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을 진지하고도 적극적으로 다루는 책의 등장이 반갑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지른 예술가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오래 묵은 주제이자 예술가의 일탈적 행위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재점화되는 논쟁이다. 매번 되풀이된다는 말은 이 논쟁의 핵심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층위에서 섬세하게 짚어봐야 할 질문들이, 거대하게 밀려오는 대중의 성난 반응 속에서 뭉뚱그려진 채 성급한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이에 대한 찝찝함이 남았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소상히 생각해 볼 지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계속되는 지지냐, 완전한 사랑의 철회냐'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 눌어붙어 있던 여러 주제들을 한 겹 한 겹 떼어내어 각기 다른 층위의 질문을 던진다. 책은 우선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살핀다. 창작자로서의 작가, 인간으로서의 작가, 작품의 윤리관, 작가의 윤리관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서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분석의 틀을 제공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논쟁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다. 책에는 그간 논쟁되어온 수많은 작가의 사례들이 등장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분석의 틀을 바탕으로 사례들을 해석하다 보면 책이 다루지 않은 한국의 사례들에까지 자연스러운 확장이 가능하다.
사회학과 철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는지라 그리 쉽게 읽히진 않지만 이 문제에 관심 있던 이들은 줄그으며 읽을 수 있을 책이다. 대중의 도덕관은 점점 더 뚜렷해져 가고, 우리의 희망 사항과는 별개로 앞으로도 예술가의 윤리 이슈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 책의 효용이 쭉 이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강간과 성폭행으로 남녀 창작자들이 비난받을 때, 일반적으로 이러한 비난을 창작의 자유에 대립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창작의 자유는 이데올로기 강요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창작의 자유가 타인을 해할 자유로 정의된 적은 단연코 없다.
인적이 드문 제방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알몸으로 발견된 중년 남성의 시체는 손이 묶인 상태였다. 하치오지 남서 소속 ‘경시청 최고의 수컷고릴라’ 구라오카 경부보는 본청 수사1과의 젊은 형사이자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바와 한 조가 되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시신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지 못해 고민에 빠진다. 그러던 중 시바가 부검의가 작성한 소견서에 의문을 품는다. 옷이 벗겨진 여성 시체는 우선 강간을 의심하면서 왜 남성 시체는 강간 여부를 의심하지 않는가. 이에 다시 살핀 시체의 항문에서 쪽지가 발견되고 거기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눈에는 눈.” 뜻밖의 단서를 쫓아 사건을 조사하던 구라오카와 시바는 피해자의 아들이 3년 전 집단 강간 사건의 가해자임을 알게 된다. 동태복수, 혹은 동해보복.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한다는 오래된 관념. 왜곡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과 피해자 가족의 원념이 교차하는 가운데 마지막에 밝혀지는 의외의 범인은 누구인가?
야마모토 슈고로상과 나오키상 수상 작가, 사회적 상식을 뒤흔드는 문제작들을 발표해 온 덴도 아라타가 25년 동안 구상해 온 서스펜스 소설.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병리 현상인 ‘아동 학대’와 ‘가족 붕괴’에 주목하여 “가정에는 폭력이 없을 것이라는, 가정은 휴식처라는 이데올로기”에 충격을 주었던 문제작 <영원의 아이>를 집필하던 당시, 작가는 사람을 학대하는 행위의 배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성차별과 이를 둘러싼 암묵적 양해의 분위기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이후 꾸준히 젠더에 관한 책을 읽고 공부하며 젠더 폭력의 뿌리를 탐구해 갔다. 작품 속 마초적인 구라오카가 성범죄를 경시하는 풍조를 직시하며 일갈하는 장면에서, 작가 자신도 큰 발견을 함과 동시에 깊이 납득했다고 한다. 소설은 당대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당연하게도 남의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소설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이것은 부장님만이 아니고 정치가만도 아니고 이 나라의 바탕에 있는 우리의…….”
구라오카는 제 가슴을 쳤다. “우리의, 죄입니다.”
2024년 6월 출간작 <귀명사 골목의 여름>은, 소년 가즈와 신비한 소녀 아카리의 기묘한 이야기를 담은 동화로, 일본 아동문학계 거장 가시와바 사치코의 판타지 작품이다. 작가의 첫 작품인 <안개 너머 신기한 마을>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바탕이 된 작품으로 회자되었고, 1975년 초판 발행 이후 50여 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국내 번역서는 2003년 처음 소개되었는데, 오랫동안 절판되었다가 드디어 복간본으로 나온 것이다.
아빠의 권유로 여름방학 동안 '안개 골짜기 마을'에서 지내게 된 주인공 리나. 아빠가 준 피에로 우산의 안내를 받고 무사히 마을에 당도해, 피코토 할머니의 저택에 머무르게 된다. 스스로 일해서 번 돈으로 하숙비를 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마을 내 책방, 도자기 가게, 장난감 가게에서 차례로 일한다. 별난 마을 사람들, 입이 험한 앵무새 등과 만나며 신비한 일들을 체험하는데…
작가의 뛰어난 필력이 돋보이는 이 책은 읽는 내내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동화 속 세계가 눈앞에 그려진다. 연령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판타지 동화로, 한 번 잡으면 놓기 힘들 만큼 흡입력이 강하다. 2003년 초판 번역서를 소장하고 있는 독자라면, 새로운 번역과 일러스트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다른 결의 <귀명사 골목의 여름>은 가시와바 사치코 작가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함께 추천하고 싶다.
- 어린이 MD 송진경
믿고 읽는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작가. <홍학의 자리> 등의 작품으로 독자의 지지를 얻은 정해연의 소설집. 읽는 쾌감을 극대화하는 세 편의 이야기는 가족이라는 환상을 비틀어보는 데에서 시작된다.
<반려, 너> : 반려견 호두가 이웃의 발목을 문 순간, 한 청년은 운명의 상대를 발견한다. <준구> : 딸을 납치한 유괴범의 전화를 받고, 준구는 1호선의 어둠을 향해 달려간다. <살> : 딸이 아픈 것만 빼면 우리 집엔 우환이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그 집에 아픈 사람 있죠?” 말을 걸어오기 전까지.
작게 두드리다 크게 쏟는 이야기의 리듬감이 정해연의 작품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고, 의심하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간 독자를 기분 좋게 배반한다. 운명의 상대의 반려가 되어 정상가족을 이루겠다는 환상,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장이라면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의무감,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완벽한 가정을 나의 노력으로 일궈냈다는 오만. 스릴러 소설은 이 틈을 파고들어 작은 경고를 던진다. 읽고 난 후 등이 서늘해지는 시원시원한 소설이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첫 문장
잘 잤어?
내 아침 인사는 늘 그렇게 시작해.
이 책의 한 문장
저런 식의 현혹에 넘어가서야 이 임선경이 아니다. 선경은 종교나 민간요법 같은 것들에 의지하는 나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나태한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데 들락거리다가는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퍼질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