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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자유를 위해 무수한 혁명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저격수 후안 벨몬테.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변의 집에서 옛 동지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어떤 이상을 바랐던가. 독재 이후, 새로운 세계에서 “도덕이나 윤리 따윈 베를린 장벽과 함께 무너져 버렸”고, 지식인과 예술가가 모이던 주점 테이블에는 더이상 "사르트르나 프란츠 파농의 책"이 없다. “삶의 이유가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돈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환멸에 빠지는 것조차 그에겐 사치였을까. '러시아 비밀 정보기관'이라는 과거의 그림자 하나가 벨몬테의 집을 불시에 찾아와 그가 거절할 수 없는 요구를 한다. 단지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위해 벨몬테는 다시 한번 총을 쥐게 되고, 트로츠키 시절의 러시아와 피노체트 독재 치하의 칠레, 나치 독일에서부터 현재의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묻힐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들이 다시 드리워온다.
벨몬테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분신과도 같다. 조국 칠레의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다 망명을 떠난 후 올해 4월 스페인 땅에서 서거한 세풀베다가 남긴 마지막 소설. 그 이름은 <역사의 끝까지>다. 소설 속에서 바다를, 먼 수평선을 보며 잃어버린 자신의 무언가를 찾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마지막까지 작가는 무너진 세계의 조각들을 회상하고 있었을까. 현대사의 아픔을 직시하는 일과 평생 이어온 환경 운동은 그의 문학 세계의 중심이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한 투쟁과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대한 존중을, 자연의 경이로움을 노래해온 이 시대의 거장에 애도와 경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