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조강석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9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

최근작
2023년 7월 <한국 현대문학의 쟁점과 전망>

아포리아의 별자리들

'형식주의자'에게 문학이 애도가 될 수 있을까? 형식 자체가 위안이라는 객쩍은 소리를 멀찍이 밀어놓고도 이 망외의 위안은 가능한 걸까? 그런 걸 묻고 싶었다.

창작의 비밀

“문학평론이란 남의 고기를 자기 불에 굽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고기 맛 감별을 잘하려면 고기를 많이 먹어보아야 하고 좋은 불을 가지고 있어야겠지요.”

틀뢴의 기둥

문학이 가상이라는 것은 하나의 입장이 아니라 일종의 토톨로지tautology다. 중요한 것은 저 가상의 영역의 기둥을 묵묵히 밀고 가는 것이다. 움직이는 변경이 문학의 역설적인 경계이기 때문이다. 현실 밖이 아니라 안에, 아래에, 기저에, 구조 속에 존재하되 가시적 영역의 질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비가시적 실재, 그것의 미래에 대한 시간착오적 향수가 문학이다. 그것은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의 거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충동’을 보유함으로써 세계를 기울인다. 오늘의 세계를 구성하는 바로 그 질료들로 저본(底本)이면서 동시에 이본(異本)인 세계를 내밀어놓는 것이 문학이다. 평론집 원고를 묶고 두세 번의 교정지가 오가는 동안, 이본을 축조하며 변경의 기둥을 옮겨가는 문학의 자취를 헤는 세 가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의 실효성, 이미지 사유, 모티폴로지motiphology가 이 운동을 요약하는 말들일 것이다. 본문에서 거듭 확인되는 이 푯말들의 의미를 새삼 여기서 다시 풀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공히 저 ‘유토피아적 충동’에 연루된 것임은 일러두고 싶다. 때로는 주머니 속에서 굴려보기도 하고 때로는 별자리(술자리?)에 던져보기도 하던 저 돌들이 결국 아직은 없는 세계의 지도를 마름하는 기둥들로 자라날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문학을 읽어왔다. 7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어 있다. 문학을 붙들고 있다는 말의 함의가 극적으로 몸을 뒤집는 동안 나는 전신하는 바로 그 몸 안에 살고 있었다. 언제나 아름다운 것에 이끌리는 머리, 구조를 지어주고 싶은 입맛, 감탄을 기다리는 눈, 그 모든 것과 더불어 분주한 손이 두루 여기에 관여되어 있을 터이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청년 빌헬름은 예술을 향수하는 이들을, 눈앞에 무언가 벌어지기만 해도 즐거워하는 사람, 가슴으로 예술을 느끼는 감상자, 작품의 깊은 의미를 파악하고 되새길 줄 아는 분석가로 구분한 바 있다. 감상자와 분석가의 비교 우위에 대한 오랜 논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비평의 위상이 사뭇 달라진 지금 평론집 서문을 쓰면서 이 대목이 문득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패러프레이즈와 어깨 겯기가 비평가의 소임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내부로부터 외부로의 전개develop from within’를 비평의 주요 업무라고 믿고 방법을 구하고자 노력한 경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과가 고스란히 공과가 된대도 조금 더 가보는 수밖에 없다. 문가에 오래 새겨진 키높이 눈금을 뒤로 하고 훈이와 진이는 이제 청년의 사업에 골몰하고 나는 여전히 ‘그분’의 응시 안에 기꺼이 있다. 2021년 벽두에 열을 재는 외솔관에서……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