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지 않게 지켜내려는 마음"
화성 인근의 스페이스 콜로니 사비.(백제의 도읍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옹진, 사비의 그 '사비'이다.) 이초록은 친구 김구름이 한 말을 듣고 그의 꿈을 훔쳐 '관직을 사서' 사비로 떠났다. 화성의 밤하늘을 조선시대 방식으로 계산해 미래를 점치는 고모는 사비에 온 이초록에게 "암, 첫 직장은 사서 다니는 게 좋지."(22쪽)하며 그를 응원한다. 응원의 속내는 따로 있었는데, 공무원이 된 이초록이 알게될 공적인 정보를 이용해 역법인 양 약간의 노하우를 발휘해 의뢰인의 삶을 해석하는 것이 그의 사업비밀이었던 것이다. 모든 게 예상과는 다른, 낡고 비싸고 부도덕한 행성 사비에서 보내던 이초록의 평화로운 날들이 돌연 위기에 처한다. 사비에 킬러가 있으며, 그의 표적이 '사비의 일인자로 추대될 사람'이라는 것. 이제 이초록의 삶은 우주활극이 된다.
우주의 도시 사비에서 서예를 가르치는 삶을 꿈꾸는 김구름과 사비의 전향력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영점조준에 성공하는 스나이퍼 한먼지는 탁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탁월함이 부서지지 않게 지키려는 마음을 지닌 이초록이 있다. 관직을 사서 사비에 갈 정도로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던 그도 의지를 가지면 타인에 대한 애정이라는 탁월함을 얻을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귀한 마음 한 조각, 바로 그 작은 씨앗에 대해 배명훈이 SF를 썼다. 영화처럼 눈에 그려지는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한 '언톨드 오리지널스'가 배명훈의 소설과 함께 출항한다.
- 소설 MD 김효선 (2022.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