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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025
  • 첫 여름, 완주
    김금희 (지은이) | 무제 | 2025년 5월 "처마를 두들기는 여름비의 방문처럼"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김금희의 여름 이야기로 출판사 무제의 '듣는 소설'이 시작된다. 무제를 운영하는 배우 박정민은 '눈이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책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 출판사 무제 투비노트 : https://tobe.aladin.co.kr/n/399084 )으로 이러한 형식을 생각해냈다고 기획의 변을 밝힌다. 소설이 먼저, 낭독이 나중인 일반적인 오디오북과는 다른 순서로 만들어진 이 책은 소리가 먼저, 문자는 그 다음이다. 희곡으로 읽어도 좋을 이야기는 입말을 살린 대사와 감각을 제안하는 지문으로 소리를 넘나든다. 주인공 손열매를 연기한 고민시 배우 등이 오디오북에 목소리를 얹고, 평론가 신형철, 가수 아이유가 추천을 더했다.

    비디오 가게에서 <마스크> 짐 캐리의 성대모사를 하던 어린이였던 성우 손열매는 고수미가 사라진 후 살던 집 보증금과 우정을 잃은 후 목소리를 내는 법, 화를 참는 법을 잃어버린 채 완주로 간다. 돈을 갖고 사라진 고수미의 집에서 기거하며 수미 엄마의 매점을 대신 돌보며 여름 한 철을 난다. 외계인 같은 청년 '어저귀', 숙취해소에 대해 수상할 정도로 잘 아는 옆집 중학생 '한양미'와 그의 친구 파드마와 율리야, 99년의 수해로 용운을 잃은채 멈춰 있는 용운 엄마, 완주로 칩거한 배우 정애라 등과 물처럼 섞여 완주에서 흘러간다.

    눈 외의 감각으로 느껴보고 싶은 소설이다. 고수미가 '비가 처마에서 떨어질 때, 우드드우드드 우산을 뜯듯이 빗방울이 쏟아질 때,'(29쪽) 서울도 완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장면을 상상하면 새벽 잠을 깨우는 빗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손열매는 완주의 여름을 나무의 물기로, 연못의 물결 소리로, 버섯이 피는 소리로, 두릅의 향으로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여름은 회복의 첫 여름. '그럼 서로 마주보고만 있으면 되겠네. 그러라고 여름이 있는 거네.'(176쪽)라는 어저귀의 대사처럼 여름의 쓸모를 생각해본다. 2021년 광화문글판을 장식한 김경인의 시 <여름의 할 일>의 부분처럼 우리의 '올여름의 할 일은 / 모르는 사람의 / 그늘을 읽는 일'. 눈을 감으면 다채로운 여름이 열린다.

  • 가장 아름다운 조약돌
    질 바움 (지은이),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정혜경 (옮긴이) | 사계절 | 2025년 4월 "권태를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

    호수도 강도 골짜기 개울도 없는 지역. 물은 흐르지 않고 깊은 구덩이에 고여 있거나 진흙에 엉겨 있거나 진창 속에만 존재한다. 이곳은 오직 늪과 못뿐이다. 물 때문에 모든 것이 매일 부식되어 수리해야 한다. 공들여 쌓아 올린 일상의 안정성이 매일 무너짐에도 지역 사람들은 묵묵히 지낸다. 잉어처럼 사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침묵으로 잠식된 마을에 돌연 나타난 남자는 물수제비뜨는 일에 열과 성의를 다한다. 이 지역에서는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움직임이다. 아이들은 가장 아름다운 조약돌을 찾아 남자에게 건넨다. 그는 힘껏 조약돌을 수평선 위로 내던진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어린이책 작가인 질 바움과 일러스트레이터 요안나 콘세이요의 첫 공동 작품. 권태는 지독한 그림자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부식시키지만 작은 돌 하나로도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아무 말 할 수 없을 만큼 압도되는 생활이더라도 "계곡의 급류처럼, 흐르는 강처럼 거침없이 돌진"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때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조약돌을 주머니에 꼭 넣고 다니도록 하자.

  • 과자 사면 과학 드립니다
    정윤선 (지은이), 시미씨 (그림) | 풀빛 | 2025년 4월 "편의점 음식에 숨어 있는 흥미진진한 과학 이야기"

    편의점 먹거리와, 한정판, 1+1, 2+1 이벤트의 유혹 앞에서 발길을 멈추기란 쉽지 않다. 꼭 필요한 게 없더라도 한 집 건너 하나쯤 있는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어느새 무언가 하나 손에 들고나오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과자 사면 과학 드립니다>는 감자칩, 라면, 제로 슈거 콜라, 탕후루, 삼각김밥 등 우리를 매일같이 유혹하는 편의점 먹거리에 숨어 있는 흥미진진한 과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자 봉지에 왜 질소를 주입할까? 멸균 우유는 정말 냉장고에 안 넣어도 될까? 제로 슈거 콜라는 설탕이 0인데 왜 달콤할까? 탕후루 시럽은 왜 저으면 안 될까? 소시지는 왜 세로로 터지고, 옥수수수염은 몇 개이며, 라면은 왜 꼬불꼬불할까? 이 책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온 편의점 먹거리에 담긴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단순한 먹거리가 지식으로 연결되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에, 유익한 과학 지식까지.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만드는 기특한 책이다.

  • 연매장
    팡팡 (지은이), 문현선 (옮긴이) | 문학동네 | 2025년 4월 "'중국의 살아있는 양심' 팡팡 장편소설"

    딩쯔타오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채 강물에 떠내려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발견됐다. 온몸에 상처투성이였던 그녀는 마침 인근 마을에 진료를 나와 있던 군의관 우자밍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았다. 발견된 지 보름이 지나서야 의식을 회복했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가로막혀 과거를 떠올릴 수 없었다. 이 인연으로 두 사람은 결혼해 아들 칭린을 낳고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이어갔다. 우자밍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칭린은 성실히 공부하고 노력해 몸담고 있던 회사 지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어머니를 편히 모시려 대저택으로 이사했고, 이제 행복만 남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때, 딩쯔타오의 눈앞에 잊고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귀곡자하산도’, 모란이 그려진 공단 이불, 사조의 한시, 그리고 총개머리로 맞은 듯한 등의 통증. 딩쯔타오의 의식은 이내 깊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듯 가라앉았다. 심연 속, 그는 18층 계단을 발견한다. 한 계단씩 오를수록 망각했던 과거가 서서히 그를 덮쳐왔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봉쇄된 우한의 참상과 생존기를 담은 <우한일기> 출간 이래 중국 정부에서 금서 작가로 지명 당한 팡팡의 장편 소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연매장’은 죽은 뒤 관 없이 곧장 흙에 묻히는 매장의 형태를 일컫는 말로, 원한을 품어 환생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선택한 방식이었다고 전해진다. 쓰촨에서 토지개혁 때 도망친 친구의 어머니를 통해 연매장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팡팡은 토지개혁으로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이 고통을 잊기 위해 선택한 침묵과 망각을 그것에 겹쳐 보았다. 소설은 비판 의식과 문학성을 훌륭하게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7년 루야오문학상을 수상했지만, 1950년대 토지개혁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수상 직후 중국 정부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후 독자들의 요청으로 대만에서 다시 출간되었으며, 이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처절하지만,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이야기.

5.92025
  • 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유시민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유시민의 젊은 날을 흔들었던 책들"

    무엇이 유시민을 지금의 유시민으로 만들었을까. 이 책은 젊은 날의 유시민을 뒤흔들었던 책들의 목록을 소개한다.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역사란 무엇인가>등 기존의 책들에 더해 이번 특별증보판에는 <자유론>에 대한 원고가 추가로 실렸다. 이전 판을 읽었던 이들에게도 새로이 도착한 선물이고, 아직 읽지 않은 이들에겐 더욱 풍성하고 완전해진 제안이다.

    15권의 책을 읽고 생각한 것들을 써낸 <청춘의 독서>에 대해 유시민은 "제 생각과 감정을 제일 많이 표현한 책"이라 이제까지 쓴 중 "제일 애착이 가는 책"이라 말한다. 저자가 아끼는 책은 독자도 알아본다. 특별증보판이 출간되자마자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그가 "내가 젊었을 때 들고 다녔던 지도를 다시 그린 것"이라 부르는 이 책은 혼란한 2025년, 많은 독자들에게 다시 오래된 지도가 되고 있다.

  • 40세 정신과 영수증
    정신 (지은이),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4월 "기억과 기록을 통해 발견한 삶의 진정한 의미"

    2004년 첫 출간된 <정신과 영수증>은 제목에서 풍기는 첫인상처럼 묘하게 매력적인 책이었다. 지금과 같이 다양한 프로모션 방법이 없던 당시에도 입소문을 타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사실 알고 보니 정신과에 간 기록은 아니고) 작가 ‘정신’과 그가 차곡차곡 모은 영수증과 일상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책이었다. 20대였던 정신은 질풍노도의 30대를 지나 이제 40대에 들어섰고 여전히 영수증을 모으며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며 매일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20대 작가의 이야기는 <24세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책으로 개정이 되었고, 지금의 작가가 경험하고 기어이 찾아낸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은 <40세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신간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이 책은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궤적을 정리한 일종의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20여 년간 모아온 2만 5천 장의 영수증은 숫자와 항목을 넘어, 한 사람의 감정과 경험, 관계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수증들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종잇조각이지만, 작가에게는 자신을 지탱해온 삶의 증표들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기록’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데이터를 남기는 차원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해나가는 여정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바쁘고 빠르게 휘발되는 일상 속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가 어떻게 기억과 의미를 되살리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이야기집을 짓다
    황선미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등단 30주년 동화 작가 황선미에게 동화란"

    아동문학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아동문학은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라는 사실이다. 올해로 등단 30주년을 맞은 동화 작가 황선미는 ‘동화란 무엇인가’ ‘동화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저작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준다. 생생한 작가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동화가 가진 의미와 가치, 그리고 우리가 왜 동화를 읽어야 하는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마당을 나온 암탉> <들키고 싶은 비밀> <나쁜 어린이 표>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 등 굵직한 작품들을 써온 그는, 오랜 창작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와 경험을 쌓아왔을 것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이 작지만 단단한 책에는 군더더기 없이 정제한, 동화 창작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자신의 작품 외에도 여러 인상 깊은 동화를 함께 소개하며 독자들을 유연하게 동화의 세계로 이끈다. 황선미 작가의 글을 사랑해온 독자, 창작에 관심 있는 예비 작가, 동화의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 나쁘게 눈부시기
    서윤후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이어 붙인 대로 다시 깨지더라도"

    시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에세이 <쓰기 일기>로 감수성의 주파수가 맞는 독자의 지지를 얻은 서윤후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2009년 현대시를 통해 활동을 시작한 시인에게도 작품집이 쌓이듯 시간이 흘렀다.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이었던 시인은 이제 주변을 둘러본다. 계절은 환하고 친구들은 웃고 있다. 하지만 1부의 제목처럼 '햇빛이 모두에게 좋은 게 아니라면'. 찡그린 채 빛을 바라보는 한 친구의 얼굴을 발견하는 일. 우리들의 킨즈키 교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각자 가져온 접시는 모두 깨진 것이다
    조각을 이어 물결무늬로 만들 수 있겠군요 깨진 곳 사이사이가 다시 친해지도록 작은 흠을 이어 반짝임을 그려낼 수 있을 거예요 금이 간 것을 숨길 수 없으니 더 빛날 수 있도록
    (<킨즈키 교실> 부분, 103쪽)

    선생의 '한국말은 어눌하고 학생들 솜씨는 서툴렀으므로' 우리의 의사소통은 원활하지 않다. 깨진 접시의 흉터와 흉터 사이를 금박 등의 꾸밈으로 덧대 새로운 접시를 만들어내는 기법 '킨즈기'의 아름다움은 이 어긋남에 있다. 빈 곳은 빈 대로 두고 바라본 하늘엔 '영원히 날고 있는 비행접시'. 시는 이렇게 끝나고 비행접시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처럼 하늘을 보는 시선이 남는다. 볕은 기분을 고양시키고 축축한 곳을 마르게 한다. 하지만 이 환하고 위생적인 볕이 '모두에게 좋은 게 아니라면'. 시는 모두에 속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이 시집의 마지막 시의 제목처럼, 그 자리에서 나쁘게 눈부신 이들은 <비로소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