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와 시와 시옷 생각
과수원 집 아이는 계절마다 사과나무가 펼치는
풍경을 보며 자랐다. 여름날의 풋사과가
따가운 가을볕에 붉게 영그는 사과의 시간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가을이 깊어지면 온 식구는 사과 따는 일에 힘썼다.
사과가 산처럼 쌓이면 꼭지를 자르고 흠이 없는
것을 골라서 크기에 따라 나눴다.
그렇게 상자에 담긴 사과는 세상 밖으로 나갔다.
모자란 듯 익어 푸르뎅뎅하거나 새가 쪼아서
흠이 난 사과는 이웃과 나누고 식구들이 먹을
몫으로 남았다. 흠난 자리는 겨울이 깊어질수록
패이고 썩어 들면서 사과의 맛과 향이 꼭대기에
이르다가 어느 날 뭉텅 곯아 버렸다.
국어책에 실린 시와 사과를 좋아했던 아이도
사과 향을 품고서 세상으로 나갔다.
말이 없던 날이면 한 줄의 시를 썼고
닿을 수 없는 곳엔 문을 내어 길을 나섰다.
상처 난 것, 한자리에 머문 것들을 보듬었다.
식구들 몫으로 남은 사과가 시의 자리인 걸 알았다.
첫 동시집을 내어 기쁘다.
오랜 시간 나를 들여다보고, 곳곳에 있는
나만의 당신을 생각하며 접어 두었던 마음을 묶었다.
혼자 힘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과
많은 분들의 응원 덕분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눈에 머물러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