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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즐겨 썼다는 노트나 로알드 달과 존 스타인벡이 글 쓰는 데 필수로 여겼다는 연필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연필 한 다스의 풍족함과 지우개 싸움의 패배감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문구의 매력은 기능 자체보다 어떻게든 문구를 갖고 싶은 마음 그리고 제멋대로 쓰며 누군가와 나누었던 기억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책에 따르면, 확실히 그러하다.
저자 제임스 워드는 런던 문구 클럽의 창설자인데, 이들은 오프라인 문구류 품평회를 열어 가장 완벽한 노트와 필기구의 조건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며 문구의 본질에 다가선다고 한다. 문구의 왕 연필과 만년필의 탄생, 중흥, 경쟁을 거쳐 학창 시절 이후 작별을 고한 컴퍼스와의 짧고도 강렬한 만남까지, 작은 문구 하나하나에 담긴 넓고도 깊은 이야기를 끝없이 쏟아내며 인간이 왜 도구적 인간이라 불리는지 확인하는 저자의 탐구는, 스카치테이프보다 진득하고 스테이플러의 연속동작보다 아름답다. 그는 쓰지도 않을 문구를 왜 자꾸 사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우리에게는 이 사소한 물건들이 필요하다고, 더 커다란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