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2(국문판)
제2편 왕의 명령에 의해서
제1부 인류의 영원한 과거가 인간을 보여 준다
1 클랜찰리 경
2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
3 여공작 조시안
4 마기스테르 엘레간티아룸
5 여왕 앤
6 바킬페드로
7 바킬페드로, 굴착 작업을 시작하다
8 사자
9 증오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만큼 강하다
10 인간이 투명하다면 보일 타오르는 불꽃
11 바킬페드로, 매복하다
12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영국
제2부 그윈플레인과 데아
1 우리가 아직까지 그 행위밖에 보지 못한 자의 얼굴
2 데아
3 오쿨로스 논 하베트, 에트 비데트
4 어울리는 연인들
5 어둠 속의 푸른빛
6 교사 우르수스, 그리고 보호자 우르수스
7 실명이 통찰력을 일깨워 준다
8 행복뿐만 아니라, 번영도
9 센스없는 사람들이 시(詩)라고 부르는 기괴한 언동
10 모든 사물과 모든 인간들에서 벗어난 자의 시선
11 그윈플레인은 정의를, 우르수스는 진실을
12 시인 우르수스가 철학자 우르수스를 인도하다
제3부 균열의 시작
1 태드캐스터 여인숙
2 야외에서의 웅변
3 행인이 다시 나타나는 곳
4 증오 속에서 적들은 형제가 된다
5 와펀테이크
6 고양이들에게 심문받는 생쥐
7 동전들에 금화가 섞인 까닭
8 중독의 징후
9 아비수스 아비숨 보카트
제4부 지하 고문실
1. 그윈플레인 성자에게 다가온 유혹
2. 즐거움에서 심각함까지
3. 렉스, 렉스, 펙스
4. 우르수스, 경찰을 염탐하다
5. 위험한 장소
6. 옛 가발 아래에는 어떤 사법관들이 있었나
7. 전율
8. 통탄
웃는 남자 2(영문판)
PART II
BOOK THE FIRST. THE EVERLASTING PRESENCE OF THE PAST: MAN REFLECTS MAN
Chapter I. Lord Clancharlie
Chapter II. Lord David Dirry-Moir
Chapter III. The Duchess Josiana
Chapter IV. The Leader of Fashion
Chapter V. Queen Anne
Chapter VI. Barkilphedro
Chapter VII. Barkilphedro Gnaws His Way
Chapter VIII. Inferi
Chapter IX. Hate is as Strong as Love
Chapter X. The Flame which would be Seen if Man were Transparent
Chapter XI. Barkilphedro in Ambuscade
Chapter XII. Scotland, Ireland, and England
BOOK THE SECOND. GWYNPLAINE AND DEA
Chapter I. Wherein we see the Face of Him of whom we have hitherto seen only the Acts
Chapter II. Dea
Chapter III. “Oculos non Habet, et Videt”
Chapter IV. Well-matched Lovers
Chapter V. The Blue Sky through the Black Cloud
Chapter VI. Ursus as Tutor, and Ursus as Guardian
Chapter VII. Blindness Gives Lessons in Clairvoyance
Chapter VIII. Not only Happiness, but Prosperity
Chapter IX. Absurdities which Folks without Taste call Poetry
Chapter X. An Outsider’s View of Men and Things
Chapter XI. Gwynplaine Thinks Justice, and Ursus Talks Truth
Chapter XII. Ursus the Poet Drags on Ursus the Philosopher
BOOK THE THIRD. THE BEGINNING OF THE FISSURE
Chapter I. The Tadcaster Inn
Chapter II. Open-Air Eloquence
Chapter III. Where the Passer-by Reappears
Chapter IV. Contraries Fraternize in Hate
Chapter V. The Wapentake
Chapter VI. The Mouse Examined by the Cats
Chapter VII. Why Should a Gold Piece Lower Itself by Mixing with a Heap of Pennies?
Chapter VIII. Symptoms of Poisoning
Chapter IX. Abyssus Abyssum Vocat
BOOK THE FOURTH. THE CELL OF TORTURE
Chapter I. The Temptation of St. Gwynplaine
Chapter II. From Gay to Grave
Chapter III. Lex, Rex, Fex
Chapter IV. Ursus Spies the Police
Chapter V. A Fearful Place
Chapter VI. The Kind of Magistracy under the Wigs of Former Days
Chapter VII. Shuddering
Chapter VIII. Lamentation
단어 정리
일러두기
※ ( ) 안 옮긴이 주 설명에서 ‘옮긴이’ 표기는 생략했다.
※ 인명, 지명 등은 옮긴이가 번역한 대로 현지 발음을 기준으로 삼아 표기했다.
1 클랜찰리 경
*
그 시절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전해졌다.
그것은 린네우스 클랜찰리 경에 관한 내용이었다.
린네우스 클랜찰리 남작은 크롬웰과 동시대인이었는데, 당시 공화제를 받아들인 몇 안 되는 영국의 중신이었다. 엄밀하게 말해, 그것을 받아들일 이유가 있었으니, 당시 공화제가 일시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공화파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 클랜찰리 경이 공화파의 편에 있을 것이라는 논리는 매우 단순했다. 그러나 혁명이 끝나고 의회 정부(찰스 1세 처형 후. 1649~1660년 사이 지속된 크롬웰 주도 하의 공화정)가 몰락한 후에도 클랜찰리 경은 끝끝내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왕정복고 하에서 언제나 참회는 받아들여졌고, 찰스 2세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는 이들에게 매우 관대했기에, 귀족들이 재구성된 상원에 돌아가기는 수월했다. 그러나 클랜찰리 경은 그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선택을 따르지 않았다. 영국이 다시 군주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것에 온 나라가 박수갈채를 보낼 때, 모든 이들이 왕을 만장일치로 인정할 때, 백성들이 군주제에 경의를 표명하는 동안, 지난날을 부인하는 영광스럽고 당당한 정치적 변절을 기반으로 왕조가 다시 일어날 때,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과거가 된 그 순간에도, 클랜찰리 경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모든 환희에서 고개를 돌렸고 기꺼이 유배 길에 올랐다. 대귀족이 될 수도 있었지만 자진해 추방을 선택했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고 그는 이미 죽어 버린 공화제에 대한 충절 속에서 노년을 맞이했다. 또한 이러한 어린애 같은 고집에 자연스레 따라붙는 조롱에도 의연했다.
그는 스위스로 피신해 제네바 호숫가에 있는 산비탈 오두막에서 살았다. 호숫가에서 가장 험한 구석에 위치한 곳으로 보니바르(제네바의 독립투사로 잔인한 포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함)의 감옥과 러들로(찰스 1세를 사형에 처한 67명의 판사 중 한 명. 왕정복고 후 스위스로 탈출함)의 무덤이 이웃해 있었다. 황혼과 바람과 먹구름으로 가득한 알프스 산맥이 그의 은신처를 감싸고 있었다. 산악 지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거대한 어둠 속에 갈 곳을 잃어버린 듯 그는 살고 있었다. 주위를 지나가는 행인도 그와 마주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는 국외자였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기 밖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세상의 사건들에 빠삭하고 또 내막을 꿰뚫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어떤 저항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때 영국은 행복했다. 왕정복고는 부부간의 화해와 같았다. 왕과 백성이 더 이상 서로 다른 침대를 쓰지 않았다. 그보다 더 명랑하고 유쾌한 일은 없었다. 그레이트 브리튼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왕은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찰스 2세는, 호탕한 성격에 통치에 능했으며, 루이 14세에 비교할 만한 뛰어난 군주였다. 그는 신사이면서 귀족적이었다. 찰스 2세는 자신의 행동으로 신하들에게 찬미를 받았다. 그는 하노버 전쟁을 벌였다. 왜 그것이 필요한지 스스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그는 당케르크를 프랑스에 팔았는데, 그것 또한 고도의 외교적 결단이었다. 영국 중신들은 이미 시대의 일부가 되어 귀족원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양식을 갖추고 있었기에, 명백한 사실 앞에 무릎을 꿇었고, 결국 상원에서 자리를 되찾았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왕에게 충성 서약을 하기만 하면 되었다. 찬연한 통치, 훌륭한 국왕, 국민들의 사랑에 대한 신성한 용서에 의해 돌아온 위엄 있는 왕족들에 대한 현실을 고려할 때, 몽크와 그 후에 출현한 제프리스 같은 중요 인물이 왕위에 찬성했던 것, 그들이 가장 큰 공무와 가장 이익을 보는 임무를 맡음으로서 그들의 충성과 열성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받았던 것, 클랜찰리 경이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다. 명예로운 그들의 앞에 영광스럽게 앉는 것이 전적으로 그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는 것, 영국이 국왕 덕분에 번영의 정점에 다시 올라섰고, 런던은 온통 축제와 기마 곡예로 넘쳐났으며,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열광에 들떠 있고, 궁정은 품위 있고 명랑하고 당당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만약 이러한 찬란한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 땅거미가 질 무렵 음산한 빛 속에서, 평민과 같은 옷차림을 한, 창백하고 멍한 표정의 구부정한 늙은이가, 호숫가 무덤 옆에 서 있다가, 겨울의 추위를 의식하고는, 어두운 바람에 백발을 흩날리며, 묵묵히, 외롭게, 생각에 잠겨, 발길 가는 대로 배회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웃음을 참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느 미치광이의 실루엣.
클랜찰리 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될 수도 있었던 것과 실제 모습을 듣고, 미소 짓는 것은 너그러운 반응에 불과했다. 어떤 이들은 소리 높여 웃었고, 어떤 이는 분개했다.
사려 깊은 사람들이 그의 오만한 고립 상태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이해 가능한 일이다.
클랜찰리 경의 정신이 성치 못해 그렇다는 정상 참작과 같은 쑥덕임이 일었다. 누구나 그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레굴루스(충절과 헌신으로 유명한 로마의 장군)와 같은 모습은 어디서건 냉대를 받으며, 그런 이유로 여론에는 어느 정도 빈정거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한 고집은 잔소리와 유사하니, 조롱당하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결국 이러한 고집, 배수진이 과연 미덕일까? 희생과 명예로움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에 허풍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오히려 겉치레에 불과하다. 왜 고독과 도피를 그토록 과장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은 현자의 좌우명이다. 원한다면 반대해도 좋다. 그러나 예의 바르게, 또한 국왕 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그렇게 하라. 진정한 미덕이란 사리를 분별하며 이뤄지는 것이다. 실패하는 것은 실패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고, 성공하는 것은 성공할 만했다. 신의 섭리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어서, 합당한 자에게만 왕관을 씌워 준다. 누가 신의 섭리보다도 그 내막을 더 잘 안다고 자신할 것인가? 결과로 인해 판결이 내려지고, 한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바뀌었을 때, 성공한 자의 입장에서 진실과 거짓이 만들어져, 한쪽은 파멸로 향하고 다른 한쪽은 개선행진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의혹을 품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양식 있는 이들은 우세한 쪽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재산과 가족에게 유용하다 할지라도 그러한 사실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오로지 공적인 것만을 생각하면서 승리자에게 강력한 힘을 빌려 준다.
만약 아무도 나라에 봉사하는데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찌될 것인가? 그때는 모든 것이 멈추게 될까?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좋은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개인의 사적인 취향은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임무는 지켜지기를 원한다. 누군가가 헌신해야 한다. 공공의 기능을 최대한 따르는 것이 진정한 충절이다. 공무를 맡은 자가 은거해 버리면 그 나라가 마비에 이르고 만다. 망명하는 행위는 가증스러운 짓이다. 그것이 본보기가 될 수 있을까? 허영심에 불과하다. 그러면 반항일까? 그 무슨 무례함인가. 당신의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배워라. 우리는 떠나 버리지 않는다. 우리도 또한 원한다면 당신보다 더 완고하며 다루기 힘들게 굴 수도 있고 당신보다 더 못된 짓을 감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합리적인 이들을 더 좋아한다. 그러므로 가자.
*
그동안 1660년의 상황만큼 더 분명하고 결정적인 때는 없었다. 멀쩡한 정신의 사람에게는, 행동 강령이 그보다 더 분명했던 적은 없었다.
영국은 크롬웰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많은 이례적인 일들이 공화 체제하에서 생겨났다. 우선 영국의 패권이 탄생했다. 30년 전쟁의 도움으로 독일은 압도당했으며, 프롱드 반란 덕분에 프랑스의 체면이 꺾였으며, 브라간사 공작(포르투갈의 도시 이름. 브라간사 공작의 후예가 1640년 포르투갈 왕으로 등극해 왕조를 열었음)의 도움으로 스페인의 힘이 축소되었다. 크롬웰은 마자랭을 제압했다. 프랑스와 협정을 체결할 경우에는. 영국의 호민관이 프랑스왕 서명 위쪽에 서명했다. 네덜란드 연합은 벌금 800만을 부과해야 했고, 튀니스와 알제는 탄압받았으며, 자메이카는 정복되고, 리스본을 굴복시켰고, 바르셀로나에서는 프랑스의 적대관계를 유발했다. 포르투갈을 영국에 정박시켰다. 지브롤터에서 헤라클리온에 이르는 지역에서 바르바리아인들을 깨끗이 소탕했다. 전승과 교역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바다를 지배했다. 33회의 전투에서 연승했으며, 스페인 함대를 격파한 적이 있는, 뱃사람들의 할아버지를 자처하던 늙은 제독 마틴 하페르츠 트롬프가, 1653년 8월 10일, 영국 함대에 괴멸되었다. 스페인 해군으로부터 대서양을, 네덜란드 해군으로부터 태평양을, 베네치아 해군으로부터 지중해를 되찾았다. 또한 항해 약정서를 통해 전 세계의 연안을 소유하게 되었다. 대양을 통해 세계를 손아귀에 넣었다. 네덜란드의 선박이 항해 중에 영국의 선박에 공손하게 인사했다. 프랑스는 만치니 대사를 보내, 올리버 크롬웰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크롬웰이, 하나의 라켓으로 공 두 개를 휘두르듯 칼레와 당케르크를 가지고 놀았다. 유럽 대륙을 뒤흔들었으며, 평화를 강요하고, 전쟁을 명령하며, 모든 용마루에 영국 국기를 달았다. 호민관의 철기병만이 유럽에 공포감을 안겨 주는 군대로서 의미를 지녔다.
“나는 옛날 사람들이, 로마 공화국 존경했듯이, 영국 공화국을 존경하길 원한다.”
크롬웰이 자주 하던 말이다. 그 말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었다. 언론도 출판도 자유로웠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한 길에서 말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제제나 검열 없이 인쇄할 수 있었다. 왕권의 균형이 깨졌다. 스튜어트 왕조를 비롯한 유럽의 모든 군주제의 질서가 무너졌다. 마침내 그 추악한 정치 체제에서 벗어나, 영국은 사죄를 받아 냈다.
관대한 찰스 2세는 브레다 선언(찰스 2세가 의회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공화파에 대한 관용을 약속한 선언)을 하였다. 그는 영국이 루이 14세의 머리에 헌팅던의 일개 맥주 양조업자의 아들(크롬웰을 지칭)이 발을 올려놓았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영국은 회개하고 숨통을 텄다. 이미 말했듯 마음의 편안한 상태는 활짝 개화했다. 찰스 1세를 처형한 시역자들의 교수대가 범세계적인 기쁨에 가미되었다. 왕정복고는 하나의 미소이다. 그러나 교수대는 미소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중의 마음을 만족시켜야 한다. 불순종의 정신의 사라졌고 충절이 다시 재건되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충직한 종이 되는 것이 모두의 야망이었다. 정치적 광기는 사라져 버렸다. 이제 혁명을 우롱했고 공화제에 찬성했으며 언제나 입에는 권리, 자유, 진보라는 거창한 말들을 입에 달고 다녔던 시절은 비웃음을 샀다. 상식으로의 회귀는 훌륭했다. 그때까지 영국은 꿈을 꾸고 있었다. 광란의 상태에서 벗어났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보다 더 미친 짓이 또 있겠는가? 누구나 권리를 갖는다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모두가 지배에 나선다는 것이 상상할 수 있는가? 국민들이 이끌고 가는 도시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국민이란, 짝을 이루어 수레를 끄는 말일 뿐, 마부는 아니다. 투표에 부친다는 것, 그것은 나라를 바람에 떠다니게 하는 것이다. 국가를 구름처럼 이곳저곳 떠다니게 할 작정인가? 무질서가 질서를 만들 수는 없다. 만약 카오스가 건축가라면, 그는 바벨탑을 건축할 수밖에 없다. 또 소위 말하는 자유는 얼마나 독재적인가! 나는 즐기고 싶지 통치하고 싶지 않다. 투표하는 것은 귀찮고 나는 춤이나 추고 싶다. 모든 짐을 도맡아 짊어지는 군주란 얼마나 감사한 구세주란 말인가! 우리를 위해서 고역을 감수하는 자비로운 왕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그 안에서 자라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안다. 그것이 그의 역할이다. 평화, 전쟁, 입법, 재정, 그런 것들은 국민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아마 사람들은 돈을 내야 할 것이며 일을 해야 하지만, 그 두 가지로 충분하다. 백성도 정치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국가의 두 힘인 군대와 예산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납세자가 되고 군인으로 복무하는, 그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또 다른 것이 필요한가? 그는 군대의 팔이며 재정의 팔이다. 놀라운 역할이다. 왕실이 통치를 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이다. 그러니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조세와 왕실비(王室費)는 국민이 지불하고 왕이 버는 보수이다. 백성은 그들을 이끌어 갈 것을 조건으로 그들의 피와 금전을 내놓는다. 직접 이끌어 나가려는 생각이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이들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무지하기 때문에 이들은 앞을 보지 못한다. 장님에게는 안내견이 필요하지 않은가? 다만 백성에게는 안내견이 되기를 기꺼이 수락한 사자, 왕이 있는 것뿐이다. 얼마나 친절한가! 그런데 왜 백성은 무지할까? 그들은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무지는 덕의 수호 여신이다. 통찰력이 없는 곳에는 야심이 없다. 무지한 이들은 필요한 어둠 속에 있고, 그러한 어둠이 시야를 없애는 동시에 욕심도 없앤다. 그것에서 순수함이 생겨난다. 읽는 사람은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리를 분별한다. 사리를 분별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의무이자 또한 행복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전혀 없는 진리이다. 사회는 그러한 진리 위에 있다.
그렇게 영국에서는 신성한 사회이론들이 회복되었다. 또한 그렇게 국가가 명예를 회복했다. 동시에 그들은 아름다운 문학으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를 업신여기고 드라이든을 찬양했다.
“드라이든은 영국의 그리고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아히도벨》의 번역자인 애터베리가 말했다. 일찍이 《실낙원》의 저자에게 욕을 퍼붓고 반박한 바 있는 소메즈에게, 아브랑슈의 주교 위에 씨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 논박하고 욕설하던 시절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 밀턴보다도 더 보잘 것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나고, 다시 모든 것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드라이든은 높은 자리에 셰익스피어는 낮은 자리에, 찰스 2세는 왕좌로 향하고 크롬웰은 교수대로 보내졌다. 영국은 과거의 수치스럽고 비정상적인 모습을 떨쳐 버리고 다시 일어났다. 군주제에 의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연한 질서를 회복하고 문예가 좋은 양식으로 돌아간 것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행복이다.
그러한 호의가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찰스 2세에게 등을 돌린다는 것, 다시 왕좌에 오른 그의 관대함을 배은망덕으로 갚는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일이 아닌가? 린네우스 클랜찰리 경은 신사들에게 그러한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조국의 행복에 등을 돌리고 뿌루퉁해지다니, 얼마나 빗나간 짓이란 말인가!
1650년, 의회가 ‘나는, 국왕도, 지배자도, 귀족도 없는 공화제에 충실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기안을 공포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끔찍한 서약을 했다는 구실로, 클랜찰리 경은 왕국 밖에서 살면서, 모든 사람이 누리는 큰 행복의 면전에서, 자신이 슬퍼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음울함 속에서 그는, 이제는 사라진 것을 추종하고 있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괴팍한 집착이었다.
그를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장 관대한 이들조차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공화제라는 갑옷에 있는 허술한 점을 가까이에서 알아내어, 언젠가 때가 오면 국왕의 신성한 목적에 도움이 되도록 확실한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바로 뒤에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유용한 기다림의 시간은 충성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를 호의적으로 판단하는 이들을 모두들 그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공화제에 대한 그의 오랜 집요함 앞에서는 모두 그 호의적인 견해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클랜찰리 경의 본질은 얼간이임에 틀림없었다.
관대한 이들의 설명도, 어린애 같은 고집이라는 견해와 노망든 늙은이의 완고함일 뿐이라는 견해로 갈라졌다.
엄격한 성향의 이들이나 의로운 이들은 더 멀리 갔다. 그들은 다시금 이교(異敎)에 빠진 사람들을 낙인찍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어리석음도 제 나름의 권리가 있지만 한계도 있다. 짐승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있으나 반역자가 돼서는 안 된다. 게다가, 결국, 클랜찰리 경이라는 사람은 무엇이 된 것인가? 변절자이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귀족의 진영을 떠나, 반대편 진영인 평민 계급으로 갔다. 그것은 하나의 배신행위였다. 그가 강한 이들에게는 ‘배신자’였고 약한 이들에게는 충신이 된 것이다. 그가 버린 진영이 승리자였고 그가 받아들인 진영이 패배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반역 행위’로 인해 그는 정치적 특권과, 가정, 귀족의 신분과 조국을 잃었다. 그는 오로지 조롱만을 얻었을 뿐이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유배 생활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증명하는가? 그가 멍청이라는 것이다. 모두 동의했다.
배신자이자 동시에 속기도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못된 선례로 남지 않는다는 조건 한에서 얼마든지 멍청이 짓을 할 수 있다. 군주제의 토대라고 자신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멍청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솔직함뿐이다. 그런데 클랜찰리의 정신세계의 간결함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혁명의 찬란한 환상 속에 현혹되어 있었다. 그는 공화제에 의해 자신이 속는다는 것을 방치했다. 그는 조국을 모욕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전형적인 배신자의 것이었다.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그는 흑사병을 피하듯 공동의 행복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가 자처한 망명에는 국민적 만족을 거부하는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왕권을 전염병 대하듯이 피했다. 그는, 그가 전염병동이라고 규탄한, 군주제 치하의 대대적 환희 위에 꽂힌 무정부주의자의 깃발이었다. 새롭게 정립된 질서 위에서, 재건된 국가 위에서, 복권된 종교 위에, 그토록 기분 나쁜 표정을 짓다니! 이렇게 잔잔한 곳 위에 그늘을 드리우다니! 만족스러워하는 영국에 못마땅한 눈길을 던지다니! 드넓은 푸른 하늘에 어두운 점으로 등장하다니! 위협적인 존재가 되다니! 국민의 염원을 면전에서 부정하다니! 만장일치로 동의하는데 혼자만 찬성을 거부하다니! 광대가 아닌 이상 그것은 가증스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클랜찰리는, 크롬웰과 함께였기에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 몽크와 함께 발길을 돌려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몽크를 보라. 그는 공화국 군대를 지휘한다. 망명 중인 찰스 2세는 그에게 편지를 쓴다. 교활한 처신으로 덕과 양립할 수 있는 몽크는 처음에는 모르는 체하다가 군대의 대장이 되어, 모반자인 의회를 쳐부수고 왕을 복위시킨다. 그리하여 몽크는 앨버말 공작이 되고, 왕국을 구했다는 이유로 추앙 받으며, 매우 부유해지고, 당대 누구보다도 이름을 빛내고, 앞으로 웨스트민스터에 묻힐 가능성을 연다. 이런 것이 영국의 충신이 누리는 영광이다. 클랜찰리 경은 그렇게 실리적인 임무를 이해할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에게는 유배 생활에서 오는 오만과 침체성에 빠져 있었다. 그는 무의미한 말들로 만족했다. 그는 오만으로 인해 관절이 경직되었다. 의식 있고 품위있는 말들도 결국 말일 뿐이다. 그 안의 깊은 뜻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깊은 뜻, 클랜찰리는 이를 외면했다. 어떠한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그 행동의 냄새를 맡아 보려고, 그것을 상당히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것은 근시안적 행동이다. 그러한 행동에서 원인을 모르는 구역질이 난다. 그렇게 섬세해서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지나친 양심은 퇴화되어 장애가 될 수 있다. 거머쥐어야 할 왕홀 앞에서의 죄책감은 팔 없는 불구, 받아들여야 할 부유함 앞에서의 죄책감은 거세된 남자다. 양심의 가책을 경계하라. 그것이 달갑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분별 잃은 충성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처럼 내려간다.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어느새 캄캄한 어둠 속에 서 있게 된다. 약삭빠른 자들은 다시 올라오지만, 어수룩한 이들은 거기에 남는다. 양심이 비사교적인 상태가 되도록 경솔히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정치적 정숙함이라는 어둠침침한 색깔에 살그머니 젖어들게 된다. 그때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그것이 클랜찰리 경이 겪은 일이었다.
원칙이 마침내 깊은 구렁이 되고 만다.
클랜찰리 경은 뒷짐을 지고 제네바 호숫가를 따라 산책하곤 했다. 수고만 했군!
가끔씩 런던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들의 공론 앞에서 그는 피고인과 다름없었다. 그를 두고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양측의 주장이 오간 뒤에 그의 어리석음을 이유로 사면이라는 특전이 내려졌다.
지난날 열성적인 공화파 중 많은 사람들이 스튜어트 왕가에 찬성했다. 칭찬해 줄 만한 일이다. 자연히 그들은 크랜찰리를 조금 비방했다. 완강하게 버티는 이들은 추종자들에게는 성가시게 보일 뿐이다. 재차가 있어서 눈에 들고 조정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그의 고집스러움에 불쾌해져,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다.
“그가 왕의 손을 잡지 않은 이유는, 그에게 충분한 댓가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는 국왕 폐하께서 하이드 경에게 내리신 것과 같은 대법관 자리를 원했던 거요.”
그의 ‘옛 친구’ 중에 하나는 심지어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그가 내게 그렇게 말해 주었어.”
린네우스 클랜찰리는 비록 동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가끔은 로잔에 살고 있던 앤드루 브로턴과 같은 늙은 시역죄인처럼 그가 알고 지내던 추방자들에 의해, 런던에서 떠도는 말들이 전해지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클랜찰리는, 보일 듯 말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극심한 우둔화의 증거였다.
한번은 그렇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매우 작은 음성으로 “그런 말을 믿는 사람들이 불쌍하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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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좋은 찰스 2세는 그를 무시하는 편을 택했다. 찰스 2세 치하에서 영국이 누리던 것은 행복 그 이상이었다. 환희에 가까웠다. 왕정복고는 까맣게 변한 옛 그림에 새롭게 칠을 하는 것이다. 오래된 과거의 훌륭한 풍습이 다시 돌아와 아름다운 여인들이 군림하고 통치했다. 이블린(영국의 문인으로 스튜어트 왕조 후기의 영국 사회를 생생히 묘사)이 그러한 모습을 간단히 기록했는데,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음란, 타락, 신에 대한 모독. 나는 어느 일요일 저녁, 국왕께서 매춘부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보았다. 포츠머스, 클리블랜드, 마자랭, 그리고 두세 명이 더 있었다. 오락실에서 그들은 거의 알몸인 상태였다.
이 묘사에 약간의 노한 분위기가 숨어 있다. 하지만 이블린은 공화주의의 꿈으로 물들어 있는 불평 많은 청교도였다. 그는 왕들이 호사스러운 바빌론적 쾌락을 누리던 당시의 모범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한 쾌락은 결국 사치 풍조를 키워 주게 된다. 그는 악덕의 유용성을 알지 못했다. 변함없는 법칙이 하나 있으니, 매력적인 여인을 얻고 싶으면 악덕을 근절하지 마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비를 끔찍이 좋아하면서 그 애벌레를 박멸하는 얼간이와 다름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찰스 2세는, 클랜찰리라고 하는 반항자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제임스 2세는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 찰스 2세의 통치는 우유부단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가장 통치를 어리석게 했다는 말은 아니다. 때때로 선원들은 바람을 통제하기 위해 동여맨 밧줄의 매듭을 느슨하게 하여 바람이 그것을 죄도록 만들 때가 있다. 그것이 바람과 백성의 어리석음이다.
찰스 2세의 느슨한 통치는 신속히 단단하게 조여졌다.
제임스 2세 치하에서 억압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남은 혁명의 잔재를 쓸어 내 버리기 위한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제임스 2세는 능력 있는 왕이 되고자 하는 칭찬할 만한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찰스 2세의 통치가 왕정복고의 초벌 그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보다 더 완벽한 질서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1660년, 그는 시역죄인 열 명만이 교수형에 처해진 것에 대해 한탄했다. 그는 보다 더 실질적으로 권위를 복구한 왕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심각한 법령을 강력하게 집행시켰다.
수사(修辭)에 그칠 뿐일 감상적인 미문을 멸시하고, 무엇보다 사회의 이익에 몰두하는, 진정한 정의가 군림하게 했다. 사람들은 수호자와 같은 그의 엄격함에서 국가의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는 제프리스에게 정의의 손을, 커크(찰스 1세의 아들. 몬머스의 난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사건으로 유명)에게는 검(劍)을 맡겼다. 커크는 여러 번 본때를 보여 주었다. 이 유용한 장군은 공화파 남자 하나를 연달아 세 번 교수대에 매달았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그에게 질문했다.
“공화제를 포기하겠나?”
사악한 죄인은 싫다고 말했고 결국 처형당했다.
“내가 녀석을 네 번이나 매달았어.”
커크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다시 시작되는 처형은 막강한 권력의 표시이다. 레이디 라일은, 몬머스의 반란군 토벌 작전에 아들을 내보내고도 두 명의 반역자를 집에 숨겨 준 죄로 처형당했다. 반면, 어떤 반역자는 솔직하게 재세례파 여인이 자기를 숨겨 주었다고 밝혀 사면을 받았으나 그 부인은 산채로 불더미에 던져졌다. 후에 커크는 한 도시를 공화파의 집결지라고 생각해 한꺼번에 열아홉 명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이전 크롬웰 치하에서 사람들이 교회당에 있는 성자들의 석상에서 코와 귀를 잘라 낸 것을 생각할 때 매우 합법적인 보복임이 분명했다. 제프리스와 커크를 능히 택할 줄 알았던 제임스 2세는 진정 종교에 심취한 왕이었다. 제프리스와 커크라는 두 명의 흉악한 정부(情婦)들을 두어 금욕생활을 자초한 그는, 항상 콜롱비에르 신부의 말을 따르고자 했다. 거의 슈미네 신부만큼 번지르르한 설교자였으나 그 보다 더 열정적이었던 그 신부는, 자신의 인생 전반기에는 제임스 2세의 조언자로, 후반기에는 마리 알라코크(성모방문회 소속 수녀로, 특히 성심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선언한 것이 유명)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영광을 누렸다. 후에 제임스 2세가 망명 생활을 의연하게 대처하고, 생제르맹의 은둔처에서도, 태연히 연주창(유럽에서는 국왕이 연주창에 손을 대면, 그 난치병이 즉각 낫는다고 믿었다고 함)을 견뎌 내고 예수회 사제들과 교류하며 역경을 이겨 내는 진정한 군주의 모습을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종교적 양식 덕분이었다.
그러한 왕이었으니, 린네우스 클랜찰리와 같은 반역자에 대해 근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임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귀족들의 권리가 상속권에 의하여 다음 세대까지 유지되는 상황에서 클랜찰리 경에 관련해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 있었다면, 제임스 2세는 분명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2.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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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린네우스 클랜찰리 경이 항상 늙은이였고 망명자였던 것은 아니다. 젊음과 열정의 세월이 그에게도 존재했다. 우리는 해리슨과 프라이드를 통해, 크롬웰이 젊었을 때 여인들과 유희를 좋아했으며 그로인해 여성이란 존재가 또 다른 문제를 예고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잘 채워지지 않은 허리띠를 경계하시오. Male praecinctum juvenem cavete.(고대 로마의 학자 수에토니우스의 말)
클랜찰리 경 역시 크롬웰처럼 방정치 못한 난잡한 행동을 취한 바 있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생아인 아들 하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아들은, 공화제가 종말을 고하던 무렵에 부친이 유배를 떠날 때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는 한 번도 아버지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클랜찰리 경의 이 사생아는 찰스 2세의 궁정에서 시동(侍童)으로 자랐다. 사람들은 그를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이라고 칭했다. 귀족인 그의 어머니 덕분에 그는 궁정의 기사가 되었다. 용모가 아름다웠던 그의 어머니는 클랜찰리 경이 스위스에서 부엉이가 되어 가고 있는 동안에, 슬픔에만 빠져 있지 않기로 마음먹고, 두 번째 애인으로 하여금 비사교적인 그 첫 번째 애인과 관련된 일을 용서받았다. 그녀의 두 번째 애인은 확실하게 길들여진 왕당파, 바로 국왕이었다. 그녀는 잠시 동안 찰스 2세의 정부였으나, 국왕께서는 공화국으로부터 그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빼앗은 것에 매혹되어, 노획물의 아들에게, 근위병직을 하사할 정도의 위세를 부렸다. 이 사생아 출신 장교는 그러한 호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데이비드 경은, 한동안 커다란 검을 찬 170명의 근위병 중 하나로 봉직했다. 그 후 국왕의 의장대에 들어가 도금한 미늘창을 지니는 사십 명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헨리 8세가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세운 고귀한 집단의 일원인지라, 왕의 식탁에 그릇을 놓는 특전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버지는 유배지에서 백발로 늙어가는 반면 데이비드 경은 찰스 2세의 치하에서 날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 이후, 제임스 2세 치하에서도 그는 여전히 번창하였다.
왕은 죽었지만 ‘국왕 폐하 만세!’를 외친다. non deficit alter, aureus. (다른 황금(가지)이 없지 않으리니)라고 한 말과 다름이 없다.(아이네이아스가 저승에 들어가는 방편으로 제시된 방법. 저승의 여왕에게 선물로 바쳐야 하는 황금 나무 가지를 망설이지 말고 꺾어야 하며, 그 자리에 다른 가지가 돋을 것이라는 뜻이다. <아이네이스> 제4권 143~144절 인용)
그는 요크 공작의 작위 계승식과 함께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으로 호칭될 수 있는 공식적인 허락을 받았다. 더리모이어는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그의 어머니가 남겨준 영지인데, 떡갈나무를 부리로 쪼아서 둥지를 만드는 크래그 새의 서식지인 스코틀랜드의 광막한 숲 속에 위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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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2세는 국왕이었으나 장군이 되려고 했다. 그는 젊은 장교들에게 둘러싸여 있기를 좋아했다. 그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채, 투구 밑에서 풍성한 가발을 날리며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레 말에 올랐다. 얼빠진 전투의 기마상 같은 형색이었다. 그는 젊은 데이비드 경의 우아함을 좋아했다. 그는 그 왕당파 젊은이가 공화주의자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맙게 여겼다. 자식을 버린 공화주의자 아비는 막 시작된 궁전의 행복에 방해되지 않았다. 제임스 2세는 그에게 천 파운드의 급료를 지불하고 침실 담당 궁내관(宮內官)으로 임명했다.
멋진 진급이었다. 그 직책은 매일 밤 왕의 지척에서 잠을 잔다. 그의 침대는 다른 이들이 만들어 준다. 모두 열두 명으로 이뤄진 궁내관은 서로 교대하며 왕의 시중을 들었다.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데이비드 경은 왕의 말들에게 귀리를 먹이고 보살피는 책임까지 맡았는데, 급료는 260파운드에 달했다. 그의 휘하에는 마차꾼 다섯 명, 보조 마부 다섯 명, 마구간지기 다섯 명, 심부름꾼 열두 명, 왕의 가마꾼 네 명이 있었다. 그는 왕이 헤이마켓에서 기르고 있는, 매년 그 경비로 600파운드를 지출하는, 경주마 여섯 필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왕의 의상실에서도 막대한 권력을 전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터 기사들의 예복은 그가 관리하는 곳에서 제공되었다. 왕의 궁내관인 어전 안내인도 땅에 엎드려 그에게 예를 표했다. 제임스 2세 때의 어전 안내인은 듀파 기사였다. 데이비드 경은 왕실 서기였던 베이커 씨와, 의회 서기인 브라운 씨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으리으리한 영국의 왕실은 극진한 대접에서 월등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열두 궁내관의 하나로 연회나 환영회를 집전했다. 국왕이 ‘비잔티움’이라는 브장 금화(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서유럽에서 사용되던 비잔틴 금화)를 교회에 주는 봉헌의 날이라든가, 혹은 국왕이 품계를 나타내는 목걸이를 착용하시는 목걸이 착용일, 혹은 성체 배령의 날에는 데이비드 경이 왕의 뒤에 서 있는 영광을 누렸다. 성(聖) 목요일에는, 가난한 사람들 열두 명을 국왕께 인도해, 폐하께서 그들에게 나이만큼의 페니 주화와 왕의 통치 기간만큼의 실링 주화를 하사하시게 하는 것도 그의 직무였다. 또한 국왕의 몸이 편치 않을 때 간호를 위해 궁중 사제를 불러 국왕의 수발을 들게 하고, 의사들이 참사원의 허락 없이 왕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일도 그의 업무였다. 게다가 그는 스코틀랜드 행진곡을 연주하는 스코틀랜드 황실 근위대의 중령이기도 했다.
용감한 전사였던 그는 여러 차례 전투에 참전해 영광스런 공훈을 세웠다. 그는 용맹스럽고 잘 다듬어진, 수려한 용모에 아량이 넓은, 한 마디로 외모와 거동이 뛰어난 귀족이었다. 그의 인물 됨됨이는 그의 신분과 어울렸다. 그의 인품은 그의 신분에 어울렸으며 지체가 높은 만큼 체구도 뛰어났다.
그리고 한때, 그는 왕에게 옷을 건네 드리는 특권을 누리는 시종 직에 거의 임명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중신이거나 왕족이어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중신을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새로운 작위를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동시에 시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그것은 크나큰 총애인데, 그러한 총애로 한 명의 친구와 백 명의 적이 생겨난다. 게다가 그 친구는 왕에게 배은망덕한 존재로 변할 수도 있었다. 제임스 2세는 그러한 정치적 이유 때문에 새로운 작위는 좀처럼 만들지 않았지만 그것들을 바꾸는 데는 적극적이었다. 이전된 작위는 동요를 유발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이름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귀족 사회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던 왕은, 그가 작위의 대승상속인(代承相續人)으로 상원에 입성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왕은, 데이비드 더리모이어를, 의례적 귀족에서 합법적 귀족으로 만들어 줄 기회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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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날 늙은 망명자 린네우스 클랜찰리에게, 여러 가지 사태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소식을 접했는데,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그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죽음의 장점은, 그로 인해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망자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린네우스 경의 말년에 대해 자신들이 알고 있던 것을, 혹은 안다고 믿는 것을 털어놓게 되었다. 아마도 억측이나 떠도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이에 따르면 클랜찰리 경은 말년에 공화제에 대한 신념이 더욱 뜨거워져서, 한 시역죄인의 딸인 앤 브래드쇼와 결혼했는데, 그녀 또한 아이를 분만하다 죽었고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아들이 클랜찰리 경의 적자였고 합법적인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너무나 불분명해서 사실이라기보다 소문에 가까웠다. 그 당시 영국에서 볼 때 스위스에서 일어난 일은 요즘으로 치면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만큼이나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가 결혼했을 때의 나이가 쉰아홉이고 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환갑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타계한지라, 핏덩이 아이를 부모 없는 고아 신세로 세상에 남겨 두고 죽었을 것이다. 가능성은 있지만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에 덧붙여, 그 아이가 ‘태양처럼 잘생겼다.’라고 했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다. 어느 날 문득, 제임스 왕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 소문에 종지부를 찍었다. ‘적자가 없고 또한 다른 직계 존속도 없는 것으로 확인된지라’ 국왕의 권한으로 데이비드 더리모이어가 클랜찰리 경의 유일한 확정적 상속자임을 공포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국왕의 공문서가 귀족의회에 전달되었다. 이를 통해 왕은 고(故) 린네우스 클랜찰리 경의 작위, 권리 및 여러 특권을,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에게 상속했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있었으니,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안 되었으나 여공작의 작위를 내린 소녀가 자라 혼기에 달했을 때, 데이비드 경이 그녀와 혼인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사람들은, 국왕께서 그 아이에게 왜 공작 작위를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모두들 그 어린 소녀를 여공작 조시안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스페인식 이름을 짓는 것이 유행했다. 찰스 2세의 사생아 중 하나인 플리머스 백작의 이름은 카를로스였다. 조시안Josiane은 아마 Josefa-y-Ana의 축약형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조시아스라는 이름이 있었듯이, 조시안이라는 이름도 원래부터 있었을지 모른다. 헨리 3세 집권 중에, 조시아스 뒤 패시지라는 이름을 가진 귀족이 있었다.
왕은 그 어린 여공작에게 클랜찰리 경의 작위를 준 것이다. 남편이 생길 때까지는 그녀가 여 귀족으로 작위의 실질적 소유자였다. 혼인 후에는 그녀의 남편이 중신의 지위에 오르게 되어 있었다. 그녀가 상속한 작위는 두 개의 영지 지배권에 근거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클랜찰리 남작령이었고, 다른 하나는 헌커빌 남작령이었다. 게다가 역대 클랜찰리 가문의 귀족들은, 옛날에 세운 무공에 대한 보상으로 왕의 허락하에, 시칠리아에 코를레오네 후작령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의 중신은 다른 나라의 작위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워더의 애런들 남작인 헨리 애런들은, 클리퍼드 경처럼, 신성 로마 제국의 백작이었으며, 쿠퍼 경은 대공이었다. 해밀턴 공작은 프랑스에서 샤텔르로 공작이며, 덴비 백작인 바질 필딩은 독일에서 합스부르크와 라우펜부르크 및 라인펠덴의 백작이었다. 말버러 공작은 슈바벤에서 민델하임 대공이었으며, 웰링턴 공작은 벨기에에서는 워털루 대공이었고 스페인에서는 시우다드 로드리고 공작이었으며, 포르투갈에서는 비메이라 백작이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영국에는 귀족의 땅과 평민의 땅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클랜찰리 가문의 땅은 모두 귀족의 땅이었다. 토지와 성, 시장, 대법관의 관할구, 봉토, 임대 수입, 자유지, 클랜찰리와 헌커빌 작위의 세습 영역은 임시로 레이디 조시안에게 속해 있었고 그녀가 혼인을 하면 왕의 공표대로,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이 클랜찰리 남작으로 봉해질 것이었다.
레이디 조시안에게는 클랜찰리 가문의 상속유산 외에도 개인적인 재산이 있었다. 그녀는 막대한 재산의 소유자였는데, 그중 대부분은 요크 공작에게 주는 마담 성 끄의 선물에서 온 것이었다. 마담 성 끄는 ‘꼬리 없는 마담(국왕의 혼인한 누이들이나 형수, 숙모 등 구태여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경우, 아무 부가어 없이 마담이라 칭했음)’이란 뜻으로 아무 부가어가 붙지 않는 그냥 마담이라는 의미다. 오를레앙 공작 부인이자, 프랑스에서는 왕비 다음으로 지체 높은, 영국의 앙리에트(찰스 2세의 여동생)를 그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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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왕과 제임스 왕의 치하에서 번창한 것에 뒤이어, 데이비드 경은, 윌리엄 왕의 치하에서도 계속 번영을 구가했다. 그는 제임스 2세를 지지했으나 망명지까지 왕을 따라갈 정도로 추종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합법적인 왕을 경애하면서도 그는 분별력 있게 왕위 찬탈자에게도 봉사했던 것이다. 그는 종종 규율을 어길 때도 있었지만, 뛰어난 대장이었다. 육군에서 해군으로 옮겨간 후에도 해군함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그곳에서 ‘경(輕) 프리게이트 함의 함장’이라 불리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모든 악덕의 멋을 극대화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젊은이가 되었다. 다른 이들처럼 약간은 시인 행세를 하고, 국가의 훌륭한 봉사자이자 군주의 착한 신하로서, 축제와 연회와 국왕이 주관하는 온갖 의식과 전쟁에 열심히 참여하는 한 명의 신사가 되었다. 대상에 따라 시력이 약하기도 하고 꿰뚫는 듯도 하기 때문에, 성실한 신하 같으면서도 또한 몹시 오만불손하기도 하고, 청렴하고 예의 바르면서도 시기 적절히 거만해질 수도 있는, 왕의 좋고 나쁜 기분을 매우 잘 읽을 수 있는, 칼날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영웅심 때문에 목숨을 위험에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고, 정중함과 예의를 갖춘, 왕실의 특별한 행사에서는 무릎 꿇는 것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쾌활한 용기를 지닌 겉모습은 조신하지만 마음은 중세의 방랑 기사와 같은, 나이 마흔다섯의 매우 젊은 남자, 그것이 데이비드 경이었다.
데이비드는 종종 프랑스의 가요를 부르곤 했다. 찰스 2세는 그 우아한 명랑함에 호감을 가졌다.
그는 웅변술과 멋있는 언사를 좋아했다. 보쉬에(사제이자 신학자, 문필가)의 추도사와 같은 구변 좋은 사설 따위를 무척이나 찬미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임대 수입이 해마다 1만 파운드, 즉 25프랑쯤 되었다. 빚을 지면서 그럭저럭 살아갔다. 사치와 무절제와 새로운 유행에 있어서는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혹시 누가 자기를 모방하기 시작하면, 그는 즉시 방식을 바꾸었다. 말을 탈 때도, 암소 가죽을 뒤집어 만든 장화에 박차를 달아 신었다. 그는 아무도 가지지 못한 모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대미문의 레이스, 그에게만 유일하게 있는 가슴팍 장식 등을 달고 다녔다.
3. 여공작 조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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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년경, 레이디 조시안의 나이가 스물셋, 데이비드 경의 나이가 마흔넷에 달했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구실이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미워했을까? 그러한 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우리를 피해 달아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추호도 서두를 마음을 갖지 않게 된다. 조시안은 자유로이 지내고 싶었고, 데이비드는 젊음을 더 누리기를 원했다. 가능한 한 가장 늦게 인연을 맺는 것, 그것이 그에게는 젊음의 연장술로 여겨졌다. 남녀 간의 사랑이 구애받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그처럼 늑장을 부리는 젊은 남자들이 많았다. 귀부인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어린 구애꾼으로 그들은 늙어 갔다. 가발이 공모자 역할을 했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분(粉)이 보조자 행세를 했다. 나이 쉰다섯에 이르렀음에도, 브롬리의 제러드 가문의 남작 샤를 제러드에게는 여전히 행운을 안겨 줄 여인들이 런던에 그득했다. 코번트리 백작 부인이기도 한, 귀엽고 젊은 버킹엄 공작 부인은, 포콘버그 자작인 예순일곱의 토머스 벨러지스를 열렬히 애모했다. 나이 칠십에 이른 코르네유가 남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을 스무 살 여인 앞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후작 부인이시여, 만약 내 얼굴이.”
여인들 또한 인생의 가을에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있었다. 니농과 마리옹 같은 여인들이 그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이상 예로 든 사람들이 그 당시를 나타내는 전형이었다.
조시안과 데이비드는 특이한 모습으로 연애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같이 어울리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한 관계를 왜 서둘러 끝내야 한단 말인가? 당시의 소설은, 애인들과 약혼자들을, 가장 아름다운 분위기인 이런 종류의 기간을 가지도록 부추겼다. 게다가 조시안의 경우, 그녀는 자신이 사생아임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공주라 여겼고, 따라서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를 우위에서 대했다. 그녀는 데이비드 경에게 흥미를 보였다. 데이비드 경의 외모가 뛰어났으나, 그것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가 우아하다고 생각했다.
우아한 것, 그 것은 전부다. 우아하고 멋진 캘리반이 가엾은 아리엘을 앞서 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캘리반은 사납고 흉측한 하인이고, 아리엘은 대기의 정령 중 하나이다.) 데이비드 경의 용모는 뛰어났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잘생긴 용모만으로는 매력이 없다. 그런데 데이비드 경은 달랐다. 그는 도박을 하고, 치고받고, 빚을 졌다. 조시안은 그의 말들과, 개들과, 내기에서 돈을 잃는 모습, 특히 그의 정부들을 독특하게 여겼다. 데이비드 경 또한 여공작 조시안에게 매혹되어 있었다. 어떠한 흠도 가책감도 없으며, 거만해 함부로 범접할 수 없고 동시에 자유분방했기 때문이다. 그가 소네트를 지어 바치곤 했고, 조시안은 종종 그것들을 읽었다. 그는 소네트를 통해 자신이 조시안을 소유한다는 것이 천상의 나라에 오르는 것과 다름없지만, 그렇다 해서 그러한 승천을 다음 해로 연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조시안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겠노라 했고, 그것은 모두에게 적절한 합의였다. 궁정에서는 모두들 그러한 지체가 고상한 취향의 절정이라고 감탄했다. 그럴 때마다 조시안은 이야기했다.
“제가 데이비드 경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저는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바랄 게 없는데!”
조시안은 몸집이 큰 편이었다. 그처럼 웅장한 여자는 드물었다. 그녀의 키는 매우 컸다. 과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자줏빛 금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색채를 띠고 있었다. 살집 좋고, 싱싱하고, 건장하고, 주홍빛이 감도는 몸집을 지닌 그녀는, 대단한 과감성과 뛰어난 기지도 함께 갖췄다. 그녀의 눈은 지나칠 정도로 투명했다. 연인은 전혀 없었으나 정숙함 또한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자존심의 성벽 속에 가두어 두고 있었다. 남자는 모두 하찮은 존재였다. 신이나 괴물이라면 혹시 그녀와 어울릴 수 있겠다. 조시안은 정조 그 자체였다. 하지만 순진함 없는 정조였다. 그녀는 멸시하듯 남자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처럼 독특하고 괴이한 염문이 퍼지는 것에 대해 화를 내지는 않았다. 자신에 대한 평판 따위를 그녀는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오직 명예에만 집착했다. 쉬워 보이지만 얻을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 대단한 것이다. 조시안은 스스로 위엄 있으면서도 감각적이라고 여겼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평범하지 않았다. 매혹하기보다는 파고드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가슴을 밟고 지나갔다. 그녀는 세속적이었다. 누군가 그녀 가슴속에 영혼이 있다고 하며 그녀에게 증명하려 했다면, 그녀의 등에 날개가 돋아나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그녀는 로크에 대해 논했다. 그녀는 예절을 지켰다. 사람들은 그녀가 아랍어를 안다고 추측했다.
몸집이 크다는 것과 여자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어 쉽게 사랑으로 변하는 연민의 정에 여자들은 흔들리기 쉬운데, 조시안은 이와 달랐다. 그녀가 둔감해서라는 말은 아니다. 고대에는 살을 대리석에 비유하곤 했는데, 그것은 전혀 옳지 않다. 살의 아름다움은 대리석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이다. 숨을 헐떡이고, 얼굴을 붉히고, 피를 흘리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단단하지 않으면서 굳건하고, 차갑지 않되 깨끗하며, 설렘과 흔들림을 가지고 있다. 살은 살아 있음을 뜻하지만 대리석은 죽음이다 살은, 그 아름다움이 어느 수준에 올랐을 때, 나체를 드러낼 권리가 있다. 그녀는 마치 베일에 덮인 듯이 눈부심을 발한다. 조시안의 나신을 보았을지도 모르는 사람은, 누구든 빛을 발산하는 가운데에서만 그 조각상을 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벗은 몸을 사티로스(사람의 몸뚱이에 염소의 뿔과 굽을 가진 신으로, 음탕한 사람 혹은 변태 성욕자를 상징)나 내시에게는 기꺼이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신화적인 태연함이 있었다. 그녀의 나신이 고문이었으며, 탄탈로스(올림포스 신들에게 죄를 짓고 목까지 물에 잠겨 있으면서도 영원히 물을 마시지 못하는 벌을 받은 이)를 속아 넘기는 것을 그녀는 매우 즐거워했을 것이다. 왕은 그녀를 여공작으로 만들었으며, 주피터는 그녀를 네레이스(바다의 요정, 욕정의 대상으로 몽상되는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그 이중의 발광체가 그 여인의 비범한 밝은 빛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녀를 찬미하고 있노라면 자신이 이교도나 하인이 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기원은 사생(私生)이고 바다였다. 그녀는 물거품에서 생겨난 것 같았다. 그녀의 운명은 처음 물결에 맡겨졌으나, 이후에는 왕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 속에 파도와 우연과 귀족의 신분과 폭풍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문예에 정통하고 학식도 뛰어났다. 정염(情炎)이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다가온 적은 없지만, 그녀는 모든 정염의 밑바닥을 샅샅이 탐구했다. 감정의 실행에 대한 혐오와 관심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마치 루크레티아(강간을 당하자, 모욕을 참고 남편에게 철저히 알린 후 스스로 자살한 사건)처럼 단검으로 자신을 찌른다면 그것은 죽은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모든 형태의 타락이 그 처녀 속에 환상의 상태로 머물렀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디아나(순결을 지키는 처녀의 전형) 속에 있던 내재적인 아스다롯(사랑과 전쟁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고귀한 신분이라 매우 도도했으며,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난공불락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스스로 타락의 계기를 만드는 것을 재미있게 여겼을지 모른다. 그녀는 영광에 휩싸여 님부스(황제나 신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배광) 속에 살면서도, 그곳에서 내려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추락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호기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녀는 그녀가 타던 구름에 비해 좀 무거운 편이었다. 타락이 호감을 산다. 왕족의 제한 없는 권한이, 시험 삼아 해 볼 수 있는 특전을 허락한다. 그리하여 평민 여자가 신세를 망치는 사건에서, 왕실의 여인은 유흥거리를 찾는다. 출신이나 외모, 거만함, 예지 등 모든 면에서, 조시안은 왕비와 차이가 없었다. 그녀는 한때, 말굽쇠를 손가락으로 부러뜨리던 루이 드 부플레르에게 열정을 가졌다. 그녀는 그 헤라클레스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녀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선정적이고도 음탕한 이상형을 기다리며 살고 있었다.
조시안은 ‘피소에게 보내는 편지’의 다음과 같은 구절, Desinit in piscem을 생각게 했다.
여인의 아름다운 흉상이 히드라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그것은 귀족의 가슴, 왕실의 품격에 의해 조화를 이룬 젖가슴과, 생생하고 맑은 시선, 균형 잡힌 도도한 얼굴 모습, 마치 물속에 있는 듯 뿌옇고 희미하게 들여다보이는, 아마 용과 같은 기형적인 꼬리를 물결처럼 일렁이며 감춘 흉상과 같았다. 몽상의 심연 속에서 악덕으로 마무리된 오만한 미덕이다.
*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재치를 뽐내는 ‘프레시외즈(17세기 전반 프랑스 사교계를 풍미했던 잘난 체하는 취미와 경향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것이 유행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상기해 보자.
엘리자베스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세 시대에 걸쳐 영국을 지배했던 전형적인 인물이다. 엘리자베스는 단순한 영국 여성이 아니라 영국의 국교(國敎)였다. 여왕에 대한 영국 감독교회(가톨릭처럼 교직자들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는 교파, 영국의 정교)의 깊은 경의는 그러한 사실에서 유래한다. 그러한 존경심에 가톨릭교회가 불편해졌고, 결국 그녀를 적당히 파문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를 맹렬히 비난하던 교황 식스토 5세의 입에서는 어느새 달콤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Un gran cervello di principessa(그 여왕의 뛰어난 지성)…….’
교회 문제보다는 여자에 대한 문제에 더 관심을 보였던 메리 스튜어트는, 언니인 엘리자베스에게 거의 존경을 표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왕이 여왕에게, 교태부리는 여자가 정숙한 여자에게 쓴 편지를 엘리자베스에게 보냈다.
“당신이 결혼을 기피하는 것은, 항상 사랑할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예요.”
메리 스튜어트는 부채질을 했고, 엘리자베스는 도끼질을 했다. 아예 서로에게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또한 두 여인은 문학에서도 경쟁적이었다. 메리 스튜어트는 프랑스어로 시를 지었고, 엘리자베스는 호라티우스를 번역해 냈다. 스스로 아름답다는 포고령을 내렸던 엘리자베스는 4행시와 이합체(離合體) 시를 좋아했고, 미소년들에게는 투항하였으며, 옷장 속에는 삼천 벌의 의상과 장신구를 가졌으며, 어깨가 넓다는 이유로 아일랜드인들을 칭찬했고, 치마 밑단에 금박(金箔)을 입혔고, 장미를 좋아했고, 욕설을 퍼부었고, 화가 났을 때는 발을 굴렀고, 하녀들을 주먹으로 쳤고, 더들리(엘리자베스 1세의 총신)를 저주했고, 대법관 벌레이에게 매질을 가했고, 매튜에게 침을 뱉고, 해턴의 멱살을 잡았고, 에식스의 따귀를 때렸고, 바송피에르에게 자신의 허벅지를 보여 주었는데, 그녀는 처녀였다.
그녀가 바송피에르에게 한 일은,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위해 했던 것이었다. 성서가 이미 전례(前例)를 남겼으니, 그것은 옳은 행동이었다. 성서에 합당한 것은 영국의 국교가 될 수 있다. 성서가 전하는 옛 이야기에서는 심지어 아이도 하나 태어났는데, 아이의 이름은 에브네하쿠엠 혹은 멜릴레켓이라하며, 솔로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풍습을 왜 거부해야 하는가? 견유주의가 위선보다는 낫다.
오늘날, 웨슬리라고 하는 로욜라(예수회의 창시자, 웨슬리는 개신교 목사로 야외 설교로 교세를 넓힘)를 가지고 있는 영국은, 그러한 과거에 눈을 떨궜다. 언짢기는 했지만 자랑스러웠다.
그러한 인식이 만연했던지라 기이한 것에 대한 취향이 존재했다. 특히 여인들이 그러한 취향을 드러냈는데, 특히 아름다운 여인들에게서 그러한 경향이 드러났다. 마카코 원숭이(몹시 추한 외모의 남자) 하나 없으면서 아름다우면 뭘 해? 뚱뚱한 땅딸보와 편하게 이야기도 할 수 없다면 여왕이 무슨 소용인가? 메리 스튜어트는 리치오라는 기형 남자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었다.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는 어느 검둥이와 ‘약간 친하게’ 지냈다. 그리하여 검둥이 수녀원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위대한 시대의 규방에서는 곱사등이 환대를 받았는데, 대표적인 증거로 룩셈부르크의 대원수를 꼽을 수 있다.
룩셈부르크 공에 앞서, 콩데 공은 ‘유난히 귀여운 작은 남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아름다운 여인들도 아무 불편없이 스스로를 기형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이 수용되었다. 앤 볼린의 경우, 한쪽 젖가슴이 다른 쪽보다 컸으며, 한 손에는 손가락이 여섯이었으며, 덧니가 있었다. 라 발리에르의 다리는 휘어 있었다. 그것이 헨리 8세가 미치광이고, 루이 14세가 광적이라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정신 상태 역시 같은 차원의 탈선 현상을 보였다. 상류층 여인 중 기형적으로 생기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그네스가 멜뤼진을 감추고 있는 격(아그네스는 순진한 처녀, 멜뤼진은 토요일 마다 다리가 뱀으로 변했다는 켈트 신화속 인물)이었다. 낮에는 여인이다가 밤이 되면 마녀로 바뀌었다. 어떤 여인은 처형장에서, 막 잘려 창끝에 꿰어져 있는 머리에 입 맞추러 가기도 했다. 수많은 겉멋쟁이 여인들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는, 죽은 연인들의 심장을 넣은 작은 양철 함들을 허리띠 밑에 꿰매어 달고 다녔다. 헨리 4세는 그 치마폭 아래에 숨기도 했다.
18세기, 섭정공(루이 15세 유년기에 섭정을 맡았던 오를레앙 공)의 딸인 베리 공작 부인은 그 모든 여인들의 특성을 한 몸에 요약해, 하나의 전형을 제공했다.
더불어 아름다운 귀부인들은 라틴어도 알고 있었다. 16세기 이후부터는 그 것이 여성적 우아함이라 평가받았다. 제인 그레이(헨리 8세의 조카)는 그러한 우아함을 한껏 부풀려 히브리어까지 익혔다.
여공작 조시안은 라틴어를 사용했고 게다가 가톨릭이었다. 따라서 아버지인 제임스 2세보다는 숙부 찰스 2세에 가까웠지만 비밀로 했다. 제임스는 가톨릭 사상 때문에 왕국을 잃었지만, 조시안은 귀족 작위를 위태롭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절친한 사람들이나 세련된 남녀 인사들과 어울릴 때만 가톨릭 신자로 행동하고, 겉으로는 프로테스탄트를 표방했다. 하층 계급을 위해서였다.
그런 식으로 종교를 이해하는 법은 유쾌하다. 국교인 감독교회에 포함된 모든 이권을 맘껏 누린 다음, 훗날 죽을 때 그로티우스(네덜란드의 법률가이자 외교관)처럼 가톨릭의 향기를 풍기면, 당신을 위해 프토 신부가 미사를 집전해 주는 영광을 얻게 된다. 살집 좋고 건강했지만 조시안은 완벽한 겉멋 부리는 여자였다.
종종 말끝을 길게 끄는 그녀의 관능적인 태도는 정글 속에서 암호랑이가 걸으며 다리를 길게 뻗는 움직임과 흡사했다.
겉멋쟁이 여인의 유용성은, 그러한 사실이 인류의 지위를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더 이상 인류에 속한다는 사실이 명예스럽지 않게 된다.
인간이라는 종자를 멀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올림포스를 소유할 수 없다면 랑부이에 저택(사교계 인사들과 문인들만 모이던 저택)을 가지면 된다.
그곳에서는 유노가 아라맹트(마리보의 ‘솔직한 여인들’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기지 있되 겸손한 여인을 암시)로 변한다. 자신에 대한 신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여자는 새침때기가 된다. 천둥이 없는 대신 건방짐을 갖고 있다. 사원이 규방으로 오그라든다. 여신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우상이 된다.
또한 그들의 세련됨 속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현학적인 태도가 있다.
교태 부리는 여인과 현학자는 가까운 두 이웃이다. 그들의 유착(癒着)은 건방짐 속에서 선명해진다.
섬세함은 관능에서 시작된다. 갈망은 섬세함에 영향을 미친다. 진저리 치는 찡그린 얼굴은 욕심에 어울린다.
그리고 겉멋쟁이 여인들에 대한 극도의 조심성을 대신하는 여인의 약한 측면은, 듣기 좋은 온갖 사탕발림에, 자신이 보호받고 있음을 느낀다. 구덩이가 있는 참호와도 같다. 모든 겉멋쟁이 여인은 싫어하는 표정을 한다. 그것이 그들을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은 허락할 것이지만, 당장은 경멸한다.
조시안은 깊은 한 내면 한구석에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러한 성향을 느꼈기 때문에 숙녀인 척했다. 단정하고자 하는 지나친 노력이 그녀를 오히려 반대쪽으로 이끌어 겉치레하게 만들었다. 지나친 방어, 그것은 공격에 대한 내밀한 욕구의 표현이다. 사나운 사람은 엄격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어떤 돌발적인 일탈을 사전에 준비하면서, 자신의 신분과 가문이 확보해 준 오만한 예외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18세기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영국은 프랑스의 섭정 시대 풍정을 초안으로 하고 있다. 월폴과 뒤부아가 서로를 지지하고 있었다. 일찍이 선왕 제임스 2세에게 누이 처칠을 팔았던 말버러는 그 왕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볼링브룩이 광채를 내고 리슐리외가 떠오르고 있었다. 남녀 간의 수작이 여러 신분의 결합을 편하게 만들었다. 악습을 통해 대등한 관계가 이루어졌다. 천한 신분과의 교제, 그 귀족적 서곡이, 혁명을 통해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젤리오트(대중가수)가 백주대낮에 에피네 후작 부인(여류 문인. 루소의 후견인으로 많은 문인이 모이는 살롱을 소유)의 침대에 앉아 있을 때가 머지않았다. 미풍양속은 먼 지역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16세기에, 앤 볼린의 잠자리에서 스미턴(잉글랜드의 사제)의 나이트캡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어느 종교회의에서 그것을 천명했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여인이 잘못을 나타낸다면, 그 시대만큼 여인이 여인다웠던 때는 이전에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매력과 전지전능함으로 가리고, 나약함을 절대적 힘으로 감싸며, 그 시절처럼 여인이 용서를 받은 적은 없었다. 금지된 과일을 허락된 것으로 만든 것은 이브의 타락이지만 허락된 과일을 금지된 것으로 만든 것은 승리였다. 그녀는 그렇게 했다. 18세기에는 여인이 남편을 밖에 둔 채 대문의 빗장을 지른다. 그녀는 사탄과 함께 에덴동산에 칩거한다. 아담은 밖에 있다.
*
조시안의 모든 충동은 합법적으로 항복하기보다 정중하고 흔쾌히 내던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자신을 우아하게 내려놓는 자세는, 문학을 상징하고, 메날카와 아마랄리스(두 사람 모두 얼간이의 전형)를 연상시키며, 그것 자체가 거의 현학적인 행위이다.
마드모아젤 드 스퀴데리는, 추한 얼굴 자체에 대해 느끼는 매력은 별개이지만, 자신을 펠리송(소설 속 등장인물. 천연두로 얼굴이 심하게 망가짐)에게 허락할 때,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고의 여성에서 예속된 아내로 변하는 것, 그것이 영국의 오래된 풍습이었다. 조시안은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속박의 순간을 뒤로 미루었다. 데이비드 경과의 결혼을 요구하는 왕실의 뜻을 기꺼이 따라야만 했다. 불가피한 필연이지만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 조시안은 데이비드 경이 좋다고 하면서도 거부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매듭을 짓지는 않되 끊어 버리지도 말자는 암묵적 양해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피하고 있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서는 방식의 연애는, 당시에 유행하던 미뉴에트나 가보트 등 춤으로 드러나 있었다.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은 안색을 퇴색시키고, 달고 다니는 리본을 시들게 하고, 늙는다. 혼인은 명확하되 절망적인 해결책이다. 공증인의 손을 빌려 한 여인을 넘겨주다니, 그 얼마나 미천한 짓인가! 혼인의 포악성은, 결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고, 개인의 의지를 없애 버리며, 선택을 죽이고, 문법같이 통사론을 가지고 있으며, 영감을 철자법으로 바꿔 버리고, 사랑을 받아쓰기로 전락시킨다. 삶의 신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주기적이며 운명적인 기능에 투명성을 강제로 부과하고, 구름에서 슈미즈를 입은 여인의 모습을 없애 버리고, 권리자나 수혜자 모두에게 한정된 권리만 주고, 힘을 한쪽으로만 잔뜩 기울여, 굳건한 성(性)과 강력한 성 간의, 혹은 힘과 아름다움 간의, 매력적인 균형을 없애 버리고, 결국 주인 하나와 하녀 하나를 만들어 낸다. 반면, 결혼 이전에는 남자 노예 하나와 여왕 하나가 있다. 침대가 예의 바른 물건으로 간주될 만큼 그것을 무미건조하게 변질시키다니, 그보다 더 지나친 일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악이 아니라니, 지독히 어리석은 짓이다!
데이비드 경은 원숙하였다. 나이 마흔, 적지 않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한 실제로 용모는 여전히 삼십대 같아 보였다. 그는 조시안을 손에 넣는 것보다 갈망하는 것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손에 넣은 다른 여인들도 있었다. 한편 조시안 또한 자기만의 몽상이 있었다.
여공작 조시안에게는, 두 눈 중 하나는 푸르고 다른 하나는 검다는 특징이 있었다.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녀의 눈동자는 사랑과 증오, 행복과 불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낮과 밤이 그녀의 시선 속에 뒤섞여 있었다.
그녀의 야심은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스위프트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경멸이 존재한다고 상상하십니다.”
‘당신들’은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녀는 겉보기에는 교황 예찬자였다. 그녀의 가톨릭주의는 멋을 부리는데 필요한 양을 넘지 않았다. 오늘날의 퓨지주의(영국 국교의 한 종파. 국교와 가톨릭을 조화시키려 함)와 비슷할 것이다. 그녀는 벨벳이나 새틴 혹은 모헤어 등으로 지은 넓은 폭의 드레스를 입곤 했는데, 어떤 것은 치수가 15 내지 16온느 가량이었고, 천위에 금박과 은박 무늬를 덧붙였다. 또한 허리띠에는 많은 진주와 보석 장식 매듭이 교차해 달려 있었다. 그녀는 장식 끈을 남용했다. 때로는 기사 후보자와 같이, 장식끈을 꿰매어 붙인 천으로 지은 재킷을 입기도 했다. 이미 14세기에, 리처드 2세의 왕비 앤이 영국에 소개한, 여자용 안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자용 안장을 놓고 말을 탔다. 또한 카스티야식으로, 계란 흰자위에 녹인 얼음사탕으로, 얼굴과 팔과 어깨와 목을 씻었다. 혹시 누가 그녀 앞에서 재치 넘치는 말을 하고 나면, 그녀는 기이한 우아함이 감도는 웃음을 짓곤 했다.
게다가, 전혀 악의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착한 편이었다.
4. 마기스테르 엘레간티아룸
(예법이나 취미에 밝은 사람이란 뜻)
조시안은 권태에 사로잡혀 있었고, 당연한 일이었다.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은 런던의 방탕한 생활 무대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노빌리티와 젠트리(귀족 바로 밑의 계급)가 모두 그를 숭배했다.
데이비드 경이 얻은 영광 하나를 기록해 두자. 그는 과감히 머리카락을 드러내고 다녔다. 가발에 대한 반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1821년에, 유진 드베리아가 처음으로 수염을 기른 것과 같이, 1702년에 프라이스 데버루는 머리카락을 교묘하게 컬하여 숨기고, 처음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대중 앞에 나타났다. 머리카락을 드러낸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짓과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이 분개했다. 프라이스 데버루가 헤리퍼드 자작이며 영국의 중신임에도 그러했다. 그는 심한 모욕을 당했고, 당시로서는 납득이 갈 만한 일이었다. 그에 대한 야유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데이비드 경이 문득, 가발을 쓰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한 일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다. 데이비드 경은 헤리퍼드 자작보다 더 심한 치욕을 당했다. 그는 끄떡도 하지 않고 저항했다. 프라이스 데버루가 처음 시작했고, 그는 두 번째 도전자였다. 그러나 때로는 최초로 시작하기보다 두 번째로 따라 하기가 더 힘든 법이다. 천재성은 덜 필요하지만 용기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람은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도취감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수 있다. 반면에 두 번째 사람은 나락이 뻔히 보이건만 그 속으로 치닫는다. 더 이상 가발을 쓰지 않겠다는 심연으로 데이비드 더리모이어가 몸을 내던졌다. 훗날 사람들은 그들을 모방했고, 두 혁명가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대담성을 발휘해 자신들의 모발로 머리를 치장했고, 분(粉)을 사용해 충격을 줄이려 했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중요한 역사적 쟁점을 분명히 해 두기 위해, 가발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의 진정한 우선권이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에게 있음을 말해 두자. 그녀는 평소에 남장을 했고 1680년에는 밤색 머리털을 사람들 앞에 드러냈는데, 머리 장식도 하지 않아, 분을 뿌린 머리카락들이 삐죽이 솟구쳐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는 ‘수염도 몇 가닥’ 있었다고 미손이 전했다.
한편 교황은, 1691년 3월에 교서를 내려, 주교들과 사제들의 머리에서 가발을 벗김으로써 가발의 신용을 무너지게 했으며, 성직자들에게 그들의 머리를 기르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데이비드 경은 가발을 쓰지 않았고, 암소 가죽 장화를 신었던 것이다.
그처럼 대단한 일들로 인해, 그는 많은 사람들의 찬양을 받았다. 그가 리더 아닌 클럽이 없었고, 모든 권투 경기장은 그를 심판으로 모시고자 했다.
그는 여러 하이 라이프 서클의 규율을 초안했다. 그는 멋쟁이 협회 여럿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인 레이디 기니는 팔멀에 1772년까지도 여전히 존재했다. 레이디 기니는 젊은 귀족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도박을 했는데 최하 내깃돈이 50기니 꾸러미 하나였다. 또한 테이블 위에 놓인 돈 액수가 2만 기니 이하인 적은 없었다. 각 노름꾼 곁에는 작은 원탁이 있어, 찻잔이나 기니 꾸러미를 넣어 두는 황금빛 나무통을 놓았다. 노름꾼들은, 하인들이 칼을 갈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가죽 토시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손목 레이스를 보호해 주었고, 또한 가죽 가슴 받이는 둥근 주름 장식을 보호해 주었다. 또한 환하게 밝힌 램프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컬한 머리를 가지런히 유지하기 위해, 챙이 넓고 꽃으로 뒤덮인 밀짚모자 하나씩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표정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특히 ‘피프틴 게임(1부터 9 사이에 있는 카드 세 장으로 수의 합이 15가 되도록 하는 게임)’을 즐길 때는 더욱 그러했다. 모두들 행운을 끌어오기 위해서 상의를 뒤집어서 등에 두르고 있었다.
데이비드 경은 비프스테이크 클럽과 슈얼리 클럽, 스플릿 파딩 클럽, 클럽 데 부뤼, 클럽 드 그라트수, 왕당파들의 클럽인 클럽 드 느 셀레, 즉 실드 넛 클럽, 그리고 밀턴이 만든 로타 클럽을 대체하기 위해 스위프트가 만든 마티너스 스크리블러스 클럽 등의 일원이었다.
비록 그는 잘생긴 미남이었으나 클럽 데 레(못생긴 자들의 모임)에도 가입되어 있었다. 그 클럽은 추한 용모에 헌납된 모임이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서가 아닌, 추한 남자를 위한 결투를 약속했다. 클럽에는 테르시테스, 트리불레, 던스, 휴디브러스, 스카롱 등 흉측하게 생긴 사람들의 초상화를 걸어 놓았다. 벽난로 위에는 두 애꾸눈인 코클레스와 카모옌스 사이에 아이소포스의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코클레스는 왼쪽 눈이 애꾸였고 카모옌스는 오른쪽 눈이 애꾸였는데, 두 사람 모두 애꾸인 쪽만을 조각해, 눈 없는 옆모습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비자르 부인이 천연두에 걸린 날, 레 클럽에서는 그녀를 위해 축배를 올렸다. 그 클럽은 19세기 초까지도 번창했으며, 미라보에게 명예회원 증서를 보내기도 했다.
찰스 2세의 왕정복고 이후, 혁명적 클럽은 모두 폐지되었다. 특히, 무어필즈 근처의 어느 뒷골목에 있던 선술집은 완전히 철거되었는데, 캘프스 헤드 클럽, 즉 송아지 머리 클럽이 있었던 곳이었다. 클럽이 그러한 명칭을 갖게 된 것은, 1649년 1월 30일, 찰스 1세의 피가 단두대 위에 흐르던 날, 그 선술집에 모여서 크롬웰의 건강을 빌며, 송아지 두개골에 붉은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이다.
공화파 클럽에 뒤이어 군주파(왕당파) 클럽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모두 점잖게 즐겼다.
시 롬스(요란하게 떠들며 논다는 뜻) 클럽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들은 길에서 가능한 덜 늙고 덜 추한 여자를 골라, 클럽 안으로 강제로 밀어 넣고, 물구나무를 선 채 두 손으로 걷게 했다. 거꾸로 내려온 치마를 베일처럼 쓰고 손으로 걷게 했다. 만일 그녀가 고분고분하게 그 일을 제대로 해 내지 못했을 때는 승마용 채찍으로 그녀의 몸 중 드러난 부분을 후려쳤다. 그녀가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하는 젊은 귀족을 ‘뜀뛰기 곡예사’라 불렀다.
에클레르 드 샬뢰르라는 클럽이 있었는데, 메리댄스 클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곳에서는 흑인과 백인 여자들로 하여금 페루의 피칸테스 및 팀티림바스 춤을 추게 했는데, 그중에 ‘못된 아가씨’라는 뜻을 가진 모사말라 춤은, 밀겨 위에 앉았다가 일어서며, 아름다운 엉덩이 자국을 남기는 무희를 승리자로 삼는 춤이었다. 그곳에서는 루크레티우스의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묘사한 정경을 상연했다.
Tunc Venus in sylvis jungebat corpora amantum.
(그때 숲속에서 베누스가 연인들의 육체를 서로 밀착시켜 주었다.)
헬파이어 클럽, 즉 ‘지옥불 클럽’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불경한 자가 되는 놀이에 내기를 걸었다. 그것은 신성모독 경쟁이었다. 그곳에서는 지옥이 경매에 붙여져, 가장 신을 심하게 모독하는 언사에게 낙찰되었다.
쿠 드 테트 클럽도 있었다. 그곳의 유래는 클럽에서 사람들에게 머리로 박치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슴팍 떡 벌어진 바보처럼 보이는 짐꾼이나 하역부를 찾아냈다. 그들에게 흑맥주 한 단지를 주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강제로 마시게 한 다음, 그 대가로 가슴팍에 네 번에 걸쳐 박치기를 했다. 언젠가, 몸이 비대하고 짐승처럼 생긴 고겐저드라는 웨일스 사람이, 박치기 세 번 만에 죽고 말았다.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수사가 이루어졌으나 검시(檢屍) 배심원의 최종 평론은 다음과 같았다.
‘과음으로 인한 심장 팽창사’
실제로 고겐저드는 흑맥주 한 단지를 마시기는 했다.
펀 클럽이라고 불리던 것도 있었다. 펀(fun)은 캔트(cant)나 유머(humor)처럼, 번역할 수 없는 특수한 낱말이다. 펀과 익살극과의 관계는 고추와 소금과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어떤 집에 몰래 침입해, 그 가족의 초상화에 칼자국을 내고, 그 집 개를 독살하고, 고양이를 붙잡아 큰 새장에 가두는 등의 행위를 가리켜, ‘펀의 작품 한 편 만들기’라고 한다. 거짓된 흉보를 전해 사람들로 하여금 공연히 상복을 입도록 하는 것, 그것이 펀이다. 햄프턴 코트에 걸려 있는 홀바인의 그림에 네모난 구멍을 뚫은 자도 펀이다. 밀로의 비너스 석상의 팔을 자른 장본인이 펀이었다면, 그 펀은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제임스 2세 치세에, 백만장자인 어느 젊은 귀족이 한밤중에 어느 초가집에 불을 지르자, 런던 전체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젊은 귀족은 펀의 제왕으로 공포되었다. 초가에 살던 가엾은 이들은 내복 차림으로 대피했다. 모두 고위층 귀족들로 구성된 펀 클럽의 회원들은, 일반 시민들이 잠자리에 든 시각에 런던을 헤집고 다니며, 덧문의 경첩을 뽑고, 펌프의 도관을 잘라 버리고, 저수통에 구멍을 내고, 간판들을 떼어 내고, 농작물을 짓밟고, 가로등을 꺼 버리고, 집들의 대들보를 톱으로 자르고, 창문의 유리를 깨뜨렸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지역에서 더욱 심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그러한 짓을 자행한 사람들은 부자들이라 어떠한 고소도 불가능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한낱 희극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건지 섬의 여러 잉글랜드 구역에서는, 이따금 캄캄해지면, 누군가가 울타리를 부러뜨리거나, 문에 달린 노커를 떼어 버리는 등 주택에 손상을 입힌다. 만약 가난한 이들이 그러한 짓을 저질렀다면 그들을 도형장으로 보낼 테지만 그런 짓을 한 이들은 사랑스러운 젊은 귀족들이었다.
여러 클럽 중 가장 두각을 드러냈던 것은, 이마에 초승달 무늬를 그리고 스스로 ‘위대한 모호크’라 칭하던 황제가 주재하던 클럽이었다. 모호크 클럽은 펀 클럽을 뛰어넘었다. 악을 위한 악을 행하는 것이 그들의 강령이었다. 모호크 클럽의 웅대한 목표는 ‘해를 끼치는 것’이었다.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든 가능했다. 모호크 클럽의 일원이 된 모두가, 해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선서를 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든, 언제든, 누구에게든, 어떻게든, 해를 끼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모호크 클럽의 회원은 누구나 한 가지 재능이 있어야 했다. 어떤 자는 ‘춤의 고수’였다. 그는 농민들의 장딴지를 칼로 찌르면서 그들이 깡충깡충 뛰게 하는 자였다. 다른 자들은 ‘진땀을 흘리게 하는’ 일에 능숙했다. 우선, 손에 결투용 장검을 들고 여섯 내지 여덟 명의 귀족들이 한 부랑자의 주위를 둘러싸고 원을 만든다. 사방팔방 가로막혀 있으므로 그는 어느 한 사람에게서도 도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부랑자의 등이 향하는 귀족은 검으로 그를 찌르니, 그는 팽이처럼 돌며 도망 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그의 옆구리에 칼끝 공격이 가해지면, 그의 뒤에 또 다른 귀족 하나가 나타났다. 그렇게 계속해 각자들 찔러 댄다. 그렇게 칼로 된 원 안에 갇혀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충분히 돌고 춤을 추고 나면, 하인들로 하여금 몽둥이질을 퍼붓게 해 그의 생각을 바꿔 주었다. 또 다른 자들은 ‘사자 때려잡기’를 즐겼다. 그들은 웃으며 지나는 행인을 불러 세운 다음, 주먹으로 코를 부서뜨린 후, 두 엄지손가락을 두 눈에 쑤셔 넣었다. 혹시 눈이 멀면 돈으로 배상해 주었다.
18세기 초 런던의 부유하고 한가한 사람들의 오락이 이러했다. 파리의 한가한 부자들에게는 다른 파격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샤롤레 씨는 자기 집 대문턱에서 길 가는 이들에게 총을 쏘았다. 언제나 젊은이들은 즐기는 법이니까.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은, 그처럼 다양한 오락 클럽에서, 자신의 후하고 관대한 기질로 활약했다. 물론 그 역시, 다른 모든 사람처럼, 짚과 목재로 지은 오막살이를 즐겁게 태우고,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을 조금 불에 그슬리게 했다. 하지만 그는 즉시 그들에게 돌로 새로 집을 지어 주었다. 그가 시 롬스 클럽에서, 어느 두 여자로 하여금, 두 손으로 걸으며 춤을 추게 한 일이 있다. 한 여자는 처녀였는데, 그녀에게는 결혼 지참금을 두둑하게 주었다. 다른 여자는 이미 유부녀였던 터라, 그녀의 남편을 한 성당의 사제로 임명되도록 주선해 주었다.
닭싸움은 데이비드 경 덕분에 괄목한 만한 향상을 이룩했다. 데이비드 경이 싸움닭을 무장시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경탄할 만하였다. 닭들은 사람들이 싸울 때 머리채에 들러붙듯, 적의 털을 잡아 뜯는다. 따라서 데이비드 경은 자기의 닭의 털을 가능한 짧게 만들어 놓았다. 그는 가위로 모든 꼬리 깃을 잘라 버렸고, 머리에서 어깨에 이르는 목털을 잘라냈다.
“그만큼 적의 부리에 걸려들 것이 없어지지.”
그가 하던 말이다. 그런 다음 날개를 편 후, 각 날개깃 끝을 하나하나 뾰족하게 다듬었다. 두 날개에 많은 투창을 달아 주는 것과 같았다.
“적의 눈을 공격하는 무기야.”
그의 말이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칼로 발을 긁어냈고, 며느리발톱을 뾰족하게 다듬었으며, 머리와 목에 침을 뱉었다. 투사들이 몸에 기름을 문지르듯이 마사지를 해 주는 격이었다. 그런 다음, 무시무시하게 변한 닭을 놓아주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닭을 이렇게 독수리로 변화시키는 것을 보아라! 닭장의 동물이 어떻게 산 위의 동물로 변화하는지!”
데이비드 경은 권투 시합을 관전했는데, 그가 바로 살아 있는 규칙이었다. 큰 시합이 열릴 때는 그가 손수 말뚝을 박고, 밧줄을 치며, 링의 길이를 정했다. 그가 입회자일 경우에는, 한손에 병을 들고 다른 손에는 수건을 든 채, 자신의 선수를 필사적으로 따라다녔다. “모질게 내려쳐!”
그는 선수에게 온갖 술책을 귀띔해 주고, 조언을 하고, 피를 닦아 주고, 쓰러지면 일으켜 주고, 일으켜서 무릎 위에 앉히고, 치열 사이까지 물병의 목을 밀어 넣어 주고, 직접 입에 물을 가득 붓고 선수의 눈과 귀에 비처럼 뿜어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거의 죽어 가던 선수가 다시 살아나곤 했다. 그가 심판을 담당하면, 정정당당히 싸우는지를 감독하고, 조력자만이 선수를 돕도록 하고, 선수들을 잘 지켜보아 상대 선수에게 등을 돌리면 즉시 패배를 선언하고, 한 라운드가 단 30초도 초과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지키고, 머리로 치는 것을 금지했으며, 머리로 받는 공격을 한 선수에게는 반칙을 선언했고, 쓰러져 있는 선수에게 주먹질을 가하는 것을 막았다. 그 모든 것을 잘 알았으나 그는 추호도 유식한 척하지 않았고, 사교계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가 복싱 경기의 심판일 때는, 약해 보이는 자기 편 선수를 돕는다든가, 내기의 균형을 깨뜨리기 위해서, 울타리를 성큼 넘어 들어가고, 링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링의 밧줄을 끊고 말뚝들을 뽑아 버린 후, 경기에 거칠게 끼어들던 털북숭이 파트너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데이비드 경은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심판 중 하나였다.
어느 누구도 그처럼 선수를 훈련시키지 못했다. 그가 일단 ‘트레이너’가 되기로 작정하면, 어느 권투 선수든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경은, 바위처럼 다부지고 탑처럼 신장이 큰 헤라클레스를 선택해서 그를 자식처럼 다루었다. 그러한 인간 암초를 공격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는 그런 일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한번은 키클롭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같은 이를 선택하여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예 유모 노릇을 했다. 그가 마시는 술, 고기와, 잠을 엄격히 조절했다. 훗날 몰리가 더욱 발전시킨 놀라울 만한 운동선수 식단은 그가 고안한 것이었다. 조반으로는 날계란 하나와 셰리주(酒) 한 잔, 점심에는 살짝 익힌 양의 넓적다리 고기와 차, 오후 4시에는 석쇠에 구운 빵과 차, 저녁에는 흰 맥주와 석쇠에 구운 빵을 먹였다. 그런 다음 선수의 옷을 벗기고 온몸을 안마해 준 다음 잠자리에 들게 했다. 거리에 나서면 그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우리를 뛰쳐나온 말들이나, 지나가는 마차의 바퀴, 술에 취한 군인들, 예쁜 여자들 등 모든 위험들로부터 그를 보호했다. 그는 선수의 품행도 감시했다. 그러한 어머니와 같은 정성이 양자의 교육에 끊임없이 새로운 개선책을 가져왔다. 그는 또한 상대방의 이를 부러뜨리거나 눈이 튀어나오게 하는 등의 권법도 가르쳤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일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얼마 후면 소명을 받게 될 정치적인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완벽한 귀족으로 성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은, 거리 박람회, 순회 극단의 익살광대질, 기묘한 짐승들의 서커스, 곡예사들의 막사 공연장, 익살광대들, 말더듬이 익살꾼, 야외 익살극, 장터 묘기 등을 열렬히 좋아했다. 서민들의 삶을 체험한 자가 진정한 통치자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데이비드 경은, 런던 및 다섯 항구의 선술집과 기적의 궁전(불구로 위장하고 구걸, 절도를 행하던 걸인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 빈번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돛대 담당 선원들이나 선박의 널판 틈 메우는 직공들과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움질을 벌여야 할 경우에 대비해, 그러한 하층민들의 소굴로 들어갈 때는, 일반 선원의 재킷을 입었다. 함대 내에서 자기가 점하고 있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변장을 하기 위해서는 가발을 쓰지 않는 것이 편했다. 왜냐하면 이미 루이 14세 치세에도 평민들은 사자가 갈기를 달고 다니듯, 자신들의 머리털을 간수했기 있었다. 그는 그것이 자유로웠다. 데이비드 경이 만나고 함께 어울리던 평범한 백성들은, 그를 크게 존경하면서도 그가 높은 신분에 속한 줄은 전혀 몰랐다. 모두들 그를 톰짐잭(Tom-Jim-Jack)이라 불렀다. 그는 그러한 이름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 방탕아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했다. 수완 좋은 그는 신분 낮은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먹을 쓰기도 했다. 그의 그런 멋쟁이 생활을 조시안도 알고 있었으며 매우 높이 평가해 주었다.
5. 여왕 앤
*
그 한 쌍의 남녀보다 먼저 영국의 여왕 앤이 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자, 그것이 바로 여왕 앤이었다. 그녀는 쾌활하고 관대하고 약간의 위엄이 있었다. 그녀의 장점 중 어느 것도 덕에 미치지 못했고, 그녀의 단점 중에 어느 것도 악에 이르지 못했다. 그녀의 비만은 심각했고, 농담은 둔했으며, 친절은 어리석었다. 그녀는 끈질기면서 연약했다. 총신들에게 마음을 주었지만 부군만을 위해 침대를 지켰으니, 그녀는 아내로서 부정(不貞)하기도 했고 정숙하기도 했다. 기독교도로서 그녀는 이단이면서 위선자였다. 그녀에게 한 가지 아름다움을 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니오베와 같은 튼튼한 목이었다. 그녀의 몸 나머지 부분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의 교태는 서툴렀기에 정숙했다. 피부가 희고 고왔기에, 그녀는 피부를 많이 노출했다. 목에 꼭 조이는 굵은 진주 목걸이의 유행이 그녀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좁은 이마, 육감적 입술, 살찐 볼, 큰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근시이기도 했다. 그 근시안이 그녀의 기지에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분노만큼이나 무거운 쾌활함이 표출될 때를 제외하고는 유머가 없는 질책과 불평 속에서 살았다. 그녀가 무심코 내뱉는 말의 뜻은 수수께끼와 같아서 뜻을 열심히 찾아야 했다. 그녀는 착한 여자와 심술궂은 악마의 혼합체였다. 그녀는 지극히 여성스럽게도 뜻밖의 것을 좋아했다. 앤은 다듬어지지 않은 보편적 이브의 견본이었다. 그 초벌 작품의 손에 왕위가 우연히 굴러들어 온 것이다. 그녀는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정통 덴마크 사람이었다.
그녀는 토리 당 편이면서 휘그 당원들을 통해 통치했다. 여성으로서, 분별없는 여자처럼 처신했다. 그녀는 격노하곤 했다. 국가의 일을 처리하는데 그녀보다 더 어설픈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모든 사건을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게 내버려 두었다. 그녀의 모든 정책은 빗금이 가 있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이유를 가지고도 큰 재앙을 만들어 내는 탁월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종종 권력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면, 그녀는 그러한 상태를 담대한 기도(企圖)라고 말했다.
그녀는 깊은 몽상에 잠긴 모습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중신이며 킹세일의 남작인 쿠르시 이외에는 그 누구도 국왕 앞에서 모자를 쓰고 있을 수 없노라.”
또한 이러한 말도 했다.
“나의 아버님도 해군 제독이셨으니까, 내 남편이 해군 제독이 되지 않는다면 이는 옳지 못한 일이야.”
그리고 그녀는 부군인 덴마크의 조지 공을, 영국 및 ‘모든 식민지국’의 해군 제독으로 삼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성이 난 채로 땀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겉으로 배어 나오게 했다. 그녀의 분별없는 모습에는 스핑크스와 같은 점이 있었다.
그녀는 짓궂고 도전적인 장난과 같은 펀을 싫어하지 않았다. 만약 아폴론을 꼽추로 만들 수 있었다면, 그것은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앤은 그것을 신에게 맡겨 두었을 것이다. 착한 성품을 지닌 그녀는 아무도 절망에 빠뜨리지 않되 모든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자주 거친 말을 쓰던 그녀는, 조금 더 자주 엘리자베스처럼 욕설을 했을 것이다. 그녀는 가끔, 돋을무늬 세공을 한 작고 동그란 은제함 하나를 치마에 달린 남자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곤 했는데, 상자 표면에는 Q와 A(Queen Ann) 두 글자 사이에 그녀의 옆모습이 세공돼 있었다. 그녀는 그 상자를 연 다음, 손가락 끝으로 포마드를 조금 찍어 입술을 빨갛게 칠하곤 했다 그렇게 입술을 매만진 다음에야 웃었다. 그녀는 질랜드 지방 음식인 생강 과자빵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통통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녀는 청교도적이었으나, 기꺼이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을 즐겨했다. 그녀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음악 아카데미를 세울 생각을 품었다. 1700년, 포르크로슈 라는 이름의 프랑스 사람이 40만 리브르의 비용을 들여 파리에다 ‘왕립 서커스’를 세우고자 했는데, 아르장송이 반대했다. 그러자 포르크로슈는 영국으로 건너가, 프랑스 왕의 극장보다 더 멋있는 극장을 여왕 앤에게 제안했다. 기계로 조작하는 무대 장치와 무대면 밑에 네 번째 가동무대(可動舞臺)까지 갖추진 극장이었다. 여왕은 그러한 생각에 한순간 매료되었다. 루이 14세처럼 그녀 역시 마차로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때때로 그녀의 마차는 윈저 궁에서 런던까지 오는데 1시간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
앤 여왕의 시대에는, 치안판사 두 명 이상의 허락이 없이는, 어떠한 모임도 가질 수 없었다. 열두 사람이 모이면, 그것이 비록 흑맥주를 곁들여 굴을 좀 먹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반역 행위로 간주되었다.
상대적으로 약하긴 했지만, 해군을 위한 강제 소집은 매우 강력히 시행되었다. 영국인이 시민보다는 통치 대상이라는 것이 우울한 증거이다. 수 세기 전부터 잉글랜드의 왕은 자유에 관한 모든 헌정을 무시하고 폭군의 방식을 취했는데, 특히 프랑스는 의기양양해하면서 분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의기양양함을 다소 퇴색시키는 것이, 영국의 강제 선원 모집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는 육군 강제 모집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모든 큰 도시에서는, 건장한 남자가 일을 보기 위해 거리에 나설 경우, 가마라고 불리던 집으로 끌려갈 위험에 항상 처해 있었다. 끌려온 사람들을 그 속에 무질서하게 가두어 두었다가, 적합한 사람들만을 추려 내어, 장교들에게 팔아 넘겼다. 1695년에만 해도 파리에는 서른 개의 가마가 존재했다.
앤 여왕 치세에 생겨난 아일랜드에 관한 법령은 매우 잔인했다.
앤은 1664년에, 즉 런던 화재가 일어나기 두 해 앞서서 태어났다. 그러자 점성술사들(루이 14세 또한 점성술가와 예언에 둘러싸여 태어남)이 예언하기를, 그녀가 ‘불의 맏이인지라’ 여왕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앤은 점성술과 1688년의 혁명 덕분에 왕위에 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대부(代父)가 기껏 캔터베리 대주교에 불과한 길버트라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영국에서는 교황의 영세 대녀가 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평범한 수석 주교는 빈약한 대부이다. 앤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이 그녀의 실수였다. 그녀는 왜 프로테스탄트였던 것일까??
덴마크는 그녀의 순결을 구매하였다. 고문서에 따르면 Virginitas empta를 지불하여 매년 6,250파운드를 지불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돈은 워딘버그 재판 관할구 및 페마른 섬에서 나오는 수입이었다.
앤은 신념과 습관에 따라 윌리엄의 통치 관행을 답습했다. 하나의 혁명에서 탄생한 왕권 치하에서 영국 사람들이 자유와 닮은 것이라고 볼 수 있었던 것은, 정치가들을 가두는 런던탑과 문필가들을 묶어 두는 형틀 사이에 한정되어 있었다. 앤은 남편과의 밀담을 위해 덴마크어를 조금 구사할 줄 알았고, 볼링브룩과 밀담을 나누기 위해 프랑스어도 조금 할 줄 알았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특히 궁정에서는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재치 있는 말은 프랑스어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앤은 주화에 대해, 특히 소액 주화이며 백성들이 사용하는 청동으로 된 동전에 몰두했다. 그녀는 동전을 통해 자신이 위대해지길 원했다. 그녀의 치세 중 여섯 종류의 1파딩짜리 동전이 주조되었다. 처음 주조한 세 가지 동전 뒷면에는 옥좌 문양만을, 네 번째 동전에는 개선 마차를 새겨 넣기를 원했다. 그리고 여섯 번째 동전 뒷면에는, 한 손에 검을 다른 한 손에 올리브 가지를 든 여신상을 함께 새기도록 했다. 어수룩하고 무자비했던 제임스 2세의 딸인 그녀는 난폭했다.
동시에 그녀의 내면은 온순했다. 외면적으로만 그 반대로 보일 뿐이었다. 일종의 노여움이 그녀를 변하게 했다. 설탕을 가열해 보라.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이다.
앤은 백성에게 인기가 있었다. 영국은 통치하는 여성들을 좋아한다. 왜? 프랑스는 여인들을 권력에서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아마 다른 이유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영국의 역사가들이 보기에, 엘리자베스는 위대함이고, 앤은 선함이다. 각자 보고 좋을 대로 할 일이다. 여하튼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여성들의 통치에 섬세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선이 매우 둔탁하다. 무거운 위대함이며 무거운 착함이다. 그녀들의 순결한 미덕에 관해 영국은 완강하고 우리는 그것에 맞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에식스(엘리자베스 1세의 총애를 받았으나, 결혼 후 궁정에서 쫓겨남)에 의해 완화된 처녀이고, 앤은 볼링브룩 때문에 착잡해진 신부이다.
*
백성이 가지고 있는 바보스런 습관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공을 왕에게로 돌린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전쟁에 나서면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왕이다. 그들이 모든 세금을 지불한다. 누가 윤택해지는가? 왕이다. 그리고 백성은 부자인 왕을 좋아한다. 왕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금화를 받고 그들에게 동전푼을 돌려준다. 얼마나 후한 행동인가! 거대한 조각상의 받침대가 피그미족 같은 조각상에 대해 감격해한다. 난쟁이가 크기도 하지! 그는 내 등 위에 올라와 있어. 난쟁이가 거인보다 더 크게 보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는 것이다. 그런데 거인이 그 짓을 그대로 두는 것,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또한 그가 난쟁이의 큰 키를 찬미하다니, 진정 어리석다. 인간 특유의 순박함이여!
왕들에게만 허용된 기마상은 왕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말은 곧 백성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말이 서서히 변형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나귀이다가 결국에는 사자로 변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의 등 위에 있던 기사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영국에서는 1642년, 프랑스에서는 1789년에 벌어졌다. 또한 때로는 사자가 기사를 삼켜 버리는데, 영국에서는 1649년에, 프랑스에서는 1793년에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한 사자가 다시금 당나귀로 변한다고 하면 참으로 놀라겠지만, 그러한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 그러한 일이 영국에서 벌어졌다. 왕권 숭배라는 안장을 다시금 짊어진 것이다. 이미 말한 바대로 여왕 앤은 인기가 많았다. 그것을 위해 그녀가 무슨 일을 했을까?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영국 사람들이 왕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영국의 왕은 해마다 3,000만 파운드 이상을 받는다. 엘리자베스 치세에 13척, 제임스 1세 치세에 36척에 불과하던 영국의 전함이 1705년에는 150척에 이르렀다. 영국은 5,000명으로 이루어진 카탈루냐 주둔군, 1만 명에 달하는 포르투갈 주둔군, 5만의 병력을 갖춘 플랑드르 주둔군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유럽의 군주제와 외교를 위해 해마다 4,000만 파운드를 지출했다. 유럽은 영국 백성이 돌보는 일종의 창녀와 같았다. 의회가 3,400만 파운드의 애국 공채안을 승인하자, 돈을 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재무성으로 빽빽이 몰려들었다. 영국은 동인도로 함대 하나를 보냈고, 리크 제독이 지휘하는 다른 함대 하나와, 쇼웰 제독의 지휘 하에 있는 예비 전함 400척을 스페인 해안 수역으로 보냈다. 영국은 스코틀랜드를 병탄(倂呑)했다. 그들은 오크스테트와 라밀리사이에 있었는데, 그 두 곳 중 한 곳에서의 승리가 나머지 다른 곳에서의 승리도 예견하게 해 주었다. 영국은 오크스테트에서의 소탕작전으로, 보병 스물일곱 군데 대대와 용기병 세 연대를 포로로 잡았고, 다뉴브 강에서 라인 강까지 어쩔 줄 모르고 후퇴하는 프랑스로부터, 강역(疆域) 1,000리를 앗아갔다. 영국은 사르데냐와 발레아레스까지 손을 뻗었다. 스페인의 전함 십 여 척을, 혹은 금을 잔뜩 싣고 오던 수많은 갈리온선들을 항구로 의기양양하게 끌고 오곤 했다. 허드슨 만과 해협은 이미 루이 14세의 영향에서 반쯤 벗어나 있었다. 그가 아카디아, 생크리스토프 및 테르뇌브 등을 놓아 버리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영국이 그 프랑스 왕에게 브르타뉴 연안 해역에서 대구를 잡을 수 있도록 허락만 해 주어도 매우 행복해할 것 같아 보였다. 영국은 또한 당케르크의 요새를 루이 14세가 스스로 파괴하게 만드는 치욕을 안겨 주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영국은 지브롤터와 바르셀로나를 수중에 넣었다. 위대한 일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졌는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노고를 감당한 여왕 앤을 어찌 찬미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점에서 보면, 앤의 치세는 루이 14세의 치세의 반향이다. 흔히 역사라고 부르는 이러한 만남 속에서 이 왕과 한 순간 평행을 이루었던 앤은, 루이 14세와 모호한 반영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 왕처럼 그녀 역시 큰 왕국을 통치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기념 건조물들과 예술, 승리들, 장군들, 문인들, 명성을 주는 재산, 걸작품으로 진열된 갤러리를 소유한다. 그녀의 궁정인들 역시 행렬을 지어 다니는데, 그 행렬에는 위풍당당한 면모와 질서 그리고 행진이 있다. 베르사유 궁에 있는 위대한 사람들의 축소판이다. 거기에는 눈속임도 있다.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를 가미해 보라. 그 순간부터 그 곡이 룰리의 손에서 나왔다고 여길 것이고, 그 모든 것이 환상을 만들어 낸다.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는다. 크리스토퍼 렌은 상당히 그럴듯한 산비둘기고, 소머스는 라모아뇽 값을 한다. 앤에게도 드라이든이라는 라신이 있었으며, 포프라는 보알로였고, 고돌핀이라는 콜베르가, 펨브룩이라는 루부아가, 말버러라는 튀렌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발들을 좀 더 부풀리고, 이마들을 가려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엄숙하고 화려하고, 윈저는 마를리의 허울뿐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여성성이 강했고 앤의 텔리에 신부는 사라 제닝스이다. 뿐만 아니라 50년 후에는 철학이 될 빈정거림이 문예 속에서 대충 윤곽을 잡기 시작했고, 가짜 가톨릭 독신자가 몰리에르에 의해 고발당했듯이, 가짜 프로테스탄트 독신자도 스위프트에 의해 가면을 벗었다. 그 시대에 영국은 비록 프랑스와 경쟁하고 싸우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프랑스를 모방하며 스스로를 계몽했다. 그리하여 영국의 얼굴에는 프랑스의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앤의 치세가 열두 해밖에 지속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루이 14세의 세기라고 말하듯, 영국인들도 자랑스럽게 앤의 세기라고 서슴지 않고 말했을 것이다. 앤은 루이 14세가 쇠퇴하던 1702년에 옥좌에 올랐다. 창백한 별의 출현이 주홍빛 별이 지는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과, 프랑스에 태양왕이 있을 때, 영국에는 달의 여왕이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진기함 중에 하나다.
꼭 언급해 두어야 할 세목이 있다. 비록 루이 14세와 전쟁을 했지만, 영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찬미했다.
“프랑스에는 꼭 필요한 왕은 루이 14세이다.”
영국인들은 자주 말하곤 했다. 자신들의 자유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타인의 구속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병으로 악화된다. 이웃을 속박하는 쇠사슬에 대한 이러한 관대함은, 가끔 이웃집 폭군이 되고자 하는 열정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비버럴의 프랑스어 번역 머리말 3페이지와, 헌사 6페이지와 9페이지에서, 세 번에 걸쳐 우아하게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앤은 자신의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
앤 여왕은 두 가지 이유로 여공작 조시안에게 원한이 조금 있었다.
첫째는, 여공작 조시안이 예뻤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조시안의 약혼자가 잘 생겼기 때문이다.
한 여인이 질투를 하기에 이 두 가지 이유면 충분하다. 여왕에게는 이유가 한 가지만 있어도 족하다.
이 사실도 추가로 밝혀 두자. 여왕은 조시안이 자신과 자매라는 것을 원망했다.
앤은 예쁜 여인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미풍양속에 반한다고 여겼다.
그녀의 용모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추녀였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종교 중 일부는 그 못생긴 용모에서 비롯되었다.
조시안은 아름답고 자유분방해 여왕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못생긴 여왕에게는 아름다운 여공작이 기분 좋은 자매일 수 없다.
또 다른 불만거리는 조시안의 ‘부적절한’ 출생과 관련되어 있었다.
앤은, 요크 공작이던 제임스 2세가 합법적으로 그러나 유감스럽게 맞아들인 평범한 레이디, 앤 하이드의 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혈관에 열등한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아는지라, 자신이 반쪽 왕족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는데,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조시안이, 여왕의 출생에 대한 오류를 현실적으로 부각시켜 주었다. 신분이 어울리지 않은 혼인으로 태어난 딸이, 곁에 서출(庶出)인 또 다른 딸을 두고 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두 딸 사이에 매우 불쾌감을 주는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시안은 여왕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언니 어머니도 내 어머니보다 나을 것이 없어.”
물론 궁정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왕권의 존엄성에 성가신 일이었다. 도대체 왜 조시안일까?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태어났을까? 조시안이 왕실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일부 혈족 관계는 신분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앤은 조시안을 좋은 낯으로 대하고 있었다.
만약 조시안이 자신의 자매만 아니었다면, 아마 여왕은 그녀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6. 바킬페드로
사람들의 행동을 아는 것은 유용하고, 약간의 감시는 현명한 조치이다.
조시안은 부리는 사람 하나를 시켜 데이비드 경의 일상을 조금 뒷조사했는데, 그녀가 신뢰하고 있던 그 사람의 이름은 바킬페드로였다.
데이비드 경 역시 자신이 전적으로 신임하는 남자 하나로 하여금 조시안을 은밀히 지켜보도록 했는데, 그 사람의 이름도 바킬페드로였다.
한편, 앤 여왕 역시, 전적으로 신임하는 수하 하나에게 비밀스럽게, 사생아 여동생인 조시안과 그녀의 남편이 될 데이비드 경의 일상 및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은밀히 알아 두도록 했다. 그녀의 밀지를 받은 사람의 이름도 바킬페드로였다.
바킬페드로는 조시안과 데이비드 경 및 여왕으로 구성된 건반에 자신의 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두 여인 사이에 있는 한 남자. 얼마나 훌륭한 변조가 가능하겠는가! 얼마나 대단한 영혼들의 혼합인가!
바킬페드로가 처음부터 세 사람의 귀에다 나지막이 말할 수 있는 기막힌 행운을 누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본래 요크 공작의 옛 하인이었다. 일찍이 그는 성직자가 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왕당파인 가톨릭교와 공화파인 영국 교회주의가 뒤섞인, 즉 로마적이면서도 영국적인 왕족이었던 요크 공작은, 휘하에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의 교회를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바킬페드로를 두 교파 중 하나에 밀어 넣을 수도 있었지만 바킬페드로는 주임 사제직에 어울릴 만큼 가톨릭적이지도 못했고, 전속 목사가 될 만큼 프로테스탄트적이지도 못했다. 즉, 바킬페드로는 두 종파 사이에서, 영혼을 땅에 내려놓고 있는 상태였다.
파충류 같은 특수 영혼을 가진 이에게는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어떤 길은 배를 깔고 기어서밖에 지나갈 수 없는 법이다.
보잘것없지만 영양가 높은 하인의 처지가 바킬페드로가 오랫동안 지속해 온 생존 형태였다. 하인의 처지도 괜찮았지만, 그는 거기에 덧붙여 권력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한 야망이 성공하려는 때에 제임스 2세가 실각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품이 침울할 뿐만 아니라 통치 방법에 있어서도, 단지 근엄한 척할 뿐이면서 그것이 엄정함이라고 믿었던 윌리엄 3세 치하에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바킬페드로는 지신의 보호자였던 제임스 2세가 폐위된 후에도 즉시 누더기를 걸치는 처지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군주들이 추락한 후에도, 무엇인지 모를 것이 살아남아, 한동안은 그 군주들에게 기생하던 식객들을 지탱시켜 준다. 곧 고갈될 나머지 수액이, 뽑힌 나무의 가지 끝에 달린 잎을 몇일 더 살아남게 해 준다. 그러다가 문득 잎들이 노랗게 되고 말라 버린다. 궁정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흔히 정통 왕위 계승권자라고 말하는 일종의 방부제 덕분에, 왕은 비록 실추당해 멀찌감치 던져지더라도, 끝끝내 살아남는다. 그러나 왕보다 더 많이 죽은 궁정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저 아래에 던져진 왕은 미라이며, 이곳에 남은 궁정인은 유령이다. 유령의 유령이 되는 것은 파리함의 극치이다. 그렇게 해서 바킬페드로는 굶주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문인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부엌 구석에서조차 쫓아내곤 했다. 잠잘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누가 나를 쉬게 해 줄까?”
그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삶과 투쟁했다. 절망 속에서 인내심이 발휘되는 장점들이 그에게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흰개미의 재주, 즉 낮은 곳에서 높은 곳까지 구멍을 뚫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제임스 2세의 이름과 그의 추억, 자신의 충성심, 동정심 등을 사용해, 여공작 조시안까지 뚫고 올라갔다.
조시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두 가지, 즉 가난과 기지를 갖춘 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또한 더리모이어 경에게 소개하는 한편, 하인들이 머무는 거처를 마련해 주고, 그를 식솔로 대접하며, 그에게 친절했고, 때때로 그와 말을 섞기도 했다. 바킬페드로는 더 이상 배고프지도 추위에 시달리지도 않게 되었다. 조시안은 그와 말을 놓았다. 그때는 문인들에게 하게체를 사용하는 것이 지체 높은 귀부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유행이었다. 문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마이 공작 부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가극 각본작가인 로이를 맞이하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정중한 한 해를 썼지? 반가워.”
이후 문인들도 하게체를 사용했다. 어느 날 파브르 데갈랑틴이 로앙 공작 부인에게 말했다.
“너는 샤보 가문의 일원인가?”
바킬페드로에게 하게체는 곧 성공이었다. 그는 기뻐했다. 그가 꿈꾸던 친근함이었다.
“레이디 조시안이 나에게 하게체를 사용하다니!”
그는 몇 번이고 혼자 중얼거리며, 만족스러운 듯 두 손을 비볐다.
그는 그렇게 하게체를 사용하는 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는 조시안의 거처를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측근이 되었고, 그녀에게 조금도 거북하지 않으며 은밀히 그녀를 방문할 수 있는, 일종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녀는 그가 있는 자리에서 슈미즈를 갈아입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바킬페드로는 불변의 지위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에게 여공작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 여왕에게까지 이르지 못한 지하의 갱도는 실패작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바킬페드로가 조시안에게 말했다.
“여공님께서는 저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원하는가?”
조시안이 물었다.
“일자리를 원합니다.”
“일자리라고!”
“예, 마담.”
“무슨 생각으로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가? 자네는 쓸모 있는 자가 아닌데.”
“바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조시안이 웃기 시작했다.
“자네는 공직에 맞지 않는데, 어떤 것을 원하는가?”
“대양에서 수집한 병들의 마개를 여는 일입니다.”
조시안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자네가 지금 농담을 하는군.”
“그렇지 않습니다, 마담.”
“자네의 말에 진지하게 대꾸하는 즐거움을 누려 보지. 자네가 되고 싶은 것이 뭐라고? 다시 한 번 설명해 보게.”
“대양에서 수집한 병의 마개를 뽑는 직책입니다.”
“궁정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그러한 직책이 거기에 있다는 말인가?”
“예, 마담.”
“그 새로운 것들을 내게 알려 주게. 계속해 보게.”
“실제로 있는 직책입니다.”
“자네에겐 없는 것이지만, 그 영혼이라도 걸고 나에게 맹세하게.”
“맹세합니다.”
“자네를 믿지 못하겠군.”
“감사합니다, 마담.”
“그래, 무얼 원한다고? 다시 말해 보게나.”
“바다에서 가져온 병들의 마개를 여는 것입니다.”
“별로 힘든 직책이 아니겠군. 말하자면 청동 마상(馬像)의 털을 빗기는 일(여우 이야기라는 희극에서 광대가 맡은 임무)이겠군.”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군. 정말 자네에게 꼭 걸 맞는 자리야. 자네는 그런 일에 쓸모가 있어.”
“보시다시피 저도 어떤 일엔가 쓸모가 있습니다.”
“아, 참! 자네가 익살을 떠는군. 그런 자리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비킬페드로가 황송해하면서도 점잖게 자세를 바꾸었다.
“마담, 마담의 부친은 존귀하신 제임스 2세이시고, 형부는 컴벌랜드 공작이자 덴마크의 조지 공이십니다. 당신의 부친께서는 영국의 해군 사령관이셨고, 형부께서는 현재 그 자리에 계십니다.”
“그게 뭐 새삼스러운 것이란 말인가? 자네 못지않게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러나 마담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세 가지 종류의 것이 있습니다. 바다 깊은 곳에 있는 물건과, 물 위로 떠다니는 것, 그리고 물결이 육지로 떠밀어 오는 것이 있는데, 그 세 가지는 각각 래건, 풀럿슨, 그리고 젯슨이라 칭합니다.”
“그래서?”
“그 세 물건은 모두 영국의 해군 사령관에게 귀속됩니다.”
“그래서?”
“마담께서는 이제 아시겠습니까?”
“아니, 전혀.”
“바다 밑으로 삼켜지는 것과 떠다니는 것, 그리고 해안에 도착하는 것 등 바다에 있는 모든 것은 영국 해군 사령관의 소유입니다.”
“모두. 그렇다 치지. 그런데?”
“철갑상어만 예외인데, 그것은 영국 국왕의 것입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넵투누스의 소유라 생각하는데.”
“넵투누스는 어리석어요.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죠. 그는 영국인들이 모든 것을 소유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결론은.”
“해양 취득물, 그것이 뜻밖에 발견된 물건에 우리가 부여한 명칭입니다.”
“그렇다 치고.”
“그러한 물건들이 무궁무진합니다. 바다에는 항상 물 위로 떠다니거나 해안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바다의 기여라 할 수 있지요. 바다가 영국에 내는 세금입니다.”
“물론이지, 어서 결론을 말해 보게.”
“그런 식으로 바다가 관청을 하나 설치한다는 사실을 부인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어디에다?”
“해군성입니다.”
“어떤 관청?”
“해양 취득물 사무국입니다.”
“그래?”
“사무국은 다시 세 부서로 나뉘어져, 각 부서 이름이 래건과 풀럿슨, 그리고 젯슨입니다. 그리고 각 부서에 관리가 한 사람씩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 한가운데 항해중인 선박은 어떤 소식이든 육지로 보내고자 합니다. 어느 위도에 있는지, 어떤 바다 괴물을 만났다든지, 어떤 해안이 보인다든지, 조난을 당했는지, 침몰하는 중이라든지, 길을 잃었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럴 때, 선장은 내용을 종이 조각에 적어 병 속에 넣은 다음, 병마개로 봉인한 후, 바다에 던집니다. 만약 그 병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 그것은 래건의 소관 업무가 됩니다. 또한 그 병이 물 위로 떠다니면, 그것은 풀럿슨 관리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그리고 그 병이 파도에 실려 육지에 밀려온다면 그것은 젯슨 관리의 소관입니다.”
“그래서 자네가 젯슨의 관리가 되고 싶다는 말인가?”
“정확히 그 말씀입니다.”
“자네가 바다에서 온 병의 마개 여는 사람이라고 부른 바로 그 것인가?”
“그러한 자리가 존재하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머지 둘이 아닌 그 자리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자리가 현재 비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이루어지지?”
“마담. 1598년, 에피디움 프로몬토리움의 해변 백사장에서, 어느 붕장어 잡이 어부가 역청으로 주둥이를 봉인한 병 하나를 주워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께 올렸습니다. 그 병 속에서 꺼낸 양피지 한 장 덕분에 잉글랜드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아무 말 없이 노바 젬블라를 점령했고, 그것이 1596년 6월에 이루어졌으며, 그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곰에게 잡아먹혔고, 그곳에서 겨울을 나는 방법은, 죽은 네덜란드인들이 머물다 방치된 그 섬의 나무 집 벽난로 위에 걸려 있던 화승총 보관함 케이스 속에서 발견된 종이에 설명되어 있고, 그 벽난로는 부서진 통 하나를 지붕에 끼워 만들어졌다는 등의 사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자네가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네.”
“그러실 수도 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께서는 이해하셨습니다. 네덜란드에게 도움이 되는 나라가 하나 늘어나면 영국이 차지할 나라 하나가 줄게 됩니다. 그러한 소식을 전해온 병은 중요한 물건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날부터 누구든 바닷가에서 봉인된 병을 발견할 경우, 그것을 즉각 영국의 해군 사령관에게 바치지 않으면 교수형에 처한다는 명령이 포고되었습니다. 사령관은 그 병의 마개 여는 일을 한 관리에게 맡겼고, 그는 필요한 경우 병 속에서 발견된 내용을 폐하께 알려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병이 해군성에 자주 들어오나?”
“아주 드문 편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리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해군성은 그 직책을 위해 사무실과 숙소를 확보해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댓가로 얼마나 받게 되나?”
“일 년에 1백 기니입니다.”
“기껏 그것을 얻으려 나를 성가시게 하는가?”
“먹고살기 위해서이지요.”
“비렁뱅이처럼”
“저와 같은 부류에게는 잘 어울립니다.”
“1백 기니는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는 액수야.”
“부인께서 1분에 써버리는 금액으로, 저와 같은 부류는 1년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자네가 그 직책을 차지하게 해주겠네.”
8일 뒤, 조시안의 열의와 데이비드 더리모이어 경의 신용장 덕분에, 바킬페드로는 임시적인 신분에서 벗어나 이제는 잠잘 곳과 비용이 제공되고 연봉 1백 기니가 지원되는, 해군성에 편안히 자리 잡게 되었다.
7. 바킬페드로, 굴착 작업을 시작하다
우선 가장 시급한 일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것이다.
바킬페드로는 틀림없이 그 일을 잊지 않았다.
조시안에게서 그토록 많은 호위를 얻은 터라, 자연스럽게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그 은혜에 대한 복수를 하는 일이었다.
또한 조시안은 아름답고 훤칠하고, 젊고 부유하고 능력 있고 유명한 반면에, 바킬페드로는 못생기고 왜소하고 늙고 가난하고 보호받는 입장이었으며, 태생이 미천했다는 것을 말해 두자. 그 모든 것에 그는 분풀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어둠만으로 빚어진 사람이 그토록 밝은 빛을 너그러이 보아줄 수 있겠는가?
바킬페드로는 아일랜드를 버린 아일랜드인이었다. 다시 말해 못된 부류였다.
바킬페드로가 자신에게 유리할 만한 것을 한 가지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매우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였다.
불룩한 배는 선량함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그의 배는, 바킬페드로의 위선을 증대시켜 줄 뿐이었다. 그가 몹시 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킬페드로는 몇 살이었을까? 그에게는 정해진 나이가 없었다. 순간순간 그가 품고 있던 계획 달성에 필요한 나이만이 존재했다. 그는 자신의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만큼 늙어 보였고, 민첩한 기지만큼 젊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재빠르면서도 동시에 둔했다. 원숭이 같은 하마 종류와 다름없었다. 틀림없이 왕당파였으나 공화파였는지 누가 알랴! 분명히 가톨릭 교도였으나 프로테스탄트였을 수도 있다. 스튜어트 왕가 편에서 일했지만, 브런즈윅 왕가 편이었을 수도 있다.
위한다는 것은 동시에 반대한다는 조건이 있을 때만 힘으로 작용한다. 바킬페드로는 그러한 지혜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대양에서 온 병들의 마개를 여는’ 자리는, 바킬페드로가 은근히 강조하려 했던 것처럼, 그토록 우스운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수사학적 허식이라 칭할 만한, 가르시아 페르난데스의 탄원서, 즉 난파선 약탈 행위 및 해안 주민들의 표류물 강탈 행위에 반하여 제기한 이것이, 당시 영국에서 커다란 주목을 얻었고, 그 덕분에 난파당한 사람들의 재산 및 기타 소유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약탈되는 대신 해군 사령관에게 압류되는 진보를 가져왔다.
여러 가지 상품, 선박의 뼈대, 자그마한 보따리, 상자 등, 영국 해안으로 밀려온 모든 표류물은 해군 사령관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바킬페드로가 그토록 간청한 임무의 중요성이 말해 주듯 온갖 전언(傳言)과 보고문을 담은 채 떠다니는 병이 특히 해군성의 주목을 끌게 했다. 난파선은 당시 영국의 가장 심각한 근심거리 중 하나였다. 항해는 영국의 삶이었고, 난파는 근심이었다. 영국은 바다 때문에 끊임없는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침몰하는 선박이 물결에 맡기는 유리병 속에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선박, 승무원, 해역, 난파된 시기와 양상에 관한 정보, 선박을 파괴한 바람, 떠다니던 유리병을 영국 해안까지 실어 온 조류 등에 관한 정보였다. 바킬페드로가 맡았던 직책은 한 세기 전에 사라졌지만 그 직책은 대단히 유용한 것이었다. 마지막 담당관은 링컨셔의 도딩턴 출신인 윌리엄 허시라는 사람이었다. 그 직책을 맡는 사람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윗선에 알리는 일종의 보고자였다. 봉인된 모든 항아리, 단지, 큰 병, 작은 유리병 등 조류에 밀려 잉글랜드 해안에 표착한 모든 것이 그에게 넘겨졌다. 그만이 오직 그것들을 열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속에 있는 내용물의 비밀을 최초로 접하게 되어 있었다. 그는 비밀을 분류하고 꼬리표를 붙여 기록 보관소에 정리했다. 아직도 영국 해협의 여러 섬에서 사용되는, 문서를 서류 보관함에 재운다는 표현은, 거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실제로 그 일에 매우 신중을 기하였다. 비밀을 지키겠다고 선서한 해군성 소속 심사원들이 입회하지 않고는, 그 물건들의 봉인을 깨뜨리거나 마개를 열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젯슨 담당관과 함께 봉인 해체 보고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 심사원들이 비밀을 지키기로 되어 있었기에 바킬페드로는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했다.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는 어떤 사실을 묻어 버리거나 혹은 세상에 내놓는 것이 가능했다. 바킬페드로가 조시안에게 말한 것처럼, 그 깨지기 쉬운 표류물들은, 희귀하고 하찮은 것들은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표류물들이 상당히 빨리 해안에 도달하고, 어떤 경우에는 여러 해 후에 육지에 닿았다. 전적으로 바람과 조류에 달린 일이었다. 물결에 맡겨지도록 유리병을 던지던 풍습은, 기도하며 바치던 봉납물(奉納物)처럼, 조금 퇴색된 구습이 되었다. 그러나 신앙이 우세하던 시절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그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마지막 생각을 신이나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전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때로는, 바다에서 보낸 서신들이 해군성에 넘쳐나는 때도 있었다. 제임스 1세 치하에서 영국 재무관을 지낸 서퍽 백작이 주석을 달았던, 양피지 기록에 따르면 1615년 한 해 동안에, 침몰하는 선박에 관한 언급이 담긴 대형 병과 호리병 52개가 해군성에 들어와, 분류되어 문서 보관소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왕궁에서의 관직이란 기름방울과 같아서 무한정 확장된다. 그리하여 문지기가 고관이 되기도 하고, 일개 마부가 총사령관으로 승진하기도 한다. 바킬페드로가 간청해 얻은 그 직무를 맡는 특별 담당관은, 보통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엘리자베스의 의도였다. 궁정에서는, 신뢰가 바로 음모와 연계되며, 음모는 성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관리 역시 결국에는 상당한 인물이 되곤 했다. 그의 직책은 서기에 불과해, 궁정 사제장 예하의 두 마부 바로 다음 직급에 해당했다. 하지만 그는 궁궐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물론 흔히들 말하듯 ‘몸을 낮춘 출입’, 즉 humilis introitus이긴 하지만, 국왕의 침실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발견된 사실을 국왕에게 직접 고해야 했기 때문인데, 절망적인 유언장이라든가 고국에 고하는 마지막 인사, 바다에서 일어난 범죄 행위나 기타 범죄, 왕위의 유증(遺贈) 등 매우 호기심을 끄는 물건들이 있었다. 또한 궁궐과 긴밀히 연락하며 문서를 보관하고, 그 음산한 유리병들의 개봉에 관해 국왕에게 수시로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궁궐 출입이 자유로웠다. 그 사무실은 바다에서 들어오는 사신(私信) 검열소였다.
평소 라틴어로 말하기를 즐기는 엘리자베스는, 당시 젯슨 담당관이었던 버크셔 주 출신 턴필드 드 콜리가, 바다에서 나온 쪽지들을 가져올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Quid mihi scribit Neptunus(넵투누스가 나에게 무엇이라 썼는가)?”
위로 향하는 통로는 완성되었다. 흰개미가 성공한 것이다. 바킬페드로가 여왕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돈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더 큰 행복.
해를 끼치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막연하지만 집요한, 해를 끼치려는 욕망을 내면 속에 지니고, 그것으로부터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는 것, 그것은 모든 이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바킬페드로는 그런 확고부동함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불독의 집착과 유사한, 그의 생각에는 그것이 있었다.
스스로 냉혹하다는 생각, 그것이 그에게 어두운 만족감의 깊이를 제공했다. 이빨 아래에 희생물이 들어와 있거나,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영혼 속에 자리 잡기만 하면, 그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다른 이들이 추위 속에서 고통스러워 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그는 만족스러워하며 덜덜 떨었다. 심술궂다는 것은 일종의 부유함과 같다. 우리가 가난하다고 믿는 실제로 가난한 사람도, 스스로의 행복을 악의에서 찾으며, 그 것을 선호한다. 세상 모든 일이 각자 느끼는 행복에 있다. 못된 장난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을 하는 것과 같기에 그것은 돈보다 더한 만족감을 준다. 그것으로 피해 입는 자들에게는 나쁘지만, 그 짓을 행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것이다. 교황파들이 화약 음모 사건을 저질렀을 때 가이 포크스에게 협조했던 케이츠비는 이렇게 말했다. “의회가 사지를 뻗으며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라. 나는 그 장면을 백만 파운드와도 바꾸지 않겠다.”
바킬페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가장 보잘것없으나 가장 무서운 자였다. 바로 질투하는 자였던 것이다.
질투는 왕궁에서 언제나 할 일이 있다.
궁정은, 질투하는 자와의 대화가 필요한, 건방지고 무례한 자들, 할 일 없는 자들, 쑥덕공론에 굶주린 부오한 게으름뱅이, 건초 다발 속에서 바늘 찾는 자들, 재난을 만드는 자들, 조롱당한 조롱꾼들, 멍청이들로 넘쳐난다.
사람들이 또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는 악이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란 말인가!
질투는 남의 일을 정탐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아주 좋은 재료이다.
질투라는 자연스러운 열정과, 염탐질이라는 사회적 기능 사이에는, 매우 깊은 유사성이 있다. 정탐꾼은 마치 사냥개와 같이 다른 이를 위해 사냥을 하고, 질투꾼은 고양이처럼 스스로를 위해 사냥을 한다.
하나의 강렬한 자아, 그것이 질투꾼의 진면목이다.
다른 특징이 있다면, 바킬페드로는 신중했고, 비밀스러웠고, 구체적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면에 간직하며, 증오로 자신 속에 깊숙한 구멍을 만들어 냈다. 거대한 야비함은 거대한 허영심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농간을 부려 관심을 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들에게는 멸시 당했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그는 스스로를 억제했다. 그의 모든 심정적 상처는 적의를 품은 그의 체념 속에서 소리 없이 끓어 넘쳤다. 그는 마치 악당에게도 그럴 권리가 있기라도 한 듯, 분개했다. 그는 뜨거운 노기에 소리 없이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것, 그것이 그의 재능이었다. 그에게는 소리 없는 마음 속 노여움, 지하에 엎드린 분노의 광증, 그리고 사람들의 눈길에 닿지 않는 곳 깊숙이 품은 검은 화염이 있었다. 그는 모욕을 꿀꺽 삼켜 버리는 재주를 지닌 자였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겉으로는 싹싹하고, 사람을 잘 받들고, 유순하고, 상냥하고, 관대했다. 그는 누가 되었건 언제 어디에서건 먼저 인사를 했다. 바람 한 가닥만 스쳐도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렸다. 갈대와 같은 척추를 지녔다는 것은 얼마나 탁월한 행운의 근원인가!
이처럼 감춰진 독을 품은 존재가, 흔히들 생각하는 것만큼 드물지는 않다. 우리는 음흉한 산사태에 둘러싸여 산다. 왜 해로운 지들이 존재하느냐고? 가슴을 찌르는 질문이다. 몽상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사상가는 영영 그 해답을 풀지 못한다. 그러한 이유로, 철학자들의 슬픈 눈이 운명이라는 암흑의 산을 향해 항상 고정되어 있는데, 그 산꼭대기에서는, 거대한 악의 망령이 사악한 뱀을 한 줌씩 집어 땅 위로 떨어뜨린다.
바킬페드로는 뚱뚱한 몸과 야윈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살이 찐 상반신에다 뼈마디가 튀어나온 얼굴. 그는 골이 지고 짤막한 손톱, 뼈마디가 불거진 손톱, 납작한 엄지와 굵은 머리카락을 가졌는데, 양쪽 관자놀이의 간격이 넓었으며, 크고 낮은 이마는 살인자와 같이 위협적이었다. 헝클어진 눈썹이 찢어진 작은 눈을 가리고 있었으며 길고, 뾰족하고, 울퉁불퉁하고, 물컹거리는 코는, 거의 입에까지 붙을 지경으로 늘어져 있었다. 바킬페드로에게 황제의 옷을 그럴듯하게 입혀 놓으면 도미티아누스를 조금 닮았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버터처럼 노란 그의 얼굴은 끈적끈적한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것 같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그의 두 볼은 시멘트를 붙여 놓을 것 같았다. 그는 보기 흉한 온갖 종류의 끔찍한 주름과 커다랗고 각이 진 턱뼈, 무거워 보이는 턱, 개처럼 작은 귀를 가지고 있었다. 멈추어 있는 옆모습을 보면, 날카로운 각으로 드러나는 그의 윗입술이 이빨 두 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이빨이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이 깨물듯, 이빨도 쳐다본다.
인내와 절제, 금욕, 겸손, 신중, 친절, 공손함, 부드러움, 예절, 검소함, 의리 등이 더해져 바킬페드로를 보완하고 완성시켰다. 그는 그러한 미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들을 비방했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바킬페드로는 궁정에 확실히 뿌리를 내렸다.
8. 사자(死者)
궁정에서 기반을 굳힐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구름 속에서는 위엄을 지니게 되고, 진흙 속에서는 힘을 얻는다.
첫 번째 경우 올림포스의 소속이 된다. 두 번째 경우에는 의상실의 소속이 된다.
올림포스에 올라간 사람은 삼지창을 갖게될 뿐이지만 의상실에 있는 사람은 경찰을 수중에 넣고 있다.
의상실에는 왕국의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에 속한 자가 반역을 하는 경우 형벌이 가해진다. 엘라가발루스도 그곳에 와서 죽었다. 그래서 의상실은 간이 변소라고도 불린다.
평상시에는 의상실이 그렇게 비극적이지는 않다. 알베로니가 방돔 공작을 찬양한 것도 거기에서(알베로니가 방돔 공작의 후광으로 추기경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을 뜻함)이다. 의상실이 자연스럽게 왕실 측근들의 알현실 기능도 수행한다. 그곳은 왕좌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루이 14세는 그곳에서 부르고뉴 공작 부인을 맞이했고, 필리프 5세 역시 그곳에서 왕비와 팔꿈치를 맞대곤 했다. 사제도 그곳에 숨어든다. 따라서 의상실은 가끔씩 고해소 지점(支店)이 되기도 한다.
왕궁의 밑바닥에 행운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행운이 어마어마하다.
루이 11세 치세에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프랑스 대원수 피에르 드 로앙이 되었겠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이발사 올리비에 르 당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마리 드 메디시스의 통치 시절에, 영광스러운 인물이 되고 싶다면 대법관 시예리가 되었겠으나,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침실 시녀 라 아농이 되었을 것이다 루이 15세 치세에서 유명한 인물이 되고 싶다면 재상 슈아죌의 길을 택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하는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시종 르벨이 되려 했을 것이다. 루이 14세 시절에도, 왕의 군대를 유럽 최정예 군대로 개편한 루부아나, 숱한 승리를 왕에게 안겨 준 튀렌보다 왕의 잠자리를 정리해 주던 봉텅이 더욱 막강한 세도를 누렸다. 조제프 사제가 없는 리슐리외는 거의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를 감싸고 있던 신비감도 줄어들 것이다. 추기경이 당당하다면, 막후 추기경은 무시무시했다. 벌레 한 마리가 되는 것, 그 얼마나 무서운 힘인가! 모든 나르바에스들과 모든 오도넬(에스파냐의 이사벨 2세 때의 장군이자 정치가)들이 뭉쳐도 일개 수녀인 파트로시니오 한 사람을 당해 내지 못했다.
정말이지, 이와 같은 막강한 힘의 조건은 비루함이다. 누구든 강력함을 원한다면 보잘것없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아예 없는 사람처럼 처신해야한다. 둥글게 똬리를 틀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뱀이 무한과 제로의 형태를 동시에 표상한다.
그러한 독사 모양의 행운 중 하나가 바킬페드로의 수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는 원하던 곳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납작한 동물들은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 루이 14세의 경우, 침대에는 빈대를, 정치에는 예수회 사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부조화는 전혀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추이다. 인력에 따라 기우는 것은 곧 추의 흔들거림이다. 하나의 극(極)은 또 다른 극을 원한다. 프랑소아 1세는 트리불레를 필요로 하고, 루이 15세는 르벨을 원한다. 지극히 높은 것과 지극히 낮은 것 사이에는 깊은 친화력이 존재한다.
매사를 지휘해 나가는 주체는 지극히 낮은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쉬운 현상이다. 아래에 있는 것이 모든 주도권을 잡고 있다.
그보다 더 편리한 자리가 없다.
자신이 눈이고 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곧 통치 기구의 눈이다.
왕의 귀까지 가지고 있다.
왕의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왕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문의 빗장을, 멋대로 당겼다 밀었다 할 수 있음을 말한다. 또한 그 의식 속에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마구 채워 넣을 수 있음을 뜻한다. 왕의 뇌리는 옷장일 뿐이다. 만약 왕의 귀를 가지고 있는 자가 넝마주이일 경우, 왕의 의식은 채롱인 것이다. 왕들의 귀는 사실상 왕들의 귀가 아니다. 따라서 왕이라는 가엾은 악마들에게는 거의 아무 책임도 없다. 자신의 사고를 소유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의 것이라고 할 만한 행위도 없다. 왕은 복종하는 물건일 뿐이다.
무엇에?
밖에서 그의 귀에다 대고 파리처럼 붕붕거리는, 하찮고 못된 영혼에게 복종한다. 파멸의 시커먼 파리이다.
그 파리의 붕붕거리는 소리가 명령을 내린다. 통치란 그것을 받아쓰는 행위에 불과하다. 높은 목소리, 그것은 군주이다. 그러나 나지막한 음성은 지상권이다.
하나의 통치 속에서 그와 같은 낮은 목소리를 분별해 내고, 또 그것이 높은 목소리에게 슬쩍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참된 역사가들이다.
9. 증오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만큼 강하다
앤 여왕은 그녀 주변에 이런 나지막한 음성 여럿을 주위에 두고 있었다. 바킬페드로 역시 그중 하나였다.
여왕 이외에 그는 조시안과 데이비드 경에게도, 은밀히 공을 들이고, 영향을 끼치며, 자주 접촉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세 귀에다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당조보다 하나의 귀가 더 많았다. 당조는 두 귀에다가만 낮게 속삭였다. 처제 앙리에트에게 마음이 동한 루이 14세와 시숙 루이 14세에게 반한 앙리에트 사이에서,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속삭였다. 앙리에트 모르게 루이의 시종이 되고, 루이 모르게 앙리에트의 일을 도맡아 했던 시절이었다. 두 꼭두각시의 사랑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아서, 그가 질문과 대답을 만들어 냈다.
바킬페드로는 그 근본을 살펴보면 충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고, 추하고 고약하기 짝이 없었으나 겉으로 보면 너무나 고분고분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누군가를 상대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으므로, 왕실의 어떤 사람도 그가 없이는 지낼 수 없게 된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앤은 바킬페드로를 한 번 맛본 후, 다른 아첨꾼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루이 14세에게 사용했던 방식처럼 다른 사람들을 마구 헐뜯으면서 앤에게 아첨했다. 몽슈브뢰이 부인은 말했다.
“국왕께서 아무 것도 모르시기 때문에, 모두들 학자들을 우롱할 수밖에 없다.”
가끔씩 헐뜯은 자리에 독을 바르는 것이 작업이 예술의 경지이다. 네로는 로쿠스타가 일하는 것을 구경하기 좋아한다.
왕궁에 침투해 들어가기는 매우 쉽다. 궁정이라고 하는 일종의 산호석은 흔히 궁정인이라고 부르는 설치류에 의해 즉시 발견되고, 쉴 새 없이 사용하며, 필요에 따라 깊이 파헤쳐지고 경우에 따라 텅 빈 구멍을 내기도 한다.
그곳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명분 하나면 충분하다. 바킬페드로는 새로 얻은 임무 덕분에 명분을 갖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시안 곁에서 그러했듯이 여왕에게 불가결한 하인이 되는 데 시간이 조금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감히 내뱉은 말 한마디로 즉시 여왕의 진면목을 파악했고, 어떻게 해야 여왕 폐하의 호의를 살 수 있는지를 즉시 알게 되었다. 여왕은 매우 아둔한 스튜어트 경,데번셔 공작인 윌리엄 캐번디시를, 매우 좋아했다. 옥스퍼드의 모든 학위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글을 알지 못했던 그 나리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세상을 떠났다. 궁정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해 아무도 말을 삼가는 이가 없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매우 경솔한 짓이다. 여왕은 바킬페드로가 앞에 있건만, 한동안 탄식하더니, 한숨을 지면서 소리쳤다.
“그토록 빈약한 지능이 그토록 많은 미덕들을 짊어지고 다녔다니, 참 안된 일이로다!”
그러자 바킬페드로가 나지막하게 프랑스어로 중얼거렸다.
“Dieu veuille avoir son âne(하나님께서 그의 당나귀를 거두어 주시기를)!”
여왕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바킬페드로는 그 미소를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헐뜯어야 즐거워한다.’
그의 악의에 허가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자신의 호기심과 악의에 찬 언행을 사방에 찔러 넣고 다녔다. 모두들 그를 두려워했으므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왕을 웃게 하려는 자는 나머지 사람들을 덜덜 떨게 만든다.
우스꽝스러운 세도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매일 지하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바킬페드로를 필요로 했다. 몇 몇 귀족들은 그에게 수치스러운 심부름을 맡길 정도로 신뢰했다.
궁정이란 하나의 동력 전달 장치이다. 바킬페드로는 그 속에서 모터가 되었다. 어떤 기계 장치 속에는 동력이 되는 바퀴가 매우 작다는 것을 아는가?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바킬페드로의 염탐꾼 재능을 이용하고 있던 조시안은, 그를 특히 신뢰하여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집 비밀 열쇠를 주어 언제든지 그녀의 거처에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남에게 지나칠 만큼 드러내는 것이, 17세기의 유행이었다. 그것을 일컬어 ‘열쇠를 준다.’라고 한다. 조시안은 신뢰의 열쇠 두 개를 주었다. 한 개는 데이비드 경에게, 다른 한 개는 바킬페드로에게였다.
게다가 단숨에 침실까지 숨어들어가는 것이 옛 풍습에서는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자주 말썽이 생겼다. 라 페르테가 라퐁 아씨의 침대 커튼을 예고없이 열어젖히자, 그 속에 흑인 근위병 생송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 예이다.
바킬페드로는 음흉하게 캐낸 많은 비밀들을 이용해 지체 높은 이들을 낮은 사람들 아래 두고 복속시키는 일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걸음걸이는 음흉하고 부드러웠으며 능수능란했다. 노련한 염탐꾼이 그러하듯, 그는 사형수와 같은 무자비함과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하는 사람과 같은 인내심을 함께 구비했다. 그는 궁정인의 자질을 타고났다. 모든 궁정인들은 야행성 인간이다. 궁정인은, 흔히들 절대 권력이라고 부르는, 밤에 배회한다. 그는 소리 없는 전등 하나를 손에 들고 있다. 그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을 비추면서도 자신의 모습은 암흑 속에 숨기고 있다. 그가 그 등불을 이용해 찾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 짐승이다. 그리고 그가 발견하는 것은 왕이다.
대부분의 왕들은 자기 주위에 있는 자들이 위대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빈정거림이라도 자기들에게로 향하지 않는다면 즐거워한다. 바킬페드로의 재능은, 귀족과 종친을 끊임없이 왜소하게 만들고 그만큼 여왕의 위엄을 드높이는 데 있었다.
바킬페드로가 지니고 있던 그 은밀한 열쇠는, 조시안이 특히 좋아하는 두 거처, 즉 런던에 있는 헌커빌 하우스와 윈저에 있는 코를레오네 로지의, 작은 아파트 비밀 출입문을 열 수 있도록 양쪽 끝이 서로 다른 두 기능을 갖도록 만들어졌다. 두 저택은 클랜찰리 경의 유산의 일부분이었다. 헌커빌 하우스는 올드게이트와 인접해 있었다. 런던의 올드게이트는 하윅에서 오는 사람들이 통과하게 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