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고영성
“모르기 때문에 읽고, 알기 위해 쓴다.” 매주 수많은 글을 쓰는 그가 항상 하는 말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삶에 대한 도전이자 배움이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다양한 글쓰기 주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영·경제·투자·재테크·자기계발·국제관계 등 알아야만 하고 알려야만 하는 주제가 있다면 그는 읽고 연구하고 글로 풀어낸다. 그래서 필명 ‘그녀생각’의 글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실제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며 경제·경영 전문작가로 활약하는 그의 저서로는 『경제를 읽는 기술 HIT』,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지금 당장 경제기사 공부하라』, 『고영성의 뒤죽박죽 경영상식』 등이 있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과 글, 강의, 방송이나 SNS, 이메일로 언제나 만나고자 한다. 다음은 그를 만날 수 있는 통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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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
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
초판 인쇄 2015년 2월 28일
초판 발행 2015년 3월 10일
지은이 고영성
펴낸이 유해룡
펴낸곳 (주)스마트북스
출판등록 2010년 3월 5일 | 제313-2011-44호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84 (성산동) 월드PGA빌딩 4층
편집전화 02)337-7800|영업전화 02)337-7810|팩스 02)337-7811|홈페이지 www.smartbooks21.com
기획·편집 서선이, 김상아, 이단비|마케팅 윤영민 | 북디자인·전산편집 서가기획
ISBN 979-11-85541-06-8 13320
원고 투고 : webmars@msn.com
copyright ⓒ 고영성,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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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SmartBooks, Inc. Printed in Korea
백탑 아래 맑은 인연을 기다린다
“거듭되는 흉년에 온 식구가 오래도록 굶주려 있을 때였다. 표정 없는 어른들의 얼굴도 그렇지만, 어린 동생과 아이들의 퀭한 눈망울은 더욱 애처로워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들의 주린 속에 곡기를 넣어 주어야만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방 안에 앉아서 일곱 권이나 되는 『맹자』(孟子) 한 질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처음 얻었을 때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뿌듯하고 설레었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맹자』와 나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은 것이던가, 아쉽기만 했다.” - 『책만 보는 바보』 중에서
명저(名著)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잠깐의 지체도 없이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은 조선의 가난한 선비 이덕무(李德懋)가 춥고 허름한 방 안에서 곯은 배를 참으며 홀로 독서하는 모습이었다. 이덕무는 ‘굶주릴 때, 추위에 떨 때, 근심 걱정에 시달려 마음이 복잡할 때, 아플 때도 책을 읽으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별명은 간서치(看書癡), 즉 ‘책만 보는 바보’였다.
이 책만 보는 바보가 처음으로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뿌듯하고 설레었던 책이 있다. 이 바보가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놓기 싫었던 책이 있다. 바로 『맹자』였다. 그렇다. 이덕무에게 『맹자』는 명저였다. 누군가에게 명저는 그런 것이다.
이 책을 기획하고 내가 처음 한 일은 명저를 고르는 일이었고, 나는 이덕무의 『맹자』를 떠올렸다. 그러나 명저를 선택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은 비즈니스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했고, 책들의 범위가 겹치지 않아야 했다. 또한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할지라도 현재의 비즈니스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었다. 믿을 만한 분들의 서평을 참고하여 책을 계속 읽어갔고, 드디어 나는 비즈니스를 이루는 각 파트별로 먼저 10개의 책을 고를 수 있었다. 10개의 책은 다음과 같다. 모두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의사결정: 『자신 있게 결정하라』, 칩 히스 & 댄 히스
마케팅: 『컨테이저스: 전략적 입소문』, 조나 버거
리더십: 『존중하라』, 폴 마르시아노
경영전략: 『위대한 기업의 선택』, 짐 콜린스 & 모튼 한센
혁신 & 창의성: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스티븐 존슨
소비: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엘리자베스 던 & 마이클 노튼
세일즈: 『파는 것이 인간이다』, 다니엘 핑크
대인관계: 『기브앤테이크』, 애덤 그랜트
자기계발: 『습관의 힘』, 찰스 두히그
메가트렌드: 『한계비용 제로 사회』, 제레미 리프킨
이덕무는 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와 문장에 능하고 박학다식하여 정조에게 중용되었다. 나라를 위해 일하면서 가난에서도 벗어나고 드디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지만, 이덕무는 항상 가난했던 시절 벗들과 함께 날이 새도록 독서 토론을 했던 대사동 백탑(白塔, 원각사지 십층석탑)을 그리워 했다. 백탑에 모인 벗들은 지금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박지원,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홍대용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백탑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이라는 시문집을 공동으로 펴낸다.
이 책이 감히 비즈니스계의 『백탑청연집』이 될 수 있을까? 명저로 선택한 10권의 저자들은 물리적으로 한 곳에 모이진 않았지만 내 서재에서 함께 어울렸다. 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특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집중했다. 그리고 저자들이 말하는 정수(精髓)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하지만 난 단순히 청자의 위치에만 있지는 않았다. 저자들의 부족한 정보를 보강했고 때로는 비판도 했으며 내 개인의 견해와 경험을 함께 실었다.
‘백탑 아래 맺은 맑은 인연을 기린다’라는 뜻의 ‘백탑청연’. 이 책은 나와 명저의 대가들과의 맑은 인연을 기린 책이며, 그 맑은 인연이 독자에게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만든 책이다. 부디 이 책 『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를 통해 우리 모두 ‘벗’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5년 2월
고영성
차 례
머리말―백탑 아래 맑은 인연을 기다린다
➊ 의 사 결 정
최적의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분석’―칩 히스, 댄 히스 <자신 있게 결정하라>
‘자동적인 생각’을 인식하기―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➋ 마 케 팅
티핑포인트가 결코 풀 수 없는 것―조나 버거 <컨테이저스: 전략적 입소문>
유행은 과학이다―말콤 글래드웰 <티핑포인트>
➌ 리 더 십
‘당근과 채찍’ 효과는 없다, ‘몰입’이 정답이다―폴 마르시아노 <존중하라>
진짜 ‘심리’를 모르면 ‘경영’도 없다―유정식 <착각하는 CEO>
➍ 경 영 전 략
광적인 규율, 실증적 창의성, 생산적 피해망상―짐 콜린스, 모튼 한센 <위대한 기업의 선택>
한계 앞에서는 ‘전략’이 아니라 ‘전략가’가 필요하다―신시아 A. 몽고메리 <당신은 전략가입니까?>
➎ 혁 신 & 창 의 성
느린 예감, 뜻밖의 발견, 실수, 굴절적응―스티븐 존슨,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창의성을 창조하는 방법―댄 히스, 칩 히스 <스틱!>
➏ 소 비
돈으로 행복을 사는 방법, ‘행복한 지출’의 비밀―엘리자베스 던, 마이클 노튼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마케팅 전략과 기업의 음모―마틴 린드스트롬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➐ 세 일 즈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설득’한다―다니엘 핑크 <파는 것이 인간이다>
설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약점―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➑ 대 인 관 계
성공 사다리의 꼭대기와 밑바닥의 기버(Giver)들―애덤 그랜트 <기브앤테이크>
승-승이 아니면 무거래!―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➒ 자 기 계 발
습관을 지배하라―찰스 두히그 <습관의 힘>
진정한 성공은 무엇인가―데이비드 브룩스 <소셜 애니멀>
➓ 메 가 트 렌 드
자본주의에서 협력적 공유사회로―제레미 리프킨 <한계비용 제로 사회>
컨텍스트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로버트 스코블, 셸 이스라엘 <컨텍스트의 시대>
참고문헌
비즈니스에서 탁월한 분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즈니스의 세계는 어떤 결과가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복잡계’라고 한다.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원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원인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예측 불가능한 양상이 벌어진다.
우리는 왜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는가?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이 말은 20세기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B는 Birth, D는 Death, C는 Choice를 말한다. 즉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자 더 나아가 선택 그 자체라는 말이다.
어제 하루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아침에 일어날 시간, 아침식사, 교통편, 만나는 사람, 페이스북의 ‘좋아요’, 스마트폰 메신저로 애인에게 보낼 달콤한 말, 사업상의 결정 등을 ‘선택’했을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기로 ‘선택’했던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생은 ‘선택’이라는 세포로 만들어진 존재와 같다. 한편 인간은 태어날 때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자라면서 많은 것을 성취하여 위대한 존재로 거듭난다. 인간은 끊임없이 배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반복되고 익숙한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전문가가 되지만 흥미롭게도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선택’에서는 그렇지가 못하다.
미국의 한 자료를 보면, 미국 변호사들의 44%가 변호사가 된 것을 후회하고, 기업에 스카우트된 경영인 2만 명 중에서 40%는 18개월 내에 자리를 잡지 못하거나 자진 사임을 했다. 또한 교사의 50% 이상이 구직 4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심지어 교사가 학교를 그만둘 확률이 학생이 그만둘 확률보다 거의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많은 돈을 들여 ‘선택’을 하는 기업도 결과는 비슷하다. 연구에 의하면,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활발히 하지만, 그중 83%는 아무런 주주가치도 창출하지 못했다. 오히려 인수합병 후에 기업의 가치가 더 떨어진 경우도 약 50%나 되었다. 경영인 2,207명에게 조직에서 내려진 의사결정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하자, 그중 60%가 좋은 결정과 나쁜 결정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라고 답했다. 오늘도 법정에서는 이혼소송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자신이 선택한 직장에서 수십 년을 일하고 은퇴했으나 은행 잔고가 신입사원과 비슷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이불을 하이킥으로 걷어차고 있다.
심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명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정신세계는 ‘직관적인 느낌과 의견’에 지배당한다. 마주치는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그러하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 많이 알기도 전에 좋은 느낌이나 싫은 느낌을 갖는다. 낯선 사람을 이유 없이 신뢰하기도 하고 불신하기도 한다. 또한 모종의 사업에 대해 분석도 해보지 않고 성공여부를 판단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정신활동은 대개 막힘없이 진행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믿는 속성’ 때문에, 우리는 정보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스포트라이트 효과’라고 한다. 무대가 아무리 넓어도 우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대 전체를, 또는 무대 이면을 보지 못한다.
솔직히 카너먼의 이 말이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결과들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그 연구들은 우리의 뇌는 ‘선택’에서 큰 결함을 가진 도구라고 밝힌다. 우리의 뇌는 편견과 비합리성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스포트라이트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대 전체를 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카너먼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은 500쪽이 넘는다. 그는 얄밉게도 그 많은 분량 전체를 통해 편견에 사로잡힌, 그리고 비합리성으로 점철된 우리의 모습을 반박하기 어려운 논거를 제시하며 보여준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천천히 정독하면 매우 겸손해지며, 때로는 편견과 비합리성에 휘둘리는 우리의 모습에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위대한 것은 좌절하지만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기 때부터 수천 번 넘어졌지만 다시 수천 번 일어나 걸었다. 선택 앞에서는 ‘이등병’일지라도 좌절 앞에서는 ‘경험 많은 상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러한 의사결정의 결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만약 이러한 선택의 무능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만 있다면 사업, 직장생활, 연애 등 인생의 여정이 더욱 신명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를 의사결정의 현자로 만들어 줄 책을 자신 있게 결정했다. 바로 칩 히스(Chip Heath), 댄 히스(Dan Heath) 형제가 쓴 『자신 있게 결정하라』가 그것이다.
히스 형제와 세 번의 만남
히스 형제를 처음 만난 것은 『스틱!』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한번 들으면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메시지의 속성과 그 활용에 대해 다룬 책이다. 제목처럼 내 머릿속에 착 달라붙을 만큼 좋은 책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의 행동변화를 다룬 책 『스위치』를 통해서였다. 나는 행동변화에 관련하여 이만한 책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히스 형제와의 세 번째 만남이 『자신 있게 결정하라』였다.
앞서 두 번의 만남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혹시 실망하지는 않을까 기대만큼이나 긴장도 했다. 최근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는 잊을 만하면 3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왕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히스 형제가 나에게는 그런 3연타석 홈런과 같았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의사결정에 관한 책 중 감히 최고의 명저라고 말하고 싶다.
히스 형제의 책을 보면 애플이 생각난다. 애플의 제품은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실용성도 뛰어나다. 『스틱!』, 『스위치』, 『자신 있게 결정하라』는 세 권 모두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먼저 앞부분에는 책 전체를 간단하게 요약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그리고 큰 카테고리가 끝날 때마다 또 한 번 요약을 해 준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요약을 해 줌으로써, 책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 기억하게 만든다.
히스 형제는 연구자이자 교수이기도 하지만, 컨설팅과 경영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등 비즈니스 현장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밋밋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들을 위해(스틱!), 행동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스위치), 후회스러운 의사결정을 하는 이들을 위해(자신 있게 결정하라) ‘클리닉 코너’를 만들고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재구성하여 친절하게 컨설팅을 해 준다.
그러나 히스 형제의 가장 독특한 점은, 하나의 용어나 이미지로 책 전체를 이해하고 기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스틱!』은 성공을 뜻하는 SUCCESS라는 단어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갈무리할 수 있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자신 있게 결정하라』는 ‘싸맨다’는 뜻의 WRAP을 기억하면 된다. 『스위치』는 지도 위에 기수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가지고 있으면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다. 이렇듯 최대한 읽는 이를 배려한 히스 형제의 독특한 장치는 이들의 책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WRAP
이제 『자신 있게 결정하라』의 내용을 보도록 하자.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직감’에 가장 많이 의존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종종 크게 실망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결정을 할 때, 직감이 가지고 있는 스포트라이트 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석’을 한다.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치밀한 분석은 우리를 올바른 선택의 길로 인도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시드니대학교 교수 댄 로발로(Dan Lovallo)와 컨설팅업체 맥킨지사의 임원인 올리비에 시보니(Olivier Sibony)는 5년에 걸쳐 사업상의 결정 1,048건을 연구했다. 기업들의 의사결정 방법과 그에 따른 매출·이윤·시장점유율 등의 결과를 추적한 것이다. 의사결정의 주제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 조직개편, 신규시장(국가) 진입, 기업인수 등 중차대한 사안들이었다. 연구결과 두 사람은 기업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정밀한 ‘분석’을 실시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더불어 이들은 기업들에게 경영자의 관점에 반하는 의견을 반영하거나, 또는 이런 의견을 폭넓은 선택안으로 채택하는 등의 ‘프로세스’에 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러자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기업이 탁월한 결정을 하는 데에는 ‘프로세스’가 분석보다 무려 6배나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또한 훌륭한 프로세스는 좀 더 나은 분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반대로 훌륭한 프로세스가 없다면 탁월한 분석도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밝혀냈다.
비즈니스에서 탁월한 분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즈니스의 세계는 어떤 결과가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복잡계’라고 한다.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원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원인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예측 불가능한 양상이 벌어진다. 그래서 인간의 지능으로 열심히 분석을 해도 선택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분석의 대가인 전문가들도 비즈니스와 관련된 경제·기술·트렌드에 관한 예측 성적은 분석능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편이다.
프로세스! 당신은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프로세스를 이용하고 있는가? 솔직히 나도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의사결정을 위한 프로세스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자신 있게 결정하라』는 우리가 의사결정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 있게, 그리고 현명하게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프로세스’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히스 형제는 그 프로세스로 WRAP을 제시한다.
4대 악당과 WRAP 프로세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의사결정을 할 때 4단계로 진행한다. 먼저 선택에 직면하게 되고, 분석을 한 후에, 최종 선택을 하고, 이를 고수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4대 악당이 나타나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없게 각 단계마다 괴롭힌다.
첫 번째 단계인 선택에 직면할 때, 우리를 괴롭히는 악당은 ‘범위한정 성향’(narrow framing)이다. ‘범위한정 성향’이란 다양한 선택안이 아니라 선택의 범위나 사고의 틀을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좁게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을 해고할지 말지를 고민할 뿐, 그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방안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새 차를 뽑을지 말지만 고민할 뿐, 선택의 순간에 그 돈을 다른 방향으로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선택안을 분석할 때, 우리를 방해하는 악당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확증편향’이란 우리가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지만, 실제 마음속으로는 이미 어느 정도 결정을 한 후 그 결정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별해서 수집하려는 것을 말한다.
확증편향은 투표할 때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더 나은 후보를 알아보기 위해 정보를 찾지만, 결국 자신이 이미 선택한 후보에 대한 좋은 정보, 또는 경쟁후보에 대한 좋지 않은 정보만을 찾는 경향이 있다. 설령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나와 견해가 다른 정보와 의견을 보는 것은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순간에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악당은 ‘단기감정’(short-term emotion)이다. ‘단기감정’이란 선택의 상황에서 우리가 순간적으로 겪는 분노·욕정·불안감·탐욕 등의 감정을 말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선택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와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계속 갈등하거나, 또는 순간의 욕정으로 평생 후회할 만한 선택을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단기감정은 미래를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흐리게 만든다.
선택을 한 후,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악당은 ‘자기과신’(over-confidence)이다. ‘자기과신’이란 우리가 선택을 한 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의사들은 자신의 진단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경우에도 틀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학생들도 문제를 푼 후 틀릴 가능성이 1%밖에 안 된다고 확신했음에도 실제로는 27%가 틀렸다는 보고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동력자원부 장관 비탈리 스클리야로프는 원자로 노심의 용융 가능성은 1만 년에 한 번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히 두 달 후인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졌다.
4대 악당은 어떻게 물리치는가?
앞에서 선택을 방해하는 4대 악당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히스 형제는 이 4대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서 WRAP 프로세스를 제안한다.
선택에 직면하게 되면, ‘범위한정 성향’이라는 악당이 다양한 선택안을 놓치게 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면 된다. ‘선택안은 정말 충분한가’(Widen your options). 즉 ‘선택안을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선택안을 분석할 때는 ‘확증편향’이라는 악당이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협소한 정보만 모으게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면 된다. ‘검증의 과정은 거쳤는가’(Reality-test your assumptions). ‘어떻게 해야 확증편향에서 벗어나 신뢰할 만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선택의 순간에는 ‘단기감정’이라는 악당이 나타나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이런 경우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질문하면 된다. ‘충분한 심리적 거리는 확보했는가’(Attain distance before deciding). ‘어떻게 단기감정을 극복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자문해 보는 것이다.
선택을 한 후, 우리는 ‘자기과신’의 악당에게 휘둘려 미래에 대한 과도한 확신으로 큰 실패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면 된다. ‘실패의 비용은 준비했는가’(Prepare to be wrong). ‘어떻게 해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4대 악당을 물리치는 4가지 질문
• 선택안은 정말 충분한가? Widen your options.
• 검증의 과정은 거쳤는가? Reality-test your assumptions.
• 충분한 심리적 거리는 확보했는가? Attain distance before deciding.
• 실패의 비용은 준비했는가? Prepare to be wrong.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4대 악당을 몰아내기 위한 4가지 질문에서 첫 번째 단어의 첫 알파벳만 따면 WRAP이 된다. 히스 형제는 기존의 의사결정 방식을 꽁꽁 싸매 버림으로써(wrap) 4대 편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프로세스를 떠올리게 하기 위해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좀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히스 형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4대 악당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단기감정’이라는 악당은 선택의 순간만이 아니라 선택에 직면할 때부터 등장하기도 하며, ‘확증편향’은 선택을 한 후 이를 고수하기 위해 계속 작동하기도 한다. ‘자기과신’ 또한 선택 전부터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각 악당들이 홀로 등장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고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WRAP 프로세스는 순차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지만 꼭 순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가결정된 선택이 옳은지 검증을 하는 과정에서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신선한 선택안이 등장할 수 있고, 단기감정을 물리치기 위해 심리적 거리를 두었는데 확증편향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WRAP 프로세스의 핵심은 간단하다. 자동 스포트라이트를 수동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간단한 프로세스를 염두에 둠으로써 본능적인 감정, 자기만족적 정보, 자기과신적 예측에 빠져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선택을 WRAP 프로세스를 통해서 할 필요는 없다. 히스 형제는 WRAP 프로세스가 적용되는 사례는 ‘5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의사결정’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자동차 구매, 이직, 애인과의 결별, 예산 할당, 창업 여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수비수를 따돌리기 위해 축구공을 어디로 패스해야 할지처럼 몇 초 안에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직관적 결정이 훨씬 낫다. 하지만 직원을 채용하는 의사결정이라면 직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앞에서 이 책을 소개하며 의사결정의 현자를 운운했지만, 히스 형제는 잘 알고 있다. WRAP 프로세스를 따른다고 해서 우리의 선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작은 변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프로야구 선수가 100번의 타석에서 29개의 안타를 치면 평범한 선수지만, 같은 기회에서 안타 1개를 더 칠 수 있게 집중하면 3할대 타자가 되어 올스타가 될 수 있고, 그런 집중력을 꾸준히 유지하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도 있다. 안타 1개를 더 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될 때 결과는 크게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이라는 타석에 선다. 그것도 평생토록 말이다.
히스 형제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자신들이 제시하는 솔루션을 따른다면 평범한 우리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책 제목을 ‘자신 있게 결정하라’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선택안은 정말 충분한가?
카네기멜론대학교의 바루크 피쇼프(Baruch Fischoff) 교수는 10대들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연구했다. 연구결과 10대들의 의사결정에는 독특한 특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의사결정이란 2가지 이상의 선택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10대의 65%는 진정한 의미의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하는 10개 중에서 6개 이상이 ‘난 앞으로 절대 남 탓을 하지 않을 거야’처럼, 이미 선택을 한 후 결심하는 ‘결심 표명’, 또는 ‘친구를 따라 담배를 피울까 말까’처럼 한 가지 선택안을 놓고 고민하는 ‘가부(可否) 결정’이었다.
10대들은 ‘범위한정 성향’이라는 악당에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많은 선택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일부분에만 스포트라이트를 쏘아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10대들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결정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폴 너트는 기업·비영리단체·정부기관에서 내린 의사결정들을 30년 동안 분석했다. 연구결과 이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2가지 이상의 대안을 고려한 경우는 30%도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20대 이상 성인으로 구성된 조직들 대부분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선택 가능한 다른 대안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너트의 추가 연구에 의하면, 가부(可否) 결정의 52%가 실패로 이어지는 반면, 2개 이상의 대안을 고려한 경우에는 실패율이 32%로 낮아졌다. 결국 선택안을 늘릴수록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위한정 성향을 물리치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첫 번째 프로세스는 ‘선택안은 충분한가’이다. 그렇다면 선택안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 실험을 보자.
비디오 매장에서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할 뿐만 아니라, 즐겨보는 장르의 DVD가 특별할인가로 14.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를 선택하라.
① DVD를 구매한다.
② DVD를 구매하지 않는다.
실험결과 75%의 사람들이 구매한다고 답했고, 25%는 구매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연구팀은 다른 팀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택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살짝 바꾸었다.
비디오 매장에서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할 뿐만 아니라, 즐겨보는 장르의 DVD가 특별할인가로 14.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를 선택하라.
① DVD를 구매한다.
② DVD를 구매하지 않고, 다른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14.99달러를 아껴둔다.
실험결과 45%의 사람들이 DVD를 사지 않겠다고 답했다. 선택지의 내용을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DVD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이 거의 2배 가까이 늘었다. 이 실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항상 ‘기회비용’을 고려한다면, 범위한정 성향을 극복하고 다른 선택안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선택하면 대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똑같은 시간과 비용으로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과 같은 간단한 질문으로도 큰 악당을 물리칠 수 있다. 혹은 내가 지금 결정해야 하는 선택안을 없애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또한 자연스럽게 다른 선택안을 고려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기회비용을 생각하고 선택안을 없애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는데도, 다른 선택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954년 샘 월턴(Sam Walton)이라는 사람이 미국의 벤터빌에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잡화점에서 차로 12시간 떨어진 미네소타의 한 잡화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모든 고객이 입구 근처에 위치한 중앙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잡화점 업계의 표준방식과 다른 것이었다.
당시는 냄비를 구입한 손님은 주방용품 계산대에서, 비누를 샀다면 세면용품 계산대에서 돈을 내는 식으로 코너별로 계산대를 운영했다. 월턴은 중앙 계산대 모델을 보자마자 직원이 적게 필요하니 인건비가 절약되고, 손님들의 입장에서는 한 번에 계산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월턴은 이 모델을 바로 벤치마킹해서 자신의 잡화점에 적용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잡화점을 발전시키기 위해 장사를 잘한다고 소문난 곳을 부지런히 찾아다녔고, 그곳의 장점을 바로 흡수해 자신의 잡화점에 적용했다. 이렇게 시작한 잡화점은 승승장구를 거듭하였고, 이곳은 세계 최대 유통기업인 ‘월마트’가 되었다.
그렇다. 기회비용과 선택안을 없애도 또 다른 선택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월턴처럼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된다. “나와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씨름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리고 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벤치마킹의 한 방법으로 ‘사다리 오르기’라는 방법을 활용할 수도 있다. 과학자의 사고방식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실험을 진행하다가 문제에 부딪히면 종종 ‘동종유추’(local analogy)를 통해 돌파구를 찾는다. 동종유추란 유사한 생물체를 대상으로 진행된 매우 비슷한 실험과 비교해 보는 방식으로 월턴의 벤치마킹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동종유추로도 해결되지 않는 더 커다란 문제에서는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까? 과학자들은 이럴 때 ‘계통유추’(regional analogy)라는 방식을 쓴다고 한다. 이는 연구 중인 생명체와 같은 계통에 속한 다른 생물체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다.
사다리 오르기
앞의 과정을 좀 더 거칠게 이야기하면, 인간을 연구할 때 처음에는 다른 인종과 비교하다가 해결이 되지 않자, 원숭이 등 유인원, 더 나아가 쥐와 같은 생물과 비교연구를 해 보는 것이다. 이것을 ‘사다리 오르기’라고 한다.
사다리의 아랫단에서는 자신이 처한 것과 매우 비슷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해법을 채택하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 비슷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다리를 조금 더 올라가면 다른 영역의 선택안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안을 취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생각의 도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실패할 확률은 높아지지만 반대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도 있다.
디자이너 피오나 페어허스트(Fiona Fairhurst)는 수영 속도를 높여주는 수영복을 디자인하기 위해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모든 것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사다리를 올라간 것이다. 그녀는 드디어 상어 피부와 어뢰에서 영감을 받아 ‘패스트스킨’(Fastskin)이라는 새로운 수영복을 만들었다. 성능이 매우 좋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수영 부문 메달 중 무려 83%를 패스트스킨 수영복을 착용한 선수들이 따기도 했다. 결국 이 수영복은 성능이 너무 좋다는 이유로 올림픽에서 착용이 금지되었다.
독일의 킬대학교 교수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독일 중견 기술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을 연구했다. 이 회사들은 18개월 동안 83건의 주요 사안에 대해 토론을 거쳐 의사결정을 했다. 그런데 2,3개의 대안을 두고 고민한 결정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의사결정이 ‘매우 훌륭함’이라는 등급을 받은 횟수가 무려 6배나 많았다. 선택안을 늘리는 매우 단순한 프로세스 하나로 의사결정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기회비용을 생각하고 선택안을 없애는 작업을 해 보자. 그래도 선택안이 나오지 않으면 자신과 같은 문제를 겪고 해결했던 이를 벤치마킹하거나 사다리를 올라타 보자. 사바나 동물들의 세계에서, 혹은 PC방을 정복하고 있는 게임에서 예상치 못한 경영전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검증의 과정을 거쳤는가?
지금까지 선택에 직면했을 때. ‘범위한정 성향’을 물리치기 위해서 선택안을 늘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선택안의 양과 질을 높일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선택안이 늘어나면 이제 우리는 ‘확증편향’이라는 망령에 시달리게 된다.
최근 심리학 자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메타분석은 확증편향의 힘을 잘 보여준다. 연구진은 8,000명 이상이 참가한 91건이 넘는 연구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자기 의견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선택할 확률이, 자신의 의견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정보를 고를 확률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특히 확증편향은 감정의 지배를 많이 받는 종교와 정치에서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미 많은 시간이나 노력을 들인 경우에도 강력하게 작용했다. 확증편향은 당연히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렇다면 확증편향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확증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히스 형제는 『자신 있게 결정하라』에서 반대자, 줌아웃・줌인, 우칭 등 3가지 검증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반대자
확증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검증 방법은 반대자를 세우는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선택해야 할 것들에서 사후 성인으로 추대할 사람을 결정하는 시성(諡聖)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선택에서 확증편향을 없애기 위해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활용한다. 이들은 ‘신앙을 촉구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증성관으로서 시성을 제안하는 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반대자 역할을 한다. 즉 가톨릭교회는 의사결정에서 반대의견을 듣고자 반대자를 제도로 마련해 둔 것이다.
미국에서 상장기업을 인수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평균 프리미엄 비율은 41%라고 한다. 다시 말해 주식시장에서 인수대상 기업의 가치를 1억 달러로 평가했다면, 인수 기업은 프리미엄을 더해 약 1억 4,100만 달러에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매슈 헤이워드와 도널드 햄브릭의 연구에 의하면, CEO가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할수록 인수 이후의 성과가 더 나빠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면 인수 프리미엄이 낮은 경우에 어떠한 특징이 있었을까? 헤이워드와 햄브릭에 따르면, CEO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변인이 많을수록, 즉 사외이사 등이 있을 경우에 인수 프리미엄이 낮을 확률이 높았다.
줌아웃·줌인
확증편향을 물리칠 수 있는 두 번째 검증 방법은 줌아웃·줌인(zoom out, zoom in)이다.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사회과학과 의사결정 과학을 공부하던 28세의 대학원생 지크문트-피셔는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병명은 혈액세포를 정상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골수이형성증후군이었다. 이 병은 8일에 한 번씩 혈소판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이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도 있었다. 사망 가능성을 없앨 수 없는 병이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골수이식이다. 그런데 피셔가 골수이식을 받을 경우 일 년을 넘기지 못할 확률이 25%에 달했다. 다만 일 년을 넘길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계속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반면 골수이식을 받지 않는다면, 8일에 1번씩 수혈을 받으면서 비교적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고작 5,6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이때 그의 아내인 나오미는 임신 6개월이었다. 피셔는 이러한 극심한 딜레마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피셔는 먼저 결정에 참고할 만한 정보를 필사적으로 찾았다. 그리고 혈액학자인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는 피셔는 젊기 때문에 생존확률이 평균치보다 더 높을 것이며, 골수이식 수술 경험이 많은 병원에서 수술을 하라고 권했다. 또한 피셔는 아내 나오미와 함께 골수이식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수소문해서 만나보았다. 당시에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직접 찾아가야만 했다. 부부는 이들에게 치료와 관련된 온갖 경험담을 들었다.
피셔는 아내와 부모님과 상의 끝에 골수이식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는 골수이식으로 명성이 높은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에서 수술을 했고, 수술 후 운동요법에 돌입했으며 집중적인 화학요법도 병행했다. 그는 결국 1년을 무사히 넘겼고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셔의 결정이 아니라, 결정을 하기까지 취했던 프로세스다. 그는 먼저 시야를 ‘줌아웃’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다. 전문적인 과학저널과 논문들을 보았으며, 특히 전문가인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피셔가 젊기 때문에 생존확률이 평균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했고, 그의 조언은 힘을 발휘했다. 또한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를 수술장소로 결정한 것도 친구의 힘이 컸다.
또한 피셔는 ‘줌아웃’만이 아니라 ‘줌인’도 했다. 골수이식 경험이 있는 환자 및 가족들의 다양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합병증을 극복하려면 운동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학요법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다.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수술 및 회복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미리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검증 과정에서는 ‘줌아웃’을 통해 통계적인 데이터와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줌인’을 통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으로 직접 보거나 경험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탁월한 검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칭
확증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세 번째 검증 방법은 우칭(ooching)이다. 우칭이란 검증을 하기 위해 몇 차례 작은 실험을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잉크』 매거진이 선정한 500대 CEO 중 60%는 회사를 차리기 전에 사업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버지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사라스 사라스바티(Saras Sarasvathy) 교수는 매출 규모가 2억~65억 달러인 회사의 창업자 45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창업자들에게 가상의 신생기업 사례를 소개하며 “당신이 만약 이 신생기업의 창업자라면 어떤 방식으로 시장조사를 실시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런데 거대 회사의 창업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저라면 그런 시장조사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시장에 뛰어들어 팔겠습니다. 저는 시장조사를 믿지 않거든요.”
창업자라면 당연히 사업계획서와 시장조사는 기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업계획서와 시장조사가 확실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감이든 분석이든 이를 토대로 한 미래예측이 정확히 맞아야 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예측이란 어떤 전문가에게도 넘을 수 없는 산과 같다. 시험할 수 있다면 먼저 뛰어들어 봐야 한다. 시험하면 알 수 있는데, 그 어렵고 맞추기도 힘든 예측을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우칭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성공 모델인 린스타트업의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요건 제품)다. 린스타트업(Lean Startup)이란 승산이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조금 어설프더라도 테스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을 빨리 만들어 출시하는 것이다. 이런 제품을 MVP라고 한다.
린스타트업은 MVP를 출시하고 이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을 파악한 후 분석하여 발 빠르게 제품을 개선한다. 만약 아이디어를 세울 때 가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꾼다. 이를 ‘피봇’(pivot, 방향 전환)이라고 한다. 이런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쳐 제품의 완성도를 높인 후 검증된 가설을 바탕으로 마케팅 및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본격적으로 제품을 출시하여 판매한다. 결국 최근 각광받고 있는 린스타트업 전략은 우칭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우리가 선택을 검증할 때 확증편향을 물리치려면, 이처럼 반대자를 세우고, ‘줌아웃’ 및 ‘줌인’으로 정보를 모으며, ‘우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심리적 거리는 확보했는가?
지금까지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 선택안을 늘리는 방법, 그리고 선택안들을 검증하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이제 실제 선택을 하는 단계이다. 이때 우리를 현명한 선택의 길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단기감정’이다. 순간적인 욕심·욕정·불안감·분노 등은 간혹 우리를 최악의 결정에 이르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단기감정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
심리학자 로라 크레이(Laura Kray)와 리처드 곤잘레스(Richard Gonzalez)의 연구를 보자.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다음의 2가지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다음 중 어느 직업을 선택하겠는가?
직업 A: 내가 잘 아는 일이다. 대학교 시절에 해당 분야의 강의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 분야를 공부한 것은 부모님과 친구들의 압력 탓이 컸다. 이 직업을 택하고 처음 몇 년은 꽤 고생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높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다.
직업 B: 흔한 직업은 아니지만 내가 늘 하고 싶어했던 일이다. 수입이 매우 적지만 보람과 만족도는 높을 것이다.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음은 물론 인류의 발전에도 기여하는 일이다.
학생들은 “어느 직업을 선택하겠는가?”라는 물음에 66%가 직업 B를 선택했다. 그런데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만약 “가장 친한 친구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느 직업을 선택하라고 하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무려 83%가 직업 B를 선택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상황이 아니라 친구의 상황이라고 했을 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 과감하게 직업 B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A를 포기했을 때 부모님이 실망하는 모습과 친구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 으스대는 상황이 떠오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체로 우리는 남에게 조언할 때는 가장 중요한 요인에 집중하지만, 자기 자신의 일을 고민할 때는 수많은 변수에 어쩔 줄 몰라한다. 즉 친구의 상황을 생각할 때는 숲을 훤히 볼 수 있는데, 정작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는 스포트라이트를 좁혀 그만 나무들 사이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만일 가장 가까운 친구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뭐라고 조언하겠는가?”
이처럼 내가 아니라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선택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단기감정을 물리칠 수 있다. 이렇게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게 될 때, 우리는 장기적 관점을 가질 수 있고 좀 더 바람직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선택안을 제도나 관습, 상황 때문에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심한 갈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내재된 감정적 본능 때문이다.
단순노출 효과, 손실회피 성향
심리학자인 로버트 제이언츠(Robert Zajonc)는 실험 대상자들을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켰고, 그 결과 특정한 자극을 더 많이 접할수록 그것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단순노출 효과’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좌우가 뒤바뀐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선호하지만, 친구나 가족들은 실제 내 얼굴을 더 선호한다. 즉 익숙할수록 더 많은 호감이 생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다음과 같은 게임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자. 여러분이라면 게임을 하겠는가?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100만원을 받고, 뒷면이 나오면 70만원을 잃게 된다.
실제로 이런 게임을 한다면 시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0%인데, 앞면이 나오면 받을 돈이 뒷면이 나오면 잃을 돈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손실회피’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손실회피 성향이란 이익에 따른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고통을 2배 이상 더 크게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2배 이상이 되어야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하는 단순노출 효과와,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더욱 민감한 손실회피 성향이 우리의 본능 속에서 소용돌이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로 현상을 유지하고 싶은 강력한 감정이 생긴다. 단순노출 효과로 인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더 좋아 보일 뿐만 아니라, 손실회피 성향으로 인해 변화를 주었을 때의 이익보다 손실이 훨씬 더 커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바람직한 선택안이 있더라도, 그것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쉽게 선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유지 성향을 쉽게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거리를 더욱 충분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느 정도 수고가 필요하다. 이제 미국 태평양함대 소속 미사일 장착 구축함 벤폴드(Benfold) 호의 지휘관인 마이클 에브라소프 대령을 만나 보자.
벤폴드 호의 목록
마이클 에브라소프 대령은 벤폴드 호의 지휘관이 되자, 310명의 해군 승무원과 일대일 개인면담과 자체 조사를 통해 모든 활동을 두 종류로 분류해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 A는 임무 수행에 필수적인 활동을, 목록 B는 안할 수는 없지만 핵심적이지 않은 활동을 정리했다. 목록 A는 우선순위로서 무조건 먼저 해야 하는 일들이고, 목록 B의 일들은 최대한 없애는 것이 중요했다.
목록 B에는 페인트칠 같은 것이 포함되었다. 에브라소프 대령은 승무원들과 페인트칠을 최소화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페인트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철로 만든 볼트에서 흘러내린 녹물이 선체 겉면을 망쳐놓기 때문이다. 에브라소프 대령은 여러 대안을 놓고 고민한 끝에 철 볼트를 스테인리스 볼트로 교체했으며, 그후 1년 동안 페인트칠을 새로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후 해군의 모든 선박이 철 볼트를 스테인리스 볼트로 바꾸게 되었다.
에브라소프 대령이 이렇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목록을 만들고, 목록 B의 항목들을 없애는 시도를 한 후, 벤폴드 호의 승무원들은 전투 시뮬레이션과 군사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승무원들의 역량이 강화되자 뜻밖의 성과가 나타났다. 해군이 요구하는 6개월 동안의 군사훈련에서 평균보다 월등한 실력을 발휘하여 단 1주일 만에 수료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이후 벤폴드 호와 그 승무원들은 이라크전쟁에서 고난이도의 임무를 수차례 완수하여 실력을 인정받는 등 미 해군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게 된다.
우리가 벤폴드 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장기적인 목표 아래 우선순위 목록과 없애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 놓으면, 단기감정에 흔들리는 마음을 장기적 안목으로 바꿀 수 있고, 변화하지 않으려는 본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우선순위 목록과 없애야 할 목록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면, 좀 더 쉽고 현명하게 목표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의 순간에 이렇게 자문해 보자.
“나는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실패의 비용은 준비했는가?
이제 WRAP 프로세스의 마지막 단계다. 선택을 한 후에 자기과신으로 인한 확신 때문에 실패하는 것을 막는 단계다. 이때 필요한 질문이 바로 ‘실패의 비용은 준비했는가?’, ‘미래의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하고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할까?’이다.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라는 자만심에 쉽게 빠진다. 스타트업 기업의 성공률은 10%도 안된다. 그러나 아마도 대부분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제품이 무조건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만심의 악당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보아야 한다. 자만심에 빠진 우리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잘 그려내지만, 최악의 상황은 애써 외면하려 한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을 뿐 아니라 최악의 상황은 상상으로도 대면하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먼저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릴 때, 현실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안전계수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Gary Klein)은 ‘사전 검시’(premortem)를 하라고 권한다. 검시는 사망원인을 찾기 위해 시체를 조사하는 것이다. 결국 사전 검시란, 창업 혹은 프로젝트가 완전히 망했을 때를 가정하고 그 원인을 따져보는 것이다. 팀원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각자 지금의 선택이 실패할 경우 그 원인이 무엇일지 종이에 적고 분석과 토론을 함으로써 최악의 순간을 막을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대로 그리면, 이제 실패했을 때 최악을 모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엔지니어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설정하는 ‘안전계수’처럼 말이다.
안전계수란 혹시 있을지 모를 기계 결함을 대비해서 더 안전하게 대비하는 공식이다. 예를 들어 사다리가 버틸 수 있는 최대 중량이 200kg이고, 사다리의 안전계수가 6이라고 하자. 그러면 이 사다리는 최대 1,200kg까지 버틸 수 있다. 이는 거구의 장정 10명이 사다리를 오르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이다. 엘리베이터 케이블은 안전계수가 11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최대 중량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케이블은 최대 중량의 11배를 더 버틸 수 있다. 다시 말해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꽉 차도 케이블이 끊어지는 경우는 거의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안전계수는 프로젝트 마감일을 설정할 때 활용할 수 있다. 프로젝트가 일정대로 했을 때 30일이 걸린다면, 여기에 약 30%를 더해서 마감일을 40일 정도로 넉넉히 잡을 수 있다. 아니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계획을 무리하게 잡지 않고 좀 더 쉽게 시작할 수도 있다. 근육을 만들겠다고 첫날부터 헬스를 2시간 이상 하면 십중팔구는 근육통으로 몸져눕는다. 의욕이 앞서고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더라도, 처음에는 1시간 이내로 스트레칭을 충분히 한 후 무리 없이 시작해야 한다.
콜센터들은 ‘현실적 직무 소개’를 통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콜센터는 이직률이 매우 높다. 고객들의 어이없는 요구와 심지어 욕설을 계속 듣다 보면 버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직률이 매우 높고, 이직이 수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형 콜센터들은 직원을 필요 인원보다 더 많이 뽑는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많이 해결한 것이 바로 ‘현실적 직무 소개’이다. 콜센터에서 일할 때 겪게 될 온갖 나쁜 일들을 미리 알려주는 것, 즉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한 콜센터는 5,400명을 채용했는데, 현실적 직무 소개를 도입한 후 이직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