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랜디 알콘(Randy Alcorn)
천국의 성경적 연구에 관한 한 권위자이다. 그는 영원한 천국에 대한 시각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사역기관 EPM(Eternal Perspective Ministries)을 설립하여 가난한 자, 소외되고 핍박받는 자,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그는 EPM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14년간 담임목사로서 교회를 섬겼고, 지금도 세미나와 컨퍼런스, TV 프로그램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나라의 영역을 넓히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사역뿐만 아니라 그의 삶에 있어서도 늘 천국에 초점을 맞춘다. 평소 천국에 대한 성경적 고찰을 통해 깨달은 바를 이 책에서도 가감 없이 풀어낸다. 독자로 하여금 막연하게 느껴지는 천국이 아니라 실재하는 천국을 소망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지만 명쾌하게, 논리적이면서도 쉽게 알려준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돌아가야 할 본향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인생의 진정한 모험이 시작되기 전에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는 천국 여행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멀트노마 바이블 칼리지와 웨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성서 해석학, 신학, 윤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2년 ECPA(미국복음주의 기독교출판협의회) 골드메달리언을 수상한(수상작은 《천국의 사람 리쿠안》(규장 간)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대표작으로 《돈, 소유, 영원》, 《헤븐》, 《악의 문제 바로 알기》 등이 있다. 현재 오리건 주 그레셤에서 아내 낸시와 두 딸 카리나와 안젤라와 함께 살고 있다.
역자 채수범 은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신대원을 졸업했고, 《성경 그대로 기도하기》, 《즉각 순종》, 《목적과 함께한 릭 워렌》, 《마음 비움》(이상 규장 간) 등 2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 우간다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내가 가장 믿는 친구이며 형제인 배리 아놀드,
천국에 있는 진정한 집을 바라보며
세계 선교라는 최고의 부르심에 인생을 헌신하고
오히려 이 세상을 불편해하는 모든 사람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나의 친구 제리 하딘,
그리고 나보다 먼저 천국의 집에 도착한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드립니다.
“여러분이 너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감사의 글
천국과 영원한 상급에 대해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모아 편집해볼 것을 제안한 토머스 워맥과 덕 개버트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그동안의 글들을 꼼꼼하게 읽으며 정리해준 토머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탈고한 원고를 정리해준 로라 바커, 워터브룩 출판사의 단 리치와 레베카 프라이스, 리사 버그렌, 스티브 콥과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도 감사드린다.
EPM(Eternal Perspective Ministries)을 충성스럽게 섬겨주는 보니 히스탠드와 캐시 노퀴스트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훌륭한 아내 낸시, 늘 기쁨을 주는 두 딸 안젤라와 카리나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존 번연, 조셉 베일리, 피터 크리프트, 존 길모어, 조니 이렉슨 타다, 존 맥아더, 게리 브레셔스 등의 책과 강의를 통해서 천국에 대한 유익을 많이 얻었다. 또한 브루스 윌킨슨과 어윈 루처에게서는 상급에 대해 배웠고, C. S. 루이스, A. W. 토저, 존 파이퍼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에 대해 배운 바가 크다. 감사드린다.
나를 만드신 분이며, 내 인생의 목적 되시는 그분! 지금도 우리가 살 집을 짓고 계시는 목수이시며 왕이신 예수님께 가장 큰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주님, 우리의 심장을 찌르듯이 깊이 다가오시는 주님의 은혜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랑으로 저 같은 죄인뿐 아니라 저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미천한 저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시고 그곳을 위해서 하고 계시는 일들에 대해서 진정으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주님, 이 책을 은혜의 기적을 베푸는 일에 사용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책을 통하여 천국의 영광스러운 우리 집에 대해 끊임없이 헐뜯으며 중상모략하는 악한 자들의 모든 거짓말들을 무너뜨리시옵소서. 부디 보잘것없는 이 책의 단어들을 사용하셔서 독자들이 주님의 말씀에만 귀 기울이도록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알곡이며 유일한 반석이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는 글
천국을 소망하게 되길 바라며…
언젠가 한 목회자 친구가 나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천국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껴. 솔직히 말해서 죽은 후에 우리가 천국으로 가기보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말고 그냥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 말이 매우 충격적이었으나 애써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지?”
“우리가 천국에서 지겨운 생활을 영원히 계속한다고 생각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하프나 튕기면서 구름 속을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게. 그것은 정말 끔찍하게 지겹고 따분한 일이지 않나? 천국이 그런 곳이라면 지옥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을 것 같아. 솔직히 죽은 후에 천국에서 따분하게 영원히 살기보다는 차라리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성경을 믿고 대학교에서 신학 교육도 받은 목회자라는 이 친구가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그가 생각한 천국에 대한 개념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빌립보서 1장 23절에서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 함께 있는 것이 세상에 머무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솔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천국에 대한 소설을 몇 권 쓴 이후로 독자들에게 수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중에 한 편지를 소개해보겠다.
저는 다섯 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청소년 담당 목사와 결혼하여 남편의 목회를 돕고 있지요. 제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랜디 목사님이 쓰신 《최후의 시간》이라는 책에 대해서 감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일곱 살 때 제가 다니던 기독교 사립학교의 한 선생님은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 세상에 있던 사람들이나 이곳에서 있던 일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죽는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선생님과 다르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천국을 아주 끔찍한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통해 천국이 정말 아름답고 놀라운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천국에 대해 무서워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며 사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 무거운 짐을 떨쳐버릴 수 있었고 홀가분해졌습니다. 책에서 피니가 천국에 가서 경험하는 장면들을 읽을 때마다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저는 당장이라도 천국에 가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랍니다.
사탄의 거짓말
사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천국을 고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별로 없고, 심지어 천국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끔찍한 오해에 붙잡혀 있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바로 ‘사탄’ 때문이다.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4)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거짓말 중에 하나가 바로 천국에 관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 6절을 보자.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계 13:6)
그렇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세 가지, 즉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처소인 천국에 대해 늘 비방한다. 마귀는 천국에서 강제로 추방된 뒤(사 14:12-15) 하나님께만 원한을 품은 것이 아니다. 우리,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마귀가 거하지 못하게 된 장소인 천국에 대해서도 원한을 품었다(마귀는 우리가 자신이 쫓겨난 바로 그 집에서 살 권한을 얻게 된 것을 알고 미칠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천국에 고정시키고, 그곳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고 살라고 말씀하신다(골 3:1,2). 그렇다면 마귀가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장소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 땅에서도 우리가 마음에 품고 소망해야 할 천국에 대해 거짓말을 속삭이는 것보다 우리를 더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마귀의 계책을 조심하고(고후 2:11) 마귀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엡 6:11) 경고한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여 넘어뜨리기 위해서 즐겨 사용하는 전략들 중 하나는, 천국이 별 볼 일 없고 중요하지도 않으며 따분한 곳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탄은 우리가 천국이 지옥보다 좋은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때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엇이 빠졌는가?
거리를 걸을 때, 사무실에서 일할 때, 레스토랑에 있을 때, 사람들을 살펴보라. 그들의 눈에서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과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사람이 단지 분자와 DNA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히 생겨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주셨다(전 3:11). 그래서 실제로 사람들은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정말로 중요한 어떤 것들, 즉 영적인 실체들, 영원히 계속될 것들을 동경하며 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허감이 커질수록 그것을 채워줄 어떤 것을 갈구한다. 심지어 그런 것이 있기만 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관없다는 식으로 찾아 헤맨다. 사탄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취제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효과는 곧 사라지고 만다. 공허감을 채워주겠다는 약속은 언제나 깨진다.
이제 사람들은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 잘못된 곳으로 달려간다. 다양한 종교 활동을 하거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마약과 섹스와 돈과 권력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 만들어놓으신 본능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내 인생에 뭔가 빠져 있는 것이 틀림없어.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만 해!”
그렇다. 우리의 인생에는 정말 무언가 빠져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첫째, 우리 인생의 목적 되시는 분이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 학개서 2장 7절에서는 메시아에 대해 ‘모든 나라의 보배’, 즉 모든 문화권의 모든 사람들이 사모하며 기다리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동경하고 사모해야 할 어떤 장소이다. 그곳은 우리가 만들어진 이유이자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약속을 해주신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2)
예수께서는 친히 그분의 이름과 그 장소(천국)의 이름을 우리에게 써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천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라는 표현을 교대로 사용하셨다(마 19:23,24). 이렇게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이 계시는 장소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눅 15:18).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동경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바꾸어 나가는 것처럼 자기에게 꼭 맞는 장소를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다. 더 새로운 곳, 더 좋은 곳, 더 큰 집, 다른 도시로…. 도심지보다는 더 안전하고 친절한 이웃과 더 좋은 학교가 있는 교외 지역으로, 시골에 있는 그림 같은 집으로,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산속의 별장으로, 아름다운 해변가의 단독 주택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실제로 세상 사람들이 동경하고 부르짖으며 구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메시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할 마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메시지 자체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끔찍하게도 교회와 자녀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천국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퍼뜨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암시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해서까지도 심각한 오해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사탄은 이것을 보며 자신이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천국에 대한 열정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이것은 신랑으로서 신부에게 해주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는 사랑과 낭만이 가득 담겨 있다. 생각해보라. 결혼을 앞둔 신부가 신랑 될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아마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 준비해둔 그곳에서 사랑하는 신랑과 만날 그 순간만을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도 잊지 않고 짜릿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그분과 영원히 함께할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흘러넘쳐야 하며(계 19:7), 그런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나가야 한다. 이렇듯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열정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나 역시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천국에 대해 더 많이 사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수록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흥분이 커지는 체험을 하고 있다.
우리의 신랑 되신 분이 우리를 위해서 그곳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놀랍게 직접 손으로 지으셨는데 우리가 여전히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오두막집 같은 지구에 집착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신랑 되시는 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는가?
당신은 천국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천국에 대해 어떻게 배웠는가? 당신이 배운 신학이 천국에 대해 생각할 때 기쁨과 흥분을 가져다주는가? 천국에 대해 얼마나 많이 생각하는가? 당신과 당신의 교회, 당신의 가족은 천국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과 열정이 부족한가? 그렇다면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당신이 천국에 대해 분명하지 않고, 무언가 부족하고, 왜곡된 신학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그것이 아니라면 당신이 천국과 상반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천국에 대해서 건강하고 정확하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에는 천국에 대한 영적인 열정이 새롭게 생겨나게 될 것이다.
천국을 사모하라
우리의 문제는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엔가 빠져서 거기에 열정을 품고 살아간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환호하는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라. 문제는 우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언제나 열정적이라는 데 있다. 크리스마스 같은 날을 근사하게 보내는 것, 완벽해 보이는 집, 멋진 잔디밭, 세련된 자동차 등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가? 물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것들이 간음, 음란, 절도, 증오의 감정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2차적인 것들에 불과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말 중요한 일들에 있어서는 열정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점점 식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올바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가게 만들기 위해 이 점을 이용한다.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과 그분이 계시는 천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어야 할 열정을 다른 곳으로 빼앗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천국에 대해서는 우리의 열정이 다 식고 사라져버리게 만든다.
미국의 탁월한 목회자이자 저술가인 A. W. 토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가 장차 올 세상에 관한 교리(내세론)를 아주 중요한 것으로,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사실 기독교가 인간의 모든 종교와 사상과 생활의 전 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뛰어난 점은 바로 이 내세론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길고 영원한 내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오늘날 서구 교회의 가장 큰 약점은 그 길고 영원한 내일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즉, 우리가 우리 집이 천국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실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며 거기에 연연해하고, 따라서 이 세상의 삶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 가정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에 대해서 미리 알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휴가를 계획할 때는 여행안내 책자와 지도를 펼쳐놓고 연구하듯이 살펴보면서 휴가지의 좋은 점에 대해 알아보곤 한다. 물론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행선지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히 아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행선지에 도착해서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그저 대형서점에 진열해둔 여행 안내 서적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바란다. 이 책은 천국에 대한 안내 책자이다. 당신의 자녀나 손자들이 그랜드캐니언이나 디즈니랜드, 여름 캠프보다 천국에 대해서 더 큰 흥분과 기대감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들에게 세상의 아름답고 신나는 곳들에 대해서만 말해줄 것이 아니라, 성경을 펼치고 천국의 아름다운 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PART 1
우리는 천국을 꿈꾸는가?
01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도시 카리스(Charis, 헬라어로 “은혜”를 뜻한다)를 보았다. 마치 연속해서 분출하는 화산처럼 그곳에서 들려오는 기쁨의 소리는 엄청난 폭발력이 있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곳의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기쁨의 열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저기… 우리 집이 보인다!”
나는 기뻐서 큰 소리로 웃었다. 지금까지 평생 떠도는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 진짜 우리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던 여행자가 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심정이었다. 나는 지금이 기쁘지만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태까지 내가 이 길을 오면서 머물렀던 곳들은 결코 우리 집이 아니었다는 것을. 진짜 우리 집은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집이 우리 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_《영원의 강가》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집
이런 마음으로 당신의 집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집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천국이라고 말한다(고후 5:8). 사실 그곳은 우리 집이지만 우리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왔다고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본능적으로 그곳을 동경해왔으며, 그곳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가끔씩 매료되어 바라보던 바로 그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국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곳에 도착한 순간 눈앞에 펼쳐진 천국의 찬란한 모든 것을 간절히 사모하며 앞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추억을 만들면서 고향 집 같은 안락함을 계속 느끼며 편안해질 것이다.
성경은 ‘천국’이 ‘우리 집’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때로 나는 어떤 곳을 방문할 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이곳이 우리 집처럼 느껴져.”
이 표현은 그 장소가 가족과 사는 집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우리 집의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집의 특징은 무엇인가? 낯익고 친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주 좋고 애틋한 감정이 깃들어 있다.
나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들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다. 지금도 가끔 자전거를 타고 어렸을 때 살던 이웃 마을(현재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깝다)을 지나가다보면 마음에 그 동네에 대한 친근한 느낌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온다. 마을의 언덕, 주택, 울타리와 잔디밭, 축구와 고리 던지기를 하던 운동장 등 모두 친숙하다.
어느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 집의 방, 구석구석에서 기르던 개와 고양이와 개구리와 도마뱀,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 메아리가 되어 내게 돌아오는 듯하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씩 고향 집을 둘러볼 때마다 과거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 나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어떤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집의 가장 중심적인 특징이다. ‘집’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이다. 지금 내가 사는 주택이 우리 집이라는 사실을 아내 낸시, 두 딸 안젤라와 카리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고향 집에서 함께 살았던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추억은 이곳이 정말 우리 집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집의 모든 것은 우리 식구들이 함께 보냈던 시간에 대해서 말해준다. 함께 놀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온 가족이 함께 인생의 지도를 그렸다. 그렇다. 집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장소이다.
천국이 가장 좋은 점은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지낼 장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천국이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있게 될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중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죽을 때 소망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고 마침내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과 말로써 서로를 위로하라고(살전 4:13-18) 말씀하신 이유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친구들이 천국으로 옮겨갈 때마다 우리는 그곳을 더 소중히 하고,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의미하는 곳으로 여겨야 한다.
마침내 우리는 천국에서 그리스도인이었던 우리의 조상과 후손들과 함께 한 집에 살게 될 것이다. 그 집은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무는 집들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천국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다시 돌아가야 할 곳
나는 스노클링(snorkeling)을 하며 바닷속에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때로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물고기들을 관찰한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그곳의 물고기들이 본래부터 수족관에 사는 특별한 물고기는 아니지 않은가? 물고기들의 집은 수족관이 아니다. 물고기는 그 작은 어항에 갇혀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주 넓은 대양에서 헤엄치며 살도록 만들어졌다. 아마 그곳에 갇혀 사는 물고기들이 이 사실까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들의 본능이 자기가 살아야 할 곳은 좁은 수족관이 아니라 다른 곳이며, 본래 자기들은 다른 곳에서 살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그렇다. 인간의 본능이 우리에게 이 세상이 우리 집이 아니며 우리가 더 크고 더 넓은 어떤 다른 곳을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집은 위로와 편안함이 있는 곳이다. 회사에서 돌아와 거추장스런 정장을 벗고 청바지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머물고 싶어지는 곳이다.
나는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고, 방문했던 모든 나라를 좋아한다. 그러나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더 좋다. 집을 그리워할 때면 마음이 늘 더욱 애틋해진다. 그래서 집은 다른 모든 곳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우리가 언제나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 된다. 집을 떠나 밖에서 경험하는 인생의 모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관계없이, 집을 떠나는 그날부터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게 되는 것처럼….
진짜 우리 집
집은 친구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곳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묵상하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정원에 화초를 심고 가꾸기도 하며, 우리가 할 일들을 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재충전하기 위해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그윽한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내 낸시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애플파이를 비롯해 훌륭한 음식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는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즉,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고 웃는 것이 바로 평범한 건물인 주택을 집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인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서도 다 함께 음식을 먹을 것이다[마 8:11, 한글성경에서는 “천국에 앉으려니와”라고 번역되었으나 영어성경(NIV)에서는 “Places at the feast”, 즉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번역되었다].
이사야서 25장 6절은 이렇게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사 25:6)
그 음식을 준비하시는 분이 누구이신가?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 만찬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우는 자들은 천국에서 웃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6:21). 그리고 천국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9:14). 누가 어린아이보다 더 잘 웃겠는가? 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으로 가득 차서 활짝 웃는 모습, 그 모습만 보아도 다른 사람에게 환한 웃음이 번지는 아름다운 장면을 한번 생각해보라. 하나님은 우리를 친히 그분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그분처럼 웃을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하신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웃으시는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집이라는 곳에 대해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설명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세상의 집에 대해서 나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우리의 진짜 집은 천국에 있는 집이라는 것이다. 천국에 있는 우리 집은 이 세상에 있는 우리 집보다 더 좋은 점이 훨씬 많지만, 우리가 이 세상의 집에 대해서 기억하는 나쁜 점은 하나도 없는 곳이다.
영원히 누리는 곳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주시리로다 (시 37:4)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그분이 계시는 ‘천국’과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백성’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천국에 있는 우리의 진짜 집은 우리의 소중한 아버지, 사랑하는 신랑과 함께 지내며 기뻐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풍성해지고 깊어지는 곳이다. 집은 그러한 기쁨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며, 우리가 가장 매혹적인 순간을 누리는 공간이다.
“한번 집을 떠나면 다시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당신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당신이 살던 집도 변하고, 당신도 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당신이 살던 옛집은 없어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팔릴 수도 있다. 그래서 집은 당신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면 그때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집이다. 천국의 집은 세상의 집과는 달리 결코 화재나 홍수나 허리케인에 의해서 사라질 수 없다. 따라서 ‘천국에 돌아갔을 때 우리 집이 아직 거기에 있을까?’ 하고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천국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집이며, 집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매력적인 특징들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선교단체에서 나에게 보내준 카드가 아직도 컴퓨터에 고스란히 붙여져 있다. 그 카드에는 길에서 굶주리며 처절하게 부르짖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예레미야애가 2장 11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인용하여 기도 제목과 더불어 기도 요청을 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 1억 명 이상의 어린아이들이 길거리에 산다. 그들에게는 따듯한 세상의 집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천국의 집에 대한 소망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실 이 세상에서 따듯한 보금자리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천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누릴 만한 사람들이 누구이겠는가?
실제적인 장소
천국이 진짜 우리 집이라면, 천국은 우리가 집에 대해서 연상하는 이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천국이 집이라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곳이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장소, 우리의 신랑 되신 분이 짓고 계시는 장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 장소, 친근함과 위로와 피난처가 되는 장소, 구미가 당기는 냄새가 나며 맛있고 푸짐한 음식이 있는 장소, 속마음을 나누는 대화와 진지한 묵상과 따뜻한 가족관계가 있는 장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한 표현이다. 그곳은 우리가 예전에는 보지 못한 자유와 모험이 기다리는 곳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언급하기로 하겠다).
어떤 복음주의 신학자는 천국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천국이란 물리적인 장소라기보다는 마음(생각)의 상태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성경은 분명 천국이 단지 어떤 마음의 자세나 적극적인 사고의 태도, 혹은 최선의 것을 상상하는 마음 자세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물론 우리가 천국에 대해 깊이 묵상할 때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마음과 생각의 태도에 영향을 미쳐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천국이 마음의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천국은 그 신학자의 주장과 반대된다. 천국은 실제적이며 물리적인 장소이다. 따라서 천국에 대해 분명하고 정확하게 생각해본다면, 천국은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곳과 비교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a place)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2)
주님은 그곳을 “물리적 속성이 없는 신기루 같은 영적인 곳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따라서 너희가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곳에서는 육체와 분리된 너희의 영혼만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만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사실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신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친히 가시는 곳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