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창간된 《폐허》의 동인으로 활약한 남궁벽은 당시 유행하던 퇴폐성 짙은 감상적인 시 대신에 자연과 생명의 시를 썼다. 글벗인 염상섭은 「풀」에 대해 “휴머니즘과 센티멘털리즘의 경향이 역연(歷然)함을 볼 수 있지만, 이것은 군의 전인격에 허식과 과장이 없는 것과 같이 가장 순진하고 솔직한 내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평했다.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스물일곱 살에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