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한입
Philosophy
Bites
데이비드 에드먼즈
BBC 월드 서비스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일하고 있다. BBC의 동료 존 에이디노와 함께 가디언 퍼스트 북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오른『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 사무엘 존슨 상 후보작인『보비 피셔 출정하다』, 장 자크 루소와 데이비드 흄의 관계를 다룬 『루소의 개』 등 여러 권의 문제작을 썼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의 우에히로 실천 윤리 센터의 연구원이자 『프로스펙트 매거진』의 편집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나이젤 워버턴
저자 나이절 워버턴은 개방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베스트셀러 『철학: 기초』와 『철학: 고전』을 포함해 여러 권의 철학 입문서를 집필했고, 가장 최근작으로는 『자유 발언: 입문』이 있다. 그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주기적으로 미학에 대해 강의하며, 한 달에 한 번씩 『프로스펙트 매거진』에 〈일상의 철학〉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또한 vitualphilosopher.com과 artandallusion.com을 포함한 몇 개의 개인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 오필민
철학 한입
Philosophy Bites
팟캐스트로 철학의 정신을 구현하다!
수백만 애청자를 홀린 15분짜리
저릿한 철학적 대화, 25편의 향연
사람들은 왜 구역질을 느낄까? 대머리는 어느 시점부터 대머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로켓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면 인간의 형상을 한 신들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이 동물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관용은 항상 좋은 것일까?
우리의 본능적인 구역질은 체화된 편견이 아닐까? 정치가들은 대머리의 경우처럼 규정짓기 어려운 언어의 모호성을 이용해 우리를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이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이 거대한 불행은 도대체 뭔가?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존엄한 존재일까? 우리는 관용이란 말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이클 샌델, 사이먼 블랙번, 피터 싱어, 콰메 앤터니 애피아, 알랭 드 보통 등 당대 최고의 철학자 25인의 인간과 신, 세계에 관한 15분짜리 짧고 굵은 철학적 대화, 그리고 예기치 않은 통찰들! 이제 당신이 생각해야 할 차례다.
PHILOSOPHY BITES
by David Edmonds and Nigel Warburton
Copyright © David Edmonds and Nigel Warburton, 2010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The Open Books Co., 2012
All rights reserved.
The first edition of PHILOSOPHY BITES was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in 2010.
This transla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Oxford University Press
through EYA (Eric Yang Agency).
리즈와 안나에게
이 책은 일련의 팟캐스트 오디오 인터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1백 건이 훨씬 넘는 전체 인터뷰 중에서 고심 끝에 이 책에 포함시킬 25건을 선정했다. 팟캐스트를 진행한 처음 3년 동안에 우리는 7백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에서 수많은 팬 레터와 더불어 인터뷰 대본을 구할 수 없느냐는 요청을 수없이 받았다. 그래서 이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인터뷰를 요청했던 한 저명한 철학자는 우리를 실망시켰다. 그가 인터넷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와 같은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우리가 인터뷰를 요청하면 대개는 매우 협조적이고 우호적이었다. 우리가 〈철학 한입〉을 방송하면서 얻은 주요한 혜택 중 하나는 수준 높은 세미나를 매주 공짜로 열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감사드려야 할 분들은 우리의 인터뷰에 응해 준 분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고 있는 분들뿐 아니라 우리의 조심스러운 질문들을 너그러이 받아 준 모든 철학자들에게 말이다. 흥미롭고 중요한 사상가들을 그렇게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청취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청취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분량의 피드백을 받았다. 매일 격려의 메시지가 답지했고, 가끔씩 인터뷰해야 할 사람을 추천받기도 했다.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이 책에 실린 피터 싱어와 마이클 샌델의 인터뷰는 원래 개방대학교의 팟캐스트 시리즈인 〈윤리학 한입Ethics Bites〉을 위해 녹음된 것이었다. 이 책에 그 내용을 옮겨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고마움을 전한다.
여러 건의 인터뷰를 녹음할 수 있게 해주고 이 작업에 힘을 보태 준 런던의 철학 연구소와 그곳 관계자 분들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한나 에드먼즈에게도 감사한다. 전생에 편집자가 아니었나 의심될 만큼 그녀는 다시 한 번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에이전트인 베로니크 백스터와 캐롤라인 다니에게도 감사한다.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나이젤 워터번
www.philosophybites.com
철학은 대화로 시작했다. 소크라테스가 무언가를 글로 써서 남기는 법이 없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그는 그저 저잣거리에서 동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확고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그리고 예외 없이 그들의 확신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었다. 다행히 플라톤이 그의 대화들을 재구성했다.
물론 철학이 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철학은 늘 그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사상의 위대한 철학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사상을 일반적으로 책의 형태, 즉 긴 독백의 형태로 세상에 내놓았다. 사정은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대화에는 해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질문자는 말의 흐름을 끊고 좀 더 명료하게 얘기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혹은 상대방 말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일견 명백해 보이는 반례를 제기할 수도 있다. 철학의 정신, 즉 면밀히 조사하고, 의견을 이끌어내고, 이유와 정당성을 탐구하는 정신은 대화 속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문 철학자들은 서로 간에, 그리고 학생들과 더불어 대화하면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반 대중은 그런 논의들을 접할 기회가 없다. 우리의 임무 중 일부는 철학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학문인지를 보여 주고, 두꺼운 책 속의 논고를 통해서는 소통하기 어려운 이른바 사유를 향한 열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각각의 인터뷰는 단일한 주제에 초점을 두고 일부러 짧게 요점만 다루었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말이다. 철학은 불명료할 필요도 없고, 접근 불가능해서도 안 된다. 철학적인 생각들을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꼭 철학 비슷한 것일 필요도 없다. 또한 가장 뛰어난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지적인 청중에게 기꺼이 전달할 의향을 갖고 있고,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더욱 감사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받은 격려와 응원이다. 수많은 청취자들은 철학적인 쟁점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왔다. 많은 사람들이 듣기보다는 읽기를 선호한다. 아니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것을 글의 형태로 다시 찾아보고 핵심적인 생각들을 정리하기를 바란다. 또한 자신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나 전자책 단말기에 들어 있는 전자책을 좋아한다. 때문에 구두 인터뷰를 말 한 마디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적어 기록한 대본은 그런 의미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토론자들에게 방송에 나간 인터뷰 내용을 약간 수정하여 각 꼭지들이 지면 위에서 독자성을 띠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또한 각각의 주제마다 더 읽어 볼 만한 책들의 목록을 짧게 제시했다.
철학은 사람들이 그 분야에 참여하면서도 자기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분야가 과연 무엇을 다루는 것인지에 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매우 보기 드문 학문 분야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인 〈철학이란 무엇입니까?〉는 우리를 어리둥절하면서도 즐겁게 만든다. 우리가 인터뷰 상대들에게 그들의 학문 분야에 대한 정의를 묻기 시작한 이래로, 동일한 답을 내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인터뷰 상대는 그저 웃기만 했다. 공통적인 화제들이 있는 반면 일부 대답들은 극단적으로 상이하다. 우리는 이렇듯 중첩되면서도 다양성을 띠는 의견들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고, 그래서 이 책에 실었다.
〈철학 한입〉 팟캐스트는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책을 위해서 우리는 철학의 특정 주제들에 맞춰 인터뷰들을 선별했다. 후속작은 위대한 철학자들을 다룬 인터뷰가 중심이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팟캐스트 인터뷰들은 인터넷 홈페이지 www.philosophybites.com에서 무료로 접속할 수 있으며, 그곳에는 우리의 이메일 주소도 링크되어 있다.
What is Philosophy?
우리는 〈철학 한입〉 팟캐스트에 출연한
다채로운 인터뷰 상대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거라는 사전 통고는 전혀 없었다.
그들의 답변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다채로운 시각들의 조합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여기에 그 내용을 소개한다.
세바스찬 가드너 철학은 이론 이성과 실천 이성을 통합하려는 시도입니다.
레이먼드 게우스 제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답변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약간은 부정적인 방식의 답변이거든요. 프리드리히 슐레겔[1]은 『아테나움 단편집Athenaeum Fragments』에서 이렇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철학이란 아무런 체계를 갖지 않은 채로 체계적인 정신이 되고자 노력하는 한 방식이다.〉
A. C. 그레일링 철학은 우리가 아직 적절하고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탐구입니다. 어떤 문제 혹은 문제 군(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전문 과학 분야나 사회 과학 쪽으로 옮깁니다. 물론 그런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들은 결국은 철학적인 문제들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게 되곤 합니다. 그런 문제들은 불명료하고, 모양이 절반쯤 형성되다 만 것들이지요. 이런 경우 그 문제들은 그 자체로 의심스러우며, 우리는 어둠 속을 흘긋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상태에 있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인 거죠. 그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주로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탐구죠.
알렉산더 네하마스 직접 답을 드릴 수는 없겠네요. 대신에 제가 왜 철학자가 되었는지 말씀드리죠. 저는 많은, 아주 많은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말하고 싶어서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전문가 수준의 지식에는 못 미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철학은 다른 많은 것들을 접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다중성과 복잡성은 제게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존 던 철학이 진리란 무엇이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탐구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여전히 거리를 두고 그러한 주제들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거리는 좁혀지기보다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 같네요.
도나 디킨슨 철학은 여대생이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학문입니다. 어느 명민한 철학자가 한 이야기지만 익명으로 남기는 게 좋겠죠. 그러나 저에게 철학은 등에의 이미지로 비춰집니다.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그 등에 말이에요. 그것은 조사해 보지 않은 채로는 그 어떤 상투적 의견이나 통용되는 지혜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브라이언 라이터 어려운 질문이네요. 학술적인 의미의 철학이 무엇인지는 말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철학이 존재해 온 양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도요. 한 마디로 철학은 인간이 하는 다른 모든 것의 본성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술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우리가 뭐라도 알긴 아는가, 과학은 무엇인가 등등.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설령 칸트가 생각했던 것처럼 만학의 여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모든 학문 분야 중에서 가장 도량이 큽니다. 우리는 니체가 철학자란 누구인가에 관해서 매우 상이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니체에게 철학자란 경외의 대상이었죠. 그에게 철학자란 가치를 창조하거나 제정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시카고 대학교의 제 동료인 리처드 포스너 판사의 비유를 빌리자면 철학자란 도덕을 기획하는 자입니다. 멋진 이미지죠. 철학자란 무엇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사물을 평가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전체적인 문화나 사람들의 이해 방식을 바꾸게 되죠.
제럴드 레빈슨 이런, 저는 당신이 정말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어요.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농담 하나 말씀드릴게요. 데이트 약속이 잡힌 한 청년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아빠, 정말 긴장돼서 그러는데요, 갑자기 말이 막히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될까요?〉 아버지는 말합니다. 〈아들아. 3F가 있단다. 음식Food, 가족Family, 철학Filosophy을 말하는 거지.〉 그러자 아들이 말합니다. 〈알았어요, 꼭 기억할게요.〉 그렇게 아들은 데이트를 하러 나갔고, 저녁을 먹은 후 자동차 안에서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죠. 그러다 정적이 찾아왔고, 아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궁리합니다. 이가 덜덜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아하, 아버지의 조언을 떠올려 보자. 〈그런데 메리야, 아스파라거스 좋아해?〉 〈글쎄, 별로 안 좋아해.〉 〈그럼, 형제가 어떻게 돼?〉 〈형제는 없어.〉 〈좋아, 그렇다면 너한테 오빠가 있었다면, 그가 아스파라거스를 좋아했을까?〉 이게 철학입니다.
벤 로저스 (웃으며) 제 본업을 다시 시작해야겠군요.
애런 리들리 (웃음).
재닛 래드클리프 리처즈 저는 철학을 특정한 주제들의 묶음이라기보다는 탐구의 한 양식으로 간주합니다. 철학에서 다루는 유형의 질문들이란 우리가 가진 생각들이 세계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또 우리의 생각들이 맞는지 틀리는지 등의 문제들을 과학이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밝혀 보려 할 때 제기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질문들은 우리의 생각들이 서로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그것은 많은 분야에서 철학적인 질문들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철학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많은 질문들의 본성을 오해하기 십상이죠. 제가 철학을 특별한 질문들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방법, 즉 탐구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오로지 그런 종류의 탐구를 통해서만 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들이 일부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제프 맥마한 그냥 웃어도 될까요? 철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군요.
M. M. 맥케이브 생각에 관한 생각.
레이 몽크 철학은 우리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A. W. 무어 말하기가 무척 곤란하군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매우 인상적인 철학적 질문이라는 겁니다.
앨런 뷰캐넌 철학에 어떤 정해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철학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들을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웬디 브라운 철학은 인생의 의미에 관해 묻습니다. 철학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이런 의문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에 관해 묻죠.
리처드 브래들리 철학의 99퍼센트는 우리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대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입니다.
사이먼 블랙번 글쎄요, 철학은 가장 심오한 개념들에 대한 반성의 과정이죠. 사유의 구조물들이자 우리가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이성, 인과, 물질, 공간, 시간, 마음, 의식, 자유 의지 같은 개념들을 보유하고 있고, 이런 어마어마하게 추상적인 모든 단어들이 철학의 주제를 형성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지난 2,500년 동안이나 궁리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2,500년은 더 생각하게 되리라고 추측됩니다. 만약 그때까지 누군가 살아있다면 말이죠.
줄리안 사불레스쿠 제가 바라보는 철학은 이성과 개념적인 도구들, 선험적인 이성 등의 활용을 통해, 그리고 자기 자신과 세계의 현상에 대한 반성을 통해 지식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철학은 경험 과학을 이용하지만, 그렇다고 철학이 과학의 한 형태는 아닙니다. 철학은 이성적인 반성을 통해 지식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제가 다루는 영역 내에서 말하자면, 철학은 행동 방침이나 인간 본성에 대한 이성적인 고찰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어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또한 철학은 사람들이 이성적인 동물로서 지니고 있는 능력을 통해 지식을 얻고, 반성하며,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도록 장려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샌델 철학은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사회와 정치, 경제 제도들의 구성 방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철학은 사물들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암시합니다. 더 나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케이트 소퍼 철학이 하고자 하는 중요한 일들 중 하나는 문화적인 상대성과 우리 사유들의 역사성을 모두 존중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좀 더 초역사적이고, 초문화적인 진리들로 간주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폴 스노든 강한 흥미를 유발하지만 그에 대한 어떤 전문적인 답을 얻을 수 없는 유형의 의문들을 한데 묶어서 우리는 철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의문을 제기할 때 의거하는 범주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의문에 답변하려 어떤 증거들을 축적하고자 하는 노력은 부질없는 일이죠. 예를 들면,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실험실 가운을 입은 어떤 친구에게 넘겨서 실험해 보라고 시킬 수는 없습니다. 〈신〉이라는 범주는 거기 속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내기 위해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범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결정할까요? 글쎄요, 우리는 그저 그런 종류의 존재자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찬반의 논증들을 비교해서 헤아려 봐야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철학적인 질문들의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가치는 존재하는가? 영혼은 존재하는가? 감각 자료는 존재하는가? 등등. 〈철학〉은 답을 찾을 수 있는 간단한 실험 방법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그 답을 알고 싶어 하는 심오하고 중요한 질문들의 묶음에 붙이는 이름입니다.
로버트 롤랜드 스미스 저는 〈철학philosophy〉이라는 단어의 그리스 어원이 그 단어를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지식을 사랑하는 한 방식입니다.
배리 스미스 철학이란 실재의 본성과 그 안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철저하고 확실하게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는지, 우리가 그런 실재에 공헌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효과가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월터 시노트-암스트롱 철학은 정합적이고 정당화된 총체적 세계관을 탐색하는 일입니다. 철학자들은 삶의 귀퉁이에서 생겨나는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고찰을 멈추고, 세상의 사물들이 어떻게 서로 어울리고 있는지를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심리학이 철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마음이 몸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미적인 가치가 어떻게 경제적인 가치나 정의와 조화를 이루는지를 말입니다. 그런 것들은 큰 주제들이죠. 우리는 어떻게 삶의 상이한 측면들을 한데 짜 맞추는 걸까요? 그것이 바로 철학이 조절해 줘야 하는 일입니다.
카탈린 아브라메스쿠 일단 한 방 먹이고 보자는 거군요. 글쎄요, 시간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유명한 이야기와 조금 비슷하겠군요. 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을 때, 나는 안다. 그러나 누군가가 시간의 개념이 무엇인지 내게 묻자마자 내가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존 암스트롱 철학은 사유에 대한 성공적인 사랑입니다.
로버트 애덤스 철학은 철학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해 편협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저와 대부분의 영어권 철학자들이 하는 방식과는 너무나 달라서, 과연 동일한 학문에 종사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망설여지는 철학자와 그런 철학 방식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철학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 제국주의적인 생각이겠죠.
메릴린 애덤스 철학은 아주 중요한 의문들을 아주 열심히 사유해서, 질문과 답변 모두가 분석적인 명료성을 띨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피터 애덤슨 와우. 저는 철학이란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때 생기는 이득과 비용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자유 의지에 관해 논쟁을 하면서 양립론자가 될 것인지 양립 불가능론자가 될 것인지 결정하려 할 때, 다시 말해 자유 의지가 인과적 결정론과 양립 가능한지 여부를 결정할 때, 그것이 양립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어떤 문제점과 이득이 생기고, 또 양립 불가능하다면 어떤 문제점과 이득이 생기는지 알아내는 것이죠.
테렌스 어윈 몇몇 사람들이 말했고 저도 동의하는 정의가 있습니다. 철학이란 매우 분명해 보이는 것들에서 출발해 극히 놀라운 결론으로 나아가는 논증이라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철학이란 우리가 대체로 당연시하는 주장들의 기본 전제들을 더욱 명료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생각 모두 철학이 무슨 일을 하는지 꽤 괜찮게 설명해 준다고 봅니다.
키스 워드 저는 철학에 대해서 전통적인, 거의 인디언식 접근을 하고자 합니다. 이를테면 철학은 지혜의 추구이며, 거기에는 영적인 지혜가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는 인간 자아의 본성과 실재의 본성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제가 옥스퍼드의 철학을 가장 강렬하게 체험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확실히 일상 언어 철학자는 아닙니다.
조너선 울프 음, 철학적인 문제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제 시각에서 말씀드릴게요. 두 가지 상식적인 생각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돌출하는 경우가 있고, 그럴 때 철학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생겨난 문제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면서도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허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크리스 제이너웨이 으흠…, 그거 아주 좋은 질문이군요. 지금 이런 반응이 흔히 사람들이 예상하는 철학자들의 반응이겠죠. 그런데 정작 철학자들은 답을 내놓지 않는 경우가 아주 흔합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죠. 저는 철학이란 평생 풀릴 것 같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대로 남아 있을 질문들을 말이죠.
클레어 칼라일 가장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철학은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 일에 관한 학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세계 속에 거주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세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그런 현실을 해석해서 의미를 발견하는 온갖 종류의 방식들이 가능하겠죠. 그래서 철학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일에 관한 학문인 겁니다.
존 캠벨 저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답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그림에 대해서 과학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제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이중 사유입니다. 우리는 그저 상식적인 세계관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살아가지만, 그러다가도 과학적인 양식으로 바로 전환됩니다. 과학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그림을 심하게 뒤흔들어 놓습니다. 과학 앞에서 상식을 포기해야 하는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상식이 과학과 나란히 갈 수 있는 지점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 둘이 다 옳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진짜 과제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 저는 바로 그런 문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앤서니 케니 철학이란 모든 학문 분야에 두루 걸쳐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들을 가능한 한 명료하게 사유하는 겁니다.
토니 코디 오, 글쎄요, 저는 분석 철학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철학이 수많은 분석적 작업을 수반한다는 입장에 동조합니다. 수많은 개념 분석 작업 말입니다. 아예 어떤 사람들은 철학이 오로지 개념을 분석하고 사물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일에만 관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모든 것에 대해서 논증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매우 논쟁적인 일거리라는 거죠. 이것들이 모두 철학의 특징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또한 좀 더 큰 규모의 종합적인 문젯거리들을 다루는 데에도 목표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삶의 의미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쟁점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가정들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살펴야 하죠. 철학은 전제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만한 측면이 늘 있어 왔어요. 그러나 그저 전제들을 밝혀내고, 〈여기에 이런 전제들이 있소〉 하고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에 관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말해 주어야만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철학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상상력이 있어야겠구나 하는 걱정을 점점 더 하게 됩니다. 한때 철학은 너무나도 멋진 재주를 부렸지만 다소 건조했죠. 그렇다고 다방면의 후기 구조주의자들과 맞먹을 만큼의 넘치는 상상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아예 분석과 논증이 실종될 정도로 상상력에 지나친 프리미엄을 부여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우리가 처해 있는 여건에 관해 큰 그림을 제공하는 일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철학에서 장려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찬드란 쿠카타스 아마도 철학에 대한 저의 이해는 다른 누구보다 마이클 오크쇼트[2]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철학은 해당 쟁점의 전제들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생각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무언가에 대해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해 주는 개념들을 가지고 그 쟁점을 이해해 보려는 거죠. 그래서 예를 들어 철학이 윤리를 논한다 치면, 철학은 도덕의 본성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철학이 정치를 논하는 경우라면, 철학은 주어진 현상을 이해하게 해주는 개념들을 통해서 정치란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노력합니다.
돈 큐핏 철학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누구나 당연시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또 자신의 사유가 그 사유 대상을 구체화하는 방법에 대해 깨닫고자 노력하는 것이죠.
팀 크레인 윌프리드 셀라스[3]를 인용하자면, 철학은 사물이라는 단어를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이해할 때, 그런 사물들이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나열한 단어들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로저 크리스프 철학이란 바로 그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윌 킴리카 글쎄요, 저는 철학과에 몸담고 있지만 늘 궁금했어요. 도대체 제 동료들과 저의 공통점이 정확히 무엇일까 하고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언어 철학이나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동료들의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특정 분야들이 철학이라는 분과에 남아 있게 된 데는 어떤 우연적인 요인이 있어요. 철학이 경제학 등 여러 학문을 포함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이러저러한 부분들이 스스로 떨어져 나와 자립적인 분과가 되었고, 철학은 그 나머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것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일관성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는 거죠. 저는 스스로를 정치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삶과 국가 제도들에 대한 규범적인 평가에 관심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도덕 철학과 꽤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로버트 노직[4]이 말했듯이 도덕 철학은 정치 철학의 경계를 설정합니다.
레이몬드 탈리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들 중 하나는 윌프리드 셀라스가 내놓은 것입니다. 철학은 넓은 의미에서의 사물들이 넓은 의미에서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저의 철학적 목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마음에 담을 수 있게 휴대용으로 만드는 겁니다. 우주가 우리를 소유하는 대신에 우리가 우주를 소유하도록 말이죠.
츠베탕 토도로프 철학은 프랑스 학생들이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 때 반드시 들어야 하는 과목입니다. 학생들은 그 과목을 그냥 무턱대고 싫어합니다. 철학이 도대체 무엇을 다루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죠. 좀 더 진지하게 답변하자면, 철학은 지혜를 탐색하고, 그래서 더 현명한 삶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식의 철학 개념을 지지합니다.
데이비드 파피노 철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려운 문제들을 열심히 궁리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도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경험적 증거를 많이 모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 물음이 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철학은 엉켜 있는 전제들을 잘 풀어 낼 것을 요구합니다. 머릿속에 이미 어떤 생각들이 들어 있지만 그걸 미처 깨닫지 못하는 바람에 우리의 사유가 이리저리 영향을 받게 되는 현상들을 규명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토머스 포그 고전적인 의미에서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질문을 이렇겠죠.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란 세상에서 정말로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업이 진정한 철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그런 식으로 응수하곤 해요. 제 생각에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 세계의 빈곤층에게 자행되고 있는 엄청난 불의입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0억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가난한 절반의 인류는 전체 가구 수입의 3퍼센트만을 소유합니다. 나머지 부유한 절반이 9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요. 만일 가난한 절반의 인류가 전체 가구 소득의 4퍼센트만 가졌더라도, 그들은 이처럼 심각한 빈곤에 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루치아노 플로리디 철학은 개념 공학입니다. 철학이란 새로운 개념들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불일치 앞에 열려 있는 의문들을 다룬다는 뜻이죠. 물론 미래에 더 경제적인 해결책이 발견될 수 있다면, 그렇게 새롭게 생긴 개념들도 있던 자리에서 물러날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합리적인 일치의 문제입니다.
앤 필립스 웃음이 나려고 하네요. 저에게 철학은 딜레마와 모순들에 관해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철학이 실제 세계를 넘어선 추상적인 어떤 것이어야 한다거나, 가설적인 문제들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신에 진정한 딜레마가 발생했을 때, 즉 이쪽이나 저쪽이나 선택할 만한 훌륭한 이유들이 존재하기는 마찬가지인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토마스 헐카 철학이란 논리학의 원리들과 사유의 정확성에 관련된 이상(理想)들에 의해 인도되는 추상적인 사유이자, 인간과 세계,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관련된 가장 일반적인 주제들을 놓고 벌이는 논쟁입니다.
1. Yuk!
데이비드 에드먼즈 〈웩〉[5]보다 더 의성적인 단어가 있을까요? 〈웩!〉은 혐오, 질색, 증오를 표현합니다. 유전적으로 조작된 생쥐의 등에 사람의 귀가 달려 있는 것을 상상할 때 많은 사람들은 〈웩〉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인육을 먹는다는 생각도 똑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키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규명하고자 할 때 이런 〈웩〉 감정에 얼마나 큰 무게를 두어야 할까요? 줄리언 사불레스쿠Julian Savulescu는 옥스퍼드 대학교 우에히로 실천 윤리 센터 소장입니다.
나이젤 워버턴 우리가 초점을 맞춘 주제는 〈웩!〉 혹은 〈웩!〉 요인입니다. 일단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웩!〉 요인이란 무엇인가요?
줄리언 사불레스쿠 무슨 맛이 역겨운 맛인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맛이 아주 쓰다고 느끼면 〈웩!〉 하게 되죠. 그런데 우리는 어떤 특별한 윤리적 쟁점을 접하거나 생각할 때도 똑같이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를테면 식인주의에 관해, 혹은 낙태, 근친상간, 동물과 성관계를 갖는 것에 관해 생각할 때 등이 전형적인 경우죠.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행태들에 대해 직관적으로 불쾌하다거나 혐오스럽다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워버턴 그런 반응들은 아주 만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쩌다 그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인지 생물학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사불레스쿠 많은 사람들이 혐오 반응에 익숙합니다. 식중독에 걸려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전 언젠가 소시지를 먹고 식중독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소시지를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늘 속이 불쾌했고,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소시지를 먹을 수 없었어요. 이런 혐오 반응들 중 상당수가 독소나 불리한 상황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프로그램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근친상간에 대한 불쾌감에 대해서는 매우 그럴듯한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친척과는 유전적으로 비정상적인 아이를 갖게 될 확률이 훨씬 더 높죠. 수많은 금기들은 이런 식의 강력한 생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불러도 괜찮다면 저는 이를 의사 합의적 근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혐오 반응들 가운데 일부에는 사회적 형태로 형성된 일종의 직관적 지식, 즉 과거에 인간에게 불리한 것으로 밝혀진 관행들에 대한 지식이 담겨 있어요. 우리의 혐오 반응은 그런 지식이 겉으로 표현되는 겁니다.
워버턴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웩!〉 반응의 유형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거군요. 유전적인 경우도 있고, 소시지를 먹고 나서 속이 불편했던 안 좋은 경험을 한 후에 소시지를 두려워하는 경우처럼, 학습된 반응인 경우도 있다는 거죠.
사불레스쿠 〈웩!〉 반응은 또한 사회적인 차원에서 학습될 수 있고, 사회적 지식의 형태로 수세대에 걸쳐 전수될 수도 있어요. 수많은 금기와 규범 들은 집단에게 불이익이 되었던 관행들을 근거로 사회적으로 결정됩니다. 그처럼 우리의 〈웩!〉 반응에는 매우 훌륭한 근거들이 있는 거죠. 그러나 그런 반응들이 개인적인 혐오 때문에 생기거나 엉뚱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런 반응이 나온다는 거죠. 앞서 말한 것처럼, 소시지에 대한 저의 반응은 안전한 소시지들을 먹을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지속되었어요.
근친상간을 예로 들어 보죠. 우리는 이제 유전적인 기형을 잡아 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유전자 검사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일 유전자 이상 문제가 근친상간에 대한 역(逆)반응의 근거였다면,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것을 물리칠 수 있어요. 오늘날 현대 윤리학의 도전 과제는 직관에 안주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해 직관이 항상 신뢰할 만한 지침을 준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특수한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우리의 행위 근거들이 무엇인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죠.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나 인간 이외의 동물들, 괴물이건 잡종이건 간에 그런 생명체들을 창조한다는 것에 〈웩!〉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원숭이들의 행성이나 고대 세계의 괴물들인 켄타우로스[6], 스핑크스 등을 머리에 떠올리는 거죠.
과학이 실제로 무엇을 제안하고 있는지, 줄기세포의 공급원으로 만들어진 배아들이 14일 후에 어디서 파괴되곤 하는지 등에 대해 고려할 때 우리는 그런 특별한 행태를 옹호하는 어떤 구체적인 이유들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단지 우리의 〈웩!〉 반응에만 기댈 수는 없죠. 〈웩〉 반응은 원시적인 과거에 도움을 주었던 매우 조야한 어림짐작일 뿐입니다. 오늘날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특수한 상황들에 담긴 복잡성과 섬세한 의미의 차이들을 다루기에는 확실히 부족하죠.
워버턴 누군가 선생님께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이봐요, 실제로 우리가 이유를 제공하는 방식 또한 매우 조잡한 수준이에요. 일종의 사후 합리화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어느 정도 선에서 자신의 극심한 편견의 합리화를 중단하고 나름의 웩 반응을 내보이는 것 아니겠어요?〉
사불레스쿠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단지 자신의 직관적인 반응들을 합리화하려고 윤리적인 논증들을 이용합니다. 저명한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근친상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실험에 참여시켜, 가상의 상황을 제시하며 그들의 반대 이유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어떤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에 매우 합리적인 반박을 가했죠. 참가자들은 유전적인 장애,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끼치는 피해, 소아 성애 등 여러 이유를 제시했지만, 하이트는 그런 것들이 왜 이유가 안 되는지 계속 설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실험 참가자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직관적인 반대 의사를 고수했죠. 그들이 신봉하는 이유가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지는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결국 그들은 어떤 합당한 이유도 제시할 수 없었죠. 다만 직관적으로 그 사안에 대해서 〈웩!〉 반응을 보이는 것 말고는 말입니다. 확실히 그런 현상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세속 윤리학, 즉 종교적인 규율에 근거를 두지 않은 윤리학은 실제로는 불과 반세기밖에 안 됐어요. 이 윤리학의 과제는 단지 직관적인 이유가 아닌 타당한 이유들을 찾는 겁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관련된 이유들, 권리와 관련된 이유들, 혹은 자유와 관련된 이유들은 단지 직관에 근거를 둔 이유들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런 가치들의 배후에는 좀 더 실체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윤리학에 주어진 과제는 단지 개인적인 감정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닌, 방어 가능한 어떤 윤리적인 원리에 토대를 둔 가치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워버턴 그렇지만 각종 윤리 위원회들에서 나온 이야기들 중 상당히 많은 것들이 기본적으로 〈웩!〉 반응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글쎄요, 그건 그냥 혐오스러울 뿐이에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다고요.〉 이런 말들은 〈그건 내 비위에 거슬려!〉라는 뜻으로 보이는, 완전히 감정적인 어휘들이죠.
사불레스쿠 확실히 그렇습니다. 여전히 매우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차원에서 윤리적인 담론들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죠. 우리는 1950년대나 60년대에 동성애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 그런 현상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가 사회의 도덕적인 결속을 위협한다고, 혹은 동성애는 무조건 혐오스러울 뿐이며 결코 합법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우리는 사람들의 사생활 속에 동성애에 대한 법적 제재 수단을 제도화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죠. 윤리적인 사유와 이성이 감정을 누른 바람직한 일이자 일종의 승리였죠. 저쪽에서 제시한 유형의 논증들은 진화론적인 근거를 가진 것들이었을 테고, 아마도 과거에는 우리에게 쓸모가 있던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었겠지만, 한 마디로 현대 사회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 것들이었어요.
우리는 이런 문젯거리들을 합리적인 담론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감정적인 반응과 직관 들을 검토해 가면서 풉니다. 어떤 정책들이 실행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이유를 제시하려고 애쓰죠. 우리는 그런 일을 더 나은 방식으로 처리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윤리학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찬반을 표시하는 일종의 민주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격하시키는, 즉 특정한 행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웩〉 반응을 보이는지에 관한 것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워버턴 분명히 감정은 우리의 도덕적인 행동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지금 우리의 토론을 듣고 선생님이 단지 이성의 힘을 옹호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감정이 그런 강력한 직관들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감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사불레스쿠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재빨리 생각해야 하고, 대략적인 어림짐작에 의존해야 합니다. 직접적인 정서적 반응들에 의존해야 하는 거죠. 때때로 그런 반응들은 복잡한 상황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또 어떤 상황에서는 행동 지침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특정한 사회적 상황들에서 특정한 감정적인 반응들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고요. 가령 어떤 사람이 위협할 때, 제대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를 내는 것이 중요할 수 있어요. 다른 뺨을 내놓는 것은 올바른 처신이 아닐 수도 있죠. 결국 감정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겁니다. 우리가 사물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최선인지 결정할 때 감정을 고려해야 하죠.
그러나 윤리학은 단지 감정만은 아닙니다. 어떤 점에서는 감정을 넘어서야 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저는 원래 의사였는데, 누구든 임신 중절 수술을 보게 되면 불쾌감을 느낍니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이죠.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 생명의 파괴를 보고도 감정적인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무언가 비정상적인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들이 낙태에 대해 갖는 감정들을 고찰하기만 하면 낙태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워버턴 그러니까 우리가 〈웩〉 반응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우리의 특정한 편견이 이런 측면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아내려면 말입니다.
사불레스쿠 저는 우리가 상황들을 어떻게 느끼는지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고, 왜 그런 식으로 느끼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감정을 반성해 봐야 합니다. 감정들을 극복하고 어떤 다른 행동 경로로 인도해 갈 이유들이 존재하는지 판단하려고 노력해야 하죠. 저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전에 부검이 실시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저는 부검을 원치 않았어요. 그러나 고심 끝에 부검 보고서를 요구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단지 우리의 감정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묻는 것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행동 방식에 대해서 느끼는 우리의 감정과는 또 다른 차원의 합당한 이유들이 있는가?〉
워버턴 이런 〈웩!〉 같은 어휘를 얼마간 정화한다면 지금 당장 이득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이 시대의 어떤 특별한 도덕적 쟁점들이 있습니까?
사불레스쿠 변화하는 인간의 본성과 인간 생물학, 그리고 생물학의 급격한 발전과 관련된 쟁점들이야말로 우리가 단지 〈웩!〉 반응에 호소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발전시켜야 할 문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말 엄청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생물학의 발전은 인간의 조건과 인간 본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만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인간 본성을 바꾼다는 것에 〈웩!〉 반응을 먼저 보입니다. 우리가 신의 역할을 하려 한다는 생각,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하려 한다는 생각, 우리가 인간적인 악마를 창조하려 한다는 생각이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그러나 생물학의 발전이 진정으로 제안하는 바는 우리를 진화의 족쇄에서 풀어 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진화는 단지 번식하기에 족할 만큼의 수명을 지닌 존재들을 창조하는 일과 관련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번식을 할 수 있는지 여부보다는 삶의 다른 측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우리의 근본적인 인지 능력, 우리의 육체적 능력, 심지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생물학이 이루어낸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관계와 사랑의 패턴들을 이해합니다. 욕망, 유인, 애착의 세 국면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각각은 상이한 호르몬 분비 메커니즘을 갖고 있고, 그 국면들 각각은 전략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특정하게 조작되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잃어가는 대신에 아마도 우리는 생물학을 이용해서 그 힘을 지탱할 수 있을 겁니다. 신체 능력 증강을 통해서 과학자들은 분당 20미터의 속도로 쳇바퀴 위에서 5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쥐를 창조했어요. 보통 쥐라면 5킬로미터가 아닌 기껏해야 2백 미터 정도를 달릴 수 있는 데 말입니다. 그 쥐는 더 오래 살고 더 오래 번식합니다. 그리고 훨씬 더 건강합니다. 우리는 아마도 똑같은 유전적인 변화를 인간에게 불러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의문들이 단지 우리의 직관과 〈웩!〉 반응을 고찰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지 물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일들에 반대하는 좋은 이유들이 있겠죠. 그러나 그런 이유들이 단지 우리의 직관이나 우리의 〈웩!〉 반응에 호소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워버턴 우리에게서 〈웩!〉 반응을 제거해 버린다면 우리의 추론 과정에서 특정한 종류의 체계적인 편견에 취약해지게 될 위험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는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사불레스쿠 당신이 들어본 표준적인 반론들 중 하나는 나치가 했던 일이 바로 그런 일이라는 겁니다. 나치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웩!〉 반응을 극복했는데,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보라는 거죠. 그건 정말 나쁜 비유입니다. 나치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그 어떤 종류의 근본적인 가치들에도 호소할 수 없는 집단이었고, 그래서 저는 그들이 감정적인 반응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전한 윤리적 원리들입니다. 노예를 소유했던 사람들, 여성에게 투표를 금지하면서 자기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 흑인들이 백인과 결혼하는 것에 〈웩〉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매우 깊고, 강렬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감정들을 말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자기들의 직관이 옳다고 확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워버턴 혹시 이성적으로는 절대로 따르지 말아야 할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철저하게 혐오하고 있는 것들이 있나요?
사불레스쿠 네, 있어요. 저는 동물과 성교를 하는 것에 그런 반응을 보입니다. 동물과 인간이 둘 다 그런 행위를 즐기고, 그것이 어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짓이 시간 낭비라는 것 외에는 아주 강력히 반대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요. 좀 더 괜찮은 일에 시간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정도죠. 그러나 저는 여전히 그런 행동에 대해 아주 강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제발 나의 아이들이 그런 일에 연루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죠. 또 다른 한 가지는 독일에서 발생한 식인 살인 사건[7]의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거기서 한 사람은 먹히고 싶어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먹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생각에는 꽤나 반감이 느껴져요. 그 행동에 반대할 만한 강력한 이유들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2. Relativism
데이비드 에드먼즈 이슬람교도들에게 윤리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이 기독교도들에게는 수용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맨체스터에서는 도덕적으로 수용될 수 있어 보이는 것이 모가디슈에서는 올바르지 않을 수 있고요. 당신은 사형 제도나 안락사가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