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여름도 지나갔고, 1984년 여름도 지나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갔다.... (34쪽, <여름의 마지막 숨결> 부분)
어느덧 2024년의 여름, 2023년 여름 출간된 김연수의 짧은 소설도 한 해를 났다.
2021년 10월 가파도 레지던시에 머물던 작가는 제주도 대정읍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눈을 감고 낭독의 흐름을 듣는 관객의 얼굴을 보며 작가는 "그들이 낮 동안 열심히 일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밤의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내게 하는 것. 나는 그들이 모여서 듣는 내 이야기도 그런 것이 됐으면 했다."(297쪽)고 생각하며 짧은 이야기를 짓고, 들려주고, 고쳐쓰는 방식으로 이 소설집에 실릴 이야기들을 모았다.
가파도의 청보리밭 빛깔처럼 넘실대는 문장을 감각하며 여름의 문에 서있다. 우리에겐 긴 여름밤이 있다. 소설이 다시 읽히고 다시 쓰여 이 자리에 놓인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다시 쓰일 수 있다.
여름을 만난 문장
34쪽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십대 초반의 나에게 괜찮다고, 그렇게 바뀌어가고 마음이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_「여름의 마지막 숨결」
57쪽
이제까지는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미래가 지금의 나를 만들 수 있도록._「첫여름」
88쪽
돌이켜보면 그때가 우리에겐 눈물겹도록 좋은 시절이었다._「우리들의 섀도잉」
105쪽
“이야기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젖지 않으면 됩니다. 이 슬픔과 울음은 제가 이야기 속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슬픔과 울음도 제게는 진실이고 제가 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도 진실입니다.”_「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
152쪽
세상을 받아들이는 연습.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마음을 쏟지 않는 연습. 그러나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였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태는 어떤 일이든 받아들였다.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_「위험한 재회」
166쪽
그녀는 지금도 양양행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 언니와 손을 맞잡았을 때, 미래가 달라졌다고 믿고 있다 했다._「관계성의 물」
197쪽
1972년 7월 16일, 다시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면서 동료와 함께 바다로 뛰어든 찬 선생처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검은 밤바다를 가로지르는 찬 선생의 몸이 하얗게 반짝였다._「다시 바람이 불어오기를」
다음 여름 책은 5월 30일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