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0일, 초고가 완성된 날 저녁을 잊지 못한다.
노천희 선생(『내 님, 불멸의 남자 현승효』 엮은이)과의 인연으로 이 작업에 들어섰다. 취재에 커다란 도움을 준 그이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한다.
의사인 김병준 선생을 비롯한 경북고와 경대의대 출신 대구분들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올린다.
촛불혁명 함성이 귀에 쟁쟁한데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망언은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른다. 유신정권, 그 엄혹한 길 끝에서 사라진 주인공들을 되살리는 심정이 예사롭지 않다.
2003년에 눈을 감은 이해남이 2008년 우리 사회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끔찍하게 여기다 못해 몸서리를 치지 않을까. 그가 세상을 뜬 지 5년이 흘렀건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아니, 비정규직이라는 노예제도에 묶인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자살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극한을 치닫고 있다.
5년 전 그때도 이해남은 이즈음 노동자들이 겪는 갖가지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았다. 그때보다 더 나빠진 오늘날 노동자를 보며 그가 지르는 비명이 귀에 와 닿는다. 자신의 분신이 헛되지 않도록 간절히 염원했던 이해남은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을 보며 통곡을 하리라.
……이현중과 이해남, 그리고 오늘도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우리 얼굴이다. 자본은 지치지도 않고 우리의 육신과 얼굴을 갉아먹는다. 이현중과 이해남은 그 지옥에서 핀 꽃이다. 그들의 죽음에서 우리는 우리가 인간임을 비로소 잊지 않는다. ('작가의 말'에서)
도시를 벗어나 움막에 깃들면서, 작품을 썼다 하면 80년대로 돌아가는데 참 갑갑했다. 이제 안다. 저 불의 시대에 청춘을 겪은 자는 영원히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비로소 그 시절이 힘이 된다. 군불을 때며 버텨냈듯이, 소설이 세계와 인간을 담는 그릇임을 잊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