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양효식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8년, 대한민국 서울

최근작
2020년 3월 <4월 테제>

4월 테제

이 책에는 레닌이 러시아 혁명 발발 초기인 1917년 4월 3일부터 4월 20일까지 쓴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중략) 2월 혁명이 터진 뒤 레닌이 망명지 스위스에서 러시아로 귀환하자마자 발표한 「4월 테제」와, 이 테제로 촉발된 볼셰비키 당 내 논쟁에 대응하면서 발표한 후속 글들은 러시아 혁명의 명운을 가른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이 중대한 시점에, 볼셰비키라는 그 프롤레타리아 당이 「4월 테제」를 통해서 제때 노선 전환과 강령·전술상의 재무장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10월 혁명이라는 행복한 성공적 결말은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략) 「4월 테제」와 「전술에 관한 편지」,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등은 10월 혁명으로의 길을 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획기적인 성취다.

마르크스

1914년 이전과 이후 레닌의 사유에는 분리와 단절이 존재한다고 한다. 1914년 이전의 레닌과 1917년 이후의 레닌이 다르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그 단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견해가 분분하지만, 차이와 단절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제국주의 세계대전과 그 전쟁의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한 기존 사회주의 운동의 파산과 인터내셔널의 붕괴라는 대재앙,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대재앙이 열어젖힌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새로운 전망 앞에서 기존의 한계와 관성을 돌파하는 분리와 단절이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1914~6년의 단절의 격통을 통과한 ‘새로운 레닌’,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1917년 4월 테제의 레닌, 10월 혁명의 레닌으로 표상되겠지만, 그것이 제시해준 영감과 그 의미는 무엇보다도 당시 세계 전체를 붕괴시킨 전쟁이라는 재앙을 배경으로 해서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레닌을 다시 읽고 레닌을 재장전해야 한다고 할 때, 이 1914년 8월 이후의 글들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레닌이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이라고 부른 볼셰비키 당 내 부하린, 퍄타코프 등의 그룹은 (중략) 제국주의=프롤레타리아 혁명 전야라는 이유로 제국주의 ‘시대’에 모든 것을 경제적 혁명(부르주아지에 대한 수탈/사적소유 철폐)으로 환원시킨다. 레닌은 이 경향이 “우리 대열 내부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희화화하고,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제국주의 ‘시대’ 개념을 희화화하고 있다며 경계한다. (중략) 이 책의 표제작인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는 이 내부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새로운 편향적 조류를 비판하기 위한 글로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에 대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중략) 1914년 8월 세계대전 발발 이후 레닌이 발전시켜나가는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략/전술은 이와 같이 노동계급운동 내부의 적들인 기회주의와의 투쟁뿐만 아니라 아군 대열 내부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좌’익 유아적 조류와의 투쟁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사회주의와 전쟁

레닌은 ‘내란’ 슬로건과 ‘혁명적 패전주의’ 전술을 제출한다. 전쟁을 끝장내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라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를 위해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와 ‘자국 정부의 패전’을 촉진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제국주의 전쟁에서 나타나는 모든 ‘조국 방위’를 거부하고 ‘자’국 정부의 패배와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를 위해 투쟁한다는, 철저한 제국주의 전쟁 타도 강령을 내세운 레닌은 처음에 사회주의 운동 내 극소수파로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 독일 당내 좌파로서 제국주의 전쟁을 일관되게 반대해온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 체트킨, 메링 등도 ‘내란’과 ‘패전’ 슬로건을 지지하지 않았고, 볼셰비키 내에서도 일부의 반대에 부딪혔을 정도다. (중략) 이렇게 처음에 극소수파였지만, 나중에 레닌이 말한 것처럼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가 말한 대로 되었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자는 우리의 주장은 1917년 10월 25일에 이르러 기정사실이 되었다.” - 옮긴이 후기에서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1914년 8월 세계 전쟁이 발발하자 교전국 각국에서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배외주의(쇼비니즘)가 기승을 부렸다. 이 열광적 기류의 압력을 받아 당시 제2인터내셔널 당들 내부의 다수파 기회주의 조류들도 기존의 ‘제국주의 전쟁 반대’ 결의를 폐기하고 사회배외주의와 ‘조국 방위’론으로 넘어갔다. (중략)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이 ‘배신’은 전쟁 못지않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 파괴되고 인터내셔널이 붕괴했다. 제도화된 각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조국 방위’를 내걸고 배외주의에 편승하여 노동자들을 전장으로 내몰아 서로를 향해 총을 쏘게 했다. 전쟁의 재앙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 배신의 재앙에 대해서도 동시에 싸워야 했다. 전쟁 반대 투쟁은 이제 사회주의 운동 내 기회주의와의 투쟁과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는 투쟁은 ‘사회’ 배외주의에 대한 투쟁과 결합되어야 했고, 나아가 ‘평화!’의 이름으로 국내의 계급휴전 및 노자협조를 설파하는 노동운동 내 평화주의에 대한 투쟁과도 뗄 수 없는 단일한 투쟁이 되어야 했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