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와 인연을 두고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인터뷰하자고 생각했던 것이 지난 2013년쯤의 봄이었습니다. 강원도에서 발행하는 웹진에 ‘강원의 명인’이란 코너를 만들어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소개하여 조금이라도 응원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는데 중간 중간 끊기기도 했고 또 다른 분야의 분들도 소개를 하느라 지금처럼 서른여섯 분이 추려지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중 열여덟 분을 먼저 책으로 묶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맡길 때까지도 책의 제목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인터뷰 작가들 선정에 이렇다 할 기준이 있을 수 없어 인연 따라 연결된 정도였기 때문에 여기에 실린 화가들만이 책의 제목처럼 ‘강원의 화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책에 실리지 않은 더 많은 화가 분들의 고절한 예술정신과 삶에 존경을 표하며 양해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기에 양해를 더할 것은 여성 화가가 턱없이 적다는 것입니다.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초판에 여성 화가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아도 즐겁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몇 년 인터뷰를 진행하며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수록 더 자신을 밝고 낙관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성취를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밝고 엄숙한 힘의 곡절을 조금은 알았다고나 할까요. 하여 그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틈날 때마다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자신의 시간을 내어 사진을 찍어주신 사진가 이수환, 이주희, 백경미, 남대현 작가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심심 건조했던 사무실에서의 해방이라는 사적인 즐거움에 내심 마음이 가벼웠지만,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렇게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붓을 놓지 못하는 그네들의 삶에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시마(詩魔)에 사로잡히듯 어쩌면 그네들도 화마(畵魔)에 포박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생을 어쩌지 못하는 무병 같은 화업이 또한 그들의 삶과 세계를 어려우나마 버티게 해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등짐이 꼭 짐만이 아니라 길을 함께 가주는 반려의 힘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 척박한 땅에서 예술을 하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의 박수와 관심으로 그 길이 어찌 다 꽃밭이고 봄 길이 되겠습니까만 그저 허허한 마음이라도 담아 응원을 보냅니다. 이번 1권에 이어 빠른 시일 내 나머지 열여덟 분을 소개하는 2권도 나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루 복 많이 받으시고 내내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11월
춘천 봉의산 기슭, 수졸산방에서
강원도와 인연을 두고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인터뷰하자고 생각했던 것이 지난 2013년쯤의 봄이었습니다. 강원도에서 발행하는 웹진에 ‘강원의 명인’이란 코너를 만들어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소개하여 조금이라도 응원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는데 중간 중간 끊기기도 했고 또 다른 분야의 분들도 소개를 하느라 지금처럼 서른여섯 분이 추려지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중 열여덟 분을 먼저 책으로 묶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맡길 때까지도 책의 제목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인터뷰 작가들 선정에 이렇다 할 기준이 있을 수 없어 인연 따라 연결된 정도였기 때문에 여기에 실린 화가들만이 책의 제목처럼 ‘강원의 화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책에 실리지 않은 더 많은 화가 분들의 고절한 예술정신과 삶에 존경을 표하며 양해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기에 양해를 더할 것은 여성 화가가 턱없이 적다는 것입니다.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그 유명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초판에 여성 화가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아도 즐겁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몇 년 인터뷰를 진행하며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수록 더 자신을 밝고 낙관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성취를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밝고 엄숙한 힘의 곡절을 조금은 알았다고나 할까요. 하여 그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틈날 때마다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신 사진가 이수환, 백경미, 김남덕, 임동은 작가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는 심심 건조했던 사무실에서의 해방이라는 사적인 즐거움에 내심 마음이 가벼웠지만,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렇게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붓을 놓지 못하는 그네들의 삶에 조금은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시마(詩魔)에 사로잡히듯 어쩌면 그네들도 화마(畵魔)에 포박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생을 어쩌지 못하는 무병 같은 화업이 또한 그들의 삶과 세계를 어려우나마 버티게 해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등짐이 꼭 짐만이 아니라 길을 함께 가주는 반려의 힘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 척박한 땅에서 예술을 하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다만의 박수와 관심으로 그 길이 어찌 다 꽃밭이고 봄 길이 되겠습니까만 그저 허허한 마음이라도 담아 응원을 보냅니다. 두루 복 많이 받으시고 내내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허랑한 발길을 보아 준 아내와 두 아들에게도 사랑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8월
춘천 봉의산 기슭, 수졸산방에서
최삼경 올림
몇 년을 머릿속에서 되뇌다 정작 쓰기 시작해서는 생각보다는 즐겁게 쓴 글이었지만 처음 써본 장편이라 구성도 집중도 어려웠다. 영·정조 시절에 대한 시대상도 허투루 알고 있었고, 당시 양반들의 문화는 물론 도화서 화원들의 생활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필요하면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써야 했다. 무엇보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얄팍한 지식에 매여 사는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도시괴담처럼 떠도는 최북에 대한 여러 일화들을 접하며 이것들을 재구성해내는 일은 재미있었다. 혹여 잘못된 정보일지도 모르고 작품에 각색을 했을지도 몰라 불안하기도 했지만 조선조에 화가로 지내는 예인들과 하층민들의 삶은 꼭 그려내고 싶었다.
특히나 북이 자신의 눈을 찌르기까지 그를 떠밀었던 신분적, 예술적 절실함과 광기에 대한 한을 어찌 풀어가야 할지는 쓰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화두였다. 우리 문화의 중흥기로 알고 있던 영·정조 시대가 그 많은 사회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실은 엄혹한 정파 간의 정쟁이 고조된 시기였고, 이때 정권을 잡은 노론의 정치 이념에 따라 이후 조선말의 역사가 어찌 흘러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북에 관한 논문은 많지 않았으나 그가 젊은 시절 만주 쪽을 한 바퀴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보고 우리 민족의 시원이랄까, 우리의 국토를 넓혀보고 싶어서 저 샤먼의 태동이라는 바이칼 호수까지 나아갔다. 나름 최북이라는 예술가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예술적 고민을 잘 버무려 멋진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으나 다시 읽어봐도 욕심뿐이었던 것 같다. 혹여 이 소설에서 조금이라도 재미나 고민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면 순전히 그동안 나에게 애정 어린 눈길과 손길을 주신 분들의 공덕이다.
어쨌거나 처음 쓴 장편소설이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사랑하는 나의 가족, 또 주위의 지인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로 화인으로 뜻 모를 삶을 살다 간 최북과 화마(畵魔)에 붙잡혀 살다간 이 땅의 모든 예인들의 신산했던 삶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
2023년 봄날
춘천 봉의산 기슭, 수졸산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