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발달장애인, 치매 환자, 휠체어 이용자, 정신질환자, 사별자, 동물……
세상의 ‘1인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상한’ 관계나 ‘손해 보는’ 관계로만 보이는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을 위한 관계와 삶의 매뉴얼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고 싶어.” “애인이랑 결혼하고 싶은데, 그 사람이 장애가 있어.” “몇 달 전에 친구가 상을 당했는데, 아직도 힘들어 해.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 “집 근처 고양이들이 자꾸 신경 쓰여. 내가 책임지고 밥을 주고 싶어.” …… 만약 이런 종류의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대개 상대방의 표정은 굳고 분위기는 심각해질 것이다. 짐짓 미래에 대한 걱정을 표하는 말을 듣기도 하고, “뭘 그렇게까지 해? 너나 잘 챙겨” 하는 타박을 듣기도 할 것이다.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누군가와 가까워졌을 때, 사랑하는 이가 나의 돌봄이 필요할 때, 그와의 관계를 주변에 공표하고 미래를 계획하려고 때,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우울증이 있는 친구, 치매에 걸린 부모님, 장애가 있는 연인, 아픈 동물과 함께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고통이나 어려움이 내 삶으로 번져올 때, 우리는 그 변화에 대처하고 관계를 잘 유지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들에 가로막혀 갈팡질팡하기도 하고, 결국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느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비관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그 관계를 끊거나 거리를 두라는 조언을 듣거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몰라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아프거나, 슬퍼하거나, 불편을 겪는 이의 곁에서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는 방법, 소진되지 않되 잘 도울 수 있는 방법, 고립되지 않으며 확장되는 관계를 맺는 방법이 분명 있지 않을까?
떠나지도 고립되지도 않고, 약함을 미워하지도 않고 싶은
‘돌봄’을 넘어 구체적인 ‘관계 맺음’과 ‘연결’을 고민하는
각자도생 권하는 사회에서 혼자 살아남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발달장애인 동생과 탈시설해 함께 살아가는 장혜영, 인지가 저하된 아버지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조기현, 휠체어를 이용하는 척수장애인 남편과 10년째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백정연, 8년 넘게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는 박소영, 자살 사별자와 애도 상담 전문가로서 사별자를 상담하던 중 사별 당사자가 된 고선규, 정신질환자 당사자로서 정신질환자와 깊은 관계를 맺는 리단. 이 여섯 명의 저자들은 관계를 떠나지도 고립되지도 않고, 시혜와 동정을 구걸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취약함과 관계 맺는 법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것은 결국 약함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 정말로 서로의 ‘곁’이 되는 방법이기도 했다.
손해 보지 않고 각자도생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이들은 때로 빠른 ‘손절’이 미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떠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방적이거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또한 적극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음으로써 나의 삶과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포기라는 선택지를 거부한 여섯 명의 저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며 관계와 삶을 만들어나갔다. 사회에서 ‘이상한’ 존재로 여겨지는 존재의 곁에서, 세상이 규정한 ‘이상함’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혁명과도 같은 관계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며, 그들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를 돌보게 되기도 하고, 돌봄을 받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섣부른 온정주의와 미비한 국가 시스템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길을 잃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누군가의 곁에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 책은 언제든 누구든 될 수 있는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한 대비이자 현재 내 곁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한 구체적인 돌봄의 매뉴얼이며, 그 실질적인 관계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자세한 에세이다. 누군가의 곁에 있기를 선택하고, 그의 곁에서 자신의 기준과 상식과 삶을 바꿔나간 이야기들이며, 관계맺음으로써 자신의 세상이 확장되었던 경험담이기도 하다. 또한 이 이야기들은 이 사회가 더욱 연결되고 확장되어야 하는 데 대한 분명한 근거이다. 책 속에 담긴 장혜영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충분히 외로웠고 이제는 연결될 차례다”.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 인지가 저하된 아버지, 신체장애가 있는 배우자, 정신질환이 있는 애인, 사별자, 그리고 길고양이들. 이 책의 저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들의 곁에 선 이들이다. 취약한 이들을 돌보느라 현실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만 두고 미래로 떠나버릴 거라는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취약한 이들의 곁을 지키면서 동시에 길을 떠났다. 서로의 발목을 단단하게 묶고 함께 세상으로, 미래로 나아간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며 그렇게 내버려두어서도 안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곁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세상과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 눈물겹게 고단하고 눈부시게 찬란한 이 여정은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안내하는 지도가 될 것이다.
― 홍은전 (《그냥, 사람》 저자)
다양한 시민들이 여러 관계에서 돌봄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출간이 유의미하고 반갑다. 여섯 명의 저자가 각자의 삶에서 만들고 있는 돌봄의 세계는 우리 사회의 '지금 여기' 돌봄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하기 싫고 누군가 저비용으로 안전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돌봄’을 넘어 기꺼이 가족, 시민,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돌봄의 책임과 의무를 나누고 누리는 이들의 이야기다.
―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떠나지 않고 고립되지도 않는 삶을 위하여
사실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아주 개인적인 역사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삶이 내 삶으로 번져올 때, 그것에 대처하고 관계를 잘 유지하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삶 속에서 깨닫고 이 책의 기획을 떠올리게 되었거든요.
제게는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가 있습니다. 2022년 코로나19로 언니가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게 됐고, 집에 혼자 있는 언니를 누군가가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독립해서 먼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직접적인 돌봄은 엄마와 이모, 동생의 몫이 되었습니다. 저는 한 발 비껴 있는 제가 비겁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다른 가족이 언니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며 앞으로의 삶의 궤도를 수정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종종 그런 상황이 되면 언니를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저를 위해 하시는 말이겠지만, 그 말을 들으면 무서웠고 방향 모를 분노와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이 크게 달라지며 언니와의 관계를 잘 쌓는 데 실패했고,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방법도 잘 모르겠거니와, 고민을 나눌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누군가의 곁에 있는 일이 부단한 노력과 상상력을 요하는 일일 때,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정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취약하고 불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누군가와 삶을 함께하겠다는 선택은 너무도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결국 현실적으로 산재한 문제와 답이 없는 고민을 마주하는 데 지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나를 먼저 지켜야 한다며 떠밀리듯 관계를 끊는 선택지를 고르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쩐지 그런 말들에 무척이나 반박하고 싶었는데, 제 안에 그런 말들과 싸워 이겨낸 경험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장혜영, 조기현, 백정연, 박소영, 고선규, 리단 작가님께 누군가-발달장애인, 인지 저하 환자, 신체장애인, 사별자, 동물, 정신질환자-의 곁에서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는 방법, 함께 삶을 꾸리고 변수에 대처하는 방법, 그걸 위해 요구해야 하는 사회적 변화에 대한 글을 부탁드렸습니다.
“누군가의 곁에 있기를 선택한 이야기, 세상에서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관계를 맺고 또 조정하며 살아간 이야기, 그와 관계를 맺고 세상이 확장된 이야기를 해주세요.”
구구절절한 메일을 보내고, 미팅에서 만나 반가움에 펄쩍펄쩍 뛰고, 작가님들이 경험한 깊고 넓고 새롭고 사랑스러운 시도들을 들으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고통이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우정과 연대와 연결과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누군가의 곁에 있는 삶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 어떤 방법과 요령을 동원해야 하는지, 그간 어떠한 구체적인 사건과 굴곡이 있었는지, 개인의 의지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사회의 변화가 필요한지 저는 계속 계속 듣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원고들이 완성되었고, 그것은 제게 너무나도 소중한, 절실하고 절박했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누군가’의 곁에,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치열한 경험담이었습니다. 원고를 읽는 내내 소리 내어 웃기도 했고 눈물이 왈칵 나기도 했어요. 제가 늘 찾아왔던, 어둠 속에서 성냥을 그어 촛불을 켜듯 눈앞을 밝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냥 ‘손절’하면 안 돼?”
막막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상담할 때 흔히 들었던 대답입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그냥 손절’할 수 없는, 그래서는 안 되는 관계가 분명히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저는…… 용기를 얻고 싶은 것 같습니다. 다들 고개를 젓는 그와 함께 삶을 살아가도 된다고, 그건 이상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도 기꺼이 당신의 곁에 있겠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만들며 가지고 있는 희미한 생각 중 하나는, 누군가의 곁에 있으며 우리가 분명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적극적으로 관계 맺으며 우리의 삶과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심지어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경험들이 그저 다정하거나 운 좋은 개인의 경험으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사회와 연결되어 사회적 변화와 시스템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불씨가 되기를 마음 깊이 바랍니다.
동녘 김혜윤 편집자
서른 즈음 결심했다. 18년째 시설에 살고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과 ‘탈시설’해 함께 살아가기로.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 (장혜영_우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상처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느니 상처받지 않는 관계에 머물겠다고 다짐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삶은 더 외로워지기만 했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아는 좋은 삶은 곁에 있는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다. 타인의 외로움을 외면하기 좋게 만드는 세상에 고개를 가로젓는 삶이다. 우리는 충분히 외로웠고 이제는 연결될 차례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우리의 세상은 더 단단히 연결되고 촘촘히 확장되어야 한다. (장혜영_우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새로운 언어의 힘은 우리의 일상을 바꾼다. 시민적 언어로 지금 우리의 돌봄 관계를 돌아볼 때, 독박 돌봄이 아닌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의 돌봄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가족이기에, 불쌍하기에, 친밀하기에’가 아니라 ‘시민이기에’ 돌봐야 한다. (조기현_취약함과 다시 관계 맺는 삶)
요양원이라는 결말이 꼭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고 타인의 일상을 보존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게 만든다면 나쁘다. 우리가 인지 저하된 당사자와 조금 더 친숙해질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정상적’ 인지를 상정하고 누군가를 거기에 미달한 존재로 만들지 말자고, 조금 인지가 저하되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삶의 의지가 있고 그의 곁에서 취약함과 관계 맺는 방법을 찾을 의지가 있다면 된다고, 여전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고. 그날 나는 가능한 세계에 대해 말했다. 내가 겪었고, 누군가도 겪고 있을 돌봄의 세계에 대해서. (조기현_취약함과 다시 관계 맺는 삶)
가장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결혼식장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승일의 손님 중 휠체어 사용자가 많은 편이라 우리는 편의시설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로 했다. 보통 예식장은 대부분 짧은 시간 동안 일정에 맞춰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예식 후 또 다른 예식이 이어지며 붐비는 인파를 피하고 싶었다. 또한 예식장에서는 신랑 신부가 잘 보이도록 높은 단 위에서 예식을 진행하는데, 승일이 오르기 어렵다는 점도 걱정되었다. 휠체어 사용자가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다 결국 우리를 인연 맺게 한 장소, 각자의 회사가 속한 건물의 지하 강당을 빌려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백정연_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친구들에게 승일과의 연애를 밝혔던 그때, 나는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을 가졌었다. 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장애가 우리의 사랑이나 결혼생활에 결코 짐이 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오기.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 오기는 없다. 나와 승일의 결혼생활은 그냥 그 자체로 특별하면서도 평범하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오래 전 나의 연애 소식에 안색이 어두웠던 친구들까지도. (백정연_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한 번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동물에게 손 내밀어 본 사람은 알게 된다. 함께 만드는 관계에서는 인간이 주체이고 동물은 객체인 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사이에 놓인 것은 결코 일방향의 회로가 아니라는 것을.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 안에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존재와 엮이고 서로의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켜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세계에 의해 다시 영향을 받는다. (박소영_누군가의 온 세상이 되는 일)
그러니 우리는 미래를 당겨 살아야 한다. 미래를 지금―여기로 데려와 구현해야 한다. 나는 그 유일한 방법이 서로를 살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구할 수 있을 때 구하고, 돌볼 수 있을 때 한 존재라도 더 돌보는 것. 아마도 세계의 구원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사랑만이 우리의 자랑이니까. 서로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박소영_누군가의 온 세상이 되는 일)
현장에서 사별 당사자보다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내가 이렇게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위로를 해줬는데 당신은 왜 아직 그대로냐며, 그 정도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며 사별 당사자를 몰아붙이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선한 의도로 사별자 주변에 있지만 때로 사별자의 온전한 애도를 방해하기도 한다. 심리학자로서 애도 상담을 하기 전까지 나 역시 그랬다. 우리는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의 곁에 있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 (고선규_각자 몫의 눈물단지를 채울 수 있도록)
애도 상담에서 “비록 고인은 죽었지만,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끝나지 않았기에 그 관계는 변화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곁에 내담자들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은 각자의 상실과 애도의 이야기가 흘렀으면 좋겠다. 그래야 상실을 겪은 사람이 벌거벗은 약자가 되어 숨을 필요가 없다. 애도할 권리, 슬퍼할 자격을 논하지 말고 내 몫의 눈물단지를 충분히 채웠으면 좋겠다. (고선규_각자 몫의 눈물단지를 채울 수 있도록)
나는 정신질환자며, 일부러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한다. 정신질환이 있는 이들은 언제나 좋은 친구가 된다.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은 좋은 말상대가 된다. 사람들은 종종 정신질환자들 또한 세상의 여러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지탱하고 의존하며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을 놓치곤 한다. 그들은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 구성원이 되어 일한다는 사실을 잘 믿지 않는다. (리단_다시 만나도 정신질환자겠지만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관찰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받음으로써 그곳에 연약한 살이 있던 것을 확인한다. 누더기 같은 마음이지만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으며, 기워 입은 옷처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 관계에서 내가 정신질환이 있든 상대가 정신질환이 있든 우리의 미래를 꿈꾸고 우리의 가능성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다. 정신질환이 있는 것이,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충돌과 부딪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보다 낫다.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을 낙관하는 미래. 그 옆에는 언제나 정신질환이 있는 이들이 함께 할 것이다. (리단_다시 만나도 정신질환자겠지만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 장혜영
취약함과 다시 관계 맺는 삶 - 조기현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 백정연
누군가의 온 세상이 되는 일 - 박소영
각자 몫의 눈물단지를 채울 수 있도록 - 고선규
다시 만나도 정신질환자겠지만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 리단
고선규
임상심리학 박사. ‘자살’이라는 죽음 뒤에 남겨진 이가 갑작스럽게 떠나야만 하는 애도 원정에 함께 하는 세르파이자, 당신보다 먼저 굽이굽이 험한 고통의 시간을 건너가 지금은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가 있다고 희망의 증언을 해 주는 목격자. 하지만 나에게 닥친 아버지의 죽음 앞에 우왕좌왕했던, 스스로의 애도 과정에도 간절히 세르파가 필요했던 사별자. 애도하는 일에는 서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일에 더 애써보려고 한다.
리단
정신질환과 제반문화를 연구하는 작가. 병이라는 외국어를 언어로 풀어내며 공유한다. 중증의 정신질환 당사자로서 정신질환자들의 다양한 관계망을 조명하며 병의 이면에 가려진 생활과 삶의 중요성을 고민한다.
박소영
기자이자 위험에 처한 동물을 구호하는 활동가. ‘동물’과 ‘동물권’을 인생의 마지막 어휘로 삼았다. 동생과 함께 스무 곳 안팎의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한다.
백정연
정보 약자를 위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의 대표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척수장애를 가진 현 남편을 만났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은 행운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반해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 버렸다.
장혜영
어린 시절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져 서른이 될 때까지 그곳에 살던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에게 탈시설을 제안하고 지금까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 살 많은 언니. 혜정의 탈시설 이후 6개월의 시간을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과 동명의 책을 만들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정치에 뛰어들었고, 21대 국회에서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조기현
인지가 저하되는 아버지와 함께한다.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었고, 아버지가 6년여간 요양병원에서 지내다가 퇴원하며 함께 살아가며 ‘또 다른’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에서 환자와 보호자로, 환자와 보호자에서 시민과 시민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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