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흑인을 상대로 한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며 분출한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번져 나가고 18세 청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해 인종 차별과 그에 대한 저항이 절정에 이르렀던 2014년 10월 시인 클로디아 랭킨은 『시민: 미국의 서정시』를 출간했다. 운문과 산문, 시각 자료를 아우르는 혼종적인 형식을 취한 이 책은 그와 친구들이 겪은 인종 차별, 흑인을 상대로 한 과잉 진압과 증오 범죄를 매개로 인종 차별적 언어의 작동 방식과 언어 자체의 한계를 파헤쳤다. 『시민』은 당시의 분위기와 맞물려 출간 직후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며, 랭킨은 여전한 미국의 인종 차별을 증언하고 고발하는 가장 선명한 목소리 중 하나가 되었다.
허망하게도 이 모든 노력의 정치적 귀착점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많은 백인이 버락 오바마 이후 인종 분리가 종식되었다고 믿는 동시에 백악관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 대통령이 민족주의적 언사로 대중을 선동하고, 그에 자극된 폭력이 공간을 가리지 않고 난무하는 상황에서 랭킨은 더욱더 달랠 길 없는 절망과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그는 ‘백인 특권’을 주제로 백인들과 대화해 보기로 결심한다. 2020년에 발표한 『그냥 우리: 미국의 대화』는 그러한 대화 시도를, 이 시도들이 난파하는 과정을, 랭킨의 내면에서 들끓는 갖가지 질문과 감정을 기록한 책이다.
랭킨은 각종 (무)경계 공간과 사적 공간―공항, 비행기, 극장, 디너 파티,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 전화 통화―에서 낯설거나 가까운 백인(그리고 비백인)에게 말을 건다. 백인 특권을 부인하는 비행기 옆자리 백인 남성, 인종 차별이 화두에 오를 기미가 보이면 잽싸게 화제를 돌리는 파티 참석자, 금발로 염색하는 여성들, 가족의 안위를 우선시하며 일상의 차별에 도전하지 않는 친구, 몇십 년간 함께 활동하며 웃음과 눈물을 나눈 백인 남편과의 (상상 속) 대화를 통해 그는 인종적 편견이 여전히 빈틈없이 작용하고 있음을, 그리고 백인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한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관계를 뒤흔드는 변화를 기대하며 시작한 대화들은 이렇듯 번번이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는 흑인으로서 자신이 버림받은 처지라는 기분을 떨쳐 내는 데 끝내 실패하고 이 실패 탓에 곧잘 비관적인 기분에 빠지지만, 인쇄된 글의 형태로 그의 심정을 듣는 우리는 이상한 위안과 약간의 희망을 얻게 된다.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잠식한 망설임, 울분, 원망, 자기 의심과도 대면해야 하는 그가 자신의 ‘비백인 취약성’을 숨김없이 펼쳐 보이며, 이 정직함이 우리를 또 하나의 대화로 초대하기 때문이다.
1946년 한 프랑스 기자가 흑인 작가 리처드 라이트에게 미국의 ‘흑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라이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흑인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오직 백인 문제만 있습니다.” “백인들을 가르치는 건 우리 일이 아니다”라고 흑인들은 외쳐 왔습니다. 그러면 인종 차별 반대 활동과 인식 제고라는 과제를 백인에게 맡겨 두어야 하는 걸까요? 그런 방식이 공고한 인종 분리를 재생산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그리하여 클로디아 랭킨은 흑인 여성 입장에서 백인에게 말을 겁니다. 상황이 답답할 때 대화로 풀어 보려는 건 상식적인 타개책이기도 하니까요. 반대로 진실한 소통이 불가능할 것이 뻔한데 굳이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냥 우리』 초고를 읽어 본 랭킨의 친구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 책엔 전략이 전혀 없어.”
실제로 이 책의 대화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우연히 말을 튼 백인들은 뻔뻔스럽게 백인 특권을 부인합니다. 진보주의자로 분류될 법한 이들도 무심결에 흑인에 대한 편견을 드러냅니다. 어린이집 교사와 원장은 친구의 네 살배기 흑인 아이가 부린 응석을 ‘폭력적’이라고 일컫습니다. 선량한 친구들 역시 때론 인종 차별의 현실을 축소하곤 합니다. 몇십 년간 함께 인종 차별 반대 운동에 매진해 온 백인 남편마저 랭킨이 흑인으로서 느껴 온 고통과 외로움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는 못합니다. 예의 바른 침묵, 천진한 넋두리, 수동적인 공격이 난파한 대화의 조각이 되어 그와 함께 떠내려가며, 대화 사이사이에 경찰에게 목 졸리는 흑인,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각종 공간에서 (심지어는 자신이 예약한 호텔 방이나 자기 집에서조차) 쫓겨나는 흑인, 백인 경비원에게 내동댕이쳐지는 흑인 청소년, 공공 장소에서 백인에게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며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당하는 흑인, 강제 수용소나 다름없는 구금 시설에 갇힌 미성년자 난민, 백인 우월주의를 공공연히 지지하며 흑인을 살해하기까지 하는 백인의 이야기와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랭킨을 괴롭힙니다.
그렇다면 대화로는 인종 차별이라는 장벽을 허물 수 없다는 것이 『그냥 우리』의 메시지일까요? 어느 정도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랭킨은 그러면서도 작은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그 희망은 또 다른 우리인 독자들을 향합니다. 그는 대화 중에, 그리고 대화가 끝난 후에도 백인에 대한 분노, 미세한 차원에서 작용하는 차별과 편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 타인의 선의를 꼬아서 받아들이는 자신의 옹졸함, 내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 의심에 맞서 싸워야만 합니다. 질식할 것만 같은 그의 내면에서 자기 대화와 성찰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그런 랭킨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그가 말하는 ‘면밀한 독해’를 실천하는 법을 서서히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냥 우리』는 그가 독자에게 보내는 초대장, 내 대화 시도는 실패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드러낸 심경을 읽고 헤아린 당신들이 각자 또 다른 대화를 시도하길 바란다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랭킨은 “대화는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을 흐트러뜨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냥 우리』 읽기는 그 위험을 무릅쓰려는 욕망을 서서히 키워 나가는 과정일 겁니다.
『그냥 우리』는 클로디아 랭킨이 인종, 차이, 정치, 미국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저작이다. 겸손과 유머, 비평과 공감을 겸비한 이 책에서 랭킨은 긴요한 질문들을 던지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대화를 개시한다.
― 비엣 타인 응우옌
클로디아 랭킨의 눈부시고 다층적인 이 책은 백인성을 주제로 공개적인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하나의 요청, 촉구, 집요하고 마땅히 갈급할 수밖에 없는 요구다. 수치를 모르고 횡행하는 인종 차별이 국가의 기조로 활개 치는 이 순간, 『그냥 우리』는 평범한 삶이 인종의 역사에 침윤된 상황에서 우리가 사고하고 느껴야 하는 방식을 제시하며, 집념, 비판적 끈기, 잠재적인 긍정을 향한 보기 드문 정직함으로 대화들 사이를 오간다. 체계적인 폭력과 상처가 이어져 온 역사를 뚫고 그가 운문과 산문으로 명민한 사고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지독히도 고집불통인 사람만이 이 담대하고 필수적인 초대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 주디스 버틀러
직업 특성상 나는 선의로 뭉친 백인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인종 차별을 인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끝없이 받는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돌려줄 수도 있겠다. “어째서 우리는 그동안 인종 차별을 보지 못했을까요?” 정보는 지천에 널려 있고, 귀를 기울인다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시적이면서도 추상성에 머물지 않는 계몽적인 증언이 하나 더 있다. 클로디아 랭킨은 명료하고 우아한 글쓰기로 백인이 일삼는 부인에 강펀치를 날린다. 『그냥 우리』는 탁월한 책, 대담하고 계시적이며 강력한 책이다.
― 로빈 디앤젤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회사 내 다양성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며 운을 뗐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더니 그 말을 한 번 더 반복한 다음—“아직 갈 길이 멀어요”—“전 피부색은 보지도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이는 선의를 품은 백인들이 할 수 있는 말, 흑인 꼬마들과 백인 꼬마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각자의 성격”으로 평가받는 시대를 단숨에 소환할 수 있는 특권과 맹목적 욕망을 가진 백인들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전 피부색은 보지도 않아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머릿속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겼다. 피부색을 보지도 않는데 어떻게 다양성을 다룬다는 거지?
― (무)경계 공간 i
자기 자신이 백인 남성 우위 패턴과 무관하다고 여길 수 있는 능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특권이다. 어쩌면 그게 안도감을 주는지도 모른다. 백인의 안도감. 왕국에서, 권력에서, 영광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 (무)경계 공간 i
고집스럽고 확실한 무관심이 수 세기에 걸쳐 존속해 왔음에도 친구들이 그걸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나는 바보같이 상처를 받는다. 어쩌면 그게 내가 가진 비백인 취약성일지도 모른다.
― 티키 횃불
사라 아메드는 「성 차별주의: 이름이 있는 문제」에 이렇게 쓴다. “문제에 이름을 붙이면 나 자신이 그 문제가 된다.” 사실을 지목함으로써 불쾌감을 조성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로 간주된다. 다들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니까요, 라고 나를 포함한 모두를 향해 소리치고 싶다.
― 사회 계약
우리의 진실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진실 속에, 그 진실의 모든 현실과 모든 걸림돌과 모든 실수 속에 존재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우정은 와해하는 일 없이도 친밀한 관계의 안락함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 빅 리틀 라이즈
내가 아는 사실은 우리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가 아닌 다른 미래를 향한 어설픈 욕망이 나로 하여금 어떤 테이블에든 앉아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귀 기울여 듣고, 반응하고, 타인의 대답을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다.
― (무)경계 공간 iii
만약에
(무)경계 공간 i
진화
레모네이드
양팔을 벌린
딸
백인주에 관한 비망록
티키 횃불
백인 남성 특권에 관한 연구
키가 큰
사회 계약
폭력적인
소리와 분노
빅 리틀 라이즈
윤리적 외로움
(무)경계 공간 ii
호세 마르티
남자들이 원래 다 그렇잖아요
공모하는 자유들
미백
(무)경계 공간 iii
옮긴이 후기
1) 23,400원 펀딩
- <그냥 우리> 1부
- 클로디아 랭킨의 전작 <시민 : 미국의 서정시> 발췌문으로 제작한 편지
- <그냥 우리>에 수록된 그림을 인쇄한 엽서
- 초판 1쇄 후원자 명단 인쇄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