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 재연은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기에 늘 함께 있어줄 누군가를 바랍니다.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줄, 고독을 잊게 해줄 누군가를요. 그런 주인공에게 ‘친구를 빌려준다’는 서비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요즘 저는 혼자 참 잘 지냅니다. 기본적으로 OTT는 끼고 살고요, 책이나 만화도 빼놓지 않고 챙겨봅니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 싶으면 일부러 인터넷 강의를 수강한다든가 체력을 높이기 위해 조깅도 합니다. 이런 걸 가리켜 ‘혼자력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당신의 혼자력은 안녕하신지 궁금해집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잘 못 지내고 계신다고요? 그렇다면 제가 좋은 서비스를 소개해 드려야겠군요. 절친 대행이라는 서비스가 있는데…….
― 조영주
소설 속에서 주인공 소원은 내내 구원받기를 꿈꿉니다. 하지만 막연한 감정에 불과하기에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이세계를 더욱 혼란스럽게 방황합니다. 그렇게 소원은 삶과 싸우고, 타협하고, 포기하고, 좌절하면서도 결국 어떻게든 그저 살아내는 게 삶이란 너무나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요. 저는 그가 삶 속에서 느끼는 성찰이 소설을 쓰는 과정과 닮지 않았는가, 그래서 문학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결국 구원은 셀프다,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건 제 경험에서 온 깨달음이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멍하니 누워 있기만 하는 나날 속 저는 한 가지만 바랐습니다.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저 평범하게 지낼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그게 내 삶의 유일한 구원이다, 라고요.
이 순간, 진정한 구원을 바라는 당신이 이 소설을 통해 자신만의 구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게 제가 꿈꾸는 진정한 소원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