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영의 책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역시 분노일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가 밝히기도 했지만, 직접 말하지 않는다 해도 그의 글에서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모를 순 없다. 나는 이라영의 글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온도를 좋아한다. 그의 분노는 너무 투박하지도 과하게 정제되지도 않은 상태다. 독자에게 옮겨붙기에 적정 상태의 이 분노는 현실의 모순과 권력의 오만을 날렵하게 찌른다.
이라영의 분노에 곧잘 공명하는 독자라면 이번 책에서 역시 기대한 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의 시작은 이 문장들이 품고 있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여성의 이야기를 모른 채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젤다의 글은 한 편도 안 읽고 젤다에 대한 이야기만 가십처럼 소비한다. 아니, 아니야. 젤다의 시각에선 다른 이야기가 있어." 그는 미국의 여러 여성 작가들과 작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약하거나 강한 연결고리로 엮인 세상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시공간을 오가는 그의 분노가 오독되거나 소비되어 온 미국의 여성 작가들과 현재 한국의 약자들 사이에 공통점의 다리를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