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고통의 현장─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 같은 고문이 이 땅에서도 일상화된 시대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에서 납치되고 연행되어 가족과 친구조차 소재를 알 수 없는 어느 지하실에서 홀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러는 그 고통으로 그곳에서 시신이 되어 나오기도 했고, 더러는 나온 뒤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남은 생을 폐인으로 살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시대, 전두환의 '정의로운 사회' 시대, 노태우의 '보통사람들' 시대였다. 아니 그 이후 '문민정부' 또는 '국민의 정부' 때에도 그치지 않았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여전히 그곳은 절대 고립의 상태였고, 세상의 절망이 닻을 내린 곳이었다. 허울 좋은 캐치프레이즈가 외쳐질 때도 고문장에서 끝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에도 우리는 종로 네거리를 걷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전철을 타고,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그런 일이 없는 것처럼, 아니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니 지금도 우리는 잊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