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부끄럽다.
묶어놓고 보니 해묵은 고민이 절반이다. 편협한 시야와 옹졸한 가슴이 작품을 오종종하게 만든 것 같아 속이 상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에게 미안하다. 너무 오랫동안 지붕도 담도 없는 벌판에서 떨게 했으니.
모양새야 어찌 됐든 여기 묶는 작품들은 내게 큰 스승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마지막 떠나보내는 길,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이고 싶다.
못난이들에게 흔쾌히 멋진 집을 지어주신 문학과지성사와 오생근 선생님
그리고 나와 인사를 나눈 수많은 당신들
고맙습니다.
해묵은 고민을 거름 삼아 아름드리 뿌리 깊은 나무가 되겠습니다.
말수가 줄어든 중학생 딸아이에게 여우 한 마리를 선물하고 싶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꼭 그만한 나이의 딸아이에게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는 진부하디 진부한 이야기를 물어다주고 싶었다. 가끔 아이를 힘들게 하는 어른들을 아주 조금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의 발로일 수도 있겠다.
혼자서 밤길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를 헤매고 다녔을까. 저만치 나를 향해 떼를 지어 몰려오는 무리가 있었으니. 이 시대의 수많은 아버지들이여. 이 시대의 수많은 아버지들이여. 누구든 어디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 다음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얼싸안고 볼을 비벼대든지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하든지 다정하게 사진 한 장 박든지 못 본 척 지나치든지.
아, 아버지구나.
그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