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살만한 공간으로 고쳐가는 것과 삶의 현실을 넘어가는 정치적 정열의 분출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삶이 부과하는 기율이야말로 최소한으로든 최대한으로든 정치 질서의 핵심일 것이다. 생각과 행동의 모든 노력의 핵심은 이 근본을 확인하려는 데 있다. 오늘의 삶의 중심은 어떤 고정된 이념이나 기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그것 안에 있다. 또 거기에 이르는 것이 시대의 마음이고 생각이다.
외화내빈이라는 말이 있다. 발전해 가는 사회의 외적인 표현이 화려해져도 그 내적인 의미가 빈약하고 공허하다면, 그것으로 참으로 삶을 풍요하게 하는 문화가 번영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화는 밖으로 표현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튼튼한 것이어야 한다. - 발간사
그것(자유)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의 근본은 상황의 제약에 있다. 그것은 상황과의 투쟁에서만 실현된다. 그러나 그 의지는 상황에 의하여 침윤된 의지이다. 그러한 의지에 진정한 자유의 실현이 가능한 것일까? ... 자연이란 그 나름의 필연성 속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유는 상황과 상황에의 더욱 깊은 개입과 극복에서 근접되고 다시 근원적 필연성에의 순응에서 도달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모든 글들은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IMF라고 부르는 위기와 관련하여 또는 그것을 의식하면서 지난 1,2년 동안 쓴 것들이다. 이 글들은 이 사태에 대하여 또는 그것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그때그때 잡지사와 사회 단체들의 요청--그 나름대로 사태를 이해하고자 하는 일반적 요청에 답하여 쓴 것들이다.
이 번에 이 글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 글들이 대체로 IMF위기로 하여 돌연 깨닫게 된 큰 상황과 관련하여 우리 삶의 구체적 존립 근거로서 소사회의 문제들을 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중에서도 이 글들의 관심사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규범의 문제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