 금장goldsmith부터 서둘러 만나보기로 하자.
— 2024년 3월, 신보성
1장
런던탑에 위치한 왕립주화청Royal Mint은 금화, 은화 등 주화를 제작하는 곳이었다. 주화청은 순금specie 및 도금제품plate의 보관소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었다. 주화청을 보관소로 이용하던 고객은 주로 런던의 상인들이었다.
1640년 찰스1세CharlesⅠ는 왕립주화청에 보관된 20만 파운드 상당의 주화coin와 금괴bullion를 징발했다. 상인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 사건은 왕의 자문기구인 추밀원Privy Council에서 논의될 정도로 쟁점이 되었다. 궁지에 몰린 찰스1세는 우여곡절 끝에 징발한 금을 모두 돌려주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왕립주화청이 갖고 있던 보관소로서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다.1 상인들은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안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찾아낸 대안은 금장goldsmith이었다.2
본래 금장은 도금제품plate이나 보석jewelry을 제조해서 판매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금장에게는 안전하고 튼튼한 금고가 있었다. 금고는 제품의 원재료인 귀금속이나 판매되기 전의 완제품(재고)을 보관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튼튼한 금고를 가진 금장이 왕립주화청을 대체할 후보가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만약 고대나 중세였다면 신전이나 교회, 수도원이 보관소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신적인 권위에 더해 토지를 비롯한 상당한 재산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재산에 힘입어 자체 군사력도 갖추고 있었다. 신적 권위와 군사력, 이 둘은 귀금속의 안전한 보관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성당기사단Knights Templar이 안전한 보관소가 되었던 것도 신적 권위와 군사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17세기 런던의 사정은 달랐다. 교회와 수도원의 신적 권위는 종교개혁으로 이미 약화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약 100년 전 튜더왕조의 헨리8세는 수도원을 해산하고 이들이 가진 토지를 몰수했다. 몰수한 토지 규모는 당시 잉글랜드 토지의 30%를 초과했다.3 교회와 수도원은 신성과 재력(군사력)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고 따라서 상인들이 원하는 보관소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금장이 새로운 보관소로 부상하면서, 오랜 기간 상거래를 통해 평판을 얻은 금장에게 주화와 금괴 보관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642년 찰스1세의 왕당파와 크롬웰의 의회파 간에 벌어진 전쟁은 금장의 보관 물량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왕립주화청 탈취 사건 직후까지만 해도 일부 상인은 주화와 금괴를 금장이 아닌 자신의 집에 보관했다. 그런데 전쟁 발발로 하인이나 도제가 군대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주화와 금괴를 훔쳐가는 일이 잦았다.5 도난을 당하지 않은 상인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인과 도제의 군입대로 주화와 금괴를 관리할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6 이러한 가운데 10년 가까이 내전이 계속되자 자신의 집에 주화와 금괴를 보관하던 상인들도 금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안전한 보관소로서의 금장의 지위는 점차 강화되었다. 찰스1세의 처형과 크롬웰의 집권으로 내전이 종식된 시점에 이르자, 런던 시내 주화와 귀금속의 상당 부분은 금장의 손에 넘어갔다.
17세기 중반, 런던은 유럽과 나머지 세계를 잇는 수출입항으로 부상했고 이에 따라 상업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7 당시 잉글랜드는 이미 농업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상업 중심 사회로 전환한 상태였다. 18세기가 시작될 무렵 성인 근로자 중 농업에 종사한 인구 비율이 25%도 안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8 게다가 런던은 당시 유럽에서 인구 20만을 넘는 유일한 도시로 시장 규모 면에서도 다른 곳을 압도했다. 그 결과 유럽대륙은 물론 잉글랜드 내 다른 도시로부터 많은 자금이 유입되고 있었다.9
문제는 주화의 품질이었다. 당시 런던의 주화는 한 세기 전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부터 채택한 은화였다.10 그런데 이 은화의 질이 가관이었다. 불순물이 잔뜩 섞여 있거나, 간혹 순도가 높은 경우에도 사람들이 티 안 나게 조금씩 가장자리를 깎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탓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인 중 누구도 선뜻 은화를 받고 물건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11 저질 주화 때문에 상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판이었다.
골드스미스컴퍼니Goldsmiths’ Company로 알려진 금장길드는 1327년 왕실의 면허장을 받았다.12 이후 금장길드에게는 왕립주화청이 주조한 주화는 물론 외국 주화의 품질을 검사assay(시금)하는 특권이 주어졌다.13 이런 점에서 17세기 중반의 금장은 이미 오랜 기간 시금의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였다. 시금의 전문성과 평판이 없었다면 애초 금장이 주화와 귀금속의 새로운 보관자가 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화와 귀금속을 맡긴 사람은 증빙서류(보관증)를 받는데 이 보관증에는 맡긴 주화와 귀금속의 품질과 수량이 기재된다. 만약 보관업자의 시금능력을 믿을 수 없다면, 보관업자가 발급하는 보관증을 받고 자신의 귀한 재산을 맡기려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한 상인이 면직물을 판매한 대가로 금화 10파운드를 받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상인 입장에서 구매자가 직접 가져온 금화는 품질을 신뢰할 수 없다. 특히나 구매자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 아니라면 이 금화를 받는 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구매자가 금화 10파운드 이상의 금액이 적힌 금장의 보관증을 보여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보관증은 품질이 확인된 금화가 구매자 명의로 금장에게 보관되어 있음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제 구매자는 상인을 데리고 금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보관한 금화 중 10파운드를 인출해 상인에게 내주면 그걸로 거래는 성사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주화가 금장에 보관되어 있을 때 상거래가 한결 수월해짐을 인식하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점점 더 많은 주화와 귀금속을 금장에게 들고 왔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보관업자로의 변신이 금장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앞서 예로 든 면직물 상인을 생각해보자. 이 상인은 면직물 구매자가 지불한 금화 10파운드를 받아 자신이 거래하는 금장에 보관했다. 그런데 재고가 바닥나 면직물 제조업자로부터 추가로 물건을 들여와야 했다. 이를 위해 상인은 금화를 인출하여 면직물 제조업자에게 넘긴다. 그러면 제조업자는 이 금화를 다시 금장에게 보관하고, 나중에 면직물 제조에 필요한 면화를 구입할 때 금을 인출하여 지불한다. 이처럼 시장에서 상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금장의 금고에서 금화가 들락날락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던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금장의 금고에서 주화를 넣었다 뺐다 하는 대신 보관증을 주고받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선 물건을 사는 사람은 주화 대신 보관증으로 지불하기를 선호한다. 금장을 찾아가 주화를 인출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구매자로부터 주화를 받을 경우 주화 품질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한다. 반면 금장의 보관증은 시금 과정을 거친 후 발행되었다는 점에서 주화 품질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판매대금으로 받은 보관증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보관증에 적힌 순도와 수량에 해당하는 주화를 찾을 수 있다. 굳이 주화를 직접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제 상거래를 위한 주화나 귀금속의 인출 빈도는 이전보다 훨씬 줄었다. 한번 맡겨진 주화나 귀금속은 금장의 금고에 오랜 기간 인출되지 않은 채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 물건을 사고팔 때 금장의 보관증이 지불수단이 되어 유통되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처음에는 보관증에 이름이 적힌 사람만 주화나 귀금속을 인출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배서(보관증 뒷면에 보관증 수령자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보관증을 유통했다.15 하지만 보관증 수수 관행이 정착되자, 금장은 보관증을 소지한 자라면 누구에게나 주화나 귀금속을 내어주었다(소지자 지급식). 소지자 지급식이 되면서 보관증은 오늘날의 지폐와 같은 편의성을 제공했다. 보관증의 단순한 양도만으로 자금이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금의 소유권 이전이 보관증의 물리적 이동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보관증이 소지자 지급식으로 바뀌면서 큰 금액의 보관증을 소지하는 데는 위험이 따랐다. 이 때문에 보관증 수수에 의한 자금의 소유권 이전transfer by bearer은 주로 소액의 상거래, 금전거래에 사용되었다. 반면 금액이 큰 금전의 소유권 이전은 금장의 장부상 명의를 바꾸는 방식transfer by order으로 이루어졌다.16 앞에서 예로 든 면직물 구매자의 경우, 금장 장부에 기록된 자신의 자금에서 10파운드만큼을 면직물 상인의 명의로 바꿔달라고 금장에게 지시order하는 방식이다.
오늘날 여러 금융회사 중 은행만이 수행하는 업무, 즉 은행의 고유 업무는 예금수취 업무deposit taking와 지급결제 업무payment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업무는 과거 금장이 했던 일과 다를 바 없다. 우선 주화나 귀금속을 받고 보관증을 써주는 행위는 오늘날 은행의 예금수취 업무에 해당한다. 그리고 금장 시절 보관증을 주고받거나 장부상 명의 변경을 통해 주화와 귀금속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은 현대 은행의 지급결제 업무와 정확히 일치한다. 오늘날 물건을 사고팔면서 은행 계좌의 예금을 주고받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이처럼 현대 은행의 핵심 업무는 외양만 약간 다를 뿐, 이미 17세기 런던의 금장에 의해 똑같이 행해지고 있었다.
금장은 뜻하지 않게 보관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보관업에 지급결제라는 신규 업무가 추가되었다. 금장은 자신의 지경을 한 단계 더 확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예금수취와 지급결제는 현대 은행으로 나아가는 시작일 뿐, 금장 앞에는 변신을 위한 또다른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금장은 뜻밖의 방문을 받는다. 방문자는 면직물 상인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면직물 상인이 금장에 맡긴 금은 20파운드인데, 면직물 재고 구입에 필요한 금액은 30파운드였다. 10파운드만큼 자금이 부족했다. 상인은 혹시 20파운드가 아닌 30파운드짜리 보관증을 써줄 수 있는지 물었다. 10파운드만큼의 가짜 보관증을 발급해달라는 것이었다. 오늘날에 비유하면 예금할 돈도 없으면서 은행에 10파운드의 가짜 예금통장을 만들어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장은 망설였다. 보관증 유통이 대세가 되어 주화와 귀금속이 인출되는 일은 드물었다. 따라서 보관 금을 초과하는 가짜 보관증을 쓴다고 해서 고객의 인출 요구에 대응하지 못할 염려는 없었다. 금장이 염려한 건 자신의 평판이었다. 자칫 사실이 누설되기라도 하면 보관업자로서의 평판은 산산이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관을 의뢰한 다른 고객들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형사처벌에 직면해 교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면직물 상인은 금장의 오랜 단골이었다. 그리고 면직물 재고를 판매하면 그 대금을 즉각 금장에 보관해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믿을 만한 자였다. 금장은 신뢰할 만한 단골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웠다. 결국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30파운드짜리 보관증을 발급했다.
다행히 상인이 제조업자로부터 구입한 면직물은 곧 판매되었고, 상인은 판매대금 30파운드를 금장에게 예치했다. 금장이 발급해준 30파운드 보관증에 해당하는 자금이 입금되었으니 가짜 보관증 발급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지나갔다. 금장과 상인 둘만 입을 다물면 앞으로도 문제가 될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짜 보관증을 발급해준 대가로 면직물 상인은 금장에게 약간의 수수료를 지불했다. 결과적으로 금장과 면직물 상인 모두가 만족했다. 자신이 받은 보관증이 가짜인지도 모르고 면직물을 넘긴 제조업자도 만족하긴 마찬가지였다. 면직물 상인과 금장이 공모한 사기행각 덕분에 모두가 행복한 아이러니가 벌어진 셈이다.
여기서 가짜 보관증의 성격을 좀더 살펴보자. 예나 지금이나 물건을 구입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지불수단이 부족한 경우는 허다하다. 수확물 판매대금이 한 달 후에 들어오는 관계로 당장 옷 살 돈이 부족한 농부, 원재료 구입에 필요한 돈이 부족한 수공업자 등 사례는 넘쳐난다. 일시적으로 지불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 화폐의 지위를 가진 금장의 보관증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필요한 물건을 즉시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금장에게 금을 맡기지 않고도 보관증을 발급받는다는 것은, 애초에 지불수단이 없던 사람이 금장으로부터 차입을 통해 지불수단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가공의 보관증 발행은 상거래에 수반되는 지급결제 업무를 원활히 하기 위해 금장이 제공한 대출에 해당한다. 오늘날 여러분이 은행에 가서 대출받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은행의 대출승인이 이루어지면 여러분의 계좌에 예금이 생겨나고, 이 예금으로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다. 금장이 금을 받지도 않고 보관증을 발급해주는 것과 은행이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고 예금통장에 금액을 기록해주는 것, 이 둘은 정확히 동일한 행위이다.
(그림 1-3) 보관증 초과 발행overdraft=대출
금장은 가공의 보관증 발행을 통해 이익을 얻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말이 새나가지 않도록 단골 고객을 중심으로 상거래와 관련한 지급결제에 한해 가짜 보관증을 발급했다.
이러한 점에서 가짜 보관증 발급은 앞서 금장이 취급하던 지급결제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17
가짜 보관증 발급은 소지자에게 실제 예치금보다 많은 금액의 인출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당좌대출overdraft이라고 한다. 금장의 당좌대출은 기존 예금계좌에서 예금액을 초과하는 인출을 허용하는 오늘날의 마이너스 예금통장과 같은 것이다.
보관증 초과 발행에도 불구하고 인출되는 금의 양이 늘어날 기미는 없었다. 그리고 기존 거래 고객인 상인들은 신용도가 높은 사람이라 판매대금이 들어오는 즉시 당좌대출을 갚았다. 대출이자도 속속 들어왔다.
대출이자 수입은 기존에 금장이 얻는 수입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때까지 금장의 수입은 귀금속 가공판매 수입(세공업자 수입)과 약간의 보관수수료, 이체수수료(보관업자 수입)가 전부였다. 그리고 세공업의 경우 원재료 구입비, 세공비, 판매비 등 많은 비용이 투입되었다. 보관업에도 금고 확장, 장부 관리 등에 비용이 수반되었다.
당좌대출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보관증에 금액만 조금 높게 써주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비용이 들겠는가. 가짜 보관증을 써주고 받는 대출이자는 아무런 비용 투입 없이 얻는 일종의 횡재였다. 숫자만 쓰면 하늘에서 이익이 떨어졌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냥저냥 따분한 업무와 수입에 만족하며 살던 금장의 눈앞에 신천지가 펼쳐졌다.
금장은 서둘러 보관장부를 펼쳤다. 밤을 꼬박 새워 보관증 발행금액과 실제 인출되는 금액의 비율을 몇 번이고 살폈다. 시기에 따라 들쑥날쑥하긴 해도 평균적으로 고객이 맡긴 금의 10%만 실제로 인출되었다. 금장이 발행한 보관증 중 90%는 자신에게 제시되지 않은 채 상거래를 위해 시장에서 유통되거나 아니면 개인이 집에 두고 있는 셈이었다. 이는 보관증 발행액의 10%에 해당하는 금만 갖고 있어도 고객들의 인출 요구에 대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금장은 자신이 실제 보관하는 금의 10배에 해당하는 보관증을 발행해도 별 탈이 없다는 뜻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앞으로 쏟아져 들어올 엄청난 대출이자 수입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느덧 보관증 초과 발행이 발각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사라지고 탐욕이 똬리를 틀었다.
금장의 보관증은, 그것이 진짜든 가짜든 받는 사람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가짜 보관증도 지불수단으로 유통되어 상거래에 널리 수용된다. 이는 진짜 보관증은 물론 가짜 보관증도 통화(화폐)의 지위를 누림을 뜻한다. 여기서 진짜 보관증 금액은 실제 보관 금의 대체물이므로 본원통화base money; primary money라고 부르며, 가짜 보관증 금액은 보관 금을 기초로 추가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파생통화derivative money; secondary money라고 부른다.
(그림 1-4) 금장 시절 본원통화와 통화량
(그림 1-4)에서 본원통화는 10, 파생통화는 90이다. 실제 금 10을 근거로 통화량을 100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본원통화 10은 보관증 소지자들(즉 예금자들)이 금으로 인출할 것에 대비해 금장이 금고에 보관하는 지급준비금reserve에 해당한다. 총발행 보관증(총예금)의 일부에 해당하는 금액만큼만 준비금으로 보관한다는 점에서 부분준비제도fractional reserve system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그리고 총예금 대비 준비금 비율(=준비금/총예금=10%)을 지급준비율reserve ratio이라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당시 지급준비율은 대략 10~33% 범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18
오늘날 금은 더이상 화폐로 통용되지 않는다. 대신 정부가 지정한 화폐가 본원통화가 되어 지불수단으로 통용된다. 이를 법화fiat money라고 한다. 금처럼 사용가치가 있어서 화폐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화폐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금은 자발적 화폐, 법화는 강제적 화폐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오늘날 은행은 금장과 마찬가지로 진짜 돈, 즉 본원통화를 바탕으로 그 몇 배에 해당하는 통화량을 만들어낸다. 본원통화가 주어지면 파생통화는 승수적으로 증가한다. 승수적 증가란 본원통화가 1만큼 늘어날 때 파생통화는 1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체 통화량에서 본원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에 불과하다.19 전체 통화량이 본원통화량을 압도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는 은행이 대출을 통해서 가공의 예금을 만들어내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대출을 통해 늘어난 가공의 예금은 지불수단으로서 진짜 돈처럼 널리 통용된다. 대출을 통해 부풀려진 예금이 지불수단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은 예금자가 은행에 가서 요구하면 언제든지on demand 본원통화인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금장 시절 가공의 보관증이 지불수단, 즉 통화량에 포함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가공의 보관증이어도 이를 금장에게 제시하는 즉시 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지불수단으로 수용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원통화와 달리 파생통화는 그릇된 믿음 위에서만 존재하는 조건부 통화인 셈이다.
대출을 통해 예금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을 납득하기 어려운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은행이 예금을 받아 그 돈을 대출해준다고 알고 있다. 심지어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설명한다.
교과서의 설명은 이렇다. 금장에게 금 10이 최초로 보관되면 보관의뢰자 명의의 예금이 금 10만큼 장부에 기록된다(예금+10). 금장은 예금 10에서 지급준비금 1(지급준비율 10%로 가정)을 제외한 9의 금을 대출한다. 그러면 차입자는 대출로 생긴 금 9를 인출하여 상인으로부터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지불한다. 상인은 이 금을 그대로 금장에 맡기며, 그 결과 상인 명의의 예금 9가 생긴다(예금+9). 금장은 예치된 금 9에서 지급준비금 0.9를 제한 8.1을 대출한다. 그리고 이 차입자는 금 8.1을 인출하여 또다른 상인에게 지불한다. 이 상인은 물건 대금으로 받은 금 8.1을 금장에 예금한다(예금+8.1)…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금장의 금고에는 금 10이 지급준비금으로 보관되고 총예금은 10+9+8.1+…=100이 된다.20 여기서 총예금 100과 지급준비금 10의 차이는 대출 90과 정확히 동일하다.
위 설명에 따르면 최초로 금이 유입(예금)되고 난 후 첫 대출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출된 금을 상거래 대가로 받은 사람이 이 금을 다시 금장에 예금하고 난 후, 그다음 단계의 대출이 이루어진다. 즉, 대출이 이루어지려면 언제나 예금(금장 입장에서 차입)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금 10이 최초 예치되면 금장은 10만큼 대출한다. 하지만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것은 딱 여기까지다. 그리고 교과서 설명과 달리 대출 과정에서 금이 인출되는 일은 거의 없다. 금장의 보관증(예금)이 지불수단으로 통용되기에 차입자는 금이 아닌 보관증을 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출로 금이 인출되고 인출된 금이 다시 예금으로 유입되길 반복하는, 교과서상의 복잡한 과정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은행은 그냥 대출을 통해 최초 금 10의 몇 배에 달하는 가짜 보관증(예금)을 뚝딱 만들어낼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은행이 예금으로 받은 돈을 대출한다는 생각은 은행제도를 잘못 이해하는 것misconception이다.21 대출을 통해 허공에서ex nihilo 예금을 창출해낸다는 점이야말로 부분준비제도의 정수에 해당한다.
금융경제학에서 신용credit은 대출loan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대출의 결과 부채debt가 생성되는데, 대출과 부채는 자금제공자와 자금차입자가 동일한 대상을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신용과 대출, 부채는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현대 금융 이론에서는 은행을 신용중개기관credit intermediary이라고 부른다. 이는 자금제공자로부터 자금을 차입한 후 이 자금을 대출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애초 신용의 공급자는 예금자인데, 은행이 중간에 중개자intermediary로 개입하여 차입자에게 신용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출이 예금에 선행하여 이루어진다는 현실을 생각할 때 중개기관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다. 최초의 대출은 예금이 먼저 유입된 다음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은행을 중개기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훨씬 규모가 큰 나머지 대부분의 대출은 예금 유입 없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은행을 신용중개기관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신용창출기관credit creation institution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림 1-5 참고)
(그림 1-5) 신용중개와 신용창출
(그림 1-6a)
은행의 신용중개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A라는 차입자에게 은행이 1만 파운드를 대출하면 A의 예금계좌에 1만 파운드가 생겨난다. 그리고 차입자와 예금자는 모두 A로 동일한 사람이다. (그림 1-6a).
대출 시점에서 은행은 중개기관intermediary이 아니다. 늘어난 A의 예금 1만 파운드는 누군가가 돈(본원통화)을 갖고 와서 은행에 빌려준 것이 아니며, 단지 은행이 대출을 통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편, A는 대출로 생겨난 예금 1만 파운드를 그대로 둘 리 만무하다.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를 사거나 소비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대출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A가 생산자라면 원재료를 구입하고 예금 1만 파운드를 그 원재료를 공급한 B에게 넘길 것이다 (그림 1-6b).
(그림 1-6b)
만약 B가 늘어난 예금을 현금으로 인출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금장 시절과 마찬가지로 현금으로 인출하는 경우는 지금도 드물다), 결과적으로 A에 대한 대출은 B의 예금에 의해 지지되는 셈이다.22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B가 은행을 신뢰하여 1만 파운드를 먼저 빌려주고(예금), 은행은 이를 신뢰할 만한 A에게 전달하는 신용의 중개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경제학 교과서나 대부분의 학자가 은행을 중개기관으로 부르는 관행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은행의 중개행위는 대출로 만들어진 예금이 사후에 현금으로 인출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사후적 중개행위, 결과적 중개행위이다. 먼저 돈을 빌린 다음, 이 돈으로 대출을 제공하는 순수한 의미의 중개행위와는 명백히 구별된다. 은행이 단순히 신용을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을 창출한다는 사실은 상당한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살펴보게 될 것이다.
금장은 기존 예금 고객을 중심으로 당좌대출을 늘려갔다. 이에 따라 금장의 수중에 떨어지는 이익도 비례해서 늘어났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러한 이익 증가 추세는 한풀 꺾인다. 기존 예금 고객에 대한 당좌대출만으로는 보관 금의 10배까지 대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장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탐욕이 이러한 고민을 덮어버렸다. 처음 가짜 보관증을 발행할 때도 얼마나 두려웠던가.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쏠쏠한 대출이자가 들어오고 있지 않는가. 이제 금장은 기존 예금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까지 가짜 보관증을 발급하려는 각오를 다진다. 당좌대출을 넘어 일반대출로 판을 키울 심산이었다. 금장의 구상이 성사된다면 앞으로 거둬들일 이익은 실로 막대했다. 그러나 기존 고객이 아닌 생판 모르는 고객에게까지 대출을 확장하려면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보의 강이었다.
2장
거래관계가 전혀 없는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입자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대출자(대출 제공자)와 차입자 간의 이러한 정보격차를 두고 양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이 존재한다고 한다.
정보 비대칭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정보 비대칭의 첫번째 측면은 감추어진 유형hidden type과 관련한 것이다. 이는 차입자가 능력은 있는지, 그가 추진하려는 사업의 전망은 괜찮은지 등에 대한 정보이다. 이러한 정보가 부족할 경우 대출자는 차입자를 잘못 선택함으로써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를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고 한다.
역선택은 대출시장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고차 구매자와 판매자, 생명보험회사와 보험 가입자, 기업과 취업희망자 간에도 역선택 위험은 상존한다. 전자는 후자보다 관련 정보relevant information를 덜 갖고 있는데, 여기서 관련 정보라 함은 중고차의 품질, 보험 가입자의 건강 및 생활 습관, 취업희망자의 능력과 인성 등이다.1
역선택을 막기 위해 대출자가 동원하는 기술은 선별screening이다. 선별이란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정보를 가진 사람들을 서로 다른 유형으로 분류하기 위해 취하는 행동을 말한다.2 차입자의 능력, 경력, 주변의 평판, 그리고 차입자가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의 내용과 전망 등을 세밀히 조사함으로써 애초 상환 가능성이 낮은 차입자를 걸러내는 작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선별에 많은 자원이 투입될수록 차입자 유형에 대한 감추어진 정보들이 더 많이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금장이 대출고객을 확대하려면 선별은 필수적이다.
정보 비대칭의 두번째 측면은 감추어진 행동hidden action에 관한 것이다. 대출자는 차입자가 돈을 빌린 후에 대출금을 갚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출자의 기대와 달리 차입자는 딴생각을 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차입 신청 시점에서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돈을 빌린 후에는 성공 확률은 낮지만 성공시 큰 수익을 내는 프로젝트를 선택할 수 있다. 안정적 프로젝트를 통해 고만고만한 수익이 날 경우 수익의 대부분을 원금상환과 이자로 대출자에게 지불해야 하나, 비록 확률은 낮지만 대박이 날 경우 원금과 이자를 주고도 상당한 몫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차입자가 열심히 사업은 하지 않고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사업과 무관한 주식투자에 열중하는 것도 대출자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다.
차입자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에 따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자신이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입자가 위험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실패할 경우 이로 인한 경제적 비용의 대부분은 대출자가 부담한다. 차입자가 대출금을 유흥비로 탕진하는 것도 자신의 기쁨을 위해 대출자에게 손실을 입히는 행동이다. 이처럼 특정 행위(고위험 프로젝트 추구, 차입금 유용)의 결과로 이익을 얻는 사람(차입자)과 동행위에 따른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대출자)이 일치하지 않음에 따라 해당 행위가 조장되는 경우를 모럴해저드moral hazard라고 한다.3
본래 해저드는 보험 용어로서 손실 가능성을 야기하거나 높이는 조건, 즉 위험 요소를 말한다.4 해저드 중에서 물적해저드physical hazard는 물적 위험 요소로서 빙판길(자동차 사고확률을 높임), 배선 결함(화재위험을 높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모럴해저드는 보험 가입 후에 나타나는 사람의 행동 변화와 관련 있다. 자동차보험 가입 후 이전보다 운전을 난폭하게 하거나, 건강보험 가입 후 쓸데없이 병원을 자주 찾는 행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행동 변화에 따른 혜택은 자신이 누리고 그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험사의 손실을 초래하는 것이 물적 위험 요소가 아니라 보험 가입자의 심리적 위험 요소라는 점에서 모럴해저드라는 용어가 붙었다.
(그림 2-1) 정보 비대칭의 분류, 문제, 해결 기술
금장이 본격적으로 대출고객을 확장하려면 앞서 언급한 역선택뿐만 아니라 차입자의 모럴해저드를 방지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차입자가 대출을 받은 후에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원하는 기술은 감시monitoring이다. 대출자가 차입자에게 대출을 제공한 후, 차입자가 대출자의 이해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래 약속한 안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지, 실제 사업에 필요한 기계와 재고는 있는지, 주요 거래처와의 거래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된다.
선별과 감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 고객을 넘어 신규 고객에게도 대출을 확대하려면 선별과 감시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해야만 한다. 이러한 비용은 차입자 정보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으로 정보비용information cost이라고 한다. 그런데 금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비용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유리한 위치를 이미 점하고 있었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기존의 뉴커먼 증기기관Thomas Newcomen’s steam engine을 효율적으로 개선할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와트가 시제품을 개발하려면 1,000파운드를 빌려야 했다. 물론 1,000파운드 차입 얘기는 철저하게 허구이다. 당시 와트에게는 매튜 볼턴Matthew Boulton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 자금제공은 물론 시제품 개발도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다. 와트와 짝을 이룬 볼턴의 모습은 50파운드짜리 지폐에도 등장한다.
아무튼, 뿔뿔이 흩어진 100명의 개인이 마침 10파운드씩을 여유자금으로 갖고 있다고 하자. 여유자금을 다 모으면 와트의 대출수요가 충족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100명의 개인이 자신의 여유자금을 덜컥 내놓기는 쉽지 않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와트에게 섣불리 대출했다간 역선택과 모럴해저드로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실을 방지하려면 정보생산이 필요하다.
정보생산에 1파운드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하자. 와트에게 돈을 빌려주는 개인의 입장에서 정보비용 1파운드는 자신이 제공하는 대출금 10파운드의 10%에 달한다. 이는 대출금리가 10%를 넘지 않는 한 정보비용을 제하고 나면 대출원금도 못 건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당시 대출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금리는 5%에 불과했다.5 당연히 누구도 대출하려 들지 않아 와트의 증기기관 개량 작업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이자율 규제가 없어, 예를 들어 15%의 대출금리를 받을 수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개별 대출자 입장에서 정보비용 10%를 부담하더라도 5%의 이익을 낼 수 있으니 대출에 나서지 않을까.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와트에 대한 정보는 100명의 대출자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대출자가 정보생산에 나서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누군가 한 명이 정보비용을 지출할 경우, 나머지 99명의 대출자가 정보비용을 중복으로 지출한다고 해서 선별과 감시의 효과가 배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눈치 빠른 대출자들이 모를 리 없다. 이제 모든 대출자는 서로에게 정보비용 지출 부담을 떠넘기고, 자신은 다른 대출자의 선별과 감시에 편승하려는 무임승차 문제free-rider problem가 발생한다.6 그런데 아무도 정보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대출은 손실로 귀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인지한 대출자들은 애초에 대출 자체를 기피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금장이 개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100명의 개인이 금장을 대리인으로 세워 와트에 대한 정보생산을 전적으로 위임delegation한다고 하자. 이제 정보생산자가 금장 1인으로 압축됨에 따라 무임승차 문제는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정보비용의 크기도 극적으로 감소한다. 정보비용 1파운드는 와트에 대한 대출금 1,000파운드의 0.1%에 불과하다. 100명의 개인이 금장을 대출 위임자delegated lender로 내세움에 따라 각 개인이 부담하는 정보비용은 당초의 1/100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이다.7
(그림 2-2b)에서 예금자 수가 늘어날수록 금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울 때 얻는 정보비용 절감 효과는 더 커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행히 금장은 이러한 정보비용 절감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보관업자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힌 탓에 이미 광범위한 예금자 풀pool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2-2a) 개인이 와트에게 직접 대출
(그림 2-2b) 금장이 대리인으로서 와트에게 대출
나아가 금장이 부담하는 실제 정보비용은 1파운드에도 훨씬 못 미칠 개연성이 크다. 금장이 대출 업무를 거듭함에 따라 차입자를 평가하고 감시하는 전문성이 강화된다. 이는 정보생산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정보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한번 생산한 정보를 재사용할 수 있는 점도 정보생산의 효율성을 높인다. 특정 업종에 속한 한 차입자에 대한 정보는 동일 업종의 또다른 차입자를 심사하는 데에도 유용하다cross sectional reusability.8 또한 특정 차입자에 대해 과거에 조사했던 내용들은 훗날 해당 차입자가 다시 대출을 신청할 경우 재사용될 수 있다intertemporal reusability.9 결국 금장의 대출 네트워크에 포함되는 차입자 수가 늘어날수록, 그리고 금장의 활동기간이 길어질수록 정보재사용 잠재력은 커지고, 그 결과 금장이 차입자 한 명당 부담하는 정보비용은 1파운드보다 훨씬 낮아지는 것이다.
위의 논의는 먼저 돈을 차입한 후 그 돈을 대출하는 순수 중개기관에 더 적합한 설명이지만, 이러한 설명을 은행에 적용해도 무리는 없다. 비록 은행의 중개행위가 사후적, 결과적 중개행위에 해당하지만, 대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점에서는 순수 중개기관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금장은 그냥 와트에 대한 정보생산만 담당하면 어떨까. 즉, 금장은 정보생산 전문가로서 차입자에 대한 정보생산에만 특화하고, 대출에 따른 성과는 예금자에게 귀속시키면 안 되는 것일까. 이는 정보생산 주체와 투자성과의 부담 주체를 분리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모델에는 문제가 있다. 금장과 차입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이 있는 것처럼, 예금자와 금장 사이에도 정보 비대칭이 존재한다. 금장이 자신에게 위임된 선별과 감시를 충실히 하는지 예금자들은 알 수 없다. 예금자들은 다수여서 무임승차 문제가 필연적으로 개입되고, 따라서 예금자 중 누구도 금장의 정보생산 여부를 감시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금장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대출 대리인인 금장이 정보생산에 최선을 다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그리고 그 결과 예금자들이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금장이 정보생산에 매진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금장이 정보생산을 통해 꽤 괜찮은 차입자를 찾았다고 하자. 이 경우 금장은 딴생각을 품을 수 있다. 자신이 발굴해낸 우량 차입자를 예금자와 매칭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투자하려는 유인을 가진다는 것이다. 주인과 대리인 간의 이익 충돌conflicts of interest이다.10 금장은 주인principal인 예금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대리인agent인데, 대리인이 주인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알짜배기 차입자들은 금장의 직접 투자 대상이 되고 쭉정이 차입자들만 예금자들과 매칭된다. 예금자들이 나쁜 성과에 노출됨은 물론이다.
이러한 문제는 금장이 차입자 정보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생산에 따른 투자성과도 자신이 부담함으로써 깨끗이 해결된다.11 이제 금장은 대출 성과에 상관없이 예금자에게 원금과 사전에 약정한 이자를 무조건 지급한다. 대신 원리금 지급 후에 남는 수익은 전부 자신이 가져간다. 차입자 정보를 열심히 생산해 우량 차입자를 더 많이 발굴할수록 금장이 가져가는 몫도 커지는 구조다. 금장의 정보생산이 활발해짐은 물론이다. 더불어 예금자와의 이익 충돌 문제도 사라진다.
(그림 2-3a) 정보생산 주체투자성과 부담 주체
(그림 2-3b) 정보생산 주체=투자성과 부담 주체
(그림 2-3a)에서 보듯이 금장이 정보생산만 수행하면 와트는 차입자가 되고, 예금자는 와트에 대한 채권자가 된다. 그리고 금장은 와트가 믿을 만한 차입자임을 예금자에게 인증certification한다. 그러나 (그림 2-3b)처럼 금장이 직접 대출위험까지 부담할 경우 와트와 예금자 간의 관계는 단절되고, 대신 금장이 예금자의 채무자가 된다. 이는 와트의 대출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금장이 예금자에게 돈을 갚겠다는 의미이다. 예금자 입장에서 볼 때 예금자와 와트 간의 채권/채무 관계가 예금자와 금장 간의 채권/채무 관계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금장 스스로가 예금자의 채무자가 되는 행위는 와트의 신용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인증에 해당한다. 예금자에게 와트의 부채를 몸소 갚겠다는 인증보다 더한 인증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보관업자가 된 금장은 자신이 보관하는 주화 및 귀금속의 품질과 수량을 인증했다. 덕분에 보관증 수수 혹은 장부상 명의 변경만으로 지급결제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금장은 한발 더 나아가 차입자의 신용에 대해서도 강력한 인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대출을 통해 자금수요자와 자금공급자 간의 자금흐름을 촉진하는 입지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12
(그림 2-4) 금장의 인증
대출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금장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노다지에 눈을 뜬 금장들이 너도나도 대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출을 계속 확대하려면 자신이 보관하는 본원통화(주화와 귀금속)의 양이 감소하는 경우는 반드시 피해야 했다. 신용창출의 종잣돈에 해당하는 본원통화 양이 자칫 감소하기라도 하면 추가적인 대출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관하는 본원통화가 감소하는 것을 막고, 나아가 보다 공격적인 대출을 위해 다른 금장에 보관된 본원통화를 뺏어오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것은 예금에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본래 금장에 주화와 귀금속을 맡긴 사람은 보관수수료를 지급해야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금장으로부터 보관수수료를 내라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금장이 보관수수료 청구를 까먹었겠거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금장은 보관수수료를 청구하기는커녕 예금자에게 이자를 주기 시작했다. 당시 예금자들이 받은 충격은 기록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훗날 하원의원이 된 새뮤얼 피프스Samuel Pepys는 1666년 2월 1일 자신의 금장을 방문해 예금을 인출했다. 그러자 금장은 예치기간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했다. 그는 다소 의아해하면서 이자를 받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1666년 8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행Bank of Amsterdam은 예금에 이자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13 당시 암스테르담은행은 순수 보관은행으로 지급결제 업무만 수행할 뿐, 신용을 창출하는 부분준비은행이 아니었다. 당연히 예금에 이자를 지불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새뮤얼 피프스가 이자를 받고 의아해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자신의 금장이 순수 보관업자가 아닌 부분준비은행이 되어 가공의 보관증을 남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뮤얼 피프스가 예금에 이자가 지급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몰랐던 것은 금장이 이 사실을 일부러 숨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금장들은 예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고 생각했다.14 이자 지급은 금장이 주화와 귀금속을 그냥 보관하지 않고 어딘가에 유용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를 준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질 경우 행여 예금자들이 항의하거나 심지어 법정으로 끌고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부분준비 관행이 확산된 17세기 말~18세기 동안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15 결국 부분준비 관행으로 예금에 양(+)의 수익률이 발생하면서 런던 시내 대부분의 주화와 귀금속은 금장 은행가들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16
금장의 이자 지급에 사람들이 토를 달지 않은 것은, 금장이 부분준비은행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을 사람들도 인지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예금자들이 처음부터 투자수익을 기대하고 금장에 주화와 귀금속을 맡긴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후 금장은 신용창출을 통해 순수 보관업자에서 부분준비은행으로 변신했다. 이에 따라 예금자들도 단순 보관 의뢰자가 아닌 금융중개를 위한 투자자로 변신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비자발적이긴 하지만, 예금자들은 가짜 보관증 발급이라는 금장의 사기행각에 공모한 셈이다.
예금이자 지급으로 대출재원(본원통화량)이 안정화되면서, 금장은 신용창출을 통해 대출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예금(보관 + 투자), 지급결제, 대출이라는 현대 부분준비은행의 모습이 완전히 갖춰진 것이다.
(그림 2-5) 금장의 업무 변화: 대출 업무 영위 이전 vs이후
금장은 대출, 즉 가공의 보관증 발행을 통해 지불수단을 창출했다. 지불수단이 부족하던 시절, 대출을 받으려는 수많은 사람이 금장을 찾아와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의 신분 상승에 금장 스스로도 무척 놀랐을 것이다. 금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변방의 세공업자에서 갑작스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역의 자리로 옮겨갔다. 금장 프랜시스 차일드Francis Child는 1665년 플리트가Fleet Street에서 은행업에 뛰어든 후 1713년 런던시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보다 5년 늦게 은행업을 시작한 금장 리처드 호어Richard Hoare 역시 1718년 런던시장이 되었으며, 앤 여왕Queen Anne 즉위 직후 기사 작위를 받았다.17
당시 금장은행가들이 누렸던 사회적 지위는 금장길드 내의 서열에서도 확인된다. 금장이 은행업을 영위하지 않던 시절 금장길드는 세공업자craftsmen로만 구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