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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양계초 (梁啓超)

출생:1873년

사망:1929년

최근작
2014년 9월 <신민설 新民說>

양계초(梁啓超)

광동성(廣東省) 신회현(新會縣) 남단의 섬에서 태어났다. 아편전쟁을 두 차례나 치른 심상하지 않은 시대였지만, 과거시험 공부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2세에 수재(秀才)가 되었고, 17세에는 거인(擧人)이 될 정도의 신동이었다. 그러나 18세에 강유위(康有爲, 1858~1927)의 학생이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강유위에게서 입헌군주제의 개혁안을 비롯해 공양학과 대동사상, 양명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배우고, 1898년 ‘무술신정’(戊戌新政)의 개혁의도와 방향을 담은 ?변법통의?(變法通議)를 연재하면서 계몽사상가로서 필명을 알리기 시작했다. 무술신정의 실패 후 일본에 망명하여 중화민국이 출범할 때까지 요코하마에서 활동했다. 일본에서 발행한 <청의보>, <신민총보> 등을 통해 그는 시대에 적응할 새로운 국가의 ‘국민’, 즉 ‘신민’을 제시했다. 중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글을 읽으며 격동의 시대에 휘청거리는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세계에 웅비하기를 꿈꿨다. 동시대의 한국 청년에게도 그는 같은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쉽게 그리고 자주 번복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온 힘을 다해 노력해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문제 상황에 장기적으로 놓여서, 반복적으로 밀려오는 절망감을 이겨 내고 새로운 활로 찾기를 계속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는 이론을 위한 이론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존립이었고, 중국인의 자주독립과 번영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헌신적이었으며, 한순간도 게으른 적이 없었다. 그리고 57세의 나이로 신장병으로 죽었다. 평생을 쉬지 않고 수십 인분의 정신을 쓰고 수십 인분의 글을 쓰며 신장을 혹사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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