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時)에 이르러 시(詩)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그대로 보이는 빈 마음에 투영된 사물에 잇닿은 마음이었다. 이러한 마음은 장자의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부린다’라는 말과도 상통할 수 있겠다. 부모님과 큰딸의 소천으로 삶에 구속되지 않음을 배웠으니 흐르는 물에 떠 있으면서도 젖지 않는 달처럼 빛을 옮기는 허공에 매임 없는 자유로움을 얻은 묵은 업장과도 상응한다. 시집 『돼지고물상 집 큰딸』은 내 삶의 언어적 가치, 이념과 판단, 재물과 명예, 심지어 살고 죽음에 있어 얽매이지 않는 채 존재의 실상에 대한 자각에 이르는 연속성을 얻은 회복된 마음과도 같다.
떠난 부모님과 큰딸 그리고 남은 남매와 이웃들을 위한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한 권 분량의 울혈을 토했으니 어찌 이로움과 해로움의 꼬투리를 따질 수 있겠는가? 내게 있어 시는 아직 실상을 단순하게 앎과 모름으로 구분할 수도 없는 것이며 보편적 진리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1.12. 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