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박사.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6.25 전쟁과 피난 생활, 산업화 민주화를 목격하며 70평생을 살아왔다. 현대노년사회포럼 대표 및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한양대 겸임교수, 미국 유타대학 사회과학대학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은퇴 후는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집념 속에 제주에 칩거하며 노년의 문제를 다루는 노년사회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성공적인 노화와 관련된 이론과 방법론을, 그리고 건강을 돌보는 걷기. 숲철학에 대한 글쓰기와 강의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걷기의 유혹》(2020), 《휴미락의 탄생: 쉬고(休), 먹고(味), 즐김(樂)의 인문학 수업』(2020), 《죽음의 인문학적 이해》(2018), 《인문학에 노년의 길을 묻다》(2015), 《북한 사회의 성과 권력》(2012), 《9988의 꿈과 자전거 원리》(2010), 《정보소비의 이해》(2009), 《정보경영론》(2008), 《북한사회구성론》(2000), 《분단시대의 민족주의》(1996) 등이 있다.
기타 블로그로 『네이버: 우정의 어모털 세상 읽기』를 통해 노년사회의 문제, 경험적인 걷기 철학, 숲과 야생의 위로를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길에서 길을 묻다
무엇이 나를 먼길로 이끌어가는 것일까? 늙음의 길에서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걷는가?”라는 촌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걷기 자체가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요 의식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익한 중독이다. 인간은 무언가에 중독되기 쉬운 동물이다. 걷는 것이 버릇이 되고 걷는 바보가 된다. 다른 사람들은 술이나 담배, 마약, 게임, 사랑에 중독되지만 나는 걷기중독에 빠진 듯하다. 몸이 지쳐서 만신창이가 되어도 정신만은 맑고 충만해지는 기분, 이것이 걷기의 중독이다. 걷기 마니아들이 그렇다. 문제는 중독은 뭔가 결핍돼 있다는 말과 상통하는데 걷기는 어딘가 채우는 계시가 되고 걷기 자체가 동기부여가 된다. 걷기만 자주 해도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고 늙음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걷기 위해 떠난다. 길 따라 이야기 따라 걷는다. 어디로 더 걸어서 머무를지 모르지만 도시 생활 속에 박제해 두었던 영혼을 깨워 낯설은 길, 숲속으로 들어간다. 많은 사람이 외로워서, 슬퍼서, 인생이 허무해서, 혹은 모험 삼아 몇 날 며칠을 걸어보면 답답한 마음에 희망이 새로운 힘도 솟아난다. 젊은이들은 사랑을 찾아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길을 떠난다. 특별히 60∼70대 세대는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걸으면서 혼자 걷고 묵언(默言) 자세로 걸으면 진실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내가 힘들게 걸어가서 만날 장소는 지친 내 영혼을 받아주는 세상일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달려갔던 것이다.
나는 은퇴 후 제주에 거처를 정한 후 제주 한라산, 올레길에서부터 주요 명산은 물론 동해 해파랑길(770km), 지리산 둘레길(274km), 강화 나들길(310km), 제주올레길(2회 완주, 800km)을 걷었다. 매일 아침 1∼2시간씩 습관적으로 걷는다. 그리고 걷기의 발견은 계속되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800km), 프랑스 파리 시내 산책, 시코쿠 순례길(300km)을 걷으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어느 해는 일 년에 2,000km 이상을 걸었다.
이렇게 노년기에 수백 킬로미터씩 걷는 것은 나에게 거대한 도전이었다. 더 늙기 전에 “떠나자. 야생의 숲으로”. 나는 목적지를 정해 놓고 걷는 동안 지름길이든 우횟길이든 부지런히 걷고 쉬고 하며 걸었다. 시속 8∼9km로 걷는 스피드 워킹이다. 도보 여행자에게는 어디를 가다가 쉬는 곳이 꽃자리다. 걷다가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허름한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은 방랑자의 즐거움이다. 늙었다고 멍청한 화석 인간처럼 살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집 밖의 세상은 넓고 아름다웠다. 먼 장거리 도보여행 걷기 자체를 위한 걷기 즐거움을 얻기 위한 걷기, 예방의학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걷기.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걷기였다.
지금은 바야흐로 걷기의 시대이다. 걷기의 르네상스다. 현대인들이 즐기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보헤미안일까. 방랑자라고 할까. 길에 나서면 많은 사람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못 이룬 최선, 뭔가 잘못 살아온 것 같은, 아니면 패배로 끝나는 내 삶을 짊어지고 먼길, 험한 길, 골목길을 걸어가는 것은 일종의 종교 행위와 같다.
먼길을 걷는 자의 여정은 영적인 싸움 과정이다. 그래서 걷기는 깨달음의 길이다. 나는 넓은 길을 찾기보다는 때 묻지 않은 원시적인 좁은 길, 골목길을 더 좋아한다. 이미 난 길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길, 그런 길 위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걷는 것은 인간다움이요 자기다움이다.
게다가 우리가 걸으면서 만나는 자연은 짜인 각본이 아니다. 삶의 과정은 자연과정이다. 태어나는 것, 늙는 것, 죽는 것, 모두가 자연의 논리다. 자연을 따라 걸으면 마음도 평안해진다. 정신 자본이 축적된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어서 걸어 봐. 저 들판 계곡 숲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 느끼며 걸어 봐. 당신의 하루가 아름다울 거야.” 하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걷는 자가 길의 주인이 된다. 걷기는 길 위에서 경험하는 삶의 현장이다. 걷기의 재미, 길거리에서도 맛볼 수 있는 미쉐린(Michelin) 음식을 즐길 때 살맛이 난다. 내가 걷는 이 길은 이름이 뭔지도 모르지만 우리 삶의 참된 의미를 간직한 역사이며 종교이며 정신이 아닐까. 산천은 우리의 사상이고 어머니의 자궁이다. 이런 곳을 따라가며 확인하고 느끼는 것이 걷기의 묘미다.
이 책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독자로 잡았다. 내가 그동안 걸었던 길을 기억하며 몸의 글로 옮겼다. 걷기의 인문학이라고 할까? 미련할 만큼 걷기에 미쳤다고 할까? 걸을 때 몸은 녹초가 되지만 마음은 분홍빛으로 빛나던 경험을 다시 꺼내서 옮겨 놓은 것이다. 걷기 전도사가 아닌 걷기 바보로서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몸과 정신을 위해서 자주 걸으라는 것이다. 걷는 것이 곧 건강이요 웰빙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00명 중 99명은 아파서 못 걷는 게 아니라 걷지 않아서 아프다. 그래서 우리는 늘 변해야 한다. 생각은 언젠가 변하겠지만 걷기가 꼭 힘든 것은 아니다. 힘든 길을 안고 걷기를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산 따라 물 따라 걸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국내의 동해 해파랑길을 비롯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 등 7개소를 걸은 경험 중에 몇 개 코스만을 선택해 일부만 소개한 것이다. 책 구성은 걷기의 유혹과 매력으로부터 걷기와 철학적 사유, 왜 걷는 인간인가를 살펴보고 이어 내가 힘들게 걸은 걷기의 명품 코스 7개를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현시대의 화두인 AI 시대에 걷기의 미래를 제시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70대 중반에 내가 왜 홀로 먼거리 도보여행을 떠났을까? 기쁘게 걸었을까, 아니면 지루하게 힘든 걷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걷기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여 “더 늙기 전에 꼭 걷고 싶은 길은 어딜까?” 하고 헤아려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