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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초(梁啓超)광동성(廣東省) 신회현(新會縣) 남단의 섬에서 태어났다. 아편전쟁을 두 차례나 치른 심상하지 않은 시대였지만, 과거시험 공부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2세에 수재(秀才)가 되었고, 17세에는 거인(擧人)이 될 정도의 신동이었다. 그러나 18세에 강유위(康有爲, 1858~1927)의 학생이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강유위에게서 입헌군주제의 개혁안을 비롯해 공양학과 대동사상, 양명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배우고, 1898년 ‘무술신정’(戊戌新政)의 개혁의도와 방향을 담은 ?변법통의?(變法通議)를 연재하면서 계몽사상가로서 필명을 알리기 시작했다. 무술신정의 실패 후 일본에 망명하여 중화민국이 출범할 때까지 요코하마에서 활동했다. 일본에서 발행한 <청의보>, <신민총보> 등을 통해 그는 시대에 적응할 새로운 국가의 ‘국민’, 즉 ‘신민’을 제시했다. 중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글을 읽으며 격동의 시대에 휘청거리는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세계에 웅비하기를 꿈꿨다. 동시대의 한국 청년에게도 그는 같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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